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화. LD스튜디오 (10)
간담회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고, 이는 각종 스트리밍 사이트에 실시간으로 생중계됐다.
현금 환불 대신 크라운과 RT쿠폰을 지급하겠다는 말에 그나마 남아있던 유저들마저도 등을 돌렸다.
간담회에서 박현종 전무의 발언은 하나하나가 이슈였다.
-다른 게임사들도 다 하는 짓이라고?
-게임사도 정확한 확률을 모른다고?
-이용자의 게임 진행 상황에 따라 확률이 상시 변동된다고?
-우리는 그걸 확률 조작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그러니까 그걸 모든 게임사들이 다 한다는 거지?
-한국게임산업협회가 문체위에 공식적으로 보낸 의견서에 적힌 내용입니다.
-저런 훌륭한 협회가 국회의원님들을 상대로 거짓말을 했을 리 없으니 100퍼센트 진실이겠네?
한국게임산협회도 그렇고 박현종 전무도 그렇고, 다른 게임사들 역시 변동 확률을 실행하고 있다고 실토(?)한 것이다.
논란이 커지자 한국게임산업협회는 ‘일부 오타나 오해가 있어서 해당 의견서를 수정하겠다’라고 밝혔지만, 오타는 없었고 오해를 할 만한 껀덕지는 더더욱 없었다.
다른 게임 유저들 역시 의혹을 가지고 확률 조작 문제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새로운 내용들이 고구마 캐내듯 줄줄이 걸려 나왔다.
LD스튜디오 공매도로 재미를 본 헤지펀드들은 일제히 그쪽으로 옮겨가 공매도를 쏟아냈다.
[루미나스 확률 조작!]
[시나몬 스토리 아이템 성능 잠수함 패치 의혹!]
[차일드런 업데이트 논란!]
[레전드나인, 표기 확률 1%. 실제 확률 0.004%]
렉슨과 렛마블을 비롯한 대형 게임사들은 당황했다.
남의 집 불타는 걸 구경만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불길이 자기 집으로 옮겨붙은 것이다.
“뭐야? 왜 불똥이 여기로 튀어?”
“이런 시발! 죽으려면 혼자 죽을 것이지, 왜 우리까지 걸고넘어져?”
“우리가 한 짓은 브라더후드M에 비하면 새 발의 피나 다름없는데.”
“아니, 확률 조작이 뭐 그리 큰 잘못이라고······.”
이들도 나름 할 말은 있었다.
랜덤박스에 빠져드는 이유는 운만 좋으면 싼값에 좋은 상품을 뽑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확률이 0.00001%로 표기되어 있다면? 로또 당첨 확률보다 낮다면?
확률을 보는 순간 대부분 시도조차 안 하고 포기할 것이다.
때문에 게임사는 어느 정도 뽑을 수 있는 확률이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그나마 1퍼센트 정도라면 어느 정도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몰려 정말로 100명 중에 한 명이 해당 아이템을 뽑으면?
이러면 게임 내 밸런스가 망가지게 된다.
때문에 확률표에는 뽑을 만한 확률로 적어놓고, 실제로는 뒤에서 확률을 조작하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어쨌거나 LD스튜디오와 마찬가지와 확률 조작을 인정할 수는 없는 노릇.
이렇다 보니 온갖 변명이 쏟아져 나왔다.
“확률표에 나와 있는 확률은 임의로 적어놓은 겁니다. 정확한 확률은 회사도 계산이 불가능합니다.”
“획득 가능한 아이템의 구간별 확률 수치만 공개하는 것이 그동안의 관례였습니다.”
“1퍼센트라고 표기한 건 그 미만을 의미하는 겁니다.”
“확률표 맨 마지막에 보면 작은 글씨로 ‘랜덤으로 적용될 수도 있음’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변동 확률은 글로벌 트렌드입니다.”
게이머들은 기가 막힌다는 반응이었다.
-브저씨들 욕할 게 아니었네!
-어! 알고 보니 나도 개돼지?
-아니, 시발! 뭐 안 터지는 게임이 없냐?
-이 새끼들 다 한통속이었음. 어쩐지 브라더후드M 터질 때 전부 닥치고 있더니.
-주모! 여기 트럭 한 대 추가요!
-트럭 업체들만 노났네~
처음 LD스튜디오 확률 조작 문제로 촉발된 문제는 이제 한국 게임업계 연쇄 파동으로 번져나갔다.
* * *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자 정치권까지 움직였다.
이 시점에서 우리국민당 남궁석 국회의원이 일전에 발의했던 ‘확률형 아이템 규제법’을 다시 들고나왔다.
여기에는 유무료 상관없이 모든 확률형 아이템에 대해 확률 공개, 천장 시스템 도입, 확률 검증 방법 의무 도입, 확률 조작 적발시 3배 보상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당연히 게임사들은 기를 쓰고 반발했다.
