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화. LD스튜디오 (5)
브라더후드M.
한국 게임 중에서······ 아니, 한국의 모든 콘텐츠를 통틀어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게임이다.
작년 한 해 매출은 무려 2조 5천억 원.
전 세계 게임을 통틀어 봐도 이와 비슷한 매출을 올린 게임은 열 개도 되지 않았다.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다른 게임들이 전 세계 시장에 폭넓게 서비스하는 반면, 브라더후드M은 한국 매출 비중이 97퍼센트에 달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한국 유저만을 대상으로 이 정도 돈을 버는 셈이다.
매출이 크게 늘며 1년 사이 LD스튜디오의 주가는 두 배가 올라 100만 원을 돌파했다.
중간에 새로 내놓은 PC 게임에서 운영진이 아이템을 복사에 판매한 사건이 발생했지만, 주가에는 별다른 타격이 없었다.
어차피 매출 대부분은 브라더후드M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진태경 사장은 블러드앤매직M을 출시하고, 브라더후드M의 해외 서버를 확장하겠다고 밝혔다.
증권가에서는 앞다퉈서 LD스튜디오의 목표가를 올려 잡았다.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목표가로 200만 원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런데 갑자기 외국계 증권사를 통해 대량의 공매도가 쏟아졌다.
하루 거래대금만 3500억 원. 이는 이전과 비교하면 10배 이상 늘어난 수치로 코스피와 코스닥을 통틀어 1위고, 2위와 비교해도 세 배 이상 많았다.
별다른 악재가 없는 상황에서 이 정도 공매도가 쏟아지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대체 어디서 이렇게 파는 거지?”
“이유가 뭐야?”
“혹시 모를 악재가 있나?”
투자자들은 혹시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악재가 있는지 살펴봤지만, 아무 이상 없었다. 오히려 브라더후드M 업데이트로 인해 이번 분기에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공매도가 쏟아지며 소폭 하락하긴 했지만, 매수세가 워낙 탄탄했기에 주가는 여전히 100만 원 선을 굳건하게 지켰다.
* * *
드디어 태초 스킬의 출시 날이 밝았다.
출시 시간은 일요일 오후 3시.
브러더후드M 유저들은 게임에 접속하거나 방송을 지켜보았다.
시곗바늘이 3시를 가리킨 순간,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미칠 듯한 뽑기를 시작했다.스트리머들은 카프리아TV, 투위치, 에이튜브 등을 통해 그 모습을 생중계했다.
스트리머들은 온 힘을 다해 소리치며 뽑기를 눌렀다.
“태경이 형!”
“부탁해, 태경이 형!”
“태경이 형 제발 한 번만!”
“좀 도와줘, 태경이 형!”
“태경이 형 사랑해!”
“태경이 혀어어엉!”
사방에서 ‘태경이 형’을 찾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기서 ‘태경이 형’이란 LD스튜디오 사장 진태경을 가리켰다.
브라더후드M에는 뽑기를 할 때 ‘태경이 형’을 외치면 확률이 높아진다는 속설이 있다.
처음에는 그냥 속설에 불과했지만, 스마트폰의 마이크가 음성을 인식해 확률을 상향 조정해준다는 그럴듯한 소문이 퍼지면서, 랜덤박스를 뽑을 때 ‘태경이 형’을 외치는 것은 어느새 국룰(?)이 됐다.
확률이 0.0001퍼센트라도 높아진다면 뭘 못 하겠는가?
이렇다 보니 너도나도 목 놓아서 ‘태경이 형’을 애타게 불러댔다. 하지만 나오는 것은 쓸데없는 스킬들뿐.
백금호 역시 3시 땡 치기가 무섭게 뽑기를 시작했다.
“오늘 반드시 태초 스킬 뽑겠습니다. 모두들 나에게 힘을 줘!”
태초 스킬을 뽑을 수 있는 최상급 스킬팩의 확률은 1.25퍼센트.
이론적으로는 80번을 뽑으면 한 번 나와야 한다.
