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성공 투자법-235화 (230/529)

235화. GL케미칼 (3)

박영기 앵커는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사기라…… 표현이 너무 과격하신 거 아닙니까?”

“그렇긴 해도 사실이니까요. GL케미칼의 석유화학 부문의 가치는 좋게 쳐줘봐야 5조 원입니다. 그리고 GL이 보유한 GL케미칼 지분의 할인율을 GL케미칼이 보유한 GL엔텍 지분에 똑같이 적용하면, 시총은 잘해야 30조 원입니다. 그러니 주가는 절반 이하로 폭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지주회사인 GL이 보유한 계열사 주식이 30퍼센트 정도로 평가받고 있으니, GL케미칼이 보유한 GL엔텍 주식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그러면 말입니다. 이 사실을 GL케미칼 경영진이 알고도 GL엔텍 상장을 추진하는 거라면, 혹시 주주들의 재산에 손실을 입히는 배임행위가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김범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주주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이런 식으로 계열사를 상장하는 행위를 법으로 막고 있습니다. 미국 증시를 보면 지주회사 하나만 상장되어 있는 게 일반적입니다.”

“그럼 한국도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국회에서 법을 만들어 규제하지 않는다면 비슷한 상황은 언제든 반복될 겁니다.”

“그렇군요. 말씀 잘 들었습니다.”

박영기 앵커는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오늘 얘기는 어디까지나 김범석 씨 개인의 의견일 뿐입니다. GL엔텍 상장으로 인해 정말로 GL케미칼이 피해를 입게 될지 아닐지에 대한 판단은 국민들께서 하실 겁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 *

방송의 효과는 놀라웠다.

이전까지만 해도 생소하던 지주사 할인과 더블카운팅이라는 용어를 이제 전국민이 알게 됐다.

-저분 이별 편지 부른 가수 아닌가요? 가수가 왜 뉴스에 나와서 저런 걸 설명하고 있는 건가요?

-그러게요.

-본업은 펀드매니저라고 합니다. 소개에 나왔다시피 현재 컨티뉴 캐피탈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예?

-응??

-아뉘???

-펀드매니저라니! 너무 뜬금없는데.

-가수가 왜 펀드매니저를 하지?

-반대 아니야? 펀드매니저가 왜 가수를 하지?

-지난번 이슈가 됐었는데. 모르는 분들도 계셨나 보네요.

-그동안 노래하는 것만 봤는데 신기하네. 꿀성대에 뇌섹남~

-GL케미칼 헛소리는 GL 주가로 반박 가능

-그래서 결론이 뭐임?

-GL엔텍 상장하면 GL케미칼 폭락한다는 게 결론

-난 단팥빵인 줄 알고 샀는데, 팥을 뽑아서 다시 파는 경우가 어디 있냐?

-단팥빵에서 팥을 빼면, 그건 단팥빵일까 아닐까?

-진짜 이건 상도의가 없는 짓임 ㅜㅜ

-내일 장 열리면 떡락하겠는데.

-ㅅㅂ 좆됐네…….

-소액주주 살려!

-무조건 GL엔텍 상장을 막아야 합니다!

-남궁석 의원이 물적분할 후 상장을 막는 법안을 추진 중이라고 하니, 주주들이 다 같이 지지해 줍시다!

-지금 믿을 건 남궁석 의원뿐이다!!!

* * *

여의도 GL케미칼 본사.

그 앞에서 소액주주들의 거센 시위가 벌어졌다.

“GL엔텍 상장을 철회하라!”

“철회하라! 철회하라!”

“GL케미칼 주주들의 손실을 보상하라!”

“보상하라! 보상하라!”

대기업 앞에서 시위가 벌어지는 건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평소라면 신경 쓸 필요조차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그 시위대에 3선 국회의원이 있다는 것.

남궁석 의원은 아예 천막을 치고 철야농성을 하며 관계자 면담을 요구했다.

결국 GL케미칼 측은 어쩔 수 없이 요청을 받아들였고 본사 내에서 간담회가 열렸다. 대강당 안에 소액주주들이 빼곡히 들어찬 모습은 마치 주주총회를 방불케 했다.

GL케미칼 쪽에서 나온 사람은 민성구 이사.

인사가 끝나기 무섭게 남궁석 의원은 질문을 던졌다.

“대체 왜 멀쩡한 회사를 분할한 겁니까?”

“두 사업을 동시에 영위하다 보니 전문성과 효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해가 안 됩니다. GL케미칼은 그렇게 전문성과 효율성이 떨어지는 상태에서 배터리 사업을 세계 1위 수준으로 성장시키지 않았습니까? 이제까지 두 사업을 다 잘하고 있었는데, 굳이 지금 시점에서 분할한 이유가 뭡니까?”

