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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성공 투자법-224화 (219/529)

224화. 킹메이커 (2)

한국 증시에는 가끔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재벌그룹들의 시총이 증가하고, 코스피의 시총 역시 늘어나지만, 정작 지수는 오르지 않고, 무엇보다 내가 가진 주식은 떨어지는 현상이다.

이런 경우를 맞닥뜨리면 보통 본인이 투자를 잘못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여기에는 언론도 증권사도 말해주지 않는 중요한 비밀이 하나 숨어있다.

그건 바로 개인투자자의 정보력과 자금 부족 문제를 떠나 한국 증시는 애초에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

투자의 대가 에런 베이커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장기적으로 경제는 우상향하고, 우량 기업에 장기투자하면 반드시 수익을 얻을 수 있다’라고.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정상적으로 기업이 성장할 경우.

만약 경영자가 중간에 다른 곳으로 이익을 빼돌린다면 경제의 성장이 기업의 성장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한국에는 웬만한 유럽 선진국들보다도 세계적인 기업들이 포진해있다. 하지만 주가는 기대만큼 크게 오르지 못한다.

사실 여기에는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가 가장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이게 꼭 재벌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새롭게 기업을 키워낸 창업자들 역시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마치 모두가 한국에서는 그래도 된다는 식이다.

이렇다 보니 한국 증시는 장기투자가 힘들고, 이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요인이 된다.

이러한 문제는 오래전부터 지적되어 왔지만 누구도 쉽게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지주회사를 규제하거나 순환출자를 막는 등의 법안이 나오긴 했지만, 빠져나갈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남궁석 의원은 훗날 이러한 문제 해결에 가장 앞장선다.

그는 경영자가 주주들을 위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여러 법안을 발의했지만, 입법에는 번번이 실패했다.

재계의 반발을 의식한 동료 의원들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럴 땐 또 여야가 따로 없단 말이지.

사실 재벌을 규제하는 법안을 통과시킨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경제가 좋을 때는 열심히 하는 기업들 발목 잡는다고 욕먹고, 경제가 안 좋을 때는 지원해줘도 모자랄 판에 뭔 규제냐며 욕먹기 좋으니까.

그렇다면 이번에는 어떨까?

난 이어서 GL그룹에 대해 분석해보았다.

GL그룹의 재계서열은 유성과 대연차, 그리고 LK그룹에 이어서 4위.

현재 LK그룹과는 시총이 70조 이상 차이난다. 하지만 조만간 LK그룹을 꺾고 3위로 올라선다.

이 상황을 남궁석 의원과 엮은 다음 최대한 판을 키워볼 생각이다. 전국민이 주목할 수 있도록.

내가 하려는 일은 1회차 때는 없었던 일.

그러니 사전에 계획을 잘 짜야 한다.

한창 열심히 계획을 짜던 도중 어떠한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잠깐. 이거 잘하면…….”

* * *

압구정의 디저트 카페.

안으로 들어서자 한 여성이 손을 들어보였다.

“여기예요.”

난 그쪽으로 다가가서 맞은편에 앉았다.

그녀의 이름은 성윤아.

내 DA증권 시절 동기이자, DA금융그룹 회장의 손녀다. 못 본 사이 예전보다 더 예뻐진 것 같은 모습이다.

“오랜만이네요.”

“정말요. 이게 얼마만이죠?”

한국에 돌아온 지 꽤 됐음에도 이제야 그녀를 만난 이유는 내가 미국에 있는 사이 그녀가 런던으로 연수를 갔기 때문.

그랬다가 어제 돌아왔다.

성윤아는 정말로 반가워하는 표정이었다. 아마 내 표정 역시 비슷할 것이다.

“연수는 어땠어요?”

“정말이지 교육만 받다 왔어요.”

“너무 열심히 하는 거 아니에요?”

“전 미루 씨만큼 재능이 있지는 않으니 노력이라도 해야죠.”

난 손을 내저었다.

“에이, 제가 재능은 무슨요. 그런 거 없어요.”

그저 회귀를 했을 뿐 재능 같은 건 쥐뿔도 없다.

재능만 놓고 보면 그녀가 나보다 낫지 않을까?

“없긴요. 미루 씨 같은 사람을 요즘 애들 말로 재능충이라고 하는 것 같던데.”

“푸훕.”

순간, 웃음이 터져나왔다.

“왜 웃어요?”

“아니, 요즘 애들이라고 하니 좀 웃겨서요. 제가 보기에는 윤아 씨가 요즘 애들인데.”

“그럼 미루 씨도 요즘 애들이에요?”

“전 아니죠.”

“나랑 두 살 차이밖에 안 나면서.”

“두 살이면 크죠. 저 성인일 때 윤아 씨는 미성년자였어요.”

“칫! 그게 뭐예요?”

사실 회귀한 것 치면 10살 넘게 차이가 난다.

