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화. 이스케이프(Escape) (2)
나한테 뭔가 방법이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것 같은 표정이다.
사실 생각나는 게 하나 있긴 하다.
난 바로 대답하는 대신 다른 질문을 던졌다.
“지금 키오노스 회장이 누구죠?”
“사이토 마사키입니다.”
이름을 들으니 대충 기억이 난다.
“만나본 적 있으세요?”
“몇 차례 만났습니다.”
동종 업계에 있으니 행사 같은 데서 얼굴을 마주쳤을 것이다.
“평가를 하자면요?”
“뛰어난 경영자입니다. 아마 일본 반도체 업계에서 그 이상의 인물은 찾기 힘들 겁니다.”
“그렇군요.”
실제로 사이토 회장은 키오노스를 안정적으로 잘 이끌어 나간다.
“이전 회장과 비교하면요?”
“사마라 회장이요? 두말할 것도 없이 최고의 경영자입니다. 그가 아니었다면 키오노스는 진작 망해서 어딘가 팔려갔을 겁니다.”
사실 사마라 회장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누군가는 그를 ‘유럽에서 온 악마’라 욕하고, 또 누군가는 ‘경영의 신’이라며 추켜세웠다.
“만난 적도 있으시죠?”
“그럼요. SMPE에 있을 때부터 가끔 얼굴을 봤습니다.”
“최근에는 못 만났을 테구요?”
유재호 회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습니다.”
“키오노스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좀 해주실 수 있나요?”
대충은 알고 있지만 유재호 회장의 입을 통해 들으면 또 다르겠지.
“한때는 세계 최대 반도체 회사였습니다. 유성전자도 초창기에는 큰 도움을 받았죠.”
유성전자는 일본에서 기계와 부품을 사와 조립하는 가전업체로 출발했다. 당시 제휴를 맺었던 회사가 바로 키오노스다.
이런 회사가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다고 하자 전 세계가 비웃었다. TV 하나도 제대로 못 만드는 회사가 어떻게 반도체를 만들겠냐는 것이었다.
이때 또다시 키오노스의 도움을 받았다.
키오노스는 자사의 반도체 기술을 세계 표준으로 만들고 싶어 했고, 이를 위해서는 우군이 필요했다.
그래서 유성전자에 라이선싱을 부여했고, 덕분에 유성전자는 반도체 생산 시기를 크게 앞당길 수 있었다.
그랬는데 현재는 생산량과 기술력 모두 유성전자가 앞서 있고, 키오노스는 쫓아오기 바쁘다.
당시만 해도 이런 상황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키오노스를 알기 위해서는 SP마이크로일렉트로닉을 알아야 합니다. 보통 SPME로 부르죠.”
“프랑스 반도체 회사죠?”
유재호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시다시피 두 회사는 전략적 제휴를 맺고 있습니다.”
* * *
키오노스 제작소.
설립연도는 1879년으로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종합전자기업이다. 일본 전자 산업의 상장이자 한때는 세계 최대 반도체 회사였다.
하지만 2000년대 초부터 신흥국들에게 밀리기 시작했다.
가장 큰 원인은 시장 흐름을 놓치고 기존 기술에만 집착했기 때문.
그 대표적인 예는 TV.
당시 디스플레이 산업이 LCD로 넘어가고 있고, 가전 회사들은 LCD TV를 만드는 데 공을 들였다.
그러나 키오노스는 자신들의 기술이 최고라는 자부심으로 더 얇고 가볍고 화질이 좋은 브라운관 TV를 개발해 시장에 내놓았고······ 망했다.
나중에는 유성전자에게 패널을 받아서 쓰는 신세가 됐다.
몰락의 결정적 계기는 2007년 발발한 반도체 치킨 게임. 무려 5년 동안 이어진 출혈 경쟁으로 인해 반도체 기업들이 줄도산했다.
심지어 세계 10위 안에 들던 일본의 엘다피와 독일 카몬다마저 이때 파산했다.
키오노스 역시 출혈 경쟁을 버티지 못하고 사실상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엘다피에 이어 키오노스마저 파산하면 일본 반도체 업계는 끝장나는 상황. 이때 구원투수로 등장한 곳이 SPME다.
SPME는 프랑스 정부가 20퍼센트의 지분을 가진 프랑스 최대 반도체 회사.
두 회사는 서로 지분을 교환하며 전략적 제휴······ 즉, 얼라이언스를 맺었다.
