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화. LD스튜디오 (7)
처음 컨티뉴 캐피탈이 확률 조작 의혹 제기를 했을 때만 해도 백금호는 믿지 않았다.
설마 LD스튜디오가 유저를 대상으로 조작을 하고 사기를 쳤을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엠프티풀 리서치의 리포트가 공개되자 믿지 않을 수 없었다.
3333조 분의 1이라니!
그제야 그는 깨달았다.
어째서 그렇게 열심히 뽑기 버튼을 눌렀는데도 6분 넘도록 나오지 않다가 그 뒤로 우수수 뽑혔는지.
그리고 태초 스킬 여섯 개를 누가 가져갔는지.
그건 다름 아닌 트로키 서버에서 실험을 진행한 엠프티풀 리서치다.
이제 대회전은 모두의 관심 밖이었다.
TK 길드고, 다크 길드고, 드래곤 길드고 모두가 피해자인 상황에서 대회전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하지만 그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백금호 방송을 켜고 말했다.
“사람이든 기업이든 실수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실수 한 번 안 하고 사시나요? 진심으로 사과하고 배상하면 용서해줄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LD스튜디오에서도 대책을 세우고 있을 겁니다. 지금은 욕과 비난보다는 일단 LD스튜디오의 공식 발표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댓글창 반응은 별로 좋지 않았다.
-플타 형 아직 대가리가 덜 깨졌네!
-게임 중독으로 뇌가 망가졌나 봄.
-뭔 사기당한 놈이 사기꾼 걱정을 해주고 앉았어? 병 형신이야?
-이 새끼 스톡홀름 증후군인가?
-플타야! 플타야! 니가 그동안 뽑기한 영상들 한번 분석해봐라. 그동안 이 새끼들이 얼마나 주작질을 해댔는지.
-대가리 깨지고 난 뒤에도 똑같은 말 하는지 지켜봅시다~
* * *
컨티뉴 캐피탈은 최근 가장 뜨고 있는 사모펀드.
특히 한국인이라면 모를 수가 없다. 10대 그룹 중 하나인 한정그룹을 무너뜨린 장본인이니까.
그리고 엠프티풀 리서치는 찍은 기업마다 상장 폐지시키기로 유명한 행동주의 헤지펀드.
이 두 펀드가 손을 잡고 두드려 패자 LD스튜디오 주가는 연일 폭락했다.
회사에는 연일 유저와 주주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LD스튜디오에서는 긴급회의가 열렸다.
“여론 반응이 심상치 않습니다.”
“게시판에 확률 조작에 대한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청와대에 청원까지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평소였다면 적당히 떠들어대다가 지칠 때까지 기다렸을 것이다.
모닥불은 적당히 타고 나면 알아서 꺼지게 되어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산불이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화마가 집을 통째로 삼켜버릴 것이다.
진태경 사장은 속으로 혀를 찼다.
‘대체 왜 우리 회사를 노리는 거지?’
금융시장에서 사모펀드의 힘은 무시 못 할 정도로 커졌다.
하지만 LD스튜디오는 재벌그룹도 아니고, 그저 게임회사에 불과하다. 또한 창업자들 지분이 워낙 탄탄하기에 경영권 공격을 받을 일도 없었다.
때문에 한정그룹 사태를 보면서도 그저 남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확률 조작 문제로 공격당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다.
‘이 정도로 치밀하게 준비했을 줄이야.’
대체 어떤 미친놈들이 확률 조작을 밝혀내겠다고 100억을 넘게 지르겠는가?
게다가 출시 직후 5분가량은 절대 안 나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 그 타이밍에 맞춰 실험을 진행했다.
사실 이전에도 비슷한 일이 여러 차례 있었기 때문에, 이 타이밍을 노린 것은 그리 신기한 일은 아니었다.
또 어떤 증거를 가지고 있고, 어떤 식의 공격을 할지 모른다. 상대가 무슨 패를 들고 있는지 모르니 대응 수위를 정하기가 마땅치 않았다.
자리에 모인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차라리 처음부터 확률 조작을 인정했어야 했는데!’
의혹이 터지자마자 ‘표기에 실수가 있었다’라는 식으로 대충 변명하고 보상을 뿌렸다면, 어느 정도 타격이 있더라도 금방 수습됐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확률 조작은 절대 없었다고 공표해버렸다. 그로 인해 대충 적어놓은 숫자는 어느새 회사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확률이 돼버렸다.
진태경 사장이 물었다.
“우리가 인정하면 어떻게 됩니까?”
브라더후드M 홍낙현 디렉터가 말했다.
“모든 서버를 태초 스킬 뽑기 이전으로 롤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결제한 스킬팩은 전부 환불 처리해야 합니다.”
