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2화. 이스케이프(Escape) (1) (197/529)

 202화. 이스케이프(Escape) (1)

 컨티뉴 캐피탈이 LD스튜디오를 공격하는 사이.

 할리우드에서 재밌는 사건이 하나 벌어졌다.

 미국 영화계 상반기 최고의 기대작은 퍼펙트네이도.

 강력한 토네이도가 캘리포니아를 덮치는 재난영화로 스티븐 테일러가 감독을, 빈센트 버리와 제시카 에드워드라는 최고 스타가 주연을 맡았다.

 총제작비는 무려 2억 달러.

 그야말로 할리우드 초대형 블록버스터로 여름 극장가를 휩쓸 최고의 작품이라고 모두가 기대하는 작품이었다.

 그런데 영화가 개봉하자 일부 관객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뭐야? 빈센트 버리와 제시카 에드워드는 안 나오고, 뭔 좀비가 날아다니고 있어?

 -내가 대체 뭘 본 거지?

 -이거 완전 사기 아니야?

 -이딴 B급 영화가 무슨 블록버스터냐?

 -표 값 돌려줘!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프리즈너가 출시한 좀비네이도2는 좀비 매니아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퍼졌고, 1편까지도 재평가를 받았다.

 극장 개봉에 대한 요구가 이어졌고, 여세를 몰아 소규모 극장 개봉을 결정했다.

 그런데 부제인 퍼펙트네이도를 크게 표기하는 바람에 졸지에 극장에 퍼펙트네이도 두 개가 동시에 걸리게 된 것이다.

 퍼펙트네이도를 보러 온 관객들이 착각해 좀비네이도2를 보게 된 거고.

 재난 블록버스터 영화인 줄 알고 봤는데, 토네이도에서 좀비가 쏟아져 나오자 관객들은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고, 이는 뉴스에까지 나올 정도였다.

 이에 배급사인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프리즈너를 고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프리즈너가 내놓은 퍼펙트네이도는 블록버스터의 제목을 베낀 목버스터다. 당장 영화를 내리지 않으면 고소하겠다!’

 프리즈너의 라이너스 대표는 비웃으며 반박했다.

 ‘퍼펙트네이도라는 제목은 우리가 1편부터 부제로 썼다. 그걸 따라한 건 유니버셜 스튜디오다. 하지만 프리즈너는 유니버셜 스튜디오처럼 좀스럽고 추잡하지 않기 때문에 영화 제목을 바꾸라고 하지는 않겠다. 당당하다면 실력으로 누구 퍼펙트네이도가 더 재미있는지 겨뤄보자.’

 마치 넓은 마음으로 아량을 베푸는 것처럼 말하긴 했지만, 사실 좀비네이도2는 블록버스터 영화와 제목이 같은 덕분에 엄청난 수혜를 보고 있었다.

 그러니 오히려 제목을 바꾸지 않도록 하는 게 이익이었다.

 어쨌거나 ‘퍼펙트네이도’라는 제목을 프리즈너가 먼저 쓴 것은 사실.

 법적 조치는 불가능했고 개봉까지 한 마당에 제목을 바꿀 수도 없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부제를 표기하지 않는 걸 조건으로 100만 달러의 보상안을 제시했지만 라이너스 대표는 거절했다.

 운 좋게 잠깐 이슈가 되긴 했지만 B급 영화가 초대형 블록버스터의 상대가 될 리 없었다.

 그런데······.

 -두 시간 내내 지루하지 않을 틈이 없는 영화는 처음이었다.

 -대체 2억 달러 어따 쓴 거야?

 -토네이도를 피해 도망치기도 바쁜 와중에 주인공 커플은 ‘이 모든 게 자연을 파괴한 인간의 잘못이다’라는 개똥같은 철학을 30분 동안이나 떠들어대고 있어?

 -영화 보는 내내 주인공 커플 죽기만을 기도했음.

 -이딴 영화 만드는 새끼들은 철저하게 망해야 한다.

 -퍼펙트네이도는 재난 영화가 아니라, 이 영화 자체가 재난이다.

 관객들의 혹평이 쏟아지는 가운데 스티븐 테일러 감독의 인터뷰는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요즘 관객들은 영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조금만 어려운 이야기만 나오면 재미없다고 어린아이처럼 징징댄다.’

 관객을 가르치려는 듯한 그에 태도에 사람들은 더욱 분노했다.

 앵그리 래빗이라는 유명 에이튜버는 퍼펙트네이도와 좀비네이도2를 비교하며 ‘퍼펙트네이도 볼 시간에 차라리 좀비네이도2를 두 번 봐라. 토네이도는 물론 좀비까지 나온다’라는 평가를 내렸다.

 -올해 오스카 작품상은 좀비네이도2에 줘야 한다!

