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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성공 투자법-223화 (218/529)

223화. 킹 메이커 (1)

한국에 돌아온 지도 보름이 지났다.

다행히 시차 적응은 문제없었다. 미국에 있을 때도 자고 싶을 때 자고, 일하고 싶을 때 일했으니까.

일찍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니, 선우가 먼저 와있었다.

선우는 게임회사를 만들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는 중이다. 힘들긴 해도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라서 그런지 생기가 넘쳤다.

이런 걸 보면 역시 사람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야 한다.

“어이, 강 사장, 회사 만드는 건 잘돼 가?”

선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동안 맨날 회사 차리고 싶다고 말하긴 했는데, 막상 해보니까 이게 쉬운 일이 아니네.”

투자를 받아 게임사를 차리겠다고 하자 개발3팀에서 일하던 사람들 상당수가 합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어차피 팀 해체 이후 다들 갈 곳이 없어 사내 면접을 보던 중이었으니.

“다행히 다른 게임사 직원들 중에서도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좀 있어서, 인력은 그럭저럭 채울 수 있을 것 같아.”

“다른 게임사?”

“3L 전체가 다 터졌잖아.”

확률 조작 사태의 여파는 만만치 않았다.

트럭 시위가 이어지고, 유저 간담회가 열리고, 운영진은 연일 사과했다.

“그러고 보니 그 게임들은 다 어떻게 됐지? 망했나?”

“그럴 리가. 한국 게이머들이 얼마나 관대한데.”

다행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적당히 사과하고 보상 뿌리고 넘어갔지. 브라더후드M 역시 매출 타격은 심하게 입었지만 여전히 잘만 서비스 중이고.”

하지만 3L 이미지는 바닥까지 추락했다.

특히 LD스튜디오는 거의 ‘돈에 미친 놈들’ 정도로 여겨지고 있다. 인력 이탈도 이어졌다. 매출 하락으로 인해 앞으로 인력 구조조정도 이뤄질 테고.

“지금 3L이 똘똘 뭉쳐서 확률형 아이템 규제 법안만은 기를 쓰고 막고 있는 모양이야. 그거 통과되면 진짜 끝장이니까.”

“…….”

대체 어떻게 게임을 만들었으면 랜덤박스가 없이는 장사가 안되는 걸까?

한국게임산업협회는 부랴부랴 확률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확률 인증 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등 갑자기 자율규제를 강화하고 나섰다.

여기에 더해 갑자기 소아병원에 돈을 기부하는 등 이미지 세탁에도 나섰다.

그럼에도 폭락한 주가는 다시 올라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요즘 레전드게임즈 잘나가던데. 대체 어떻게 인수한 거야? 오래전부터 위챈트가 침 발라놨을 텐데.”

“안 그래도 스콧 CEO 설득하느라 힘들었어.”

“아일랜드 모드 도입 이후 미국과 유럽 초딩들이 그렇게 열심히 한다던데.”

원래 나이트라이트는 배틀아일랜드에 밀렸다.

그런데 아일랜드 모드 도입이 이후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각자 자신만의 섬을 꾸밀 수 있게 되면서 게임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고, 신규 유저도 몇 배로 늘어났다. 이는 매출 증가로 연결됐다.

“그거 내가 조언해준 거야.”

선우는 눈을 크게 떴다.

“뻥치지 말고.”

“진짜야.”

뭐, 내가 조언하지 않았어도 도입했겠지만.

나이트라이트뿐 아니라 ESD인 레전드스토어도 잘나가는 중이다. 적자 폭 역시 빠르게 줄어들고 있어서 다음 분기쯤에는 흑자로 돌아서지 않을까 기대 중이다.

“개발 준비되면 스콧 CEO한테 연락 한번 해봐. 알겠지만 현재 써릴 엔진5가 거의 완성됐거든.”

“써릴 엔진을 기반으로 게임을 만들라고?”

“응. 이게 VR에도 대응이 가능해서 가상 오피스 구현에도 쓸 예정이거든. 당장은 아니더라도 나중에는 정말 VR게임의 시대가 열리지 않겠어?”

다시 말하지만 모든 콘텐츠 산업 중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게 게임이다.

매출 규모를 놓고 보면 음악과 영화를 합쳐도 안 된다. 게다가 디지털화의 수혜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이게 가상현실과 결합한다면?

시장 규모는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커지게 된다.

게임사들은 이 시장을 먹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1회차 때의 승자는 위챈트.

