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화. LD스튜디오 (1)
난 데이비드와 앞으로의 투자계획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필요에 따라 러시 펀드의 자금도 동원할 수 있는 만큼 운용의 폭이 더 넓어졌다.
“향후에도 게임 쪽 투자는 계속 늘려나갈 생각이에요.”
“이유가 있습니까?”
“향후 가장 크게 성장할 산업이니까요.”
엔플, 구블, AMZ, NS, 위챈트 할 것 없이 이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이들 중 가장 진심인 곳은 NS.
NS를 부활시켰다고 평가받는 3대 CEO 사티아 샤말란은 회사 주력 사업으로 클라우드에 이어 게임을 점찍었고, 나중에는 아예 게임에 올인한다.
사실 이것보다 더 큰 이유는······.
“제 친구가 게임을 좋아해서요.”
“친구요?”
“컨티뉴 캐피탈의 2대 주주기도 하죠.”
“아! 일전에 말씀하셨던 그분이군요.”
선우의 꿈은 게임회사를 차려서 자신만의 게임을 만드는 것. 1회차 때는 나와 마찬가지로 실패해서 치킨집 사장이 됐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설마 내가 이렇게까지 기반을 닦아줬는데 성공 못 하진 않겠지?
“나중에 한 번 소개해드릴게요.”
“알겠습니다. 저도 좀 궁금하네요.”
난 유리벽 너머에서 일하고 있는 동호 선배를 가리키며 물었다.
“일 가르쳐보니 어때요?”
데이비드는 담담하게 말했다.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못하지는 않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어째서 보스가 선택했는지 좀 궁금합니다. 더 뛰어난 실력을 가진 사람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을 텐데요.”
실력만 생각했다면 동호 선배를 굳이 데려올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믿을 수 있으니까요.”
“그 정도로 신뢰하는 겁니까?”
“예.”
데이비드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신뢰는 무엇보다 중요하죠.”
* * *
다음 날.
드디어 좀비네이도2가 출시됐다.
출시와 함께 대중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평가가 좋은 편이었다.
-ㅅㅂ 이거 뭐냐? 하늘에서 좀비가 떨어지네.
-ㅋㅋㅋ 좀비들이 백악관 공격하는데, 막는 사람이 둘밖에 없음.
-보다 못한 대통령이 전기톱 들고 좀비 썰어버림~
-그런데 이거 뭔데 재밌냐?
-이상하게 중독성 있네.
-1편에 비해 CG가 장족의 발전. 돈 좀 썼나?
-주인공들 발연기는 여전. 진짜 내가 연기해도 저거보다 잘할 것 같음.
-마지막에 성조기 펄럭이는 거 보니 가슴이 웅장해짐. 눈물 날 뻔.
-1편 망해서 못 나오는 줄 알았는데, 나와 준 것만으로도 다행.
-인류에게는 너무 이른 영화다!
-좀비네이도 제작사를 컨티뉴 캐피탈이 인수했다는 얘기가 있던데 사실인가?
-뭐? 진짜? 설마 그 컨티뉴 캐피탈 말하는 거야? 스노우 크래시 인수한 곳 아니지?
-설마. 이름만 똑같은 다른 곳이겠지.
-ㅎㅎ 진짜라 함.
-제정신인가? 하고많은 영화사들 중 뭐 이런 B급 영화사를 인수했대?
-대표가 좀비네이도 팬이라는 게 학계의 정설.
인터넷 반응을 확인하는데, 시드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좀비네이도2 봤어요?]
“아직.”
[아직도요? 왜요?]
“방금 일어났어.”
사실은 한참 전에 일어났지만, 아직 볼 엄두가 안 나서 못 틀고 있다.
[저 벌써 두 번 봤어요. 이건 진짜 명작이에요!]
“그래? 재밌어?”
[예. 1편보다 열 배, 아니 스무 배는 재밌는 것 같아요. 일하는 내내 옆에 틀어놓고 있으려구요.]
“······.”
직원들은 무슨 죄야?
그래도 이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투자한 보람이 있다
[형은 언제 볼 거예요?]
“어, 슬슬 봐야지.”
[하고 싶은 얘기가 너무 많은데 스포가 될까봐 못하겠네요. 다 보고 나면 전화해요.]
“아, 알았어.”
빨리 보긴 봐야겠구나.
그런데 혼자서 볼 엄두가 안 난다. 생각해보면 영화 홍보도 좀 해야겠지?
난 트리시에게 연락했다.
그녀는 특유의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하이, 미루.]
“뭐해요?”
[일하고 있죠.]
“혹시 영화 좋아해요?”
[당연하죠. 저 영화 엄청 좋아해요]
“그럼 저랑 같이 영화 한 편 안 볼래요?”
[어! 데이트 신청?]