 -어디 퍼펙트네이도 같은 할리우드 허접 쓰레기를 좀비네이도2랑 비교하나?

 -쿠키 영상에서 스켈레톤 튀어나올 때 주인공이 ‘스켈레토네이도!’라고 외친 거 보고 지렸다.

 -처음 좀비네이도2 보고 이게 뭔 저 세상 영화인가 싶었는데, 퍼펙트네이도 보고 오니 명작이라는 걸 깨달았다.

 -다시 보니 엔젤 같다!

 -퍼펙트네이도 보고 다친 마음 좀비네이도2로 치유함.

 -그 정도로 재밌나요?

 -예. 얼마 전 ‘무덤에서 일어나서라도 봐야할 영화 1위’에 선정되었습니다.

 -어! ‘관속에 누워서 봐야할 영화 1위’ 아니었어?

 -ㄷㄷㄷ 대체 얼마나 명작이기에?

 -퍼펙트네이도 싹 다 내리고 좀비네이도 관이나 좀 늘려라.

 두 영화의 비교는 인터넷 밈으로까지 번졌다.

 퍼펙트네이도가 혹평 속에 내려가는 것과는 달리 좀비네이도2는 오히려 상영관을 늘렸다.

 제작비 200만 달러짜리 B급 영화가 2억 달러를 들여 만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밀어낸 것이다!

 그렇게 퍼펙트네이도 매치는 좀비네이도2의 승리로 끝났고, 좀비네이도는 장기 프랜차이즈로의 기반을 다졌다.

 * * *

 컨티뉴 캐피탈 본사에 방문객이 찾아왔다.

 “오랜만입니다.”

 “여기서 뵙게 되니 더 반갑네요.”

 동호 선배와 김범석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재타이거······.”

 “허억! 진짜네.”

 찾아온 사람은 유성그룹 유재호 회장.

 두말할 것도 없이 한국 최대의 재발이자 재벌 중의 재벌이다.

 처음 만났을 때는 마치 뒤에서 후광이 비치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딱히 그런 느낌이 없었다.

 난 사람들을 소개시켜주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데이비드 록허트입니다.”

 “반갑습니다. 그동안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데이비드와 유재호 회장은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이어서 동호 선배와 김범석도 소개시켜주었다.

 인사와 소개가 다 끝난 다음 우리는 둘만 따로 자리를 가졌다.

 “식사는 하셨나요?”

 “아직입니다. 뉴욕에 유명한 햄버거 가게가 하나 있다고 들었습니다. 컨티뉴 캐피탈이 투자했다던데.”

 “지금은 휴무 중이라서요.”

 칼 오코너는 아예 프랜차이즈 1호점 개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돕는 중이다.

 “아쉽네요.”

 “햄버거도 좋아하세요?”

 유재호 회장은 피식 웃었다.

 “그럼요. 햄버거도 좋아하고, 치킨도 좋아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가끔 치킨 배달시켜 먹는다는 얘기가 사실인 모양이다.

 “LD스튜디오를 그렇게 무너뜨릴지는 몰랐습니다.”

 “제가 한 일은 별로 없어요.”

 다 본인들이 한 일이다. 난 그걸 세상에 알렸을 뿐이고.

 그동안의 일들에 대해 얘기를 나눈 다음 난 슬슬 본론을 꺼냈다.

 “그나저나 무슨 일로 미국까지 오신 건가요?”

 “지난 번 제안에 대해 답변을 드려야할 것 같아서요.”

 “데이터센터 말이죠?”

 유재호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난 웃음을 지었다.

 “잘 생각하셨어요.”

 유재호 회장의 말은 끝난 게 아니었다.

 “그런데 제가 결정했다고 무작정 추진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사회야 밀어붙여서 통과시킨다고 해도 주주들이 격렬하게 반대할 겁니다.”

 데이터센터 산업 진출시 5년 내 인수합병과 투자에 쏟아 부어야 하는 돈은 적게 잡아도100조 원.

 나야 향후 스노우 크래시가 얼마나 성장할지 알고 있으니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걸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일까?

 당연히 유성전자가 엄청난 모험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어쩌면 회장이 미쳤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발표하면 주가가 폭락하지 않을까?

 “가장 우려되는 건 고객사들의 반발입니다.”

 유성전자는 TV, 냉장고, 세탁기, 스마트폰, 통신장비, 반도체 등을 전부 생산하는 종합전자기업이다.

 여기서 매출과 이익의 가장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반도체.

 매출 비중도 크지만, 영업이익률이 무려 50퍼센트에 달한다.

 그리고 이 반도체의 최대 고객이 바로 AMZ와 NS, 구블 등 빅테크 기업이다. 유성전자가 데이터센터 산업에 진출한다는 건 이 기업들과 직접 경쟁한다는 얘기.

 빅테크 기업들이 좋아할 리 없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유성전자와 거래를 줄여나가려 할 것이다.