위챈트는 망해가던 LD스튜디오를 인수하고 당시 선우가 맡았던 VR MMORPG 프로젝트를 완성해 대박을 터트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겠지.

“저녁이나 먹자.”

뭐 먹을지 상의하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난 전화를 받았다.

[시간 괜찮으면 잠깐 만날 수 있겠습니까?]

“예. 제가 회사로 가겠습니다.”

난 전화를 끊은 다음 선우에게 말했다.

“저녁은 다음에 먹자. 나 잠깐 나갔다 올게.”

“누군데?”

“유성그룹 회장님.”

* * *

지난번 한미루와의 만남 이후 유재호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유는 한미루가 한 말 때문.

오영환 대통령의 임기는 이제 반년도 남지 않았다.

임기 말 지지율은 형편없었고 어느 때보다 정권 교체 여론이 높은 상황.

우리국민당 임창식 대표는 여야를 통틀어 가장 강력한 대선후보였다.

사실상 차기 대통령은 정해졌다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때문에 재벌들은 알게 모르게 선을 대고 있었고, 이는 유성그룹 역시 마찬가지였다.

임창식의 성향은 중도에 가까웠고 여야 의원들과 두루 친했다. 그동안의 행보를 보면 경제정책도 큰 문제 없어 보였다.

‘그런데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된다고? 어째서?’

한미루가 대안으로 내세운 사람은 우리국민당 3선 의원 남궁석.

원래 그는 신라대 물리학과 교수였다. 그냥 교수도 아닌 종신교수.

그런데 어떠한 계기로 인해 상아탑을 박차고 나와 정치에 뛰어들었다. 국회의원이 된 뒤의 행보도 상당히 흥미로웠다.

유재호는 남궁석 의원에 대한 자료를 살펴보며 중얼거렸다.

“어째서 이 사람이지?”

만약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그냥 흘려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미루가 말했다면 얘기가 다르다.

그는 라시드 왕자가 왕세자가 될 거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맞췄다.

임창식이 아닌 남궁석을 추천한 데에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유재호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말을 떠올렸다.

“정치는 4류, 행정은 3류, 기업은 2류…….”

이제 유성전자는 세계 유수의 기업들과 경쟁하는 1류가 됐다.

하지만 한국의 정치와 행정은 그때 이후로도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정치권의 도움을 받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 정치는 기업에 있어서 최대 리스크였다.

과거 5공 시절처럼 그룹을 해체하지는 못하겠지만, 마음에 안 드는 기업을 괴롭힐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차라리 악의를 갖고 공격을 하면 대응이라도 할 수 있지만, 그냥 정치를 개판으로 한다면 답이 없다.

한국이 망해도 유성그룹이 망하진 않지만, 유성그룹이 망하면 한국이 망한다는 얘기가 있다.

그 말대로 한국이 망한다고 해서 유성그룹이 망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망하지 않는다뿐이지 기업 자체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단순히 시장이 큰 나라에 기업이 있어야 한다면 모든 기업은 미국과 중국으로 갔고, 인건비만 따진다면 동남아나 아프리카로 몰려갔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유성그룹은 한국에 계속 공장을 지을까?

당연히 그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세계 어디에 내놔도 부족하지 않은 인재들이 매년 대학과 대학원을 나와 앞다퉈서 유성그룹에 원서를 넣는다.

여기에 기업 활동을 위한 사회적 인프라와 행정력이 받쳐준다.

이런 나라가 전 세계에 몇 곳이나 되겠는가?

한국이 잘되는 게 곧 유성그룹이 잘되는 길이다.

그러려면 무능한 사람보다는 유능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편이 낫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남궁석 의원이 대통령이 될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일단 대선후보를 선출하는 당내 경선에서 임창식 대표에게 반드시 질 테니까.

결국 고민 끝에 유재호는 한미루에게 연락했다.

* * *

시작은 일 얘기였다.

유성전자 데이터센터 산업 진출 발표 후.

유성전자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역시나 인수합병이었다.

미국의 서버 기업 하이퍼마이크로를 450억 달러에 인수했다.

이는 유성그룹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인수합병이었고, 단숨에 서버 규모로는 세계 10위 안에 진입했다.

시드는 보안과 데이터 관리 프로그램을 전부 새로 짰고, 그 작업이 끝나고 나자 스노우 크래시의 데이터를 하이퍼마이크로 서버로 옮기는 작업을 진행했다.