키오노스는 지분 SPME에 46퍼센트를 넘겼고, SPME는 지분 16퍼센트와 함께 12억 유로를 지원해 만기가 돌아온 키오노스의 채권을 해결해주었다.
하지만 자금 지원이 당장 급한 불은 끌 수 있어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이에 SPME는 키오노스의 경영진 교체를 요구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이어 경영을 해오던 모리구치 유스케가 물러나고, SPME 미국 지사장을 맡고 있던 티에리 사마라(Thierry Samara)가 CEO로 부임했다.
그렇게 키오노스 역사상 최초의 외국인 CEO가 탄생했다.
그가 회장에 취임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강력한 구조조정이었다. 생산성이 떨어지고 노후화된 공장을 폐쇄하고 직원을 잘랐다.
원래 키오노스는 직원을 해고하지 않는 역사를 자랑했다.
창업자인 모리구치 유지는 ‘회사는 집이고 직원은 가족이다. 아무리 어려워도 가족을 내쫓아서는 안 된다’는 철칙을 가지고 회사를 운영했고, 이후의 CEO들 역시 이를 지켰다.
그런데 외국인 CEO가 오자마자 100년 넘게 이어져 내려온 전통 따위는 개나 줘버리겠다는 듯 사람부터 자르기 시작한 것이다.
첫해에 해고한 직원 숫자만 무려 1만 2천 명.
이는 전체 직원의 10퍼센트가 넘는 숫자였다. 그리고 그다음 해에 추가로 1만 명을 잘랐다.
졸지에 길거리에 나앉게 된 직원들은 거세게 반발했고 노조는 파업을 벌였다.
그러나 사마라 회장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오히려 파업이 일어난 공장부터 폐쇄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다음으로 한 일은 부실 사업부 정리.
수익이 안 나는 사업은 과감하게 쳐냈고, 그 과정에서 가전사업부는 통째로 쪼개 중국 전자기업 텐후안에 매각해버렸다.
텐후안은 과거 키오노스가 하청을 맡기던 회사. 매각가는 부실을 인수하는 것을 조건으로 단돈 1엔이었다.
이 소식에 일본 전체가 충격에 휩싸였다.
한때 키오노스는 일본 제조업의 상징이었다. 키오노스에서 만든 가전제품들은 전 세계에 팔려나가며 ‘Made in Japan’의 우수성을 알렸다.
그런데 그걸 단돈 1엔에, 그것도 과거 하청업체였던 중국기업에 팔아치운 것이다!
이는 일본인들의 자존심에 엄청난 상처를 입혔다.
정치인들마저 격렬한 비난을 쏟아냈지만 역시나 사마라 회장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썩은 부분을 도려내야만 기업을 살릴 수 있다. 만약 2년 안에 흑자를 내지 못한다면 책임지고 회장직에서 물러나 프랑스로 돌아가겠다.’
그렇게 부실 부문 매각과 구조조정을 통해 자금을 마련하고 비용을 줄인 다음, 이를 반도체에 집중 투자했다.
그는 노후화된 라인을 정리하고 경영전략을 새로 수립했다.
‘키오노스가 어려워진 이유는 과잉품질에 대한 집착 때문이다. 품질이 좀 떨어지더라도 싸게 많이 찍어내는 게 중요하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불과 2년 만에 키오노스는 5000억 엔 적자에서 8000억 엔 흑자로 돌아섰다. 그리고 다음 해 흑자 규모는 두 배로 늘었다.
낸드 플래시는 세계 2위로 유성전자를 바짝 추격했고, D램도 다시 5위로 올라섰다.
몰락하던 일본 반도체의 화려한 부활이었다.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키오노스가 반도체 슈퍼 사이클에 올라타며 엄청난 수익을 내는 동안, 정작 SPME는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여러 사업을 벌이느라 반도체 투자 타이밍을 놓쳤고 이는 경쟁력 약화로 이어졌다. 전체 이익에서 키오노스에서 받는 배당금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정도였다.
이제는 시총, 브랜드, 기술력 모두 키오노스가 SPME를 압도하는 상황.
하지만 여전히 SPME가 키오노스를 지배하는 구조였고, SPME는 키오노스에 경영진과 이사진을 내려보내며 경영에 간섭했지만, 키오노스는 SPME 내에서 거의 힘을 쓰지 못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키오노스 내에서는 점점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러한 불만이 폭발하게 된 계기는 개발부서 통합과 신규 법인 설립.
