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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성공 투자법-208화 (203/529)

208화. 이스케이프(Escape) (7)

요시네 검사는 차갑게 웃었다.

“죄가 있는 사람을 체포한 건데 어째서 엔자이라는 겁니까?”

“재판을 통해 형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죄죠.”

내가 검사한테 무죄추정의 원칙까지 알려줘야 하나?

“그건 재판을 통해 입증될 겁니다.”

“재판이 열린다면 말이죠.”

어차피 안 열 거잖아.

1회차 때 봐서 다 안다.

뭔 후진국이나 독재국가도 아니고, 대기업 회장을 재판도 없이 2년 넘게 구금한다는 게 말이나 되나?

할 말이 없는지 그는 화제를 돌렸다.

“알아보니 한미루 씨는 꽤 유명하더군요. 한정그룹 주총에서 합병안을 부결시키고, 블랙우드 호텔 사태도 직접 나서서 해결하고. 그냥 직원이 아니라 공동 대표인 걸로 알고 있는데, 맞습니까?”

난 괜히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 저에 대해 뒷조사를 하신 겁니까?”

“당연한 절차니 기분 나빠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뭐, 그럴 수 있지.

그나저나 일본에서도 알 정도면 나도 제법 유명해졌구나. 이걸 좋아해야 하나?

“컨티뉴 캐피탈의 공동 대표가 단지 투자 상담을 위해 직접 일본까지 왔을 리는 없을 것 같고……. 진짜 목적이 뭡니까?”

역시 쉽게 넘어가지는 않는구나.

무슨 꿍꿍이인지 궁금해하지만, 설마 탈출시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겠지.

이럴 땐 적당히 뭐 하나 던져줘야겠지?

난 괜히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저희는 이번 사태에 매우 관심이 많습니다. 특히 향후 키오노스의 전망에 대해서요.”

“전망이 어떤가요?”

원래 이런 정보는 아무한테나 말해주면 안 되지만, 이번만 특별히 말해주기로 했다.

“앞으로 큰 위기를 겪을 겁니다.”

“이유는요?”

“그야 사마라 회장을 몰아냈으니까요. 애초에 키오노스는 사마라 회장이 없었다면 진작 망했을 기업입니다.”

“어째서입니까?”

“일본 재벌은 절대 구조조정과 공장 폐쇄를 단행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

지금까지 나온 얘기만 보면 사마라 회장 취미가 직원 모가지 날리기, 특기가 공장 밀어버리기쯤으로 생각되기 쉽지만…… 세상에 어떤 경영자가 일 잘하는 직원을 자르고, 수익 잘 나는 공장을 폐쇄하겠는가?

그건 그냥 미친놈이지.

사마라 회장이 그렇게 한 것은 그만큼 키오노스의 상태가 심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키오노스는 왜 그 모양이 됐을까?

그야 당연히 전 경영자인 모리구치 유스케가 경영을 개판으로 했기 때문. 적자가 쌓이고 회사가 망해가는데도 그는 구조조정에 나서지 않았다.

사실 여기에는 기업뿐 아니라 여러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대량 해고와 공장 폐쇄는 해당 지역, 더 나아가 사회 전체를 영향을 미친다.

정치권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자이바쯔(재벌) 특성상 이를 실행으로 옮기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SPME가 지원을 하며 가장 먼저 요구한 게 CEO 교체였다.

이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 역시 암묵적으로 용인했다. 구조조정의 책임을 그저 외국인 경영자의 독단으로 몰아가면 그만이니까.

역시나 정치권과 언론은 사마라 회장을 향해 ‘피도 눈물도 없는 악마’라며 비난을 쏟아냈다.

그러면서도 정작 이런 상황이 벌어지게 된 원인에 대해서는 누구도 지적하지 않았다.

사실 사마라 회장이 구조조정만 한 것은 아니다.

반도체 사업부 쪽은 고용을 늘렸고, 인재를 끌어들여야 한다며 성과급 제도를 개편했다.

비록 2만 명이 넘는 사람이 일자리를 잃었고 여러 공장이 문을 닫거나 팔려나갔지만, 어쨌거나 키오노스는 화려하게 부활했다.

하지만 이런 점을 칭찬하는 언론은 아무도 없었고, 사마라 회장은 무슨 프랑스산 악마 정도로 묘사됐다.

그래서인지 이번 구속 사건에 대해서도 전세계가 비난을 쏟아내는 것과는 달리 일본 내에서만큼은 정당하다는 여론이 90퍼센트를 훌쩍 넘었다.

역시 일본!

