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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성공 투자법-225화 (220/529)

225화. 킹메이커 (3)

한 남자가 성윤아에게 말을 걸었다.

“어! 윤아 왔네.”

“안녕하세요.”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아직 회사에서 일한다며?”

엄청 친한 척한다.

민아름이 옆에서 작은 목소리로 말해주었다.

“트리니셀헬스케어 진규석 상무예요.”

젊은 나이에 그런 자리까지 올라가다니.

미칠듯한 경영 능력을 지니고 있는 건가?

“아버지가 트리니셀 진용주 회장이에요.”

“능력 좋네요.”

부모 잘 만난 것도 능력이다.

원래 대기업 임원으로 일하던 진용주는 IMF 때 직장을 잃었다.

그때 그는 바이오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일찌감치 깨닫고, 동료들과 함께 돈을 모아 트리니셀을 창업했다.

정작 본인은 바이오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바닥에서부터 공부했다고 한다.

그렇게 만든 트리니셀은 차례대로 현재 한국 최대의 바이오 기업으로 성장했다. 현재 시총은 코스피 10위, 재계 서열로는 무려 20위다.

유성이나 대연 등이 전통의 재벌이라면 이쪽은 신흥 재벌이라 할 수 있다.

정말이지 참석자들 면면이 화려하구나.

내가 이런 파티를 오게 될 줄이야.

DA증권에 다니던 시절에 이런 자리에 왔다면 주눅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그런 느낌이었다.

난 쟤들보다 돈이 많으니까.

진규석 외에도 성윤아를 알아본 사람들은 하나씩 말을 걸었다.

성윤아가 이리저리 인사를 하러 다니는 사이, 난 민아름과 대화했다.

“오빠한테 들으니 그동안 재밌는 일들을 했다고 하던데.”

“이런저런 일들이 많긴 했죠.”

“일본도 다녀오셨다구요?”

난 미리 말했다.

“사마라 회장 제가 탈출시킨 거 아니에요.”

“그럼 누가 탈출시켰는데요?”

“……언론 보니까 쿨렌 형제라고 하더라구요.”

참고로 그 두 사람은 현재 미국에서 체포됐고, 일본의 범죄자 인도 요청에 따라 조만간 일본으로 송환될 예정이다.

망신을 당한 일본 사법부는 두 사람을 강력하게 처벌하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저지른 범죄라고 해봐야 보석 중인 사마라 회장을 몰래 탈출시킨 것뿐. 기껏해야 징역 1년 6개월 정도로 예상한다.

“저희 백화점에 한번 놀러 와요. 요즘 계절 신상품도 많이 들어왔어요.”

“저한테 영업하시는 거예요?”

민아름은 웃으며 말했다.

“제가 잘해드릴게요.”

“어떻게 잘해주나요?”

“명품샵들은 물건을 쌓아놓고 파는 게 아니에요. 돈만 있다고 구매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죠.”

명품이란 기능이 아닌 희소성 때문에 가격이 비싸다. 때문에 고가의 브랜드일수록 손님을 가려 받는 경향이 있다.

그녀의 도움을 받으면 구하기 힘든 제품도 좀 더 쉽게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돈을 벌었으면 요즘 트랜드에 맞게 백화점 가서 한번 플렉스를 해줘야 하지만…….

“딱히 살 게 없는 것 같은데.”

“여동생 있다면서요? 오빠가 쇼핑시켜주면 좋아하지 않겠어요?”

“아! 걘 아직 대학생이에요.“

”어머, 요즘 대학생들이 명품을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용돈 모으고 알바해서 명품 사는 게 유행이에요.“

대체 이딴 유행은 누가 만드는 걸까?

힘들게 돈 벌어서 아깝게 명품이라니!

그런 데 쓸 돈 있으면 PC방 가거나, 술 마시러 가는 게 낫지 않나?

“그런데 미루 씨, 이런 자리 와도 괜찮은 거예요?”

“왜요?”

“미루 씨는 유명인이잖아요.”

“제가요?”

“미루 씨 얼굴은 몰라도 이름 모르는 사람은 없을걸요. 게다가 미루 씨 이름이 흔한 것도 아니고.”

“…….”

생각해보면 내 전적이 좀 화려하다.

DA증권 양정욱 전무를 날린 거야 그렇다 쳐도, 10대 그룹 중 하나인 한정그룹 해체에 일조했으니까.

다시 말해 나는 재벌들의 적이나 다름없다!

정체가 알려지면 몰매 맞고 쫓겨나지 않을까?

민아름은 잠시 자리를 떴고, 혼자서 샴페인을 홀짝거리는데, 성윤아가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인기 많네요.”