SPME는 양사의 개발부서를 하나로 합쳐 따로 회사 설립을 추진했다. 이렇게 하면 좀 더 효율적인 개발이 가능해지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이에 대해 키오노스는 강하게 반발했다.
말이 좋아 공동개발이지 키오노스의 기술을 빼가려는 수작 아니냐는 것이다.
결국 개발부서 설립은 무산됐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SPME가 아예 키오노스와의 합병을 추진한 것이다. 여기에는 최대주주인 프랑스 정부의 압박도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됐다.
SPME가 가진 키오노스 지분은 무려 46퍼센트.
마음만 먹는다면 강제로라도 합병이 가능한 수준이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자국 반도체 기업이 프랑스로 넘어가게 생긴 상황인 만큼 일본 정부는 강하게 반대했다.
문제는 이를 막을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
그런데······.
합병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일본 검찰은 횡령, 배임, 내부자거래, 부정공시 등의 혐의로 사마라 회장을 긴급체포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에 의하면 비위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후계자인 사이토 마사키 전무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이토 마사키는 이사회에서 사마라 회장 라인들을 전부 쳐내고 자신이 회장직에 앉았다.
이 사태로 인해 합병은 중단됐고, 사마라 회장은 현재까지 일본에 붙잡혀 있다.
* * *
유재호 회장이 말했다.
“일본 정부가 돈을 투자하려는 건 키오노스에 권한을 행사하려는 이유도 있습니다. 일본 정부의 이권이 얽혀있으니 함부로 합병할 생각을 하지 말라는 거죠.”
난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죠.”
아마 장기적으로는 얼라이언스를 파기할 생각일 것이다.
실제로 일본 정부는 올해에만 1조 엔을 투자해 공장 증설을 진행시킨다.
난 1회차 때를 떠올렸다.
정확한 날짜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사건이 터지는 건 내년 하반기.
당시에도 반도체 업계와 일본 정가가 흔들릴 정도로 큰 사건이었다. 만약 그 사건이 좀 더 빨리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키오노스를 무너뜨리지는 못해도 주가를 폭락시키고 한동안 투자는 엄두도 내지 못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D램과 낸드 플래시의 경쟁사인 만큼 키오노스에 문제가 생길 경우 유성전자가 가장 큰 수혜를 보게 될 것이다.
난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해보았다.
자세한 계획은 좀 더 짜봐야겠지만 충분히 가능성 있다.
“키오노스는 제가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내 말에 유재호 회장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말입니까?”
“예. 방법은 생각 중이니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흠, 알겠습니다.”
그는 내심 궁금한 듯했으나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어쨌거나 걸림돌만 없으면 데이터센터 산업 진출은 별문제 없이 진행될 것이다.
이 상황을 어떻게 돈벌이로 연결시킬 수 있을지는 생각을 좀 해봐야겠다.
난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정말 저를 만나기 위해 미국까지 오신 건가요? 통화로 해도 됐을 텐데.”
“겸사겸사입니다. 미국 반도체 공장 건설 문제도 있어서요.”
다시 말하지만 현재 각국은 반도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여기에는 미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미국은 유성전자와 PSMC 등에 미국 내에 반도체 공장을 지으라고 압박했다. 좋든 싫든 투자를 해야 하는 상황.
각종 투자비를 생각한다면 수조 원은 우습게 들어간다.
“유력 후보지가 어딘가요?”
미국은 50개 주로 구성된 연방국가.
각 주의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공장 유치 등의 문제에 있어서는 치열하게 경쟁을 벌인다.
“텍사스주, 앨리바마주, 애리조나주, 조지아주입니다.”
“어디가 가장 낫나요?”
“현재까지 나온 지원책과 입지로 보면 텍사스주가 가장 낫습니다. 부지 제공과 함께 10년간 세제 혜택만 10억 달러를 제시했으니까요.”
반도체 공장이 들어오면 양질의 일자리와 두둑한 세수가 보장된다. 때문에 각 주는 부지 제공과 세제 혜택 등을 제시하며 치열한 유치 경쟁을 벌였다.
난 잠시 생각한 다음 말했다.
“조언 하나 드려도 될까요?”
유재호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요?”
“저라면 조지아주로 하겠습니다.”
내 말에 유재호 회장은 의문을 나타냈다.
“어째서입니까?”
원래대로라면 공장은 텍사스로 간다.
현재로서는 그쪽이 제시한 조건이 가장 좋을 테니까.
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냥 거기가 느낌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