회귀하기 전에는 슬슬 아재 취급받던 나이였다. 치킨집 손님들 중에는 아저씨라고 부르는 놈들도 있었다.

걔들한테는 뻥튀기 리필도 안 해줬다.

“미루 씨는 그사이 재밌는 일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 얘기 좀 해줘요.”

“어떤 얘기 듣고 싶어요? 블랙우드 본사에 갔던 얘기해줄까요? 거기에 FBI와 NSA 수사관도 와있었는데…….”

당시 나의 활약상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려는데, 성윤아는 다른 얘기를 꺼냈다.

“사마라 회장 탈출 사건이요.”

“……그건 저희랑 아무 관련 없습니다.”

“그럼 그때 일본에는 왜 갔어요?”

“일본 여행주간을 맞아 관광하러요.”

그사이 틈틈이 연락했는데, 어쩌다 보니 일본에 있다는 사실을 얘기했다.

아무래도 괜히 말한 것 같다.

“흐음, 신기하네요. 하필 미루 씨가 놀러 갔을 때 하필 사마라 회장이 탈출하다니.”

“저도 나중에 뉴스 보고 깜짝 놀랐어요.”

“거짓말 그만하고 저한테만 말해줘요. 대체 어떻게 한 거예요? 설마 직접 탈출시킨 건 아니죠?”

“…….”

착한 사람이 이렇게 오해를 받는다.

어떻게 빠져나가면 좋을지 고민하는데, 마침 성윤아의 핸드폰이 울렸다.

“잠시만요.”

성윤아는 짧게 통화한 다음 끊었다.

“누구예요?”

“아름 언니요.”

“민아름 씨요?”

“예.”

신세기그룹 유혜경 회장의 딸이자 유재호 회장의 사촌 여동생이다.

“무슨 일인데요?”

“오늘 현지 생일파티가 있다고 해서요.”

“현지가 누군데요?”

“고현지라고 GL그룹 고본승 회장님 손녀예요.”

“아!”

“알아요?”

“들어 봤어요. 유명하잖아요.”

애널리스트 입장에서도 그룹 회장님과 계열사 경영자라면 모를까, 재벌가 사람들의 이름을 전부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고현지의 이름을 기억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바로 예쁘기 때문이다.

원래 GL그룹 사람들은 고철승 초대회장 때부터 잘생기기로 유명했다. 그래서인지 2세, 3세할 것 없이 전부 미남미녀였다.

그중 외모로 가장 유명한 게 바로 고강회 사장의 막내딸 고현지.

어느 정도냐면 연예인도 아닌데 누구와 사귄다는 얘기가 증권가 찌라시로 나돌 정도였다.

“친해요?”

“저랑은 동갑이라서 그냥저냥 알고 지내는 사이예요.”

표정을 보니 약간은 떨떠름해 보인다.

“별로 안 친한가 보네요.”

“그냥 좀 그래요.”

“왜요?”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뒷담화하는 건 아닌데요.”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뒷담화네요. 저 뒷담화 좋아하니 말해봐요.”

성윤아는 나를 한번 째려본 다음 말했다.

“설명하기 좀 힘든데 같이 있으면 피곤한 타입이에요. 어디를 가도 본인이 주목을 받아야 하고, 본인 뜻대로 안 되면 못 견뎌 하고. 아! 그렇다고 성격이 나쁘다거나 하는 건 아니에요. 저랑 잘 안 맞을 뿐이지.”

대충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다.

“뭐, 상성이 안 맞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죠. 그래서 갈 거예요?”

“아니에요. 안 가도 돼요. 저 말고도 갈 사람 많을 텐데요.”

“민아름 씨는 가는 거 아니예요?”

“언니야 두루 친하게 지내니까요.”

“백화점과 면세점의 고객관리를 위해서요?”

“그런 거죠.”

GL그룹 회장 손녀의 생일파티라.

우연치고는 공교롭다.

평소라면 신경 안 썼겠지만 마침 GL그룹에 대해 조사 중이었던 만큼 왠지 강한 호기심이 생겼다.

자료조사 차원에서라도 한번 가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래도 생일파티인데 축하해주러 가야죠.”

“예?”

“기왕이면 저도 좀 데려가 주면 좋을 것 같은데.”

“미루 씨를요?”

“예. 재벌들은 어떻게 생일파티 하는지 좀 궁금해서요. 안 되나요?”

“상관없긴 한데…….”

성윤아는 말끝을 흐리더니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보았다.

“잠깐. 설마 지금 현지 보고 싶어서 이러는 거예요?”

난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아니긴요. 미녀라니까 보고 싶어서 그러는 거 맞네.”

뭔가 오해하는 것 같아서 난 단호하게 말했다.

“전 사람은 얼굴보다 마음이 예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엄마 말에 따르면 꼭 얼굴 보는 사람들이 그런 말한다던데.”

