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화. 일상 (5)
난 홍경석에게 물었다.
“컨티뉴 캐피탈에서 블라인드 펀드를 모집한다고?”
진세연 앞에서 잘 보이고 싶었기 때문일까?
녀석은 거만하게 턱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왜? 너도 투자하게?”
난 고개를 끄덕였다.
“컨티뉴 캐피탈이 출시한 펀드라면 투자할 만하지.”
“잘 생각했어. 우리 회사에 투자할 기회가 언제나 있는 건 아니니까.
얼굴에는 컨티뉴 캐피탈 직원으로서의 자부심이 가득했다.
비록 우리 회사 직원은 아니지만 애사심이 넘친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히 내가 다 뿌듯하다.
“대충 들어보니까 화안에너지랑 수소 관련해서 뭔가 할 거라며? 구체적으로 뭘 한다는 거야?”
“그 이상 자세히 말해줄 수는 없어.”
녀석은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라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다물었다. 왜냐하면 본인도 뭘 할지 모를 테니까.
“혹시 허민웅 부사장도 만나봤어?”
“당연하지. 알다시피 그쪽이랑은 토머스 모터스 사태 때부터 우리 회사랑 인연이 있었으니까.”
“오! 그래?”
“대충 짐작했겠지만, 토머스 모터스 폭락시킨 건 컨티뉴 캐피탈이 화안에너지와 손잡고 기획한 거야.”
“아하! 한정그룹 경영권 분쟁 때도 화안그룹이 보조를 맞췄고?”
“그렇지. 그래서 허민웅 부사장이 대준건설 인수전에 참여하는 척하며 움직여준 거지.”
“그럼 허민웅 부사장이랑 꽤 친하겠네?”
홍경석은 웃음을 지었다.
“친한 것까지는 아닌데, 가끔 연락하고 술 한잔하고 그래.”
입만 열면 거짓말이 자동으로 쏟아져 나오는 걸 보니, WST 기사를 달달 외우고 있는 모양이다.
한국대생과 교수를 상대로 사기를 치려면 이 정도로 노력은 해야 하는 것이다.
앞뒤 안 맞는 거짓말로 남의 돈 해먹으려는 놈들은 전부 반성해야 한다.
어쩐지 학교 행사에도 거의 참여하지 않고, 하경태나 최한별과 별로 친하지도 않은 놈이 결혼식에 왔다 했더니…… 나름의 확실한 목적이 있었던 모양이다.
벌써 돈을 투자한 사람만 해도 여럿이다.
최소 투자금액이 3천만 원이니 다 합치면 몇억은 되지 않을까?
사기가 들통났다는 사실을 알면 연락 끊고 잠적할 게 뻔하다.
그러니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조져야 한다.
“그래서 너 얼마나 투자할 건데? 3천 이하는 관리하기도 귀찮아서 잘 안 받아.”
“돈은 어디로 넣으면 되는 거야?”
“일단 나한테 보내. 합산해서 기존 구좌에 더 해서 넣어야 하니까.”
난 피식 웃었다.
“장난해? 세상에 어느 사모펀드가 회사가 아닌 개인 계좌로 펀드 자금을 모집해?”
홍경석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말했잖아. 한 구좌당 최소금액이 100만 달러라고.”
“그래? 그럼 내가 100만 달러 넣을 테니까 펀드 계좌 한번 불러봐.”
“뭐?”
“왜? 그렇게 놀라?”
홍경석은 당혹감을 숨기기 위함인지 오히려 목소리를 높였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마. 니가 100만 달러가 어디 있어?”
“있으니까 계좌 불러보라니까. 설마 모른다고 하는 건 아니지? 아니면 처음부터 펀드 계좌가 없었다거나?”
소란이 커지자 사람들이 우리 쪽을 주목했다.
“무슨 일이야?”
“왜 그래?”
난 홍경석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너 컨티뉴 캐피탈 직원 아니지?”
그러자 녀석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지금 나한테 시비 거냐?”
“이 명함도 딱 보니 가짜인데. 아니야?”
“자꾸 뭔 헛소리야? DA증권에서 잘린 주제에. 왜? 내가 컨티뉴 캐피탈 다닌다고 하니 질투 나냐?”
난 타이르듯 말했다.
“추하다, 경석아. 뻥카 치다가 걸렸으면 그만 인정해라.”
“뭐, 이 새꺄?”
홍경석은 내 멱살을 잡으려는 듯 손을 뻗었고, 난 그 손을 붙잡았다.
그러자 놀란 진세연이 우리를 말렸다.
“둘 다 그만해.”
왠지 예전에 조별과제 할 때 이런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생각해보니 그때 자료조사 해오랬더니 트리위키 복붙해 와놓고는 지가 썼다고 우겨서 싸웠던 것 같다.
