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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성공 투자법-219화 (214/529)

219화. 일상 (6)

허민웅은 급한 약속이 있다며 바로 자리를 떴다.

내가 부르니 약속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오다니. 앞으로 잘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동호 선배는 피해자는 아니지만 구경하겠다며 홍경석을 따라 경찰서로 갔고, 혁수 선배는 보험 가입서에 사인을 받기 위해 동호 선배를 따라갔다.

소란이 끝나자 자리는 자연스럽게 파장 분위기가 됐다.

그렇게 보험설계사와 사기꾼이 함께한 결혼식 뒤풀이가 끝났고, 난 진세연과 근처 맥주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기도 아직 남아있네. 우리 자주 왔었잖아.”

난 고개를 끄덕였다.

“니가 술을 좋아하긴 했지. 선배들이 너 마시는 거 보고 깜짝 놀랐잖아.”

“지금은 그렇게 못 마셔. 그때니까 그 정도로 마신 거지.”

진세연은 턱을 괴고 옛날 생각을 떠올리는 듯했다.

“신기하지 않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같이 놀던 애들이 결혼까지 하다니.”

“그러게 말이야.”

우리는 잔을 부딪쳤다.

“경태랑 한별이는 잘 살겠지?”

“그럴 거야. 애는 한 셋쯤 낳을 테고.”

1회차 때는 그랬다.

진세연은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너 정말 컨티뉴 캐피탈에서 일해?”

“응.”

“어떻게? 거기 들어가기 엄청 힘들지 않아?”

“뭐…….”

별로 힘들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 회사를 내가 만들었으니까.

하지만 이걸 말하려면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는 관계로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기로 했다.

“허민웅 부사장이랑은 어떻게 알게 된 거야?”

“일 때문에 알게 됐지. 컨티뉴 캐피탈과 화안에너지가 어떻게 엮였는지는 홍경석이 대충 설명했잖아.”

놀랍게도 홍경석의 얘기는 대체로 맞았다. 그 자리에 본인이 없었다는 것만 빼면 말이지.

“아까 보니까 형동생 하는 것 같던데.”

“아! 그건 그쪽이 멋대로 그러는 거야.”

다시 말하지만 난 아무하고나호형호제하지 않는다. 그리고 회귀하기 전의 나이로 치면 내가 형이다.

난 그녀에게 물었다.

“방송 일은 어때?”

“재밌어. 적성에도 잘 맞고.”

이제 아나운서라서 그런지 지난번 만났을 때와는 발음과 목소리도 달라졌다.

“인기도 엄청 많다며?”

아까 검색을 좀 해보니 신인 아나운서치고는 인기가 상당하다. 고정 프로그램도 라디오 포함 벌써 여섯 개나 하고 있고.

진세연은 손을 내저었다.

“인기는 무슨. 지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아나운서든 연예인이든 무조건 외모만 예쁘다고 뜨는 게 아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잡을 만한 특유의 매력과 개성이 있어야 한다.

내 전 여친이라서가 아니라 진세연은 외모뿐 아니라 성격도 좋고 매력도 있다.

여기에는 인기 가수 지유의 사촌언니라는 것도 한몫했다. 한국대 출신 미녀 사촌 자매로 여기저기서 섭외가 많이 들어오는 모양이다.

이상하게 한국 연예계에서는 학력 프리미엄이 붙는단 말이지.

“대단하네. 잘 다니던 회사 그만두고 도전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참고로 얘는 원래 유성전자에 다녔다.

“그러는 너도 잘 다니던 회사 그만뒀잖아.”

“음.”

난 경우가 좀 다르지.

진세연은 맥주잔을 손가락으로 만지며 말했다.

“프리머스 펀드 말이야…….”

“아! 그거 폭로한 건 너 때문이 아니니까 부담 가질 거 없어.”

대체 왜 그런 오해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더 이상 오해하지 않도록 확실하게 말해주었다.

진세연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그, 그럼 왜 그런 건데? 그 일 때문에 회장 아들이랑 싸우고 회사까지 그만뒀다며? 너랑은 별 관련 없었잖아.”

“내가 했어야 하는 일이니까.”

난 1회차 때를 떠올렸다.

프리머스 사태가 벌어진 데에는 내 잘못도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은 평생 나를 옭아맸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시간이 흘렀는데도 그때 이후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에는 문제가 더 커지기 전에 해결했다. 덕분에 마치 밀린 숙제를 해결한 것처럼 홀가분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잠시 멍하니 있던 진세연은 입을 가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푸훗! 아! 뭐야? 괜히 나 혼자 착각했잖아.”

난 피식 웃었다.

“그렇다고 아예 관련 없는 건 아니고. 동기가 속고 있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나?”