최상급 스킬팩을 한 번 여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약 250만 원. 그가 준비한 금액이면 대략 200번을 뽑을 수 있다.
이 정도면 아무리 재수가 없어도 못 뽑을 수가 없다.
“태경이 혀엉!”
시청자들의 응원 댓글을 보며 그는 뽑기 버튼을 눌렀다.
10번 시도 만에 신화 스킬이 연달아 떴다. 이미 가지고 있는 스킬이니 만큼 큰 의미는 없었지만, 어쨌거나 좋은 징조였다.
-우와! 신화 스킬 연속 두 번 떴네!
-플타 형 오늘 기합 제대로 들어갔네~
-오늘 왠지 느낌 좋다~ 묻고 더블로 가!
-태초 스킬 가즈아!
-슬슬 뜰 것 같다.
-흐름이 오고 있어, 플타 형!
-스킬팩 하나 까는 데 250만 원 ㄷㄷㄷ
-ㅅㅂ 저 스킬팩이 하나가 내 월급이네.
-플타 형 건물주라는 게 사실임?
-재벌가의 숨겨진 자식 뭐 그런 건 아니지?
백금호는 계속해서 뽑기 버튼을 눌렀다.
박스 안에서 각종 스킬들이 쏟아졌지만, 원하는 태초 스킬은 나오지 않았다.
그는 아래의 숫자를 보았다. 여전히 태초 스킬의 숫자는 ‘0/12’였다. 이는 서버 내에 누구도 뽑지 못했다는 뜻.
‘아직 한 명도 안 떴어.’
그렇다는 건 그만 실패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 정도로 꽝이 나왔다면, 이제는 진짜 뜨지 않을까?’
그러나 그건 도박을 하는 사람들의 착각일 뿐.
도박사의 오류라는 말이 있다.
도박하는 사람들은 앞의 결과가 이후의 판에 영향을 끼칠 거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계속 동전 앞면이 나왔으니 이번에는 뒷면이 나올 차례라는 식이다. 하지만 너무 당연하게도 동전의 뒷면이 나올 확률은 여전히 2분의 1이다.
이제까지 얼마나 많은 꽝이 나왔든 이번 뽑기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확률은 여전히 1.25퍼센트였다.
그러는 사이 크라운은 점점 줄어들었다.
이 정도로 돈을 썼는데 만약 태초 스킬을 못 뽑으면 어떻게 될까?
그걸 뽑은 캐릭터들이 강해지는 동안 자신의 캐릭터는 뒤처지게 될 것이다. 그럼 시청자도 떨어져나가고 후원도 줄어들게 된다.
어느 순간부터 눈앞이 캄캄해지기 시작했다. 버튼을 누르는 손이 덜덜 떨렸다. 아니, 온몸이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쏟아부은 돈을 생각하면 여기서 멈출 수도 없었다.
‘제발! 제발! 이번 한 번만!’
그는 애써 웃음을 지었다.
“이, 이번에는 진짜 나올 겁니다. 태경이 형 가즈아!”
그러나 꽝이었다.
다음번도 꽝이었다.
그 다음번도 꽝이었다.
계속 꽝이었다.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계속 뽑기 버튼을 누르던 백금호는 어느새 손을 멈췄다. 더 이상 화면을 터치해도 뽑기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려 5억 원이나 충천해놨던 크라운은 어느새 바닥나 있었다.
태초 스킬은 나오지 않았다.
-왜 더 안 뽑아?
-크라운 떨어진 거 안 보이냐?
-이야! 대충 5억 지른 것 같은데 하나를 못 뽑았네.
-스킬 하나에 5억을 태워???
-말은 바로 해야지. 스킬을 못 뽑았는데 뭔 스킬 하나에 5억을 태움? 그냥 5억을 태운 거지~
-ㅋㅋㅋ 이 새끼 팩폭 오지네.
-태초 스킬 뽑으면 달풍선 10만 개 쏴주려고 했는데^^
-대신 신화, 전설, 영웅 스킬들 잔뜩 뽑았잖아.