이미 먹은 돈을 다시 뱉어내려니 속이 좀 쓰리긴 해도 이 정도는 감당할 수 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다른 랜덤박스에서도 계속 확률 조작 문제가 불거지고 있습니다. 수천 명이 유저들의 그동안 뽑기내역을 달라고 요청하고 있고, 스트리머들은 뽑기를 진행한 생방송 영상을 다시 올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LD스튜디오는 게임 홍보를 위해 스트리머들을 지원해왔다.
브라더후드M 뽑기 방송에 쓰라고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을 광고비로 주는 방식이었다. 스트리머들은 이렇게 받은 돈으로 뽑기 콘텐츠로 방송해 시청자들 역시 뽑기를 하도록 유도했다.
어차피 수수료를 제하고 다시 회사로 돈이 환수되는 만큼, 회사 측에서도 큰 부담이 없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해서 만든 영상들이 이제는 확률 조작의 근거로 쓰이고 있었다.
진태경 사장은 박현종 전무를 보며 물었다.
“전무님 생각은 어떤가요?”
그는 브라더후드 시리즈를 총괄하는 위치였다.
처음 언론 대응도 그가 지시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조작을 인정해서는 안 됩니다.”
유저들이 집단소송을 한다면?
이전의 기록들을 전부 공개하라고 요구한다면?
“한 번 로그 기록을 공개하면, 그 이전의 기록들도 공개하라고 요구할 겁니다. 최악의 경우 이제까지 판매한 확률형 아이템 관련해 거슬러 올라가 변제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런 상황이 실제로 벌어지면, 회사가 망할 수도 있다.
한번 부인한 이상 지금은 끝까지 버티는 것밖에는 답이 없다.
“게임이 망하는 것은 유저들도 원치 않을 것입니다. 그동안 투자한 돈과 시간이 있으니까요.”
지금 가장 크게 분노하는 이들은 당연히 가장 많은 돈을 쓴 사람들. 게임이 망한다면 그들 역시 큰 피해를 입게 된다.
“어차피 여론은 금방 가라앉게 되어있습니다. 더 많이 분노한 사람일수록 더 빨리 지치기 마련이죠. 수습을 하더라도 그때 가서 하는 게 좋습니다.”
그 말에 모두가 공감했다.
실제로 LD스튜디오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이제까지 그런 방식으로 대응해왔고 그 방식은 잘 먹혔다.
진태경 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는 게 좋겠네요. 쓸데없는 얘기 흘러나가지 않게 내부 단속 잘하세요.”
* * *
컨티뉴 캐피탈이 확률 조작 의혹을 처음 제기했을 때, LD스튜디오는 근거 없는 루머라고 적극 반박했다.
그런데 막상 엠프티풀 리서치가 근거를 제시하자, 이번에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여전히 회사가 확률을 조작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 하지만 이 정도면 확률 조작이 없었다고 믿는 사람이 바보다.
확률 조작이 확실시되자 LD스튜디오 주가는 수직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이제 주가는 60만 원으로 고점 대비 거의 반토막이었다.
문제는 주가 하락만이 아니었다.
브라더후드M의 이미지는 바닥까지 추락했고, 이는 이용자 수 감소로 나타났다.
이전까지만 해도 브저씨라고 하면 ‘건물주’, ‘금수저’, ‘부자’, ‘돈 많은 백수’의 이미지였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터진 이후에는 ‘호구’, ‘등신,’ ‘병신’, ‘LD의 노예’ 등으로 이미지가 바뀌었다.
어디 가서 부끄러워서 브라더후드M 한다는 얘기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렇다 보니 일반 유저나 소과금 유저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서버의 대기열이 사라진 것은 물론이고, 유저 감소로 인해 아이템 가치가 폭락했다.
엄청난 돈을 들여가며 아이템을 뽑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브라더후드M은 아이템 가치가 잘 보전되기로 유명했다.
1억을 들여 뽑은 아이템은 그래도 2~3천의 가치는 있고, 100억을 써서 키운 캐릭터는 그래도 2~30억의 가치는 있다.
그런데 직전까지 1억 원을 호가하던 용살검은 이제 3천에도 사는 사람이 없었다.
그동안 큰돈 들여 뽑은 아이템과 큰돈 들여 키운 캐릭터가 똥값이 되자 유저들은 또다시 분노했다.
하지만 여전히 LD스튜디오는 침묵을 지켰다.
마치 이대로 상황이 지나가기만을 바라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그건 그들의 바람일 뿐이었다.
[(WST 단독) 컨티뉴 캐피탈, LD스튜디오가 확률 조작이 없었다는 로그 기록 공개시 시총에 해당하는 금액을 배상하겠다고 선언]
(전략) LD스튜디오는 ‘로그 기록은 기업의 영업비밀이다. 이를 공개하면 기업의 핵심 이익이 침해되고, 고객과 주주의 피해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록허트 대표는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확률은 이미 공개되어있고, LD스튜디오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여러 차례 얘기했다. 이미 공개된 확률이 맞다는 걸 입증하는 행위가 어째서 기업의 영업비밀이고, 어떻게 고객과 주주의 피해로 연결된다는 건지 납득가지 않는다.’