“나 사실 너한테서 연락오기를 기다렸는데.”

“그래?”

뭐야? 연락을 해야 하는 거였어?

1회차 때도 따로 연락 안 하고 살았던 것 같은데.

“너, 예전이랑은 많이 달라진 것 같아.”

“어떻게?”

“훨씬 어른스러워졌다고 해야 할까?”

얘가 그렇게 느끼는 게 당연하다.

나한테는 그사이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으니까.

진세연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아무튼 고마워, 미루야.”

나 역시 웃으며 말했다.

“뭘. 너 잘나가는 거 보니 내가 다 좋네.”

“진짜?”

“응.”

나로 인해 미래가 좋은 쪽으로 바뀐 사람을 보는 건 꽤나 즐거운 일이다.

컨티뉴 캐피탈이 그동안 폭락시킨 기업만 해도 한둘이 아니다.

나 때문에 인생 말아먹은 사람도 많을 테니, 내 덕에 잘된 사람도 몇 명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

* * *

점심때쯤 출근하니, 동호 선배가 먼저 와 있었다.

“어제는 어떻게 됐어요?”

“혁수한테 상해보험이랑 암보험 하나씩 가입했어. 평소 보험은 필요 없다고 생각했는데,막상 들고 나니 안심이 좀 되는 것 같아. 알아보니까 부모님도 이것저것 보험을 많이들어놓으셔서한번 정리할 때가 되긴 했더라고. 그래서 혁수가 보험 리모델링 한번 해주기로 했어. 나의 라이프플래너인 혁수가 진짜 우리 가족의 라이프플래너가 된 거지.”

“……그거 말구요.”

뭔 관심도 없는 얘기를 이렇게 길게 하고 있어?

“아! 홍경석? 엄청 재밌었어. 경찰서까지 따라간 보람이 있더라. 피해 금액이 얼마였는지 알아?”

“얼만데요?”

“4억이 넘더라. 윤주형 교수님도 8천 넣었다는데.”

“어! 그 교수님 강의 때 금융사기 위험성에 대해 자주 강조했던 것 같은데.”

“그러니까. 그랬는데 정작본인이 제자한테 사기를 당할 줄이야. 이래서 머리 검은 짐승은 가르치는 게 아니라니까.”

“…….”

대한민국 공교육과 사교육을 전면 부정하는 발언을 하며 동호 선배는 경찰서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홍경석은 사기 행각을 어제 처음 시작한 게 아니라 몇 달 전부터 하고 있었다. 친분이 있었던 사람들은 진작 돈을 넣었고 펀드 설명서와 가입 계약서까지 받았다고 한다.

당연히 다 가짜였다.

홍경석은 속인 것에 대한 잘못을 빌기는커녕 뻔뻔하게 벌어서 갚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피해자들은 즉석에서 고소장을 작성했고, 금액이 금액인 만큼 홍경석은 그 자리에서 긴급체포됐다.

“우리가 그 자리에 없었으면 어쩔 뻔했냐? 진짜 여러 명 살린 거야.”

“천만다행이죠.”

1회차 때 코인 다단계 같은 걸로 30억을 끌어모았던 놈이다. 가만히 놔뒀으면 얼마를 더 해먹었으려나?

“그나저나 컨티뉴 캐피탈이 진짜 유명해지긴 했네. 이름 팔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쉽게 돈을 뜯어낼 수 있다니.”

사실 사모펀드가 유명해진다는 게 쉽지 않다.

대기업처럼 로고가 박힌 제품을 파는 것도 아니고, TV 광고를 하는 것도 아니니까.

당장 한국 최대 사모펀드인 MKK파트너스만 해도 재계 서열로 치면 5위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회사가 있는지조차 모른다.

회장인 강명국은 한국 사모펀드계의 전설적인 존재지만, 금융권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이름 정도나 알지 얼굴까지 아는 사람은 몇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컨티뉴 캐피탈은 생긴 지 얼마 안 됐음에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원래 세상은 건실하게 좋은 기업을 인수해 키우는 사모펀드보다, 리포트 하나로 주가를 폭락시키고 재벌그룹을 해체한 사모펀드를 더 높게 쳐주는 법.

왜냐하면 후자가 훨씬 멋있으니까.

“그런데 너 언제 말할 거야?”

“뭘요?”

“컨티뉴 캐피탈이 니 거라는 거.”

“그걸 꼭 말할 필요가 있을까요?

“하긴, 자랑해봐야 돈 빌려달라는 연락이나 받겠지.”

얼굴 팔리면 불편한 게 한둘이 아니다. 그리고 굳이 내 입으로 떠벌리고 다니지 않아도 언젠가는 알려지게 될 테고.

