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화. 이스케이프(Escape) (10)
사마라 회장 탈출극은 일본 검찰 역사상 최악의 망신이었다.
그나마 일본 내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적당히 덮고 넘어갔겠지만, 국제적인 사안이라 그럴 수도 없었다.
사마라 회장의 폭로로 인해 일본 검찰의 무리하고 비인권적인 수사방식이 도마 위에 올랐고, 보석 중인 피의자 관리와 출입국 관리에 허점이 있음이 전세계에 알려졌다.
이에 대해 일본인들조차 비판을 쏟아냈다.
-그렇게 극악무도한 범죄자라면 애초에 보석으로 풀어준 게 잘못 아니냐?
-계속 구치소에 가둬 놓든지.
-테러범이나 범죄자들도 이런 방식으로 일본을 드나들 수 있다는 거잖아.
-대체 정부는 보석 중인 범죄자들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냐?
-당장 요르단으로 경찰을 보내 강제로 일본으로 끌고 와라!
분노한 일본 검찰은 탈출 계획에 가담한 경호업체를 압수수색하고 관련자들을 한 명도 빼놓지 않고 전부 입건했다.
그리고 터키와 미국에도 이번 일에 가담한 관련자들을 체포해달라고 요청했다.
터키는 요청을 받아들여 아타튀르크 공항에서 사마라 회장 일행을 태워준 전용기 기장과 항공사 직원들을 체포했다.
하지만 그들은 어디까지나 조력자일 뿐이다.
이번 탈출극을 기획한 것으로 알려진 사람은 벤 쿨렌과 올리버 쿨렌 형제.
이전에도 몇 차례 분쟁지역에서 사람을 탈출시킨 적이 있는 전문가들로, 작전 실행에 앞서 예행연습까지 거쳤던 것으로 확인됐다.
요르단까지 무사히 사마라 회장을 호송한 그들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일본은 미국에 벤 쿨렌과 올리버 쿨렌 형제의 인도를 요청했고, 미국은 일단 두 사람을 체포했다.
둘은 자진 출석했고, 이번 탈출극을 사마라 회장의 요청으로 자신들이 꾸몄다고 자백했다.
하지만 아무리 가담자들을 전부 체포한다 해도 이미 고국으로 돌아간 사마라 회장을 강제송환할 방법은 없었다.
사마라 회장은 매일 같이 기자회견을 열고 전세계 언론사와 인터뷰를 했다.
“일본은 선진국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후진적인 사법 체계를 지니고 있다. 그곳에서 외국인들은 최소한의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한다. 나는 그동안 일본 검찰에 의해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잔인하게 떨어져 고립되어 있었다. 나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일본을 탈출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다.”
일본 검찰은 사마라 회장은 죄를 짓고 도망친 범죄자일 뿐이라며 강력하게 비난했지만, 안타깝게도 국제 여론은 사마라 회장의 편이었다.
국제인권단체들은 성명을 냈다.
[일본 사법제도는 마치 인질극과도 같다.]
[일본 정부의 행동은 과연 외국인이 일본에서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게 한다.]
[무리한 수사관행에 대한 일본 검찰의 반성과 사과를 촉구한다.]
* * *
도쿄지검장 스즈키 켄지는 며칠 동안 높으신 분들의 항의전화에 시달렸다.
‘바로 이런 상황이 생기는 걸 우려해서 그동안 가택연금을 시켜놓고, 언론 인터뷰도 못 하게 막은 건데.’
그런데 설마 일본을 탈출할 줄이야!
아무리 일본 검찰이라고 해도 요르단에서 떠들어대는 사마라 회장의 입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일이 터진 이상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했다.
관료사회 특유의 책임 떠넘기기가 시작됐고, 책임 소재는 자연히 이 사건을 지휘한 담당 검사에게로 모여졌다.
스즈키 검사장은 사건을 지휘한 검사를 불러다가 소리쳤다.
“대체 이게 무슨 개망신이야!? 이번 일을 어떻게 책임질 거야?”
요시네 켄타로는 입을 다문 채 질책을 들었다.
사실 그는 억울했다.
왜냐하면 그가 보석으로 풀어준 것도 아니고, 그가 자택을 감시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실컷 소리치다가 제풀에 지친 스즈키 검사장은 그에게 말했다.
“할 말 있으면 해봐.”
요시네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번 일의 배후에 컨티뉴 캐피탈이라는 사모펀드가 있습니다.”
“뭐? 그게 뭔 소리야?”
“공동대표인 한미루가 직접 일본에 와서 사마라 회장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탈출이 마무리되자 일본을 떠났구요. 탈출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일본에 온 겁니다.”
