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LD스튜디오 (4)
난 동호 선배가 만든 LD스튜디오, 그중에서도 브라더후드M에 대한 분석 자료를 내밀었다.
렌츠 대표는 그걸 찬찬히 살펴보았다.
“하나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뭔가요?”
“캐릭터는 자동으로 사냥하고, 돈을 써야 강해질 수 있는데, 그것조차 확률에 기대고, 그 확률조차 조작이 의심되는 게임이라면······ 대체 이런 게임을 왜 하는 겁니까?”
“그야 재밌으니까 하겠죠.”
이러니저러니 해도 브라더후드M은 재밌다.
PC MMORPG 시절부터 만들어놓은 장대한 서사가 있고, 게임을 운영하는 능력도 탁월했다.
그 재미라는 게 게임이라기보다는 도박에 가깝다는 게 문제지만.
사실 P2W든 랜덤박스든 운영방식이 마음에 안 들면 안 하면 그만이다. 누가 강제로 시킨 것도 아니고.
하지만 그건 마치 도시 한복판에 카지노랑 경마장 만들어놓고 ‘도박이 싫으면 안 하면 되는 거 아니냐’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확률 조작이 있다고 해도 이걸 어떻게 밝혀낼 생각입니까? 회사는 절대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을 텐데요.”
확률 조작에 대한 얘기가 나온 지 오래됐지만, 실제로 밝혀진 적은 없다. 이는 그만큼 적발이 힘들기 때문.
“엠프티풀 리서치가 라오후 커피의 회계 부정을 밝혀낼 때처럼 하면 되지 않을까요?”
“무슨 뜻입니까?”
“확률은 평균에 수렴하기 마련입니다. 일시적으로 벗어날 수 있어도 결국 평균으로 돌아오게 되어있죠. 그런데 여기서 크게 벗어난다면요?”
어떤 아이템이 나올 확률이 1퍼센트라고 했을 때 이론적으로 100번 뽑으면 한 번은 나와야 한다. 하지만 매번 확률이 독립 적용되는 만큼 실제로는 1000번을 뽑아도 안 나올 수 있다.
그런데······.
만약 1만 번, 10만 번을 뽑아도 안 나온다면 어떨까?
렌츠 대표는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 뽑아보자는 얘기군요.”
“마침 좋은 타이밍입니다. 새로운 스킬이 출시될 예정이니까요.”
카지노의 수익 대부분은 일반 고객이 아닌 VIP 고객에게 나온다. 그래서 카지노들은 항공권과 숙박비를 내주는 것은 물론 접대까지 해가며 VIP 고객을 모시기 위해 노력한다.
브러더후드M의 매출 구조 역시 게임보다는 카지노와 흡사했다. 다시 말해 소수의 핵과금러들에게 크게 의존하고 있다.
P2W 게임은 돈을 쓸수록 캐릭터가 강해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상한선에 도달하는 유저가 많아지기 마련.
만약 핵과금러들이 모든 직업, 무기, 아이템, 스킬 등을 맞춰서 더 이상 과금할 게 없어지면 어떻게 될까?
걱정할 것 없다.
그때는 상위 직업, 상위 무기, 상위 아이템, 상위 스킬을 추가해 또 새롭게 과금을 시키면 되니까.
하지만 잘못하면 게임 내 밸런스가 붕괴되거나, 아예 과금을 포기해버리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때문에 고도의 운영 능력이 필요한 거고.
PC MMORPG 시절부터 이걸 가장 잘한 게 LD스튜디오다. 괜히 출시 직후부터 지금까지 한국 게임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아니지.
난 생각하고 있는 계획을 말해주었다.
“같이 하시겠습니까?”
렌츠 대표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저희 회사는 즉흥적으로 투자를 하지 않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신중하게 철저하게 조사한 다음 투자를 할지 말지 결정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엠프티풀 리서치의 리포트는 기본 수백 장이다. 지난번 라오후 커피 리포트는 700장에, 녹화한 영상만 1만 시간 분량이었다.
그는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얘기를 들어보니 흥미가 생기는군요. 하루만 알아보고 답변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 * *
브저씨.
직역하자면 ‘브라더후드 게임을 하는 아저씨’라는 뜻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브라더후드M에 엄청난 돈을 과금하는 유저를 일컫는 단어가 됐다.
이 과금 수준은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했다.
상위 30명의 랭커는 100억 원 이상, 상위 5명의 랭커는 최소 300억 이상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상위 랭커들은 건물주나, 금수저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백금호.
그는 브라더후드M의 상위 50명 랭커 중 한 명이자 카프리아TV의 유명 BJ였다.
