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성공 투자법-236화 (231/529)

236화. GL케미칼 (4)

임창식 당대표는 박성주 최고위원과 따로 자리를 가졌다.

두 사람은 오랜 기간 함께 정치를 해왔고, 사석에서는 형동생하는 사이였다.

“남궁석 의원을 좀 말려야 하지 않겠나?”

박성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여러 차례 말을 해봤는데 도무지 듣지를 않습니다. 징계를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는데도 할 테면 해보라는 식입니다.”

임창식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기야 원래 그런 사람이었지.”

그런 점이 마음에 들어서 입당을 권유했는데, 이렇게 골치 아픈 일을 벌일 줄이야.

“당 차원에서 법안을 추진하는 건?”

박성주는 고개를 저었다.

“대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이런 법안을 추진했다가는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재벌들은 물적분할과 상장 규제 법안이 통과되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기업들이 단체 행동에 나설 수도 있다는 건가?”

“예. 대기업들이 투자와 고용을 줄이겠다고 발표하면 국민들이 불안해할 테고, 새한국당 쪽에서는 반기업 정서를 확산시키고 국가 경제를 파탄시킬 세력에게 정권을 넘겨줘서는 안 된다며 정치공세를 펼칠 겁니다.”

이번 대선의 최대 화두는 경제.

때문에 임창식은 오래전부터 유능하고 공정한 경제 전문가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다고 무조건 기업 편을 들 수도 없지 않나?”

“그러면 반대로 소액주주들은 국민도 아니냐며 정치공세를 펼치겠죠.”

어느 쪽을 선택해도 욕먹을 상황.

역시 논란이 생길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최선이다.

‘남궁석 의원만 아니었어도…….’

임창식은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그럼 어쩌면 좋겠나?”

“이렇게 하는 건 어떻습니까?”

“좋은 방법이라도 있나?”

“기업의 고용과 투자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법적 규제는 반대하되, 대신 기업들의 자율적인 규제를 주문하는 겁니다.”

순간, 귀가 솔깃해졌다.

“기업들 보고 알아서 주주보호 방안을 만들어오라고 주문하자는 건가?”

“예. 이러면 어쨌거나 규제는 하는 모양새를 취하며, 기업들의 반발도 없앨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일단 이렇게 시간을 벌고, 여론 반응을 봐가며 대응하는 겁니다.”

“흐음.”

확실히 괜찮은 방법이다.

한참을 생각하던 임창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는 게 좋겠군.”

* * *

계속되는 입장 발표 요구에 우리한국당 임창식 대표는 당론을 정해서 발표했다.

“먼저 법적 규제는 기업 활동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신중해야 합니다. 물적분할과 상장은 기업이 신성장 산업 육성을 위해 대규모 자금 조달을 위해 불가피한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로 주주들의 권익이 침해되는 일도 없어야 할 것입니다. 저희 당에서는 법으로 인한 규제보다는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주주 보호 정책과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기존 2조 원 이상이었던 기업지배구조보고 공시의무를 자산규모 1조 원 이상으로 확대하고, 물적분할, 합병 등 소유구조를 변경하는 경우 주주보호를 위한 정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기업들과 협력해 가이드라인을 만들겠습니다.”

한마디로 법으로 규제하지는 않을 테니, 기업들이 알아서 대책을 마련하라는 것.

제1여당 당대표이자 차기 대통령의 가장 유력한 정치인이 법적 규제를 하지 않겠다고 밝히자, 재벌그룹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전경련은 즉각 환영 입장을 밝혔다.

“경제와 관련된 법과 제도는 기업의 자율적 경영을 최대한 보장해야 합니다. 정치권의 요구에 대해서는 빠른 시일 안에 기업들의 의견을 모아 주주 보호 대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전문가들 역시 대체로 합리적이고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많았고, 새한국당 역시 딱히 반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남궁석 의원은 냉소적으로 말했다.

“기업의 자율 규제라는 건 허상에 불과합니다. 애초에 단어 자체가 형용모순입니다. 자율이면 자율이고, 규제면 규제지, 자율 규제는 뭡니까? 자율 규제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한국 게임사들이 실행한 ‘랜덤박스 자율 규제’인데, 결과는 어땠습니까? 기업들에게 주주 보호를 맡기는 건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번 기회에 반드시 법으로 규제해야 합니다.”

* * *

동호 선배는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GL케미칼 주가와 뉴스를 들여다보았다.

그동안 늘어져 있던 모습과는 다르게 활력이 넘쳤다. 역시 투자자는 투자를 해야 한다. 비록 그게 주가를 떨어트리는 일이더라도.