“게임 산업 전체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
“한국 유저들은 결제 태도가 좋지 않아 확률형 아이템은 어쩔 수 없다.”
“게임사도 서버비와 마케팅비는 회수해야 하지 않냐?”
“한국 게임이 역차별당할 우려가 있다.
“사기업의 영입 비밀을 공개하라고 하는 나라가 어디 있냐?”
“기존 유저들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유저들도 반대한다!”
심지어는 ‘확률형 시스템은 모든 사용자에게 아이템을 가장 공정하게 나눠주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라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남궁석 의원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동안 충분히 기회가 있었지만, 업계가 자율규제를 할 수 없다는 걸 스스로 입증했습니다. 기를 쓰고 확률 공개를 회피하려는 걸 보니 찔리는 게 많은 모양이니, 반드시 법안을 통과시키겠습니다.”
예전이었다면 게이머들이 게임사들 편을 들어줬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인해 오만 정이 다 떨어진 상황. 게이머들은 더욱 열렬하게 법안을 지지했다.
-남궁석 의원 잘한다!
-이번 기회에 아예 확률형 아이템 뿌리를 뽑아야 한다.
-대체 어느 나라 게임이 이런 식으로 돈 빨아 먹냐?
-반드시 법안을 통과시켜야 합니다!
-이번에 통과 못 시키면 답이 없다!
-법안 통과 막는 국회의원들 명단 공개합니다.
* * *
한때 시총 35조 원, 코스피 순위 10위를 자랑하던 LD스튜디오는 연일 폭락을 거듭해 시총이 중견 게임사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다른 대형 게임사들 역시 폭락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주가 80퍼센트가 증발한 건 LD스튜디오가 유일했다.
유저들은 현금 환불을 요구하며 회사 사옥 앞에서 계속 시위를 벌였다.
누군가는 이 사태에 책임을 져야 했다.
그렇다고 사장이 책임질 수는 없는 노릇.
자연스레 화살은 브라더후드 시리즈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박현종 전무에게로 향했다.
진태경은 둘만 있는 자리에서 그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니가 당분간 물러나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박현종은 당황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분위기 보면 알잖아. 난 지금 국회에 끌려가게 생겼어. 일단 책임자가 사퇴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줘야 할 거 아니야?”
두 사람은 원래 학교 선후배 사이.
함께 LD스튜디오를 창업했고, 단칸방에서 시작해 온갖 고생을 해가며 지금의 거대한 회사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나를 쳐내겠다고?’
진태경은 그에게 말했다.
“너도 알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어. 나중에 조용해지면 다시 부를 테니까 그때까지만 참아.”
“······생각 좀 해보겠습니다.”
홀로 남게 된 박현종은 지금의 현실이 잘 믿기지 않았다.
‘대체 왜 이렇게 된 거지?’
불과 보름 전까지만 해도 브라더후드M은 잘 나가고 있었고, 그의 입지는 탄탄했다.
그런데 이제 이용자는 4분의 1로 줄어들었고, 매출은 10분의 1 이하로 떨어졌다. LD스튜디오 주가는 끝없이 폭락해 그의 자산 역시 3조 원가량 줄어들었다.
그가 간담회장에서 한 발언 등은 각종 스트리밍 사이트와 언론 기사로 올라가 비웃음거리가 되는 중이었다.
왜 자신들까지 걸고넘어지냐며 다른 게임사들로부터 항의와 비난도 쇄도했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이 창업하고 평생을 바친 회사에서 쫓겨나게 생겼다.
그는 기업의 생리에 대해 잘 알았다. 한번 밀려나면 그걸로 끝이다. 나중에 다시 돌아온다고 해도 그의 자리는 없을 것이다.
멍하니 앉아있는 그에게 비서가 말했다.
“컨티뉴 캐피탈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뭐?”
박현종은 깜짝 놀랐다.
이 모든 일의 시작은 컨티뉴 캐피탈. 대체 이제 와서 무슨 일로 자신에게 연락을 해온 걸까?
궁금해서라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전화를 받자 젊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박현종 전무님. 컨티뉴 캐피탈의 한미루라고 합니다.]
“하, 한미루?”
‘한정물산 주주총회에서 주철진 부회장을 무너뜨린 장본인인가?’
그는 LD스튜디오의 2인자. 지위가 지위인 만큼 재계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웬만큼 알고 있었고, 한미루의 이름에 대해서도 들어봤다.
‘설마 이놈이 이번 판을 짠 건가?’
[지금쯤이면 분노한 여론을 가라앉히기 위해 책임지고 사퇴하라는 압력을 받고 계시겠네요.]
그 말을 들으니 울컥했다.
“무슨 일로 나한테 전화한 거지?”