학창시절부터 브라더후드에 빠져있던 그는 브라더후드M이 나오자 재빨리 갈아탔고,지금은 이를 주요 콘텐츠로 삼아 방송까지 하고 있었다.
아이디는 자신의 이름을 딴 ‘플래티넘 타이거’ 줄여서 ‘플타’.
‘BJ플타’라고 하면 브라더후드M 유저들 중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다.
그가 버는 수익은 결코 적지 않았다.
방송으로 버는 수익과 광고 수익을 합치면 연 15억 원.
웬만한 직장인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금액이다. 하지만 정작 그는 항상 쪼들리는 삶을 살았다.
이유는 번 돈의 대부분을 브라더후드M에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대출까지 있는 상태였다.
더 이상 과금을 안 하면 되지 않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브라더후드M의 모든 캐릭터들은 러닝머신 위에 서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뜀박질을 멈추는 순간 자연스레 뒤로 밀려 떨어지게 된다.
게다가 브라더후드M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은 강력한 캐릭터가 갑질하고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캐릭터가 조금만 약해져도 시청자들이 우수수 떨어져나가는 만큼, 방송을 위해서라도 과금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또한 던전을 탐색하거나 사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다른 게임들과는 달리, 브러더후드M은 뽑기가 가장 중요한 콘텐츠다.
카지노에서 거액을 배팅하는 사람들 뒤에 구경꾼이 몰리듯, 수천 수억을 지르는 뽑기는 시청자들에게 크나큰 대리만족을 선사했다.
백금호는 신화 등급의 스킬을 뽑았을 때만 해도 더 이상의 상위 스킬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브라더후드 PC판에서도 신화 등급 스킬이 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화 등급의 스킬을 뽑은 유저들이 점차 늘어나자 회사 측은 스킬 강화 시스템이 추가됐다. 처음에는 3강까지 가능했던 스킬은 어느새 5강까지 올라갔다.
‘젠장! 이러면 또 안 할 수가 없잖아.’
백금호는 강화를 위해 또다시 돈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신화 스킬 5강을 완성한 순간.
그는 두 팔을 위로 뻗으며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아! 해냈어! 드디어! 드디어 내가 해냈어!”
지켜보던 시청자들은 함께 축하해주었다.
-호우~ 플타 결국 해냈네!
-ㅋㅋㅋ 플타 새끼 찐이었네~
-혼모노 킹정~
-이건 인간승리다. 진짜.
-내가 다 눈물이 나네 ㅜㅜ
-대체 저기에 얼마를 쏟아부은 겨?
-최소 강남 아파트 한 채 봄.
-두 채도 쌉가능.
-그 돈이면 뜨끈한 국밥이 몇 그릇이냐?
-평생 국밥만 처먹기 쌉가능.
-에이~ 신화 스킬 5강 했는데, 강남 아파트가 뭐가 중요하냐?
-강남 아파트에 살기 vs 신화 스킬 5강
-닥후!!
-축하한다!
-축하해, 플타형!
-본캐 끝냈다고 방심하지 말고, 부캐 가자.
-그래그래. 컬렉션도 완성해야지.
-뽑기 끝은 없는 거야~ 플타형이 만들어 가는 거야~
축하는 돈으로 하는 거라고, 후원도 쏟아졌다.
-‘백발백중명싸수’ 님이 달풍선 5,000개를 후원하셨습니다.
-‘JiYomi90’ 님이 달풍선 10,000개를 후원하셨습니다.
-‘불가리아’ 님이 달풍선 50,000개를 후원하셨습니다.
-‘제시카알리바바’ 님이 달풍선 300개를 후원하셨습니다.
-‘rkdtl53’ 님이 달풍선 10개를 후원하셨습니다.
-‘qkrtjdgh0724' 님이 달풍선 100,000개를······.
-‘편돌이2’ 님이 달풍선······.
-‘00feelsama00' 님이······.
화면 가득 달풍선이 터졌다.
순식간에 수천만 원이 들어왔지만, 그동안 뽑기에 쏟아부은 돈에 비하면 새발의 피나 다름없었다.
빚 갚을 생각하면 눈앞이 막막하지만, 어쨌거나 백금호는 지금 이 순간을 즐겼다.
“뽑기 끝났다고 나가지 마세요! 지금부터 5강 신화 스킬 위력 제대로 보여드릴 테니까. 바로 TK길드 새끼들 PK하러 갑니다. 안전지대 벗어난 놈들은 걸리는 족족 다 썰어 버립니다. 이 새끼들 다 죽었어!”
하지만 기뻐하던 것도 잠시.
갑자기 업데이트 공지가 떴다.