“다시 말씀드리지만, 전문성과 효율성 재고를 위해…….”

남궁석 의원은 그 말을 자르며 말했다.

“이제까지 배터리 사업부는 적자였습니다. 석유화학에서 벌어들이는 돈으로 배터리 사업의 적자를 메우는 식이었죠. 덕분에 영업이익은 거의 나지 않아 직원들 월급도 적게 줄 수 있었고, 주주 배당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배터리 사업부가 흑자로 돌아서자, 기존 주주들과 이익을 공유하지 않기 위해 물적분할한 거 아닙니까?”

민성구 이사는 땀을 흘리며 말했다.

“그건 오해입니다. 물적분할은 주총에서 주주들도 동의한 사항입니다”

사실 물적분할 후 상장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분할 그 자체였다.

물적분할은 경영진 임의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주주들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주주의 3분의 1 이상이 참석한 주총에서 3분의 2 이상 찬성하는 것이 요건이다.

만약 소액주주들이 합심해서 반대했다면, 물적분할에 제동이 걸렸을 것이다.

하지만…….

“확인해보니 대다수의 소액주주들은 소액주주들 주총이 열리는지, 안건이 뭔지조차 몰랐습니다. 주총 참석 주식수는 60퍼센트를 간신히 넘겼고, 그중 최대주주인 GL과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44퍼센트였습니다. 때문에 기관과 외국인들이 일제히 반대표를 던졌음에도 약 70퍼센트 찬성률로 가결됐죠. 이런데도 물적분할이 소액주주들의 의견을 반영했다고 할 수 있습니까?”

민성구 이사는 변명하듯 말했다.

“이번 상장을 통해 GL엔텍은 대규모 투자금을 모집해 이를 전부 공장 증설에 투자할 예정입니다. 이는 주주들에게 분명히 이익이 될 겁니다.”

“그럼 GL케미칼이 투자를 받아서 진행하면 되지 않습니까? GL엔텍 상장을 즉각 중단하고 GL케미칼이 유상증자를 통해 투자금을 모집한 다음 GL엔텍에 투자하세요. 여기에는 주주들도 동의할 겁니다.”

그러자 소액주주들은 일제히 소리쳤다.

“옳소!”

“동의합니다!”

“GL엔텍 상장을 포기하고, GL케미칼이 유상증자하라!”

민성구 이사는 당황하며 말했다.

“그렇게 하면 투자자들이 싫어하기 때문에…….”

“주주들이 싫어하는 일은 해도 괜찮고, 투자자들이 싫어하는 일은 하면 안 된다는 겁니까? 대체 GL케미칼은 누구를 위한 기업입니까?”

“상장은 이미 진행 중인 사안인 만큼 중단하기는 힘듭니다.”

“만약 상장을 밀어붙일 거라면 기존 주주들의 손실을 보상할 대책을 마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여러 방안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장사꾼의 말은 잘 걸러 들어야 한다.

여러 방안을 고려 중이라는 얘기는 곧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얘기랑 동일했다.

“그 고려 중인 방안이라는 게 뭡니까?”

“먼저 본업인 석유화학의 역량을 강화해 매출과 수익을 늘릴 예정입니다. 또한 GL엔텍에서 들어오는 배당금은 그대로 GL케미칼 주주들에게 재배당할 계획입니다. 이렇게 하면 더블카운팅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될 겁니다.”

“GL엔텍은 투자금을 전부 생산량을 늘리는 데 투자하겠다면서요? 애초에 이익이 없으면 배당도 없고, GL엔텍이 배당을 하지 않는다면 재배당 약속은 별 의미 없는 것 아닙니까?”

“그, 그렇긴 한데…….”

“굳이 그럴 것 없이 GL케미칼 주주들에게 GL엔텍 주식을 현물배당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민성구 이사는 깜짝 놀랐다.

“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GL케미칼 주주들은 그동안 신규사업에 대한 위험성과 적자를 감내하고 투자를 해왔습니다. 반드시 GL엔텍을 상장해야 한다면, GL케미칼 주주들의 손실에 대한 마땅한 보상이 있어야 할 겁니다. GL케미칼은 상장 이후에도 GL엔텍 주식 80퍼센트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중 20퍼센트를 주주들에게 현물로 배당한다 해도 GL케미칼의 지분율은 60퍼센트로 경영권 유지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습니까?”

민성구 이사는 당황하며 말했다.

“그,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서…….”

“어째서 불가능합니까? 이사회에서 정관만 개정하면 되지 않습니까? 주주들 역시 적극찬성할 겁니다.”

