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화. LD스튜디오 (9)
며칠 동안 시위가 이어졌다.
시위대의 요구사항은 별거 없었다. 간담회를 열어 조작 사실에 대해 사과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LD스튜디오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기서 물러나면 끝장이라는 듯 시위대를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ㅋㅋㅋ 역시 LD!
-지들이 사기 쳐놓고 ‘너 고소’ 시전.
-사기 치다 걸려서 돈 내놓으라고 시위하니까 오히려 고객을 고소하는 LD 클라쓰~
-미친 새끼들인가?
-저기 모인 사람들 하나하나가 그동안 수십억씩 결제했을 텐데.
-개돼지들이 돈이나 갖다 바칠 것이지 어디서 시위냐는 건가?
사건이 뉴스에 나가고 여론이 더욱 악화되자 LD스튜디오는 변명을 내놓았다.
[LD스튜디오는 1층에 직원들을 위한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시위로 인해 차량의 승하차가 어렵고 등하원시 위협적인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만큼, 아이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경찰에게 도움을 청했을 뿐입니다.]
‘시위대와 기업’이 아닌, ‘시위대와 어린이집’ 구도를 만들어 시위대에 대한 여론을 악화시키고 자진 해산시키려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동안은 이런 식의 선동과 조작이 통했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시위하러 모인 유저들은 어이가 없어서 말했다.
“이야! 누가 보면 우리가 시위대가 아니라 아이들 위협하러 온 깡패인 줄 알겠네!”
“누가 이기나 끝까지 가 보자는 거지?”
“트럭 몇 대 더 불러!”
“한 10대 부르자. 요즘 현질 안 하니 돈이 아주 남아도네.”
논란이 더 커지자 LD스튜디오는 자신들이 직접 고소한 게 아니라는 식으로 슬쩍 말을 바꿨다.
* * *
LD스튜디오는 진퇴양난에 빠져 있었다.
브라더후드M은 이제까지 여러 논란이 있었지만, 매출과 주가에는 별 타격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달랐다.
유저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현재는 일매출이 5억 이하로 떨어졌다. 이는 일평균 매출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당장 이번 분기 매출은 적자가 확실시됐다.
여기에 주가는 80퍼센트가 날아가며 투자자와 주주들의 항의가 쏟아졌다. 이 정도로 폭락했음에도 공매도 열기는 식을 줄을 몰랐다.
연일 회의가 열렸지만, 마땅한 대책은 없었다.
“컨티뉴 캐피탈과 엠프티풀 리서치는 그동안 판매한 모든 랜덤박스 확률을 분석해서 후속 리포트를 내겠다고 합니다.”
“언론사도 포털 사이트도 광고를 받지 않겠다고 합니다. 항의가 너무 심하다고······.”
“정치권 움직임도 심상치 않습니다.”
여론도 언론도 완전히 돌아섰고, 정치권은 확률형 아이템에 대해 규제하겠다고 움직이는 중이다.
확률형 아이템은 LD스튜디오 사업의 근간이나 다름없었다.
만약 정말로 법안이 만들어지기라도 한다면 사업 구조 자체가 통째로 흔들릴 위험이 있다. 때문에 그동안 확률형 아이템 규제 법안만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왔다.
진태경 사장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의도 쪽 연락을 받았는데 빨리 수습하라고 하더군요. 여론이 더 악화되면 다음 청문회 때 출석해야 할 거라고.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
다들 눈치만 보는 가운데 박현종 전무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서버를 롤백하고 환불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정도로 불만이 가라앉을까요?”
“추가 크라운과 RT쿠폰을 지급해 여론을 달래야 합니다.”
그 말에 다들 깜짝 놀랐다.
진태경 사장은 우려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그건 회사의 손실이 너무 큽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이런 식으로 보상해주면 유저들의 결제 태도가 나빠질 우려도 있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어쩔 수 없습니다.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여론을 되돌리는 게 우선입니다.”
많은 크라운과 쿠폰을 보상해주면 향후 그만큼 결제가 줄어들 테고, 회사는 큰 매출 타격을 받게 된다.
박현종 전무는 설득하듯 말했다.
“손실은 추후 새로운 과금 요소를 만들어 복구하면 됩니다. 지금은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그렇게 하면 수습이 될까요?”
“물론입니다. 회사가 이 정도로 희생을 감수하는데 유저들이 이해해주지 않을 리가요. 브라더후드M 유저들은 충성심이 남다릅니다. 그동안의 사소한 일들은 다 잊고 다시 게임을 즐길 겁니다.”
