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LD스튜디오 (2)
내 말에 선우는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복수?]
“응. 설마 이대로 넘어갈 건 아니지?”
[이대로 넘어가지 않으면?]
“복수해야지.”
[LD스튜디오를 상대로 대체 뭘 어떻게 하겠다고? 어차피 브라더후드M이나 블러드앤매직M 쪽에 배속돼 운빨좆망겜이나 만드느니 그만둘까 생각했어. 이제 돈 걱정은 안 해도 되잖아.]
“에이, 무슨 약한 소리야? 끝까지 맞서 싸워야지.”
[됐어.]
“아니야. 넌 복수를 해야 해.”
[내가 왜?]
“그건 말이지······.”
난 1회차 때의 선우를 떠올렸다.
지금이야 전무에게 찍혀서 잘렸지만, 원래는 회사에서 온갖 핍박과 모욕을 당한 다음, 회사가 인수합병되며 쫓겨나듯 회사를 떠나야 했다.
당시 얘가 얼마나 괴로워했는지는 옆에서 지켜본 내가 잘 안다.
안 그래도 기회가 되면 손봐주려고 했는데 마침 잘됐다.
“아무튼 복수하자. 오케이?”
[괜찮다니까.]
“니가 괜찮아도 내가 안 괜찮아.”
[니가 왜 안 괜찮아?]
난 괜히 목소리를 높였다.
“야! 그럼 친구가 부당해고 당했는데 괜찮겠어? 안 그래?”
선우는 더욱 당황했다.
[아, 아니, 니가 언제부터 그렇게 날 생각해줬다고?]
“······.”
아마도 지금 이 순간부터?
난 딱 잘라 말했다.
“넌 가만히 구경이나 해. 내가 복수해줄 테니까.”
[필요 없다니까.]
“니 의사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
[그럼 뭐가 중요한데?]
“내가 친구를 위해 복수해주고 싶은 게 중요하지.”
선우는 버럭 소리쳤다.
[그만해, 이 미친놈아!]
* * *
난 바로 컨티뉴 캐피탈로 가서 회의를 소집했다.
데이비드를 포함한 핵심 인원들이 모였고, 여기에는 동호 선배와 김범석도 끼어 있었다.
“할 일이 하나 생겼습니다.”
내 말에 다들 긴장 어린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입니까?”
“한국에 LD스튜디오라는 게임회사가 있는데, 혹시 아시나요?”
데이비드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에서 제일 큰 게임회사로 알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대충 이름 정도는 들어봤다는 듯한 표정이다.
“일단 제 계획을 말씀드리기에 앞서 LD스튜디오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겠네요. 마침 한국 게임 산업에 대해 심도 깊은 분석을 했던 유명 애널리스트가 여기 있습니다.”
난 손가락으로 한 사람을 지목했다. 그러자 다들 고개를 그쪽으로 돌렸다.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된 동호 선배는 당황했다.
“설마 나?”
“예. DA증권에서 게임 산업 담당이었고 LD스튜디오에 대한 리포트도 많이 썼잖아요.”
“그렇긴 한데······.”
동호 선배는 ‘나한테 왜 그래?’라는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지만, 난 무시하며 말했다.
“자, 어서 일어나서 모두가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주세요.”
동호 선배는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흠흠, 한국 게임사, 그중에서도 LD스튜디오는 외국 게임사들과는 구분되는 명확한 특징이 있습니다. 이는 딱 세 단어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에드워드 밴슨이 물었다.
“그게 뭡니까?”
다들 궁금하다는 표정이다.
동호 선배는 손가락을 하나씩 펼치며 말했다.
“모바일, 과금, 그리고 랜덤박스입니다.”
* * *
게임은 문화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산업 중 하나다. 또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콘텐츠.
지금 게임 산업은 격변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중국, 일본, 유럽 할 것 없이 전 세계 게임사들이 미래의 패권을 잡기 위한 각축전을 벌였다.
여기에 한국 역시 빠질 수 없다.
4대 중독이니 뭐니 무시 받아서 그렇지, 한국 게임 산업은 규모와 매출 면에서 외국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
작년에는 미국, 중국, 일본에 이어 4위를 기록했고, 수출액은 무려 80억 달러로 모든 콘텐츠 산업을 통틀어 가장 많은 수출액을 자랑했다.
이 선봉에 서 있는 회사는 3L(LD스튜디오, 렉슨, 렛마블).
그중에서도 원탑이 바로 LD스튜디오다.
LD스튜디오 시총은 무려 30조 원. 이는 세계 유수의 게임사들과 비교해도 손에 꼽을 정도의 크기다.