동호 선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지유가 축가를 부를 줄이야. 실제로 보니 더 예쁘더라.”

“선배도 알아요?”

“당연히 알지. 만리타향 아메리카에서 염전 노예처럼 일할 때 지유 노래를 들으며 버텼는데.”

의무적으로 출근하긴 했지만, 딱히 할 일은 없었다.

어차피 일이야 록허트 대표랑 시드가 다 알아서 하고 있다. 난 그저 기억하고 있는 사건이 일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면 된다.

동호 선배는 핸드폰을 하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왜 그래요?”

“이거 한번 봐봐. 되게 웃기네.”

내용은 그냥저냥 재밌는 정도인데, 배경으로 깔린 음악과 어울려 빵 터지는 영상이었다.길이는 약 1분.

최근에는 이런 숏폼이 유행이다.

“어! 이 영상…….”

“너도 봤어?”

“예.”

1회차 때도 유명했으니까.

“배경음악 목소리가 좀 익숙한데. 누가 부른 거지?”

난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정말 몰라서 물어요?”

“응. 누군데?”

“와아, 어떻게 모를 수가 있지?”

“왜? 유명한 가수야?”

“…….”

인간인가?

둘이 얘기를 하고 있는데, 김범석이 회사로 출근했다.

“어쩐 일이야? 음악 한다고 연락도 잘 안 받더니.”

“음악 작업은 잘되고 있어요?”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드릴 말씀이 좀 있습니다.”

“뭔데요?”

김범석은 우리를 보며 말했다.

“며칠 전 기획사에서 연락이 왔는데요.”

동호 선배가 물었다.

“무슨 기획사? 기획 부동산? 좋은 땅 있으니 투자하래?”

“연예기획사. 여기서 기획 부동산이 왜 나와?”

“그럼 연예기획사는 왜 나와? 너한테 무슨 일로 연락했는데?”

“계약하지 않겠냐고.”

동호 선배는 깜짝 놀랐다.

“와! 진짜? 너 그럼 이제 가수되는 거야?”

“원래 가수였어.”

“그러니까 진짜 가수가 되냐는 거지.”

“그럼 지금은 가짜 가수냐!?”

대화를 보니 둘의 우정이 짐작이 간다.

이게 남자들의 대화지.

“그런데 갑자기 기획사가 왜 계약하재?”

“그게…….”

김범석은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했고, 대학 시절에는 인디밴드 활동을 하기도 했다.

이때 직접 작사 작곡한 주옥같은 명곡들을 발표했으나…… 안타깝게도 크게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그래도 즐겨 듣는 마니아들은 좀 있었던 모양이지만.

상황이 반전된 것은 방금 동호 선배가 보던 동영상 때문.

영상 제작자는 김범석의 노래 중 ‘이별 편지’의 후렴을 허락도 없이 배경음악으로 깔아서 올렸다.

그런데 이 동영상이밈이 되어 빠르게 퍼져나가는 바람에 덩달아 노래가 유명해졌다.

처음에는 궁금하거나 심심해서 찾아보던 사람들도 한번 노래를 들어보더니 좋아서 계속 들었고, 이별 편지를 비롯한 여러 노래들이 음원 차트를 역주행 중이다.

동호 선배는 깜짝 놀랐다.

“어! 방금 이 영상 보고 있었는데. 배경으로 깔린 노래 니가 부른 거였어? 어쩐지 목소리가 좀 익숙하다 했어!”

“…….”

이렇게 친구에게 관심 없기도 쉽지 않을 텐데.

김범석이 싸늘한 눈으로 쳐다보자 동호 선배는 당당하게 말했다.

“알잖아. 나 여자 가수 노래밖에 안 듣는 거. 대신 걸그룹 애들은 몇 명이 나오든 목소리 구분이 정확히 가능하지. 절대음감이랄까?”

정말이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한심한 능력을 자랑스럽게 어필한 동호 선배는 친구에게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김범석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좀 고민이야.”

“뭐가 고민인데?”

“이쪽 일도 바쁘니까. 지금은 여기에 더 매진해야 할 것 같은데.”

“오! 그새 애사심이 좀 생겼어?”

김범석은 나를 슬쩍 보더니 말했다.

“원래부터 충만했어.”

하기야 월가 최고의 사모펀드로 각광 받고 있는 컨티뉴 캐피탈이다.

비전이 빵빵한 만큼 회사 일도 소홀히 하고 싶지는 않겠지.

그래도 기획사에서 연락 왔다는 얘기를 한 걸 보면 음악 활동도 하고 싶다는 거겠지?

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들어오기 전에 약속드렸다시피 둘 다 하시면 돼요. 사람이 꼭 한 가지 직업만 선택하라는 법은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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