-어차피 팔지도 못하는 거 어따 씀?
-돈 주고 쓰레기 샀네 ㅎㅎ
-뭐야? 벌써 끝이야?
-개실망~ 뽑을 때까지 질러야지 중간에 멈추면 뭐 하자는 거?
-똥 싸다 만 느낌인데.
-형~ 반드시 뽑는다며? 장기라도 팔아서 계속 뽑아봐.
-한 번만 더 하면 진짜 나올 것 같은데. 아쉽~
-플타도 맛 갔네. 에잇! 퉤퉤!!
-어! 방금 루시펄이 태초 스킬 뽑았다!!!
-지금 방방 뛰고 소리 지르고 난리남!
-나도 그 방 가봐야겠다.
-형 수고했어~
-2만~
더 이상 스킬을 뽑지 않자 시청자들은 순식간에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기대했던 후원은 터지지 않았다.
백금호는 멍하니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내, 내가 대체 뭔 짓을 한 거지?’
자신이 한 행동이 믿기지가 않았다.
5억 원을 전부 쓰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6분 40초.
누군가는 평생 일해 모아야 할 돈을 그 짧은 시간에 날린 것이다!
시간을 10분 전으로 돌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처음부터 다시 뽑기를 할 수 있을 텐데.
한참 동안 영혼이 나간 사람처럼 앉아있던 백금호는 벌떡 일어나 마치 미친 사람처럼 집 안의 물건을 부수며 난동을 피우기 시작했다.
“으아아! 진태경 이 개새끼야!!”
* * *
태초 스킬을 뽑기 위해 미친 듯이 버튼을 누르고 있던 건 모두가 마찬가지.
하지만 여전히 태초 스킬은 누구에게도 뜨지 않았다.
“5분 동안 하나가 안 나온다고?”
“수백억은 썼을 텐데.”
“대체 왜 안 나오는 거지?”
“뭔가 좀 이상한데.”
“왜 이렇게 안 뽑혀?”
“상식적으로 이 정도 뽑았으면 한 번은 나와야 하지 않나?”
“다른 사람들도 아직 안 나왔어?”
모두가 이상함을 느끼는 그 순간.
갑자기 알림이 뜨기 시작했다.
[태초 스킬을 뽑았습니다.]
[태초 스킬을 뽑았습니다.]
[태초 스킬을······.]
태초 스킬이 줄줄이 뽑히며 숫자가 올라갔다.
그렇게 9분 만에 트로키 서버 태초 스킬 12개가 모두 뽑혔다.
스킬을 뽑은 이들은 환호했고, 못 뽑은 이들은 절망했다.
TK길드 길드장 브랑우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거나 하나 뽑긴 뽑았네.’
그는 길드 단톡방에 물어보았다.
[나 말고 또 누가 태초 스킬 뽑았어?]
모두가 달려들어 그렇게 현질을 했는데, 그가 뽑은 것을 포함해 TK길드원이 뽑은 것은 3개뿐.
‘그렇다는 건 나머지 9개는 다른 길드에서 확보했다는 뜻인가?’
그는 재빨리 상황을 알아보았다.
매번 전쟁을 벌이는 만큼 상대 길드에 스파이 몇 명 정도는 심어놓았다. 때문에 바로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다크 길드가 두 개, 드래곤 길드는 하나밖에 확보 못 했다는데요.”
길드원의 보고를 받은 그는 깜짝 놀랐다.
“뭐!? 그럼 나머지 여섯 개는 어디로 갔어?”
“그, 글쎄요.”
놀라기는 다른 길드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TK길드가 3개밖에 못 가져갔다고?”
“아니, 쟤들도 아니고 우리도 아니면, 누가 여섯 개나 되는 태초 스킬을 쓸어간 건데?”
“뭐가 어떻게 된 거야?”
* * *
[LD스튜디오 흥행 대박. 태초 스킬 출시 15분 만에 전 서버 매진]
[브라더후드M 하루 매출 700억 원]
[사상 최대 일매출!]