“증거가 있어?”
“사건이 벌어지기 전 한미루를 만나 적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는 키오노스가 앞으로 큰 위기를 겪을 거라고 저에게 말했습니다. 아마 그때부터 탈출시킬 생각이었을 겁니다.”
스즈키 검사장은 황당해하며 물었다.
“그 일을 왜 지금 얘기하나?”
“그, 그때는 저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 말이 증거라고?”
“사마라 회장이 탈출하기 직전 키오노스에 대한 공매도가 두 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공매도 세력들을 조사해보면 컨티뉴 캐피탈과의 연관성이 나올 겁니다.”
“주가를 떨어트릴 목적으로 탈출을 기획했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스즈키 지검장은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치며 소리쳤다.
콰앙!
“그걸 어떻게 조사할 건데!? 그리고 컨티뉴 캐피탈이 공매도를 했으면? 그게 탈출을 시켰다는 증거가 되나? 직접적인 증거를 가져와야 할 거 아니야? 가뜩이나 검찰 전체가 웃음거리가 된 상황에서 증거도 없이 미국계 사모펀드를 수사하자는 거야?”
그 말대로였다.
조사를 한다고 해도 컨티뉴 캐피탈이 탈출을 기획했다는 증거가 나올 리 없었다. 그러니 자신 있게 일본을 드나들었겠지.
스즈키 지검장은 화를 가라앉히며 말했다.
“그냥 자네 하나만 책임지고 옷 벗으면 끝날 일이야.”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는 전국민에게 알려진 스타 검사였다.
벌써부터 정치권에서는 러브콜이 들어왔고, 기업인들도 슬그머니 줄을 대려고 노력했다.
그런 그가 이제는 범죄자 하나 제대로 관리 못 해 본인이 속한 조직…… 더 나아가 국가에까지 피해를 끼친 존재로 낙인찍혔다.
일본 검찰은 실수를 용서치 않는다. 그는 이대로 밀려나 한직을 전전하다가 옷을 벗게 될 것이다.
그의 눈앞에는 찬란한 미래가 있었다.
어쩌면 정치인으로서 승승장구해서 까마득한 자리까지 올라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요시네는 한미루를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빌어먹을!’
* * *
사마라 회장의 폭로는 하나하나가 치명적이었다.
사이토 회장이 노조 분쇄를 위한 불법행위에 관여했다는 자료를 공개하자, 노조는 파업을 선언했다.
반도체 공장에서 화학물질의 유출을 은폐한 사실이 알려지자, 인근 주민들은 공장 가동 중단 시위에 나섰고, 지자체는 공장 전수조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키오노스의 로비 명단에 오른 정치인과 관료들도 줄줄이 공개되며, 일본 정부의 1조 엔 투자 계획에도 차질이 생겼다.
정경유착의 증거가 드러난 만큼 일본 내의 여론이 들끓었고, 공정한 경쟁을 해칠 우려가 있다며 외국 기업들 역시 비판 대열에 가세했다.
여기에 더해 분식회계 의혹까지 제기됐다.
신공정으로 낸드 플래시 메모리를 생산하는 데 있어서 예상보다 수율이 떨어졌지만, 그 사실을 숨겼다는 것이다.
그런데 손실액이라고 해봐야 고작 150억 엔 규모.
키오노스의 자산과 수익에 비한다면 미미했다. 이 정도면 다음 회계연도에 부실자산으로 털어버려도 상관없는 수준이다.
그리고 수율이야 시간이 지나면 차차 나아지게 되어 있으니 큰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사마라 회장은 목소리를 높였다.
“나에게 들이댄 잣대를 일본인 경영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해라! 설마 일본 검찰은 일본인에게는 관대하고 외국인에게는 막 대하는 그런 곳인가?”
일본 검찰은 그동안 키오노스의 작은 부정 하나까지도 수집해 사마라 회장의 혐의에 더했다.
그런데 그보다 심한 혐의가 발견됐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표적수사를 벌였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
일본 검찰은 어쩔 수 없이 명단에 오른 이사들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수사 대상은 전체 이사진의 절반이었다.
어차피 적당히 수사하는 척하다가 여론이 가라앉을 때쯤 집행유예 판결을 내리면 그만이다.
문제는 키오노스와 SPME와 맺은 얼라이언스 조항 중에, 혐의가 확실할 경우 재판 전이라도 이사직에서 해임한다는 조항이 있다는 점이었다.
이 조항을 근거로 키오노스 이사진은 기습적으로 사마라 회장을 해임했던 거고.