“생각만큼 안 떨어지네.”

GL케미칼 주가는 현재 75만 원에서 하락이 멈춘 상태였다.

“토머스 모터스나 LD스튜디오와는 경우가 좀 다르니까요.”

그 둘은 사기 치다가 걸린 거였지만, GL케미칼은 건실하고 탄탄한 기업이다.

다만 물적분할 후 상장을 앞둔 GL엔텍의 지분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기업 가치가 달라질 뿐이지.

한국 증권사들이 주구장창 매수 리포트만 내서 그렇지, 외국에서는 매도 리포트를 내고 공매도를 하는 놈들이 한 트럭이다.

하지만 그들 중 성공하는 건 극소수다.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현재의 주가란 시장참여자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해 결정된 가격. 이를 원하는 대로 올리거나 낮춘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나마 컨티뉴 캐피탈쯤 되니까 25퍼센트라도 낮춘 거지.

“우리국민당은 자율 규제 카드를 꺼내 들었던데.”

“그럴 줄 알았어요.”

1회차 때, GL엔텍 상장으로 인해 여론이 악화되자 자율 규제가 실행됐다.

당연하게도 이 자율 규제 안에 물적분할 후 상장 금지나, 주식 현물배당은 없었다.

기업들은 마치 대단한 혜택이라도 베푸는 것처럼 기존 주주들에게 자회사 상장시 청약 우선권을 줬다.

그런데 이 청약이라는 것도 공모가가 낮을 때나 의미가 있지, 공모가가 높으면 괜히 청약받았다가 손실을 보게 된다.

임창식 대표가 자율 규제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냥 놔둘 수는 없고, 법으로 규제하기에는 부담이 크다. 뭘 하든 반발이 터져 나올 테니, 나름의 절충안을 찾은 것이다.

한마디로 어느 쪽 표도 잃기 싫다는 거다.

이렇게 우유부단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니, 나중에 나라가 그 모양이 됐지.

어떠한 정책이나 법이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대통령이라면 때로는 누군가 반대하는 일을 추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주민들이 반대하는 기숙사를 짓거나, 기업들이 싫어하는 규제안을 통과시키는 것처럼.

“그러고 보니, 이번에는 별일 없겠지?”

“무슨 일이요?”

“지난번에 한정그룹 건드렸다가 금감원 압수수색까지 받았잖아.”

“그랬었죠.”

그것도 왠지 엄청 오래전 일처럼 느껴진다. 그사이 일들이 좀 많았어야 말이지.

“이번에는 별일 없을 거예요.”

GL그룹은 정치권과 거리를 두고 있다. 대통령과 친분이 있다거나 뇌물을 먹이지도 않았다.

어차피 오영환 대통령의 임기는 올해 끝난다. 그러니 굳이 별로 친하지도 않은 재벌 일로 우리를 건드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얘기를 듣고 나니,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났다.

“우리가 청와대를 치죠.”

“……응?”

동호 선배는 잘못 들었나 하는 표정이었다.

“서, 설마 버스 몰고 청와대로 돌격하자는 건 아니지?”

“그건 아니고, 그냥 이번 일에 대통령을 엮어보자는 거죠.”

“응? 어째서?

“지난번 일에 대한 복수를 해야죠.”

이번에는 제대로 들었는지 입을 쩍 벌렸다.

“아, 아니! 가만히 있는 대통령을 왜 건드려? 우리 대통령님이 무슨 죄야?”

펄쩍 뛰는 모습을 보니 좀 수상하다.

혹시 지난 대선에서 오영환 찍었나?

“무슨 죄긴요. 그동안 저지른 비리가 한 트럭인데.”

“그래도 이번 일과는 관련 없을 거 아니야?”

그건 그렇지만…….

“에이, 그게 뭐가 중요한가요?”

“그럼 뭐가 중요한데?”

“제가 복수하고 싶은 게 중요하죠.”

“…….”

대통령까지 엮으면 지금보다 판이 훨씬 커질 것이다.

* * *

난 카페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죠?”

큰 키에 마른 몸, 뿔테 안경. 입고 있는 옷은 청바지에 체크 남방. 나이는 30대 중반으로 짙은 눈썹이 인상적이다.

그의 이름은 민홍수.

뉴스트리거 기자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프리머스 사태 폭로 때문이었다.