매출과 순이익 모두 나란히 성장세다.
동호 선배는 앞에 나서서 화이트보드에 써가며 설명했다.
“원래 LD스튜디오의 주력은 MMORPG라 불리는 PC 온라인게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기존의 온라인게임을 모바일로 성공적으로 이식했고, 현재는 매출의 80퍼센트 이상이 모바일에서 나옵니다. 이중 매출 대부분을 차지하는 게임이 브라더후드M입니다.”
처음에는 자신 없는 모습이었지만, 역시나 담당 분야였던 만큼 금세 술술 말하기 시작했다.
“브라더후드M은 P2W, 즉 페이 투 윈(Pay to Win) 게임으로 돈을 쓸수록 캐릭터가 강해지고 게임을 더욱 재밌게 즐길 수 있습니다. 사실상 과금은 필수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캐릭터를 더 키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상 유지만 하려고 해도 과금을 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남들보다 더 강해지기 위해서는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야 합니다. 상위 랭커들 중에는 수천만 달러씩 결제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 말에 다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게임하는데 그렇게 많은 돈을 쓴단 말입니까?”
여기 모인 사람들인 금융계 엘리트 중의 엘리트.
다들 공부하고 일하느라 바빴을 테니, 모바일 게임 캐릭터 키우자고 현질해본 경험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현질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리 있나?
“그 이유는 이 게임의 주 콘텐츠가 PvE가 아닌 PvP이기 때문입니다.”
PvE(Player versus Environment)란 플레이어 대 환경, 그리고 PvP(Player versus Player), 플레이어 대 플레이어다.
PvE가 혼자 즐기는 게임이라면, PvP는 타인과의 경쟁이다.
누구도 몬스터나 NPC를 잡기 위해 그만한 돈을 쓰지는 않는다. 하지만 남을 짓밟고 올라서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많은 돈을 쓸 수 있다.
브라더후드M은 이러한 경쟁 심리를 잘 활용해 PvP 게임들 중 끝판왕으로 불렸다.
덕분에 매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린 게임 10위 안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렸다.
신기한 사실은, 다른 매출 10위권 게임들과 비하면 유저 수는 압도적으로 적다는 것이다.
이게 의미하는 건 뭘까?
바로 1인당 매출, 즉 객단가가 높다는 거다. 다시 말해 유저 한 명당 최대한 많을 돈을 뽑아낸다는 뜻이다.
게임 자체는 무료지만 과금 없이는 할 수가 없는 구조다.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과금을 해야 한다.
오죽하면 이를 ‘소득 연동제 과금’ 또는 ‘소득 비례형 과금’이라 부른다.
아예 CFO가 대놓고 ‘우리는 고객이 기분 좋게 최대한 많은 금액을 결제할 수 있도록 연구한다’라고 밝힐 정도면 말 다했지.
그렇다면 LD스튜디오의 이런 모습을 본 다른 한국 게임사들은 어떻게 했을까?
쓰레기 같은 방법으로 돈 번다고 욕했을까?
천만에.
대단히 깊은 감명이라도 받은 듯 다들 LD스튜디오의 BM(비즈니스 모델)을 베끼기 바빴다.
대단한 그래픽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대단한 스토리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냥 적당히 과금요소를 베껴서 비슷한 게임을 내놓으면 그만이다. 이렇다 보니 한국 모바일 게임들은 온갖 과금으로 떡칠이 되어가는 중이다.
데이비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잘 이해가 안 되는군요. 돈을 쓴 만큼 강해지는 게임이라면 돈이 적은 쪽은 뭘 해도 이길 수가 없을 테니, 애초에 성립이 안 되지 않습니까?”
역시 게임 안 해본 티가 난다.
동호 선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따라서 P2W 게임은 또 다른 특징과 연결됩니다. 바로 랜덤박스입니다.”
랜덤박스(Random Box).
나라에 따라 루트 박스, 럭키 박스, 가챠, 뽑기 등으로 불리는 이 랜덤박스는 말 그대로 박스를 구매해 열어보면 랜덤으로 아이템이 나온다.
원하는 아이템이 들어있으면 당첨이고, 아니면 꽝이다.
“강력한 아이템을 1만 달러에 판다고 하면 그만큼의 돈이 있는 사람만 살 수 있고, 나머지는 구매를 포기하겠죠. 하지만 1퍼센트 확률로 해당 아이템을 뽑을 수 있는 박스를 100달러에 판매한다고 하면, 100달러만 있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구매할 수 있습니다.”