난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사마라 회장이 공장을 폐쇄하는 바람에 가업으로 운영하던 회사가 문을 닫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대기업이 공장을 폐쇄하면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다. 그 밑의 수십, 수백 개의 하청업체들이 줄줄이 피해를 입게 된다.

이때 그의 부친이 대를 이어 운영하던 회사 역시 망했다.

내 말에 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저에 대해 조사를 하신 겁니까?”

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당연한 절차니 기분 나빠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

뭐, 검사라는 직업이 주로 남을 조사하지, 본인이 조사당할 일은 없긴 하지.

요시네 검사는 이내 웃음을 지었다.

“뭘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조심하는 게 좋을 겁니다.”

“조심은 하겠지만 사마라 회장처럼 될까 봐 좀 걱정되긴 하네요.”

엔자이라는 전통이 있는 나라에서 나 하나 조심한다고 되겠나?

“불법적인 일에 연루된다면 컨티뉴 캐피탈의 명성에도 안 좋을 텐데요.”

난 손을 내저었다.

“아! 저희는 명성 같은 건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럼 뭘 신경 씁니까?”

“오직 돈이죠.”

그는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일본에는 언제까지 있을 예정입니까?”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 한동안 있을 것 같습니다. 온 김에 관광도 좀 하구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군요. 시간 뺏어서 죄송합니다. 그럼 전 이만.”

* * *

유성전자의 데이터센터 산업 진출로 인한 반사이익에 대한 전망 덕분에 키오노스 주가는 13조 엔까지 치솟았다.

이 정도면 유성전자에는 미치지 못해도 일본 전자기업 중에서는 최대다.

컨티뉴 캐피탈은 최대한 티 나지 않게 공매도를 쏟아부었다. 그러자 주가 상승에 따라 자연히 공매도가 늘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워낙 덩치가 큰 기업인 만큼 공매도에도 부담이 없었다.

컨티뉴 캐피탈 자산을 전부 투자한 것도 모자라, 러시 펀드의 자금까지 끌어다 썼다.

사마라 회장 역시 5천만 달러를 투자했다.

그의 자산은 약 2억 달러. 이 정도면 가용할 수 있는 현금은 전부 끌어왔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이렇게까지 한 걸 보면 퇴직금 못 받아 맺힌 한이 큰 모양이다.

투자가 마무리될 무렵.

난 데이비드의 전화를 받았다.

[준비 다 끝났습니다.]

“시작하죠.”

* * *

요시네 켄타로.

그는 키오노스 회장의 수사를 맡으며 일약 스타 검사로 떠올랐다.

벌써부터 정치권의 러브콜이 쏟아졌고, 내년 정기인사 때는 승진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려면 이번 일을 잘 마무리 짓고 인수인계해야 한다.

사실 사마라 회장의 구속과 수사는 여러모로 무리한 점이 많았다. 전용기를 타고 하네다 공항에 내리기 무섭게 긴급 체포 했고, 변호사와 가족들의 접견도 차단했다.

그렇게 반년 가까이 구치소에 잡아놓은 뒤 일단 보석으로 풀어주었다.

위에서는 키오노스 내부가 안정되고 여론이 가라앉을 때까지 붙잡아 놓기만 하라는 암묵적인 지시가 내려왔고, 요시네는 그 지시를 충실히 따랐다.

그런데 며칠 전 신경 쓰이는 일이 하나 벌어졌다.

“컨티뉴 캐피탈이라…….”

그는 일본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경영자였고, 재산도 상당했다.

오랜 기간 갇혀있었으니, 자산 관리를 위해 투자사를 만나는 것은 딱히 이상한 일이 아니다.

문제는 하필 그게 컨티뉴 캐피탈이라는 것.

이제까지 컨티뉴 캐피탈의 행보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토머스 모터스 폭락으로 이름을 알린 뒤, 스노우 크래시라는 클라우드 기업을 인수했다. 한국에서는 한정그룹 합병안을 부결시켜 한정그룹을 해체했고, 얼마 전에는 블랙우드 호텔 사태를 해결했다.

조사에 따르면 그 모든 일들에 한미루라는 한국인이 깊숙이 개입해 있었다.

그런 그가 이번에 일본에 들어와서 사마라 회장을 만난 것이다.

목적이야 대충 짐작이 갔다.

‘사마라 회장을 부추겨 폭로하게 만들 생각인가?’

요시네는 이번 일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연관되어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수사 지휘를 맡은 그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는 업무가 바쁜 와중에도 사마라 회장과 한미루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했다.

‘정 안 되면 보석을 취소하고 다시 구속하는 수밖에.’