당시 그는 중흥경제신문에서 일하고 있었으나, 정권을 저격하는 기사를 쓰는 바람에 윗분들 눈 밖에 났고, 내친김에 뉴스트리거라는 인터넷 신문사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그곳에서 오영환 대통령과 한정그룹의 불법 거래를 조명하는 기사를 써서 대박을 터트렸다.

그때의 정이 있어서 그 후로도 LD스튜디오 등 각종 소스를 던져줬다.

덕분에 그 많은 인터넷 신문사들 중에서 뉴스트리거는 꽤 잘나가는 중이다.

“오늘은 무슨 일로 보자고 하신 건가요?”

혹시 기삿거리를 주지는 않을까 기대하고 있는 표정이다.

난 기대에 부응해주기로 했다.

“이번에 GL엔텍 상장 문제에 대해서는 알고 계시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지금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사안이니까요. 컨티뉴 캐피탈이 공매도를 선언했던데, 내막 같은 게 있나요?”

혹시 쓸만한 기삿거리 있으면 얼른 말해달라고 재촉하는 모양새다.

난 그에게 살코기가 가득 붙은 먹잇감을 던져주었다.

“혹시 이번 일에 청와대가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 아시나요?”

내 말에 민홍수 기자는 깜짝 놀랐다.

“청와대요? 그게 정말입니까?”

난 자료를 건네주고 설명을 시작했다.

“오영환 대통령의 처조카인 최시덕은 크레딧원 코리아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호주의 크레딧원 캐피탈이 KD은행과 합작해서 설립한 사모펀드죠. 운용 펀드 중 하나가 GL케미칼 주식을 담고 있었는데 물적분할 직전에 전부 팔았습니다. 그 후 국민연금은 GL엔텍 물적분할 안건에 찬성표를 던졌죠.”

“그게 최시덕과 관련이 있다는 겁니까?”

“예. 크레딧원 코리아는 GL엔텍 상장과 관련해 GL그룹에 자문을 해주는 대가로 수수료도 챙겼고, 이번 GL엔텍 기관 공모에도 참여합니다. 그리고 때마침 대통령의 처조카 최시덕은 운용본부장으로 승진했죠. 이 모든 게 과연 우연일까요?”

그는 열심히 내가 건네준 자료를 읽어보았다.

“이게 사실입니까?”

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제가 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이런 비리는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 *

[(뉴스트리거 단독) GL엔텍 물적분할, 청와대 특혜 의혹]

[GL케미칼-GL엔텍 물적분할에 국민연금 찬성. 청와대 외압 있었나?]

[GL케미칼과 크레딧원 코리아 모두 관련 사실 부인]

기사를 확인한 오영환 대통령은 깜짝 놀랐다.

“아, 아니! 이게 뭐야?”

그는 이제까지 수많은 부정부패를 저질러왔다. 차명 재단을 통해 뇌물을 받았고, 기업들의 각종 편의를 봐주었다.

하지만…….

“이건 아니야!”

맹세코 GL그룹에게 단 한 푼도 받은 일이 없었다.

그는 일단 아내에게 물어보았다.

“당신 이거에 대해 아는 거 있어?”

“저, 저도 몰라요. 동생이랑 연락도 잘 안 하는데요.”

오영환 대통령은 버럭 소리를 쳤다.

“그럼 대체 이런 기사가 왜 나온 거야!? 저놈은 왜 하필 사모펀드에 일하고 있는데!”

그의 아내는 억울하다는 듯 울먹거렸다.

“전 정말 모르는 일이에요, 여보. 시덕이가 사모펀드에서 일한다는 것도 이번에 알았어요.”

영부인의 형제자매는 다섯 명.

처조카 숫자는 무려 열셋이다. 그들 중 누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 알 게 뭔가?

혹시 자기 말고 중간에 다른 사람이 해먹었나 싶어서 알아보았지만, 정말로 이번 일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그저 대통령의 처조카가 사모펀드에서 일한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 어거지로 끼워 맞춘 거였다.

국민연금은 대체로 재벌들이 하는 일에 찬성표를 던졌다. GL엔텍 물적분할 건 역시 마찬가지.

또한 GL엔텍 공모에는 거의 모든 투자회사들이 참여한다. 오히려 참여하지 않는 곳을 찾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런데도 기사는 마치 대통령이 처조카가 다니는 회사에 특혜를 베풀기 위해 물적분할에 찬성했고, GL엔텍 상장을 지원하고 있다는 뉘앙스였다.

오영환 대통령은 분노해서 소리쳤다.

“이런 개자식들이! 언론이라는 놈들이 이런 허위 기사를 쓰다니! 이러니 기레기 소리를 듣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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