“인기는요.”

“특히 남자들이 적극적으로 말을 거는 것 같던데.”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런 거 아닌 것 치고는 지금도 몇몇 놈들이 나를 쏘아보는 듯했다.

하기야 성윤아면 누구한테도 호감을 살 만한 외모와 성격이긴 하지.

남자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대화를 하는데 누군가 이쪽으로 사뿐사뿐 걸어왔다. 새하얀 어깨와 쇄골이 눈에 들어왔다.

다름 아닌 오늘 파티의 주인공 고현지다.

가까이서 보니 예쁘긴 정말 예쁘다. 동호 선배나 선우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떨려서 말도 잘 못하지 않았을까?

고현지는 성윤아를 보더니 반갑게 말했다.

“왔어, 윤아야?”

“생일 축하해.”

“너 올 줄 몰랐는데.”

“오라고 했잖아.”

“매번 파티에 잘 안 오기에 괜히 나 때문에 그런가 했지.”

“응? 그게 무슨 말이야?”

고현지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면 다행이고. 옷 예쁘네. 설마 내가 지난번에 트위드 원피스 입은 거 보고 산 거야?”

“그건 아닌데.”

“아니긴. 괜찮아. 나 이제 이런 스타일 안 입으니까.”

“…….”

고현지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했다.

“이쪽은 누구야? 설마 남자친구?”

“그, 그런 거 아니야.”

난 당황하는 성윤아를 대신해 말했다.

“아! 전 윤아 씨와는 회사 동기입니다.

“회사 동기요?”

“예.”

“혹시 부모님은 어떤 일을 하시나요?”

“…….”

초면에 이런 걸 묻는다고?

사실 내가 그동안 자랑을 안 해서 그렇지 우리 집도 기업가 집안이다.

“아버지가 병진공업 사장입니다.”

“병진공업이요?”

“처음 들어보는 것 같은데요. 어떤 회사죠?”

중소기업이라 서럽다.

이런 데서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병진공업을 빨리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천에 공장이 있는 중소기업입니다. 현재 대기업 납품을 위해 열심히 제품을 개발하는 중입니다.”

고현지는 입을 살짝 가리며 웃었다.

“풉!”

비웃는다기보다는 실소에 가까웠다.

병진공업이 이런 취급을 당하니 마음이 아프다. 이래서 하루빨리 좆소기업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믿을 건 박용진 부사장뿐이다.

생각해 보니 아버지 회사가 커지면 나도 재벌 2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고현지는 이내 웃음을 멈추더니 말했다.

“괜찮아요. 전 사람끼리 만나는데 신분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니까요.”

“……예?”

이게 뭔 소리야?

애초에 이 말 자체가 신분이 있다는 걸 전제하는 거잖아. 더 나아가 내가 신분이 낮다는 걸 지적하는 거고.

나를 대신해 성윤아가 말했다.

“요즘 세상에 신분 같은 게 어디 있어?”

“응. 그래서 중요하지 않다고 했잖아.”

“…….”

왜 성윤아가 피곤한 성격이라고 말한 건지 알 것 같다.

일단 대화가 안 통한다.

“아무튼 잘 오셨어요. 여기 오신 다른 분들과 친해지면 아버지께서 사업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성윤아는 살짝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야, 고현지.”

“왜 그래? 난 도와주려고 말한 건데.”

표정을 보면 정말로 몰라서 이러는 건지, 일부러 이러는 건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인사를 끝낸 고현지는 다른 곳으로 갔다.

몇 마디 나누지도 않았음에도 성윤아는 잔뜩 지친 표정이었다.

“윤아 씨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알 것 같네요.”

내 물음에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네요.”

“그런데 둘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요?”

“왜 그렇게 생각해요?”

“그냥요.”

왠지 고현지가 일방적으로 성윤아를 견제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별일은 아닌데…….”

“뭔데요? 별일 아니라니 더 궁금하네요.”

성윤아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고등학교를 현지랑 같이 다녔어요. 그때 현지가 학교에서 좋아하던 오빠가 있었어요.”

“설마 그 오빠가 윤아 씨를 좋아했나요?”

“어! 어떻게 알았어요?”

“그런 일은 의외로 자주 일어나니까요.”

얼마 전 결혼한 하경태만 해도 나보다 먼저 진세연에게 고백했다. 그러다가 내가 진세연과 사귄다는 걸 알게 되자 술에 취해서는 ‘내가 먼저 좋아했는데!’라는 헛소리를 씨불였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그 오빠가 저한테 고백했는데 거절했어요.”

“윤아 씨는 안 좋아했던 모양이네요.”