“혹시 키 2미터쯤 되는 남자친구랑 같이 있는 건 아니죠?”
[다행히 없어요.]
“그럼 데이트 신청이라고 해둘게요. 언제 시간 괜찮아요?”
[지금도 괜찮아요.]
“일하는 중이라면서요?”
[취재한다고 하고 슬쩍 나가면 돼요. 어느 극장으로 가면 돼요?]
“JR블랙우드 호텔로 와요.”
[호텔로요?]
“여기서 보려구요.”
[······예?]
말하고 보니 약간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 같다.
[조, 좋아······.]
난 재빨리 말했다.
“아! 호텔 세미나실에서 보자는 얘기였어요. 극장 개봉을 안 한 영화라서요.”
[그, 그렇군요. 알았어요. 지금 바로 갈게요.]
난 전화를 끊은 다음 생각했다.
중간에 뭔가 말하려고 하지 않았나?
잠시 후.
난 호텔 로비에서 트리시를 만났다. 왠지 요즘 자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우리는 세미나실로 향했다.
트리시는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무슨 영화예요? 저 로맨틱 코미디 좋아하는데.”
“······.”
벌써 미안해지기 시작한다.
난 말없이 영화를 틀었다.
프리즈너의 감옥 로고와 함께 영화가 시작됐다.
그리고 2시간 후.
트리시는 복잡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대충 ‘내가 뭘 본 거지?’라는 표정이다.
설마 화난 건 아니겠지?
그녀는 나를 보며 물었다.
“하필 이런 걸 같이 보자고 한 이유가 뭐예요?”
난 슬쩍 말했다.
“저희가 투자해서 만든 거라서요. WST에서 영화 홍보 기사를 좀 써줬으면 하는데······.”
“싫어요.”
“광고비 낼게요.”
“그래도 싫어요.”
“······.”
* * *
난 프리즈너에 연락해서 축하를 건넸다.
“좀비네이도2 잘 봤습니다. 출시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라이너스 대표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감사합니다, 대표님. 생각보다 영화가 훨씬 잘 나온 것 같아서 감독도 배우들도 아주 만족하고 있습니다.]
“······예.”
프리즈너 영화에서 이 정도 퀄리티면 대단히 잘 나온 거긴 하지.
[페르난도가 바로 3편 작업에 들어가고 싶다고 해서 지금 머리를 맞대고 시나리오를 집필 중입니다. 한 달 안에 시나리오 작업 끝내고 촬영에 들어갈 생각입니다.]
“······.”
이 넘치는 창작욕을 누가 막을 수 있을까?
[아! 그런데 시나리오를 쓰다 보니 3편은 좀 더 스케일이 커질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여기서 더 커진다구요?”
[예. 우주 배경도 나올 것 같은데.]
“······.”
좀비 영화에 우주가 대체 왜 나와?
“걱정 마세요. 제작비는 컨티뉴 캐피탈이 얼마든지 지원해드릴 테니까요.”
[오! 감사합니다. 페르난도가 기뻐할 겁니다.]
“조만간 회사에 한번 들르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는 힘차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제는 시드에게 연락해 좀비네이도2의 감상에 대해 얘기할 차례다.
무조건 극찬해야 한다.
잠시 마인드컨트롤을 하고 전화를 걸려고 하는데, 다른 곳에서 먼저 전화가 걸려왔다.
다름 아닌 강선우.
얘가 무슨 일이지?
난 일단 전화를 받았다.
“어이.”
[너 아직도 미국이야?]
“응. 지금은 뉴욕.”
[언제 돌아와?]
“일 대충 끝났으니, 슬슬 돌아가야지.”
[거기서 뭘 하는데?]
“돌아가서 말해줄게. 넌 요즘도 회사에서 갈려나가는 중이야?”
내 물음에 선우는 한숨을 내쉬듯 말했다.
[집에서 푹 쉬고 있어.]
“휴가 중이야?”
[아니, 회사에서 잘렸어.]
“······응?”
잠깐.
이건 1회차 때 없었던 일인데.
* * *
렉슨(LEXON), 렛마블(Let Marble)과 함께 쓰리엘(3L)로 불리는 LD스튜디오는 한국에서 가장 큰 게임사다.
시총은 25조 원에 고용인원 약 4500여 명.
이 정도면 세계 유수의 게임사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규모다.
회사의 시작은 1997년.
당시만 해도 LD스튜디오는 게임회사가 아닌 기업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던 회사였다. 창업자는 대학 선후배 사이였던 진태경과 박현종.
그러다가 김재경이 합류하며 온라인게임 브라더후드를 개발하기 시작했고, 이게 당시 한국을 강타했던 PC방 열풍과 맞물리며 대박이 터졌다.
이때부터 회사의 주력 사업은 게임이 됐고, 블러드앤매직을 비롯한 온라인게임들을 출시해 대박 행진을 이어갔다.