그러자 소액주주들은 일제히 소리쳤다.

“옳소!”

“찬성합니다!”

“우리에게도 GL엔텍 주식을 달라!”

“즉각 주식을 현물배당해라!”

“필요하다면 제가 국회에서 입법으로 힘을 보태겠습니다. 아니면 혹시…….”

남궁석 의원은 민성구 이사를 쏘아보며 말했다.

“불가능한 게 아니라 싫은 거 아닙니까?”

“…….”

당연히 싫은 거였다.

애초에 물적분할 후 상장은 기업의 이익을 기존회사의 소액주주들과 공유하지 않기 위한 목적이었다.

GL케미칼이 GL엔텍 주식을 가지고 있으면 총수 일가 재산이지만, 그걸 주주들에게 나눠주는 순간 소액주주들 재산이 된다.

회사 입장에서는 굳이 해줄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주, 주주가치 재고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 * *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긴 했지만, GL케미칼의 입장은 조금도 달라진 게 없었다.

바로 GL엔텍의 상장은 예정대로 진행하고, 기존 주주들에게는 어떠한 혜택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남궁석 의원은 국회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일의 핵심은 물적분할이 아니라 계열사 상장입니다. 이는 결국 적은 돈으로 기업을 지배하려는 오너의 목적에 의해 소액주주들이 희생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국회에서 조속히 물적분할 후 상장을 제한하고, 계열사 상장시에는 기존 주주들에게 주식으로 보상하는 법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기업을 쪼개 상장하거나, 자녀 명의로 투자한 계열사를 만들어 일감 몰아주기로 키운 다음 상장하는 것은 모든 재벌들이 흔히 해온 일이었다.

만약 손해가 나면 주주들에게 물리면 되고, 이익이 나면 상장해서 막대한 수익을 챙기면 된다.

그런데 갑자기 웬 국회의원이 여기에 제동을 걸겠다고 나선 것이다. 정말로 법안이 통과되면 모든 기업들이 영향을 받게 된다.

역시나 재벌들은 일제히 불만을 터트렸다.

“지주회사로 전환하라고 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이런 규제를 한다는 건가?”

“상장을 제한하는 법이라니! 공산국가도 안 할 짓이다!”

“기업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최악의 법안이다.”

“이러한 반기업적인 행태로 인해 기업들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거다.”

“법안이 통과되면 해외 증시에 상장을 검토하는 수밖에 없다.”

재벌들을 대표하는 전경련은 공식적인 입장문을 냈다.

“물적분할과 계열사 상장에 대한 규제는 기업 활동과 투자를 위축시킵니다. 또한 해외에 상장된 기업들과의 역차별이 우려됩니다. 이러한 불공정한 규제로 인해 기업들이 해외로 빠져나가면, 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치게 되는 만큼 규제에 신중을 부탁드립니다.”

그러나 국민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이게 뭔 쌉소리냐?

-올해 들어 본 개소리 중 가장 신박하네.

-정작 미국 증시 일본 증시 모두 지주사 하나만 상장되어 있지 않나?

-선진국들은 대부분 물적분할 후 상장을 금지시키고 있다! 이런 짓거리 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는데 뭔 역차별 같은 소리를 하고 있어?

-니들 돈으로 투자한 기업이면 물적분할하든 상장하든 신경 안 쓰는데, 대체 왜 주주들 돈으로 투자해놓고 수익 좀 낼 만하니까 상장하냐?

-물적분할 후 상장 = 대주주 지분 유지하며 유상증자

-그러니까 투자금이 필요하면 유상증자를 하라고! 니들 지분 깎이는 건 싫고, 소액주주들 지분만 깎아 먹겠다는 거 아니야?

-한마디로 총수 경영권 유지비용을 주주들이 대주는 셈입니다.

-니들 경영권 지키는데 왜 우리가 손해를 봐야 돼?

-재벌들이 똥 싸는데 왜 소액주주들이 힘을 주어야 하느냐는 말이다!!!

* * *

재벌들의 강력한 반발에 정치권은 난감해졌다.

여당인 새한국당과 청와대는 최대한 언급을 자제하며 거리를 두려고 노력했다. 괜히 논란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국민당은 그럴 수가 없었다.

남궁석 의원이 미쳐 날뛰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에는 지지와 항의가 쏟아졌다.

논란이 생겼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모른 척하는 것이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반발이 튀어나올 테니까.

그런데 남궁석 의원으로 인해 임창식은 당대표로서 어떤 식으로든 입장을 밝혀야 할 상황에 놓였다.

‘아니, 사람 곤란하게 대체 왜 이러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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