성윤아는 웃음을 지었다.

“그때는 잘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좋아했던 것 같기도 해요.”

“그런데 왜 거절했어요?”

“현지가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럼 그 오빠는 어떻게 됐어요?”

“졸업하자마자 유학 갔어요.”

둘 사이에 그런 사연이 있었을 줄이야.

“진짜 별일 아니네요.”

“그렇죠? 나중에 화해하긴 했는데, 그때 일로 아직까지 오해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어떤 오해요?”

“제가 먼저 꼬리친 게 아니냐는 거죠. 아! 물론 아니에요. 오히려 현지랑 잘되게 밀어주려고 일부러 거리를 뒀는데.”

“그런데도 윤아 씨한테 끌렸던 모양이네요.”

“저도 이해가 잘 안 돼요. 현지가 더 예쁘고 집안도 좋은데.”

“전 이해가 되는데요.”

“예?”

“저였어도 윤아 씨를 좋아했을 것 같은데.”

아마 30분만 말을 섞어봐도 다들 성윤아를 택하지 않을까?

만나서 입 다문 채 얼굴만 보고 있을 것도 아니고. 같이 있으면 피곤한 사람보다는 즐거운 사람이 좋기 마련이지.

그리고 외모 역시 성윤아가 고현지에 비해 부족할 게 없다.

“어, 음. 자, 잠깐 손 좀 씻고 올게요.”

어째서인지 성윤아는 당황하며 황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난 그녀가 돌아올 때까지 천천히 파티를 구경했다.

참석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요즘 원자재 가격 엄청 오르던데. 너네 회사는 괜찮아?”

“말도 마.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죽겠어.”

“나 리튬 선물 투자했다가 10억 넘게 날렸어. 아버지 알면 큰일인데.”

“뭐가 걱정이야? 벌 때가 있으면 잃을 때도 있는 거지.”

“아람코 상장 앞두고 사우디가 유가 끌어올리기에 나선 것 같은데.”

미국 국채 금리가 어떻고, 원자재가 어떻고, 스타트업 투자가 어떻고, 펀드가 어떻고 등등.

금융권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흥미로운 얘기들이 오갔다.

아무래도 재벌가 자제들이다 보니 일반인들과는 접하는 정보와는 정보의 질 자체가 달랐다.

이러니 돈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은 돈을 버는 수밖에.

파티장 속에서 고독을 음미하고 있는데,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파티가 재미없나요?”

고개를 돌려보니 고현지다.

“아니요. 충분히 즐기고 있습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먼저 말을 붙이면 다들 친절하게 대해줄 거예요.”

“예.”

내 정체를 알고도 친절하게 대해줄지는 의문이다만.

굳이 나에게 말을 건 것은 하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이겠지?

“그런데 정말로 윤아랑은 아무 사이 아니에요?”

“예. 그냥 친구 사이예요.”

“신기하네요. 윤아가 이런 자리에 남자를 데려오는 건 처음인데.”

자꾸만 성윤아와의 사이를 의심하는 것 같은 눈치다.

난 오해가 없도록 말했다.

“제가 데려와 달라고 부탁했어요.”

“어째서요?”

난 솔직하게 말해주었다.

“제가 GL그룹에 관심이 좀 많아서요.”

그 말에 고현지는 잠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이내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요. 전 그쪽에게 별 관심이 없어요. 그리고 연애와 결혼은 집안이 맞는 사람끼리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

이게 뭔 소리야?

설마 GL그룹에 관심이 있다는 걸 본인에게 관심이 있다는 걸로 착각한 건가?

“아, 아니요. 전 GL그룹에 관심이 있을을 뿐, 현지 씨에게는 아무 관심 없습니다.”

내 말에 고현지는 입을 가리며 웃었다.

“좀 식상하네요.”

“뭐가요?”

“괜히 관심 없는 척, 신경 안 쓰는 척하는 거요. 그러면 여자들이 ‘이 남자 뭐지’ 하며 궁금해할 것 같죠? 그런데 안 그래요. 차라리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 호감을 얻기 쉬울걸요.”

“…….”

이게 뭔 소리지?

순간, 대략 정신이 멍해졌다.

그야말로 머릿속이 하얗게 변한 것 같은 느낌이다.

“어, 그게…….”

너무 어이가 없어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고현지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너무 당황할 것 없어요. 제 앞에서 그런 식으로 무관심한 척하던 남자들이 한둘이 아니었으니까요.”

“…….”

이렇게 말하니 마치 내가 속마음이 들켜서 당황한 걸로 보인다.

난 한동안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뭐지?

고백도 안 했는데 차인 것 같은 이 상황은?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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