이후 모바일 게임 시대가 열리자, LD스튜디오는 브라더후드의 모바일 버전인 브라더후드M을 내놓으면서 이전보다 더 큰 대박을 쳤고, 덕분에 한국 최고의 게임사로 우뚝 설 수 있었다.
박현종 전무.
그는 진태경 사장과 함께 LD스튜디오를 함께 설립한 공동 창업자였다. 그가 가진 지분은 8.6퍼센트로 진태경 사장의 뒤를 이어 2위.
그는 얼마 전 황당한 일을 겪었다.
그에게는 20대 초반에 낳은 아들이 하나 있다.
똑똑하고 공부도 잘해서 뉴욕대에 합격했고, 이후 MBA 자격증을 취득해 미래투자증권에서 일했다.
그렇게 화려한 경력을 쌓은 아들은 당당하게 LD스튜디오에 입사했다.
그는 아들이 자신의 뒤를 이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채 1년도 안 돼 경찰 수사를 받는 신세가 됐다.
회사 몰래 아이템을 무단으로 생성해 유저들에게 팔아 부당이익을 챙겼기 때문이다.
아들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박현종 전무는 깜짝 놀랐다.
그는 사건을 적당히 묻으라고 지시했고, 피해를 본 유저에게 따로 연락해 보상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해당 유저는 이를 거부하며 언론사와 커뮤니티에 알렸고, 사태는 일파만파 커졌다. 유저들이 본사 앞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이겠다고 하자, 회사는 잘못을 인정하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익명 게시판을 통해 박현종 전무도 사과하고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직원들의 글이 올라오는 등 박현종 전무의 입지는 크게 약화됐다.
그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스러운 아들이다. 한없이 착하고 순진하기만 한 애가 왜 그런 나쁜 짓을 저질렀을까?
“대체 왜 그런 거니?”
아버지의 물음에 아들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이게 다 그 자식 때문이에요! 그 새끼만 아니었어도!”
아들의 말에 따르면 주변인의 잘못된 꼬임에 넘어가 작전주에 투자하는 바람에 큰 손실을 입었다고 한다.
그 손실을 메우기 위해 또다시 주변 돈을 끌어다가 이것저것 투자하다 보니,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런 짓을 벌였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그렇게 해서 번 돈도 토머스 모터스라는 회사에 투자했다가 다 날렸다.
“그놈이 누군데?”
“개발3팀의 강선우요.”
그는 바로 강선우에 대해 알아보았다.
마침 판타지 테일즈를 개발했던 개발3팀은 해체됐고, 직원들은 새로운 자리를 배속받기 위해 사내면접을 보고 있었다.
‘이놈이 내 아들을 꼬셔서 작전주에 투자하게 했다고? 그러면서 정작 본인은 고점에서 팔아서 돈을 챙겼고?’
이런 부도덕한 직원이 계속 회사를 다니도록 놔둘 수 없다.
그래서 그는 다른 개발팀에서 그를 데려가지 못하도록 여러 압력을 가했고, 결국 해고시켰다.
* * *
선우의 얘기를 대충 전해 들은 나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니까 전무 아들이 사고 친 게 너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잘렸다는 거야?”
[그런 셈이지.]
“······.”
1회차 때도 운용자의 아이템 무단 생성 사건은 똑같이 발생했다. 그리고 그때도 전무 아들이 얽혀 있었다.
사건이 터졌을 당시 선우가 틈만 나면 쌍욕을 퍼부었기 때문에 확실하게 기억난다.
애초에 남의 말 듣고 작전주에 투자한 걸로 볼 때 비슷한 일은 얼마든지 벌어졌을 것이다. 주식시장에 작전주가 KNC인터내셔널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아마 1회차 때는 다른 작전주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입었을 것이다. 그리고 똑같은 일을 벌였겠지.
그런데 이번에는 하필 선우를 따라 KNC인터내셔널에 투자한 바람에 전무에게 찍히게 된 것이다!
난 그제야 납득했다.
내가 선우에게 돈을 빌려 KNC인터내셔널에 투자한 건 1회차 때는 없었던 일. 그런데 설마 그 일로 인해 선우가 전무의 원한을 사고 회사에서 잘리게 될 줄이야.
이런 게 나비효과라는 건가?
[나야 그렇다 쳐도, 다른 개발3팀 직원들도 받아주는 곳이 없어서 큰일이야. 잘못하면 나 말고도 다 잘리게 생겼어.]
사실 별로 심각한 상황은 아니다.
어차피 본인 회사를 차리려면 회사를 나와야 하니. 하지만 자기 발로 나온 거라면 모를까 잘린 거라면 얘기가 다르지.
부당해고를 당했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야.”
[왜?]
“내가 복수해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