한참을 고민하던 진태경 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간담회를 열어 보상안을 발표하고, 언론에 보도자료 배포하세요.”
* * *
결국 LD스튜디오는 어쩔 수 없이 간담회를 개최했다.
LD스튜디오는 여러 이유를 들어가며 참석 인원을 15명으로 제한했다. 그마저도 처음에는 10명 이상은 안 된다는 걸 우겨서 간신히 15명까지로 합의했다.
워낙 참석 희망자가 많았기에 랭킹 순으로 입장 인원을 정했다.
간담회장에 진태경 사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대신 박현종 전무가 나섰다.
그는 마이크를 잡은 채 고개를 숙였다.
“먼저 확률 표기 부분에 오해가 있었던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유저 대표로 질의에 나선 사람은 백금호였다.
그가 들고 있는 종이에는 유저들의 궁금증과 요구사항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태초 스킬 출시 직후 6분 40초 동안 뽑히지 않도록 회사가 막아놓은 것이 맞습니까?”
박현종 전무는 사실을 부인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변동 확률이라고 해도 절대 회사 측에서 임의로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알고리즘이 자동으로 조정하게 되어있습니다.”
“그 알고리즘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저희가 만들었습니다.”
“······.”
그럼 회사가 조작한 게 맞지 않나?
박현종 전무는 계속해서 말했다.
“변동 확률을 시행하는 건 저희 회사뿐 아니라 국내외 모든 게임사들이 마찬가지입니다. 이용자마다 어떻게 게임을 하는지가 모두 다르므로, 같은 게임이라고 하더라도 해당 게임 내에서 어떤 경험치를 쌓는지, 또는 어떤 진행을 보이는지에 따라 확률형 아이템의 종류별 공급 확률 등은 불가피하게 모두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수십 또는 수백만 명의 이용자들을 상대로 각 유저별 경험치, 진행도에 맞추어 확률형 아이템의 종류별 공급 확률 등을 제공하는 것이므로 운영진이 이를 일일이 건드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
그러니까 최첨단 알고리즘으로 개인별 맞춤 확률을 제공한다는 건가?
그는 ‘확률 조작’이 아닌 ‘변동 확률’이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는 한국게임산업협회의 공식 입장이기도 합니다. 이전에 문체위에 보낸 의견서에 따르면 ‘확률형 아이템의 경우 각 게임마다 확률형 아이템을 운영하는 방식이 천차만별일 뿐만 아니라 변동 확률의 구조를 가지고 있어, 그 확률이 이용자의 게임 진행 상황에 따라 항상 변동되므로 해당 게임의 개발자들도 그 확률의 정확한 수치를 알 수 없는 경우도 있으며, 게임사업자로서는 애당초 특정한 확률형 아이템의 정확한 공급 확률의 산정조차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라고 되어있습니다.”
참고로 한국게임산업협회라는 게임사들이 모여서 만든 협회. 즉, 게임업계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다.
그러니 저런 개도 안 물어갈 의견을 당연하다는 듯이 낼 수 있는 것이다.
간담회가 이어질수록 유저들은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이 게임은 망했다!’
백금호는 화를 참으며 계속해서 물었다.
“그래서 이번 일에 대해 회사의 대책은 어떻게 됩니까?”
박현종 전무는 목소리를 가다듬은 다음 말했다.
“비록 오해로 인해 발생된 사건이지만 저희는 이번 사태를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브라더후드M 전 서버를 태초 스킬 출시 전으로 롤백할 예정입니다.”
롤백(Roll Back)이란 사전적 의미대로 이전 상태로 되돌린다는 의미. 그사이 뽑은 스킬들은 전부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럼 뽑기에 사용한 돈은요?”
“그건 크라운으로 되돌려드리겠습니다.”
그러자 간담회장에 있던 유저들은 항의했다.
“이게 뭔 소리야?”
“아니, 결제는 현금으로 했는데 환불은 왜 크라운인데?”
하지만 이것만큼은 회사 측에서도 절대 물러날 수 없었다.
현금으로 환불하면 700억이 넘는 돈을 회사에서 내줘야 한다. 그런데 엄밀히 따지면 유저들이 결제한 돈이 회사로 다 들어온 것도 아니었다.
브라더후드M은 모바일 게임.