지금까지 발표한 것 외에도 몇 가지 혐의를 더 쥐고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구속할 수 있다.

하지만 두 번이나 보석으로 풀어준 피의자를 다시 구속하는 것은 남들 보기에 그림이 좋지 않았다.

간신히 가라앉힌 국제 여론을 자극할 위험도 크고.

때문에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요시네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자택 주변 경비를 강화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런데 뜬금없는 소식이 들려왔다.

바로 사마라 회장 아들이 결혼한다는 것. 장소는 싱가포르.

‘갑자기 결혼식을?’

어느 나라나 결혼식은 중요한 행사. 부모가 참석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사마라 회장은 현재 일본을 벗어날 수 없는 상황.

그는 결혼식 전에 친척과 지인들을 집으로 초청했다.

‘그들에게 구금의 부당함을 주장해, 동정 여론이라도 불러일으키려는 건가?’

그렇다고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온 사람들을 못 만나게 할 명분은 없었다.

친척과 지인들은 싱가포르로 가기 전 도쿄에 들렀고, 사마라 회장은 집에서 파티를 열어 그들에게 일일이 감사를 표하고 선물을 건네주었다.

파티가 끝난 후 친척과 지인들은 결혼식이 열리는 싱가포르로 향했다.

요시네는 경찰의 보고를 받았다.

[특별한 움직임은 없습니다.]

“그렇군.”

안심하고 끊으려는데, 담당자가 뜻밖의 말을 했다.

[다만 이틀째 고용인들이 출근하지 않고 있습니다.]

“……뭐?”

파티를 벌인 뒤니 며칠 휴가를 줬어도 이상할 건 없다.

하지만…….

“설마 한 명도?”

[그렇습니다.]

하루 정도야 혼자 지낸다 쳐도, 이틀이라면 뭔가 이상하다.

사마라 회장은 여러 명의 고용인을 두고 있다. 그는 미식가로 유명했고, 집에서 갇혀 지내면서도 요리사들을 교대로 출근시켜 여러 요리를 즐겼다.

‘설마 직접 요리를 해먹지는 않을 테고…….’

왠지 느낌이 좋지 않다.

“주변 경비 강화해. 누가 들어가고 나오는지 확실하게 체크하고.”

[아, 알겠습니다.]

그는 바로 사마라 회장 자택으로 달려갔다. 그가 지시한 대로 경찰들은 주위를 물 샐 틈 없이 지키고 있었다.

“피의자는?”

“파티 이후 자택에서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안에 있는 게 확실해?”

“그렇습니다만…….”

그는 대답을 다 듣기도 전에 초인종을 눌렀다. 하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몇 번을 눌러도 마찬가지였다.

요시네는 더 이상 생각할 것 없이 말했다.

“문을 부숴.”

“예? 하지만…….”

“당장!”

그는 경찰들과 함께 대문과 현관문을 부수고 자택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지하주차장부터 3층까지 실내를 전부 뒤졌다.

하지만 집 안을 샅샅이 수색했음에도 사람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담당자는 당황하며 말했다.

“사마라 회장은 집 밖으로 나간 일이 없습니다.”

“혹시 친척들 사이에 섞여서 나간 건?”

“그럴 리 없습니다. 들어온 사람과 나간 사람을 전부 체크했습니다.”

요시네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럼 어디로 갔다는 거야!?”

보석을 허가해준 것은 도망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는 유럽이 아닌 일본.

설사 집 밖으로 도망치는 데 성공한다고 해도, 외국인에 말도 안 통하는 그가 가봐야 어디를 가겠는가?

산속이나 섬에 틀어박혀 숨어지낼 게 아닌 이상 언젠가는 붙잡히게 되어 있다.

보석 조건을 위반한 것인 만큼 붙잡히면 바로 구속이다.

‘설마 일본에서 도망칠 생각인가?’

그는 프랑스 여권 2통과 요르단 여권 1통을 가지고 있었다.

그중 프랑스 여권 1통과 요르단 여권 1통은 보석 조건에 따라 변호인이 보관했지만, 재류 자격이 없는 외국인은 반드시 여권을 소지해야 한다는 입관법에 따라 프랑스 여권 1통은 잠금장치가 달린 케이스에 보관 중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여권이 사라졌다!

물론 여권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피의자로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어있는 만큼 공항이나 항만을 무사히 빠져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체 어떻게 하려는 거지?’

이제까지 조용히 있던 사람이 갑자기 왜 이런 짓을 저질렀단 말인가? 대체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 순간, 요시네의 머릿속에 한 사람의 이름이 떠올랐다.

“한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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