[최근 벌어진 일들에 대해 궁금한 게 많으실 겁니다. 적어도 이렇게 된 이유는 알려드리는 게 예의일 것 같아서요.]
“이유?”
공매도로 한몫 챙긴 거 말고 다른 이유가 있다는 건가?
[얼마 전, 압력을 넣어서 직원 하나를 부당해고하셨죠? 강선우라고 기억하세요?]
“가, 강선우?”
당연히 기억한다.
자신의 아들을 꼬드겨 작전주에 투자하게 한 나쁜 놈이니.
때문에 비슷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콕 찍어서 다른 개발팀에 못 가도록 막은 다음 권고사직을 통보했다.
“그게 지금 사태와 무슨 관련이······?”
[아! 걔가 제 친구라서요.]
순간, 이해가 잘되지 않았다.
‘이게 대체 뭔 소리야?’
잠시 후, 박현종은 소리치듯 말했다.
“자, 잠깐! 그것 때문에 이런 일을 벌인 거라고?”
[예. 친구가 열심히 일하던 회사에서 부당해고 당했는데 가만히 있을 수가 있나요?]
“지금 그 말을 믿으라고?”
[믿든 안 믿든 자유입니다. 그럼 전 이만.]
통화가 끝났다.
‘그러니까 이 모든 일들이 고작 직원 하나 해고하는 바람에 벌어진 일이라고? 내가 이런 꼴이 된 것도?’
아들을 작전주에 투자하게 해 나쁜 길로 빠트린 것도 모자라 자신까지 이런 꼴로 만들다니!
박현종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하하하!”
* * *
한국에서 게임사들이 줄줄이 터져 나가는 사이.
우리는 유유히 공매도를 청산했다. 수익은 각종 부대비용을 제하고 약 65퍼센트. 단기 투자한 것치고는 짭짤하게 벌었다.
렌츠 대표는 나에게 말했다.
“덕분에 성공적인 투자를 했습니다.”
“뭘요. 저야말로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엠프티풀 리서치까지 나선 덕분에 주가를 더 빠르고 더 크게 끌어내릴 수 있었다.
우리는 가볍게 악수를 나눴다.
엠프티풀 리서치를 나와 회사로 걸어가는데, 선우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야! 너 회사에 무슨 소리를 한 거야?]
“왜?”
[아니, 갑자기 박현종 전무가 전화 와서 전부 너 때문이니 뭐니 지랄을 해대던데.]
“아아, 그거? 신경 쓰지 마.”
[어떻게 신경을 안 쓰나?]
난 말을 돌렸다.
“게임업계 분위기는 어때?”
[다들 난리도 아니지. 그래도 긍정적인 부분이 없는 건 아니야. 그동안 제대로 만들었지만 빛을 못 보고 있던 게임들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니까. 일부는 아예 모바일 게임을 접고, 확률형 아이템이 없는 콘솔과 패키지 게임으로 눈을 돌리고 있고.]
그동안 모든 게임사들이 과금과 랜덤박스에만 목을 매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인해 그런 게임은 더 이상 안 먹힌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살아남으려면 새로운 게임을 만들어야겠지.
“너도 게임사 차려서 얼른 개발하자.”
[응? 내가?]
“나한테 맨날 말했잖아. 게임사 차려서 만들고 싶은 게임 만드는 게 꿈이라고. 요즘 클라우드 게임이니 VR 게임이니 난리인데, 너도 슬슬 시작해야 하지 않겠어?”
[돈은 어디서 나서?]
“컨티뉴 캐피탈이 우리 건데 뭐가 걱정이야? 아! 그러고 보니 레전드게임즈도 우리가 인수했어.”
선우는 깜짝 놀랐다.
[뭐? 진짜? 써릴 엔진 만들고 레전드스토어 운영하는 그 레전드게임즈?]
“응.”
[그 얘기를 왜 지금 해?]
“지금 생각났어.”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걱정 마. 잘할 거야.”
이게 그냥 하는 말은 아니다.
난 1회차 때를 떠올렸다.
굳이 지금 터지지 않았어도 브라더후드M은 한계를 보이며 매출이 줄고 있었다. 때문에 LD스튜디오는 그동안 번 돈을 새로운 게임 개발에 투자했다.
당시 게임업계 최대 화두는 VR이었다.
아직은 어설픈 수준이지만 몇 년만 지나면 실감 날 정도의 게임 환경 구축이 가능해진다.
선우는 바로 이 VR MMORPG의 디렉터를 맡고 있었다. 하지만 엄청난 개발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브라더후드M 사태로 인해 선우가 잘리며 개발 프로젝트는 중단됐다.
그런데 나중에 LD스튜디오를 인수해간 위챈트가 개발을 이어 나갔고, 출시 이후 엄청난 대박을 터트린다.
“넌 실력 있는 개발자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