90퍼센트 이상의 유저들은 엔플의 앱스토어와 구블의 플레이마켓을 통해 결제했고,여기서 30퍼센트의 수수료를 떼어갔다.
이를 환불해주기 위해서는 LD스튜디오에서 그 수수료까지 물어줘야 하는 것이다! 그것만 해도 300억이다!
그러나 크라운은 게임 내 재화. 그저 찍어내기만 하면 그만이다. 회사는 당장 한 푼도 손해 보지 않는 것이다.
항의가 쏟아질 거라는 걸 예상하고 있었던 만큼 박현종 전무는 당황하지 않았다.
이어지는 발표를 들으면 분위기가 180도 달라질 테니까.
박현종 전무는 선심 쓰듯 말했다.
“추가 보상으로 태초 스킬 뽑기에 사용한 크라운에 대해서는 1.3배로 보상해드릴 예정입니다.”
다시 말해 1만 크라운을 썼다면, 13000크라운으로 돌려주겠다는 뜻.
유저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퍼져나갔다.
그 모습을 보며 박현종 전무는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제 쐐기를 박을 차례로군.’
그는 선언하듯 말했다.
“또한 최고급 스킬팩을 뽑았던 모든 유저들에게 RT쿠폰 3장을 지급하겠습니다.”
RT쿠폰의 RT란 리트라이(Retry). 명칭에 걸맞게 강화시 부서진 아이템을 복구할 수 있다.
누가 쓰느냐에 따라 수천만 원의 가치가 있는 쿠폰이다.
이런 엄청난 쿠폰을 한 장도 두 장도 아닌, 무려 세 장이나 지급하는 것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눈물을 머금고 뿌리는 보상이었다.
그야말로 브라더후드M 역사상 전무후무한 역대급 통큰 보상!
‘이 정도 보상안이면 다들 감동해서 눈물을 흘리겠지?’
······라는 것은 그의 생각일 뿐.
유저들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시발! 이제 브라더후드M 안 할 거라니까!”
“확률 조작이나 하는 이딴 쓰레기 게임을 누가 하냐?”
“현거래 시세가 5분의 1로 폭락한 판에 어디서 크라운 같은 소리를 하고 있어?”
“니는 시발! 우리가 아직도 개돼지로 보이냐?”
“현금으로 돌려달라고!”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에 박현종 전무는 당황했다.
“약관에 나와 있듯 현금 환불은 절대 불가능합니다. 계정을 만들 때 다들 약관에 동의하지 않았습니까? 이제 와서 이러면 곤란합니다.”
“뭔 약관 같은 소리하고 있어?”
“약관에 확률 조작한다는 얘기는 왜 안 적었는데?”
간담회장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브저씨로 불리는 브라더후드M의 고인물들. 적게는 수천만 원, 많게는 백억 원을 넘게 결제한 사람들이다.
개중에는 백금호처럼 전 재산을 털어 넣은 것도 모자라 빚까지 지고 있는 이들도 한둘이 아니다.
그들 모두가 사실상 이 게임에 인생을 갈아 넣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분명 결제할 때는 현금이었고, 남아있는 빚도 현금이다. 그런데 어찌된 게 돌려받는 건 크라운이다.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일인가?
“은행 대출을 크라운으로 갚으라는 거냐?”
“사채업자가 크라운 받고 잘도 돌아가겠다!”
“현금 달라고, 새끼야!”
“카드 결제한 거 당장 취소해!”
“난 나오지도 않는 거 뽑는다고 집까지 날렸어!”
돈이 아닌 크라운으로 돌려주겠다는 얘기는 분노한 유저들에게 기름을 끼얹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박현종 전무는 마이크에 대고 소리쳤다.
“여러분! 진정하세요! RT쿠폰 두 장씩 더 드릴 테니······.”
“아, 시발! 쿠폰 됐다고!”
“뭔 개소리를 당당하게 하고 있어?”
“야! 저 새끼 붙잡아!”
놀란 박현종 전무는 경호원들에게 소리쳤다.
“막아! 전부 끌어내!”
박현종 전무와 홍낙현 디렉터, 직원들은 재빨리 도망쳤고, 경호업체 직원들은 참석자들 앞을 막아섰다.
백금호는 경호원들에게 몸이 붙들린 채 온 힘을 다해 소리쳤다.
“야! 이 사기꾼 새끼들아! 니들 월급도 크라운으로 받아라, 개새끼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