“클라우드 업체들이 다들 긴장하는 모양이더군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별문제는 없을 거예요.”

블랙우드 사태 이후 스노우 크래시는 ZWS와 보안 분야에서 협력할 정도로 돈독한(?) 관계가 됐다.

업계 1위인 ZWS가 가만히 있는 이상 다른 곳들에서 노골적으로 견제에 나서기는 힘들겠지.

“아! 혹시 이따 유성전자 홍보 담당자 좀 만날 수 있을까요?”

“무슨 일 때문입니까?”

“광고 음악 하나 추천드리려구요.”

유재호 회장은 뜬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광고 음악이요?”

“저희 회사 직원 김범석이 부른 매직캐슬이라는 노래가 있는데, 이게 요즘 엄청 인기거든요. 왠지 유성전자 이미지에 잘 어울릴 것 같아서요.”

“…….”

막무가내로 하는 말은 아니고 실제로 매직캐슬은 유성전자 광고 BGM으로 쓰인다.

난 회장실을 둘러보았다.

처음 왔을 때는 신기했는데, 여기도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하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얘기가 끝나자 유재호 회장은 본론을 꺼냈다.

“지난번 얘기에 대해 생각을 좀 해봤습니다.”

“어떤 얘기요?”

“한국 대선에 관해서입니다.”

“아아, 그거 중요하죠.”

“어째서 임창식 대표 대신 남궁석 의원을 추천했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남궁석 의원이 경선에서 임창식 대표를 이길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겠습니까?”

“아무래도 힘들겠죠.”

필립스 상원의원은 원래 미국 대통령이 될 사람이고, 라시드 왕자 역시 가만히 놔둬도 왕세자가 될 사람이다.

하지만 남궁석 의원은 다르다.

가만히 두면 그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은 제로다.

그러니 1회차 때랑은 뭔가 다른 일이 일어나야 한다.

“유성그룹이 밀어준다면요?”

유재호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가 직접 개입하기는 힘듭니다.”

사실 유성그룹은 정치권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여야 가릴 것 없이 모든 유력 정치인들을 관리하고 있을 테고, 로비에 쏟아붓는 돈도 천문학적 액수일 것이다.

아마 돈을 받는 정치인 중에서는 그게 유성그룹의 돈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받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돈 주면서 뭔가 요구하는 건 하수들이나 하는 짓.

진짜 고수는 씨앗을 뿌리는 농부의 마음으로 돈을 뿌릴 뿐이다. 언젠가 수확할 날을 기다리며.

소금 먹은 놈이 물켠다고, 돈을 받은 이상 마음을 써주기 마련이지.

하지만 몰래 돈을 뿌리는 것과 직접 나서서 편들어주는 것은 다르다.

CEO들이 대놓고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미국과는 달리, 한국에서 재벌이 그렇게 했다가는 골로 가는 수가 있다.

왜냐하면 걸릴 게 한둘이 아니니까.

반면 나는 그런 문제에 있어서 매우 자유롭다. 애초에 걸릴 게 있었다면 진작 잡혀 들어갔겠지.

결국 내가 나서야 하는 건가?

대선 후보 경선까지는 시간이 얼마 없다.

여기서 이기려면 인지도를 끌어 올려야 한다.

오영환 대통령과 임창식 대표와도 각을 세우면서, 전국민의 주목을 받을 만한 일이 뭐가 있을까?

난 앞으로 한국에서 일어날 일들을 떠올렸다.

“…….”

순간, 하나 떠오르는 게 있다.

그런데 이걸 남궁석 의원이랑 어떻게 엮지?

남궁석 의원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서는 끝까지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다.

한정그룹 사태 때는 재벌그룹의 지배구조 문제를 제기하며 소액주주들을 보호하는 법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그런 성격을 잘 이용하면 한번 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유재호 회장이 물었다.

“좋은 생각이라도 났습니까?”

“그 전에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뭔가요?”

난 그를 보며 물었다.

“회장님은 제 편인가요?”

“그렇다고 할 수 있겠죠.”

“그럼 제가 재벌과 싸운다면 누구 편을 드시겠습니까?”

내가 괜히 이런 질문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눈치챘을 것이다.

“어디입니까?”

“GL이요.”

유재호 회장의 얼굴에 놀라는 빛이 떠올랐다.

GL그룹.

유성, LK, 대연과 함께 대한민국 4대 그룹 중 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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