모리스 피어슨이 말했다.
“그중 99명은 꽝이 나올 텐데, 그걸 산단 말입니까?”
난 피식 웃으며 말했다.
“복권은 수천만 명씩 꽝이 나오죠. 그런데도 다들 매주 사지 않나요?”
그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할 말 없군요. 하지만 그건 도박 아닙니까?”
“이건 도박보다 더합니다.”
“······.”
랜덤박스의 사행성은 도박을 뛰어넘은 지 오래.
일반적으로 도박 관련 산업은 국가에서 철저하게 관리한다. 경마, 경륜, 카지노, 파친코, 로또, 스포츠 토토 등등.
하지만 유독 게임 내에서 판매하는 랜덤박스만큼은 이 관리에서 벗어나 있다.
그 이유는 랜덤박스를 까서 나오는 게 현금이 아닌 아이템이기 때문. 하지만 게임하는 사람 입장에서 아이템은 사실상 현금이나 다름없다.
실제로 현금을 받고 팔기도 하고.
재밌는 사실은 재작년까지는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랜덤박스의 확률도 공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뽑으려는 아이템이 나올 확률이 100분의 1인지 1000분의 1인지, 아니면 1조 분의 일인지도 모르고 무조건 구매해야 하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여론이 악화되고 정치권마저 나설 움직임을 보이자 게임사들은 어쩔 수 없이 확률을 공개했다.
그나마도 잘 보이지 않도록 홈페이지 어딘가에 숨겨놓는 방식으로 말이다.
“원하는 캐릭터, 스킬, 아이템 등이 나올 때까지 유저는 무한정 결제를 해야 하고, 이는 곧 게임사의 매출로 연결됩니다. 이러한 BM 덕분에 브라더후드M은 작년 23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고, 올해는 25억 달러를 넘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데이비드가 말했다.
“듣고 보니 수익을 얻은 방식이 좀 악랄하긴 하군요. 하지만 거기에 대해 비난할 수는 있어도, 그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지 않습니까?”
게임사가 어떻게 방식으로 돈을 벌어먹든 그건 회사의 자유다.
물론 욕하는 것도 유저의 자유인만큼 LD스튜디오는 엄청 욕을 먹을 먹었다.
욕먹은 걸로만 치면 LD스튜디오는 진작 망했어야 했지만······ 정작 매 분기 최대 매출을 기록 중이다.
각종 논란에도 불구하고 일명 ‘브저씨’로 불리는 유저들의 충성심이 굳건하기도 하고. 하기야 수십, 수백억 원을 질렀으면 나 같아도 그럴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여기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한 가지 숨어있다.
그건 바로······.
“만약 게임사가 확률을 조작하고 있다면요?”
“예?”
“그게 정말입니까?”
내 말의 다들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그만큼 상식 밖의 일이니까.
설사 도박이라고 해도 정당한 확률이라면 용납할 수 있다.
그런데 딜러가 카드를 바꿔치기하고 있었다면? 룰렛에서 내가 칩을 건 숫자에는 절대 구슬이 안 들어가도록 조작되어 있었다면?
“선배 생각은 어때요?”
내 물음에 동호 선배는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글쎄요. 브라더후드뿐 아니라 랜덤박스형 게임들에 대한 확률 조작 의심은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만, 아직 밝혀진 적은 없습니다.”
관련 커뮤니티만 둘러봐도 확률이 좀 이상한 것 같다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의심일 뿐이다.
주사위를 던졌을 때 1에서 6까지의 숫자가 골고루 돌아가며 나오지 않는다. 내가 계속 꽝이 나온다 해도 누군가에게는 당첨이 나온다.
“굳이 게임사가 확률을 조작할 만한 유인이 있습니까?”
“매출 극대화를 위해서죠. 아무리 브라더후드M이라고 해도 월 10만 달러 이상 과금하는 유저의 숫자는 1천 명이 안 됩니다. 그리고 이들이 과금을 하는 시기는 새로운 아이템이나 스킬이 출시될 때에 집중됩니다.”
확률에 따라 잘 안 나올 수도 있다는 말은 확률에 따라 잘 나올 수도 있다는 말과 같다.
만약 핵과금 유저가 원하는 걸 바로 뽑는다면, 또 다른 상품이 출시될 때까지는 현질할 이유가 없다.
이는 회사 입장에서는 매출 손실이나 다름없다.
“특정 유저를 대상으로, 또는 특정 시기에 확률을 살짝 건드리는 것만으로도 게임사는 막대한 수익을 거둬들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