또한 공개서한을 보내 한국의 금융감독원과 증권거래소에도 행동을 촉구했다.
‘한국 금감원은 공매도의 불법행위를 밝히기 위해 당사에 여러 차례 자료 제출을 요구해왔다. 이 불법행위의 핵심은 결국 실제 확률 조작이 있었느냐 없었느냐고,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바로 로그 기록 공개다. 만약 LD스튜디오가 확률 조작이 없었다는 로그 기록만 공개한다면 LD스튜디오에게 시총에 해당하는 만큼의 돈을 배상금으로 지불하겠다.’
주가가 폭락한 현재도 LD스튜디오의 시총은 18조 원.
컨티뉴 캐피탈은 자신들의 주장이 맞다는 것에 18조 원을 배팅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응? 확률 조작이 없었다는 기록만 제시하면 시총만큼 배상한다고?
-작년 영업이익이 9천억 원인데, 그럼 20년치 영업이익을 한 번에 준다는 거야?
-와씨! 완전 1+1 아니냐?
-아니, 어차피 지금 주가 반토막 나서 그만큼 줘도 본전임 ㅜㅜ
-그러니까 더더욱 그거라도 받아야 할 거 아니야?
-얼른 로그 기록 공개하고 18조 받자.
-문제가 없었다는 걸 공개하기만 하면 18조 원 받는 건데, 공개 못 할 이유가 없지 않나?
-그럼그럼. 이거 안 하면 경영진 배임 행위임.
-주주들 모여서 공개 청원 갑시다! 임시주총이라도 열어서 공개하자고 합시다!
-ㅋㅋㅋ 공개하겠냐? 지금까지 공개 못 한 거 보니 100퍼 확률 조작이구만.
-흑우들아! 아직도 정신 못 차렸냐?
단지 확률 조작이 없었다는 로그 기록을 공개하는 것만으로 더 이상의 주가 하락을 막고, 18조 원을 벌 수 있다.
이쯤 되면 로그 기록을 공개하지 않는 게 이상하다.
그럼에도 LD스튜디오는 공개 여부에 대해 답변을 하지 않았다.
이유가 뭘까?
굳이 말할 것도 없이, 모두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야! 니들 조작했지?
-ㅋㅋㅋ 이 새끼들 주작질했네.
-주작? 주자아아아아악?
-야, 이 새끼들아! 주작 없었다며!
-내 돈 물어내, ㅅㅂ놈들아!
-진태경 이름 외치면 잘 뜬다고 하더니! 그냥 니들 멋대로 뽑게 해준 거였냐?
사태가 커져도 너무 커졌다.
115만 원이던 주가는 계속 폭락해 이제 20만 원까지 내려갔다. 며칠 만에 6년 전 주가로 되돌아간 것이다.
청와대 청원은 20만 명을 돌파했고, 이제는 정부가 공식적인 답변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들끓는 여론에 정치인들도 이 문제를 언급하기 시작했고, 국회에서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결국 LD스튜디오는 확률을 공개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등 떠밀리듯 입장을 발표했다.
[확률 표기에 있어서 일부 오해가 있었던 점에 대해 유저들에게 사과드립니다.
다만 일각에서 제기하는 확률 조작은 억측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말씀드립니다. 브라더후드M의 랜덤박스는 고정 확률이 아닌 변동 확률을 택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논란이 된 최고급 스킬팩에서 태초 스킬이 나올 확률은 1.25퍼센트입니다.
하지만 서버 내 다양한 상황과 시기, 게임의 진행도에 따라 확률은 일시적으로 낮아질 수도 있고, 높아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최종적으로 1.25퍼센트가 되는 구조인 만큼, 평균 확률이 1.25퍼센트인 것은 맞습니다.
다만 이러한 부분을 제대로 표기하지 못해 고객님들의 오해를 사게 한 만큼, 이에 대한 대책과 보상을 논의 중에 있습니다.
앞으로도 브라더후드M에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이 공지를 본 브라더후드M 유저들은 해석을 위해 한참을 고민해야 했다
‘이게 대체 뭔 소리지?’
‘혹시 확률이라는 개념을 나만 잘못 이해하고 있는 건가?’
‘확률이 고정된 게 아니라 수시로 변동된다고?’
‘그러니까 내가 뽑을 때 확률이 1퍼센트고, 남이 뽑을 때 확률이 9퍼센트면, 최종 확률은 5퍼센트인 건가?’
‘아아, 그렇구나! 태초 스킬 출시 직후에는 확률을 0퍼센트로 해놨다가 나중에 아무도 안 뽑을 때 2.5퍼센트로 해놓으면 1.25퍼센트가 되는 거였구나! 이런이런~ 그걸 모르고 욕했다니.’
‘내가 아주 큰 오해를 할 뻔했어!’
몇 번에 걸쳐 LD스튜디오의 입장문을 읽어본 백금호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이 씨발 놈들아! 이게 확률 조작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