“아! 물론 얼굴도 봅니다. 어디까지나 얼굴보다 마음이 예뻐야 한다는 거지, 얼굴이 안 예뻐도 된다는 건 아니니까요.”

“…….”

그래서 엄마 친구의 친구의 딸인 김송이 씨와는 안타깝게도 인연이 닿지 않았다.

그녀라면 분명 나보다 더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 * *

시간도 넉넉한 만큼 일단 편집숍에서 옷부터 샀다. 난 성윤아가 추천해준 슬렉스에 블레이저, 그리고 구두를 새로 샀다.

“저 어때요?”

“잘 어울려요.”

“아까 거랑 비교하면요?”

“…….”

아까 거랑 똑같은 옷 아니었어?

결국 한 시간 넘게 입고 벗고를 반복하더니, 제일 처음 입었던 트위드 원피스를 샀다.

이럴 거면 다른 옷은 왜 입어 본 거야?

어쨌거나 복장을 갖춰 입고 머리까지 만진 우리는 차를 타고 생일파티가 열리는 장소로 향했다.

* * *

성수동 주상복합 건물 고층에 위치한 라운지바.

두 개 층으로 이뤄졌고, 벽면 유리창 밖으로는 한강과 성수대교가 내려다 보이는 이곳에서 GL그룹 손녀의 생일파티가 열렸다.

오늘 파티를 위해 통째로 빌려서 꾸몄다고 한다.

안에는 이미 젊은 남녀들이 모여 있었다.

숫자는 약 100여 명. 나이는 대부분 2~30대다. 성윤아에게 들으니 다들 정계, 재계, 언론계 등에서 내로라하는 집안 자제들이라고 한다.

좀 신기한 느낌이다.

내가 PC방에서 우리 부모님 안부를 묻는 놈들과 싸우고 있을 때, 있는 집 자제들은 이런 곳에서 이러고 놀고 있었다니.

성윤아는 민아름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 왔어요, 언니.”

잠시 후, 실크 블라우스에 슬렉스를 입은 여성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나도 아는 얼굴이다.

“안녕하세요.”

내가 인사하자 민아름은 반색했다.

“어! 미루 씨도 왔네요.”

“안녕하세요.”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반가워요.”

정말 반가운지 그녀는 내 손을 붙잡고 세차게 흔들었다.

여전히 쾌활한 성격이다.

“한국에 왔다는 얘기는 오빠한테 들었어요. 연락 좀 하지 그랬어요?”

“바쁘실까 봐요.”

“에이, 아무리 바빠도 미루 씨가 연락하면 시간 빼야죠. 저 오늘 어떤 것 같아요?”

갑자기?

이럴 때는 고민하지 말고 바로 대답해야 한다.

“머리 스타일 예쁜데요.”

“저 요즘 머리 한번 길러볼까 생각 중인데,”

“그래요? 제 생각에 아름 씨는 단발머리가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앗, 정말요? 그럼 참아야겠다.”

성윤아가 끼어들듯 물었다.

“현지는요?”

“아직 안 왔어.”

“자기 생일파티인데요?”

“알잖아. 주인공은 항상 늦게 나타나는 거.”

“여전하네요.”

그 순간, 갑자기 천장 샹들리에 불이 꺼졌다.

직원들이 불이 붙은 초를 꽂은 거대한 케이크 카트에 싣고 중앙으로 들어왔다.

이윽고 불이 하나씩 켜지더니 2층 중앙계단에서 한 여성이 나타났고, 사람들은 탄성을 냈다.

연한 핑크색 오프숄더 롱원피스를 입고, 머리를 한껏 틀어 올린 여성을 본 나는 속으로 적잖이 놀랐다.

실물을 보고 확실하게 깨달았다.

사진빨이 아니었구나.

정말로 고현지는 엄청난 미모를 지니고 있었다.

작은 얼굴, 길쭉한 팔과 다리, 잡티 하나 없는 깨끗한 피부. 커다란 눈과 긴 속눈썹, 넓지도 좁지도 않은 반듯한 이마.

성형외과에 가면 의사가 뭘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냥 돌려보내지 않을까?

괜히 재계 원픽이 아니다.

생일축하 음악에 맞춰 계단을 걸어서 내려온 그녀는 고개 숙여 인사한 다음 촛불을 불어서 껐다.

“현지야, 생일 축하해!”

“생일 축하해요!”

“해피 버스데이!”

사람들은 박수와 환호로 그녀의 생일을 축하해주었다.

다시 샹들리에 불이 들어오고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음식을 먹으며 얘기를 나눴다.

난 샴페인 잔을 가볍게 부딪치며 물었다.

“혹시 윤아 씨도 이렇게 생일파티한 적 있어요?”

내 물음에 성윤아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전 돈 주고 하라고 해도 절대 안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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