SPME는 마찬가지로 이 조항을 근거로 수사 대상에 오른 이사진들의 해임을 요구하고, 자신들이 새로운 이사를 선임하겠다고 밝혔다.
“키오노스로 인해 SPME까지 피해를 보고 있다.”
“잘나가던 기업을 1년도 안돼 이렇게 망가뜨리다니!”
“일본인들에게 경영을 맡겨서는 안 된다!”
“더 이상 키오노스의 방만한 경영을 두고 볼 수 없다!”
“SPME가 주주로서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
SPME는 최소한 지분만큼이라도 이사회에 숫자를 채워 넣겠다고 통보했고, 키오노스는 절대 허가하지 않겠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를 받아들이면 그동안 속도를 높이고 있던 경영 분리가 무산될 수도 있고, 다시 합병이 추진될 수도 있다.
하지만 SPME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동안 SPME의 키오노스 합병 추진에는 잡음이 많았다. 새우가 고래를 삼키는 정도는 아니지만 시총과 매출이 절반도 안 되는 SPME가 키오노스를 합병하는 게 말이 되냐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키오노스 주가 폭락으로 인해 두 기업의 시총이 비슷해졌다.
민관이 결탁해 사마라 회장을 몰아낸 것이 사실로 드러났고, 경영자들은 분식회계로 조사를 받고 있고, 정부 투자는 중단됐고, 기존 공장들마저 멈춰 세워야 하는 상황.
어떻게 보면 합병을 추진할 절호의 기회다.
데샹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말했다.
“일본 기업은 주주들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
다시 말해 SPME가 키오노스에 주주 권리를 행사하는 걸 방해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러자 히나타 총리까지 나서서 말했다.
“키오노스는 일본의 국가 기간산업이다. 일본의 경제안보와도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기업인 만큼 약탈적 합병은 정부 차원에서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
데샹 대통령은 자국민 불법수사와 관련해 주일대사를 초치해 강한 불쾌감을 표시했고, 이에 히나타 총리 역시 주프랑스대사를 초치했다.
합병을 놓고 양측 정부가 물러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으며, 키오노스가 세워놓은 사업계획은 전부 틀어졌다.
* * *
키오노스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유성전자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였다.
최근에는 일본 정부 투자와 유성전자 고객사 이탈에 대한 반사이익을 기대하며 주가가 1만 엔을 돌파했다.
그랬던 주가가 악재에 악재가 겹치며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최고 10800엔까지 올랐던 주가는 이제 4200엔까지 떨어졌다.
회사가 흔들리고 주가가 폭락하자, 주주와 투자자들의 거센 불만이 터져 나왔다.
-사마라 회장이 멀쩡히 살려놓은 회사를 1년도 안 돼 이렇게 망가뜨리다니!
-이럴 거면 그냥 사마라 회장이 계속 경영하는 게 나았잖아!
-이러려고 잘랐냐?
-이러다가 외국 기업들이 전부 일본을 떠나게 생겼음.
-야, 이 새끼들아! 사마라 회장 다시 모셔 와라!
-빠가야로! 내 주식 어떻게 할 거야?
-정부가 나서서 물어내라.
난 사마라 회장의 전화를 받았다.
[솔직히 처음 탈출 방법을 들었을 때만 해도 반신반의했네. 그런데 이렇게 쉽게 성공할 줄이야.]
“힘들진 않으셨나요?”
[하하! 이 나이에 케이스 안에 웅크리고 있으려니 힘들긴 힘들었지. 전용기 화물칸에 앉아서 가는 것도 고생이었고. 그래도 생각보다 재밌었네. 살면서 해본 일 중 가장 짜릿하더군.]
하기야 보통 사람은 평생 경험해보지 않을 만한 일이긴 하지.
[덕분에 퇴직금도 잘 챙겼네.]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5천만 달러를 투자했기 때문인지, 그는 최선을 다해 폭로했다. 원래 팬이 안티가 되면 무서운 법이지.
1년 뒤 폭로했으면 큰 타격을 주지 못했을 테지만, 지금 폭로하니 주가를 충분히 박살내 놓을 수 있었다.
이런 걸 보면 역시 폭로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요르단은 어떤가요?”
[간만에 고향이 돌아오니 좋군.]
목소리만 들어도 확실히 편안해 보인다.
며칠 사이 잘먹고 잘잤는지, 언론 인터뷰를 하는 모습을 보면 살도 좀 찐 것 같았다.
[언제 한번 놀러오게.]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으려 하는데 사마라 회장이 말했다.
[고맙네.]
난 웃음을 지었다.
“뭘요. 저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