[이제까지 어느 게임도 이루지 못한 쾌거!]
[KD증권, LD스튜디오 목표가 250만 원으로 상향]
태초 스킬 업데이트는 그야말로 흥행 대박이었다.
이는 공중파 뉴스에도 나올 정도였다.
월요일이 되자 LD스튜디오 주가는 하루 만에 10퍼센트가 뛰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랜덤박스형 아이템 출시로 얻은 성과인 만큼 반응이 좋지만은 않았다.
-신화 스킬이 끝인 줄 알았는데, 태초 스킬 ㅅㅂ
-랭커들이 태초 스킬 다 장착하고 나면, 창세 스킬 같은 거 나오지 않을까?
-ㅋㅋㅋ LD는 그러고도 남을 놈들임.
-저거 사주는 놈들이 문제 아님? 안 사주면 안 낼 거 아니야?
-돈만 벌면 뭐든 해도 된다는 기업이 문제지. 이럴 거면 아예 카지노를 차리지.
-백날 욕하면 뭐 하냐? 하루 매출이 700억이 나오는 판에.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지 않냐?
-6분 넘도록 한 개도 안 뽑히던 게 3분 만에 다 뽑힌다는 게 말이 돼? 이거 사기 아니야?
-맞아.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지?
-확률 조작 아닐까?
-지난번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존나 수상하다~
-플타가 200번을 넘게 뽑았는데 하나가 안 떴음. 미쳐서 집 안 다 때려부수더라 ㅎㅎ
-조작무새들 또 등판했냐?
-이 ㅂㅅ들은 지가 못 뽑았으면 무조건 조작이래.
-지가 똥손이라 못 뽑은 걸 누굴 탓하나?
일부 유저들이 확률 조작 문제를 제기했지만, 이제까지 비슷한 일이 한두 번 있었던 게 아닌 만큼 대충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월스트리트 타임즈를 통해 기사 하나가 공개되며 상황이 반전됐다.
[(WST 단독) 컨티뉴 캐피탈, 한국 게임회사 LD스튜디오 브라더후드M 랜덤박스형 아이템 확률 조작 가능성 제기]
(전략) 록허트 대표는 ‘우리는 LD스튜디오가 최대한의 매출을 올리기 위해 랜덤박스형 아이템에 대해 지속적으로 확률 조작을 해온 정황을 포착했다. 확률 조작은 사기나 다름없는 중대한 범죄행위다. LD스튜디오는 지금이라도 확률 조작을 중단하고 소비자들에게 배상해야 할 것이다. 향후 주가가 폭락할 가능성이 큰 만큼 투자자들의 주의를 당부한다. 우리는 이미 공매도에 나섰다’라고 밝혔다.
컨티뉴 캐피탈이 어떤 곳인가?
리포트 하나로 토머스 모터스를 무너뜨린 곳이다. 그 뒤로도 한정그룹을 무너뜨리고, 블랙우드 호텔 랜섬웨어 사태를 해결하는 등 각종 유명세를 떨쳤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확률 조작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기사가 나간 뒤, 115만 원까지 올랐던 LD스튜디오 주가는 순식간에 15퍼센트가 하락하며 100만 원 선이 깨졌다.
브라더후드M 게시판에는 분노한 유저들의 글이 줄줄이 올라왔다.
-확률 조작이 진짜야?
-야! 이 개새끼들아!!!
-내 돈 돌려줘!
-당장 물어내라!
-어쩐지 안 나온다 했어!
-당장 내 돈 물어내!
-이딴 쓰레기 게임 당장 때려치운다!
-어이! LD양반. 갈 땐 가더라도 내 돈은 물어내야지~
-돈은 됐고 태초 스킬 하나 낭낭하게 넣어주면 안 되나요?
-안 그래도 캐릭터 키우느라 힘든데 맘이 퐈악 상해부렀스 ㅠㅠ
주가가 폭락하고 유저들이 분노하자 LD스튜디오는 대응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