이 자식은 그때부터 싹수가 노랬다.
“넌 절대 컨티뉴 캐피탈 직원이 아니야.”
“시발, 니가 뭘 안다고 그딴 말을 해?”
난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큰 목소리로 말했다.
“그야 내가 컨티뉴 캐피탈에서 일하고 있으니까. 난 우리 회사에 너 같은 애가 들어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어.”
* * *
홍경석은 한국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운 좋게 시그마 펀드라는 영국계 헤지펀드에 입사했다.
그때만 해도 그는 자신의 인생이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겪어본 헤지펀드 생활은 그의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재능과 노력이 없으면 버티기조차 힘들었다. 정해진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하루에20시간씩 일을 해도 부족했다.
결국 더 이상 버티지 못한 그는 헤지펀드를 나왔다.
이때의 경험과 그동안 모아놓은 돈을 바탕으로 그는 혼자 전업투자를 시작했다.
공격적인 투자 방식으로 처음 한동안은 잘되며 큰 수익을 내는 듯했지만,어느 순간부터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투자한 돈은 다 날렸고, 빚까지 끌어다 쓰는 신세가 됐다.
어느 날, 홍경석은 친구들을 만난 자리에서 ‘뭐하고 지내냐’는 질문을 받았다.
잘나가는 친구들 앞에서 기죽기 싫었던 그는 아무 생각 없이 컨티뉴 캐피탈을 다닌다는 거짓말을 했다.
각종 사건으로 인해 컨티뉴 캐피탈이 유명세를 타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밌는 일이 벌어졌다.
여기저기서 투자 좀 할 수 없겠냐는 문의를 해온 것이다.
많은 사모펀드들은 투자자를 모집하는 데 애를 먹는다. 투자금을 못 모아서 투자가 불발나는 일도 종종 있다.
그런데 컨티뉴 캐피탈의 이름을 대는 것만으로도 너나 할 것 없이 투자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그때부터 홍경석은 아예 명함을 만들고 컨티뉴 캐피탈 직원인 것처럼 행동했다.
‘그래. 어차피 내가 컨티뉴 캐피탈만큼 벌면 되는 거잖아.’
컨티뉴 캐피탈은 자산 규모에 비해 직원 숫자는 얼마 안 되고, 회사 구조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게다가 본사는 미국에 있다.
그러니 사칭하고 돌아다녀도 절대 걸릴 리 없다.
……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딱 걸렸다.
‘뭐야? 한미루 이 자식이 컨티뉴 캐피탈에 다닌다고?’
홍경석은 일단 현실을 부정했다.
“마, 말도 안 돼.”
“뭐가 말이 안 되는데?”
하지만 이내 정신 차렸다.
‘얘 말이 진짜든 아니든 지금은 무조건 우겨야 해.’
“웃기네. 니가 컨티뉴 캐피탈 직원이라고?”
“응.”
“명함은 있어?”
“안 가지고 왔는데.”
그러자 홍경석은 보란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뭐야? 너 지금 나한테 사기 치냐?”
한미루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사기는 니가 치는 거고. 이 사기꾼 새끼야.”
마치 자신의 정체를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에 저절로 인상이 일그러졌다.
사람은 할 말이 없으면 화를 낸다고 했던가?
“야! 한미루! 너 말 다했어?”
하지만 한미루는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그동안 받은 투자금 어디에 썼어?”
“쓰, 쓰긴 뭘 써? 펀드에 넣었는데.”
“그 펀드가 진짜 있으면 계좌 말해보라니까. 대체 말하지 못할 이유가 뭐야?”
“…….”
그야 없으니까.
이대로 있으면 거짓말이 탄로 날 위험이 크다.
“별 미친놈을 다 보겠네. 너 같은 새끼는 돈을 싸들고 온다고 해도 투자 안 받아.”
홍경석은 신경질적으로 몸을 돌렸다.
“설마 이대로 도망칠 생각?”
“내가 도망을 왜 쳐?”
소란이 커지자 주위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김혁수가 홍경석에게 물었다.
“너 정말 컨티뉴 캐피탈 직원인 거 맞아?”
“맞다니까요. 지금 저 새끼가 거짓말하는 거예요.”
홍경석은 계속해서 우겼다.
“니가 컨티뉴 캐피탈 다닌다는 증거 있어?”
“증거는 없어도 증인은 있지.”
그러자 이동호가 한미루 편을 들고 나섰다.
“미루 컨티뉴 캐피탈 다니는 거 확실해. 내가 보증할게.”
“그걸 어떻게 믿어요? 선배도 속고 있는 거 아니에요?”