그 공지를 보는 순간 백금호는 괴상한 비명을 내질렀다.
“크어억!”
[(공지) 브라더후드M ver17.8.0 업데이트 예정. 태초 등급 스킬 출시!]
* * *
브라더후드M은 PvP가 메인 콘텐츠다.
강한 캐릭터가 약한 캐릭터를 짓밟는 게 당연하다.
현실에서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할 수 없는 갑질을 이곳에서는 마음껏 할 수 있었다. 사냥터 통제, 사냥 가로채기, PK 등등.
돈을 쓰면 강해진다는 것은 엄청난 쾌감이었다. 좋은 아이템, 희소한 스킬, 강화된 무기는 곧 선망의 대상이다.
그럼 돈이 없는 유저들은 어떻게 게임을 할까?
다행히 브라더후드M에는 길드라는 제도가 있었다.
길드에 소속되면 같은 길드 캐릭터에게는 PK를 당하지 않고, 길드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대신 일정 금액을 세금으로 바쳐야 했다.
길드장을 비롯한 상위 랭커들은 이렇게 들어온 세금을 일정 비율에 따라 분배받았다.
때문에 같은 길드원끼리는 끈끈한 형제애를 자랑했고, 반대로 타 길드원에게는 강력한 적개심을 보였다.
이러한 진영 간의 경쟁 심리야말로 과금의 중요한 원동력이었다.
트로키 서버는 고인물이 많기로 유명한 브라더후드M에서도 가장 고인물들이 많이 모여 있기로 유명했다.
이 서버를 장악하고 있는 곳은 TK길드.
그런데 얼마 전부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다크 길드와 드래곤 길드가 연합해 TK길드에 대항하기로 한 것이다.
브라더후드M에서는 보름에 한 번씩 공성전이 열리고, 분기별에 한 번씩 대회전이 열린다.
대회전을 이겨야 공성전도 수월하게 할 수 있다. 따라서 대회전의 결과에 따라 각 길드들의 운명이 결정되는 거나 다름없었다.
다크 길드와 드래곤 길드는 이번에 TK길드를 무너뜨리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이번에는 반드시 정권 교체를 해야 한다!’
‘대체 언제까지 TK길드가 서버를 장악하게 놔둘 것인가?’
‘대회전에서 뭔가 보여주자!’
두 길드의 길드원과 랭커들을 합치면 만만치 않은 전력이었기에 TK길드는 잔뜩 긴장했다.
이번 대회전은 서버 역사상 가장 치열한 전투가 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런데······.
하필 이 타이밍에 게임이 업데이트되며 태초 스킬이 새로 출시됐다!
한 서버당 배정된 태초 스킬은 단 12개뿐.
12개가 다 뽑히고 나면 그 뒤로는 절대 뜨지 않는다. 계정 귀속이라 매매도 불가능했다.
각 길드들은 난리가 났다.
“다른 길드보다 태초 스킬을 하나라도 더 확보해야 해.”
“절대 TK길드에 넘어가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최소 절반은 뽑아야 한다!”
“태초 스킬 많이 먹는 쪽이 대회전에서 승리한다!”
BJ플타 백금호는 고심했다.
‘그 고생해서 신화 스킬 5강을 끝냈더니, 설마 태초 스킬이 나올 줄이야!’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그렇다고 안 뽑을 수도 없었다.
다른 유저들은 이미 최대한 돈을 마련해 지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여기서 빠진다면 그 혼자만 뒤처지게 될 것이다.
‘게다가 이건 한정 스킬이잖아!’
이번 대회전과 앞으로의 방송을 생각한다면 무조건 뽑아야 했다.
하지만 수중에 돈이 없었다. 더 이상 금융권 대출도 불가능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사채를 끌어다 썼다.
그는 유명 스트리머이고, 1년 수익은 무려 15억 원.
덕분에 사채업자에게 3억을 빌릴 수 있었다. 여기에 주변 지인들에게까지 빌려 총 5억을 마련했다.
그가 아무 생각 없이 이러는 건 아니었다.
‘이건 기회야. 운 좋게 한 번에 스킬을 뽑는다면?’
단숨에 랭킹이 뛰어오르게 된다.
어쩌면 다크 길드의 길드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높은 랭킹과 희소 스킬은 더 많은 시청자와 더 많은 구독자, 그리고 더 많은 후원과 더 많은 수익을 의미한다.
그렇게만 되면 빚 갚는 건 일도 아니었다.
백금호는 빌린 5억을 전부 게임 내 재화인 크라운으로 바꿨다.
‘뽑기만 하면 돼. 태초 스킬만 뽑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그는 기합을 넣듯 소리쳤다.
“가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