 빅테크 기업들을 합치면 유성전자와 시총이 열 배는 차이난다.

 이 기업들이 유성전자 반도체 비중을 줄이고 다른 협력업체를 찾는다면, 매출과 수익에 직격탄을 받게 된다.

 주주들 입장에서는 하던 반도체 투자나 계속하지 왜 쓸데없는 짓을 하느냐고 화낼 만하겠지.

 “만약 고객사들이 거래처를 바꾼다면 어디가 가장 수혜를 입게 될까요?”

 유재호 회장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말했다.

 “아마도 키오노스겠죠.”

 일본 기업으로 정식명칭은 키오노스 제작소.

 현재 낸드 플래시에서는 세계 2위, D램에서는 4위를 차지하고 있는 기업이다. 여기에 더해 최근에는 파운드리 진출까지 선언했다.

 “기업 자체의 경쟁력도 만만치 않지만 일본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있습니다.”

 현재 모든 산업이 디지털화되는 중이다.

 이 기반이 되는 것이 바로 반도체.

 20세기 중요한 자원이 석유라면, 21세기 중요 자원은 반도체다. 경제 전반과 국가 안보와도 직결되어 있는 만큼 각국은 반도체를 확보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중국만 반도체 굴기를 외치고 있는 게 아니다. 다른 나라들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 다음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나라가 일본.

 유재호 회장은 고개를 내저었다.

 “일본은 어떤 면에서는 중국보다 더 큰 위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미국 입장에서 중국은 가상 적국.

 때문에 중국의 반도체 성장을 강하게 견제하고 있고, 인수합병과 장비 수출까지 통제하고 있다. 때문에 중국은 돈이 있어도 투자에 어려움을 겪는 중이다.

 하지만 일본은 미국의 중요한 동맹국.

 일본이 투자하겠다고 하면 말릴 이유가 없다.

 지금이야 우습게 보일지 몰라도 198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 1위는 바로 일본이었다.

 전체 시장 점유율은 50퍼센트를 넘었고, 메모리 반도체 시장만 놓고 보면 무려 80퍼센트였다.

 현재 몰락하긴 했어도 여전히 세계 5위의 생산량을 자랑한다.

 일본 정부는 반도체 산업 부활을 경제의 핵심 과제로 삼고, 10년 안에 반도체 매출을 5배 늘리겠다고 공언했다.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국가 예산으로 1조 엔을 편성해 자국 반도체 지원에 나섰다. 자국 내에 공장을 짓는다면 수년에 걸쳐서 50퍼센트의 보조금을 지급해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엄청난 지원에도 불구하고 키오노스는 쉽게 공장 증설에 나서지 못했다.

 그 이유는 유성전자 때문.

 메모리 반도체는 업황에 따라 가격 등락이 심하다.

 2000년대 초반, 공급과잉으로 인해 D램 가격이 10분의 1 이하로 폭락한 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반도체 기업들은 생산량을 줄이지 않고 원가 이하로 파는 출혈경쟁을 벌였다.

 이러한 치킨 게임은 몇 년 동안 이어졌고, 견디지 못한 독일과 일본의 반도체 기업들은 줄줄이 파산했다.

 여기서 살아남은 승자가 바로 유성전자다.

 유성전자는 이때의 교훈을 잊지 않고 기술 개발과 함께 규모의 경제를 구축했다. 덕분에 가장 저렴하게 가장 많은 양의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하는 기업이 됐다.

 키오노스는 낸드 플래시, D램, 파운드리 어느 쪽이든 간에 유성전자보다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이 아래다.

 때문에 일본 정부가 투자하라고 등을 떠밀고 있음에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빅테크 기업들이 다른 공급망을 찾기 시작한다면?

 이때는 투자할 만한 이유가 생긴다. 부족한 가격 경쟁력이야 정부 보조금으로 해결하면 그만이고.

 당연하지만 유성전자가 데이터센터 산업에 뛰어드는 건 1회차 때는 없었던 일. 그런데 이번에는 나로 인해 상황이 달라졌다.

 어쩌면 이번 일로 인해 일본 반도체 업계가 다시 부흥할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이는 유성전자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유성전자의 반도체 지배력이 약화되면 데이터센터 투자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겠네요.”

 “그렇습니다.”

 난 잠시 생각한 다음 말했다.

 “만약 키오노스가 공장 증설을 하지 못한다면 빅테크 기업들이 쉽게 거래처를 바꾸지 못하겠죠?”

 “일부 이탈은 있겠지만 큰 타격은 피할 수 있겠죠.”

 “그러려면 일본 정부의 지원을 중단시켜야 할 테구요.”

 “그렇습니다만······.”

 대답을 하던 유재호 회장은 눈을 크게 뜨며 나를 쳐다보았다.

 “좋은 방법이라도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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