뻔뻔한 홍경석의 태도에 이동호는 엄청난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지었다.
“후배가…… 말대꾸!?”
한미루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동호 선배 말고. 이제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아! 마침 저기 왔네.”
체격 좋은 30대 남성이 주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한미루는 손을 들어보였다.
“여기예요.”
“헤이, 브로.”
한미루는 그를 가리키며 홍경석에게 물었다.
“너 저 사람 알지?”
“내가 어떻게 알아?”
“이상하네. 방금 니가 말한 대로라면 모를 리가 없을 텐데.”
그 말에 홍경석은 상대를 자세히 쳐다봤다. 왠지 낯이 좀 익은 얼굴이다.
‘서, 설마……?’
잠시 후, 먼저 남자의 정체를 알아본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헉! 화안에너지 부사장?”
“화안그룹 허민웅이라고?”
“뭐야? 진짜네.”
허민웅의 얼굴은 대중들에게도 제법 알려져 있다.
그동안 각종 사고로 뉴스에 자주 나온 데다가, 토머스 모터스 사태 때 한번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기 있는 애들 중 금융권이서 일하는 애들이 절반. 당연히 모를 수가 없었다.
홍경석은 지금 상황이 믿기지가 않았다.
‘뭐, 뭐야? 허민웅이 여기 왜 나와?’
방금 전까지 아는 사이라고 신나게 뻥쳤는데, 설마 이 자리에 나타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어째서 이런 일이……’
허민웅은 마치 한미루와 친한 사이라도 되는 듯 친근하게 물었다.
“급한 일이라고 해서 최대한 빨리 달려 왔는데, 무슨 일이야?”
“혹시 홍경석이라고 알아요?”
“아니, 처음 듣는데. 누구야?”
한미루는 홍경석을 가리켰다.
“얘가 홍경석이에요. 자칭 컨티뉴 캐피탈 직원이라고 투자금 모으고 있던데. 이번에 화안에너지랑 뭔가 한다고도 하고, 허민웅 씨랑도 잘 아는 사이라고 하고.”
그 말만으로도 허민웅은 무슨 상황인지 눈치챘다.
허민웅은 홍경석을 보며 말했다.
“그쪽이 나랑 친하다고? 이상하네. 난 그쪽을 본 적도 없는데.”
“어…….”
‘시발, 어떡하지?’
홍경석은 아무 말도 못하고 눈알만 열심히 굴렸다.
지금 상황에서 어떤 변명을 한다고 한들 먹힐 리가 없었다.
방금 전까지 선망의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던 사람들은 어느새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더 이상 이 자리에 있으면 위험하다.
일단은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뭔가 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잠깐 록허트 대표님께 전화 좀 하고 올게.”
그러자 한미루는 홍경석의 어깨를 붙잡았다.
“가긴 어딜 가, 임마? 사기 친 돈 다 뱉어내고 가야지.”
“이거 놔!”
홍경석은 그 손을 뿌리치고 재빨리 도망가려 했다.
하지만 어느새 사람들이 그의 주위를 둘러쌌다.
* * *
잠시 후.
홍경석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 앉아있었다.
난 그 앞에 의자를 끌어다 놓고 앉았다.
“한번 물어보자. 왜 컨티뉴 캐피탈 직원을 사칭하고 다닌 거야?”
“그, 그게…….
“알아. 컨티뉴 캐피탈 이름을 대는 것만으로도 투자금을 쉽게 모을 수 있으니까 그랬겠지.그 돈 다 어디 있어?”
그 질문에 녀석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난 대충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너 코인 투자하다가 다 날렸지?”
“아, 아니야! 안 날렸어! 이번에 ICO만 성공하면…….”
이상하게 사기꾼들은 자신이 사기를 쳤다는 자각이 별로 없다. 정말로 벌어서 갚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진실이 드러나자 얘 말만 믿고 투자를 한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한 놈은 털썩 주저앉았고, 한 애는 울음을 터트렸다.
“너 진짜 사기 친 거야?”
“내 돈은 어디 있어?”
“그게 어떤 돈인데!”
“당장 내 돈 내놔!”
“켁! 자, 잠깐만…….”
여기서 붙잡고 닦달한다고 해결 될 일이 아니다.
결국 경찰을 불렀고, 피해자들은 홍경석을 끌고 다 같이 경찰서로 이동했다.
이렇게 한국대가 낳은 최악의 사기꾼의 사기 행각은 시작하기가 무섭게 막을 내렸다.
뒤늦게 뒤풀이 장소에 도착한 하경태와 최한별 부부는 난장판이 된 술집을 보며 당황했다.
“여기 왜 이래?”
“그사이 대체 무슨 일이 있었어?”
난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별 일 아니야. 아! 결혼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