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0화. 레전드스토어 (5) (185/529)

 190화. 레전드스토어 (5)

 난 계속해서 말했다.

 “ESD는 단지 게임을 판매하는 곳이 아닙니다. 유저를 위한 다양한 편의기능을 제공할 필요가 있습니다. 스노우 크래시에 맡겨주신다면 스트림보다 훨씬 나은 모습으로 만들어드리겠습니다. 모든 오류를 해결하는 것은 물론이고, 스토어와 연계해 아이템 거래와 스트리밍이 가능할 수 있도록 말이죠.”

 스트림이 완벽하다고 말할 수는 없어도, 모든 ESD들 중에서는 가장 많은 편의기능을 제공하는 것은 사실.

 스콧 CEO는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가능할까요?”

 “소문을 들으셨다면 잘 아실 텐데요.”

 블랙우드 사태 이후 시드는 엄청난 유명세를 얻었다. 그리고 이러한 유명세는 곧 계약으로 연결됐다.

 그래서 지금도 일감이 미어터지는 중이긴 하다만······.

 뭐, 시드가 잘 알아서 하겠지.

 “그렇게만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네요. 한번 고려해보겠습니다.”

 난 화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요즘 나이트라이트의 인기가 엄청나더군요.”

 한국에서는 배틀 아일랜드에 밀려서 별로 인기가 없지만, 북미 지역에서는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중이다.

 현재 PC와 콘솔로만 출시된 상태.

 “요즘은 크로스 플랫폼이 대세인데, 모바일로는 출시 안 하나요?”

 불과 2, 3년 전까지만 해도 게임 시장의 주류는 PC와 콘솔이었고, 모바일 점유율은 20퍼센트 안팎이었다.

 그런데 현재는 거의 절반에 육박할 정도로 비중이 커졌다.

 그렇다고 PC와 콘솔의 매출이 줄어들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모바일 게임이 압도적으로 성장했을 뿐이지.

 당장 지하철만 타도 스마트폰으로 게임하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PC나 콘솔은 없는 사람들이 많지만, 스마트폰은 모두가 가지고 있다. 또한 캐주얼 게임이 많은 만큼 누구나 남녀노소 쉽게 즐길 수 있기도 하고.

 때문에 모바일은 게임사들에게 놓칠 수 없는 시장이 됐다.

 “모바일 출시도 물론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개발도 끝마친 상태죠. 그런데 한 가지 문제 때문에 출시를 미루는 중입니다.”

 “혹시 앱마켓 수수료 때문인가요?”

 스콧 CEO는 고개를 끄덕였다.

 “구블과 엔플 모두 30퍼센트의 수수료를 받습니다. 생각해보면 뭔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어째서 담합이라도 한 것처럼 7대3일까요?”

 난 잠시 생각한 다음 말했다.

 “글쎄요. 6대4면 수수료가 너무 많고, 8대2면 너무 적어서가 아닐까요?”

 내 말에 그는 작게 웃었다.

 “그런 이유도 없지는 않겠죠. 하지만 전 시작을 엔폰이 나오면서부터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핸드폰의 모든 콘텐츠는 통신사를 통해서만 유통됐다.

 이때는 수익의 대부분을 통신사가 챙겨갔다. 거기서 창작자들의 몫은 10퍼센트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드디어 엔플이 엔폰을 내놓으며 스마트폰 시대가 열렸다.

 “초창기에는 엔플이 만든 앱만 구매할 수 있었죠. 하지만 엔플은 개발자들에게 자유롭게 만들어 판매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단 30퍼센트의 수수료만 받고 말이죠?”

 스콧 CEO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이전에 70~90퍼센트 수수료를 받던 통신사나 업체들에 비하면 30퍼센트 수수료만 받는 엔플의 정책은 혁명이나 다름 없었죠.”

 악덕 영주 밑에서 고세율에 신음하던 농노들에게 어느 날 엔플이라는 해방자가 엔폰이라는 무기를 들고 나타나 그들을 몰아내고, 앞으로는 세율을 3할만 받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모두가 두 팔을 들고 환호했다.

 낮은 수수료는 엔플에게도 신의 한 수였다.

 앱 개발이 돈이 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개발자들은 너도나도 앱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이는 엔폰의 성공 요인이 됐으니까.

 “문제는 이때 시작된 7대3이 영구불변의 법칙이 됐다는 겁니다.”

 7대3 비율은 초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피처폰을 밀어내며 대세가 됐고 앱마켓은 급성장했다. 시장이 백 배, 천 배, 만 배로 커졌지만 수수료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1만 달러가 팔려 3천 달러의 수수료를 내는 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10만 달러가 팔려 3만 달러의 수수료를 내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1억 달러가 팔려 3천만 달러를 내야 한다면?

 이때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수수료는 게임뿐 아니라 모든 앱에 마찬가지로 적용되지 않습니까?”

 스콧 CEO는 코웃음을 쳤다.

 “NOS와 안드로메다 모두 매출의 70퍼센트가 게임에서 나옵니다. 다시 말해 그들이 버는 앱마켓 수수료의 70퍼센트는 게임사들이 냅니다. 그 돈이 1년에 200억 달러가 넘습니다.”

 그만큼 게임은 모바일 앱마켓에서 압도적인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1만 원짜리 앱은 비싸다고 결제를 망설이는 사람도 5만 원짜리 캐시템은 별생각 없이 지르기 마련이니.

 뭐, 그게 싫으면 거기에 안 팔면 되지 않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러기에는 스마트폰이 좀 많이 팔렸어야 말이지.

 모바일 게임이 전체 게임 시장의 절반이다.

 그런데 이 시장을 사실상 두 기업이 독과점하고 있고, 이를 피할 방법은 없다. 어쨌거나 게임을 팔려면 30퍼센트를 내는 수밖에 없다.

 스콧 CEO는 혐오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들은 개발자를 착취하며 돈을 벌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전에는 없던 앱마켓이라는 시장을 만들어낸 건 엔플과 구블이잖아요.”

 “그 점은 인정합니다. 플랫폼을 구축하고 사람을 모은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장사하려면 수수료를 내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30퍼센트라는 비율은 부당하다는 겁니다. 이는 웬만한 개발사들의 이익률보다 훨씬 높습니다. 게임을 만든 개발자들보다 플랫폼 회사가 더 많은 돈을 벌어간다는 건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대부분의 개발사들이 이익률이 10퍼센트가 채 안 된다. 적자를 보며 게임을 만드는 곳들도 많고.

 수수료만 낮아져도 이들의 상황이 크게 개선될 것이다.

 “애초에 엔플과 구블이 앱마켓으로 그렇게 막대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건 게임을 만드는 개발자들 덕분입니다. 전 플랫폼이나 유통사가 아닌 개발자들에게 더 많은 수익이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순간부터 7대3은 황금비율로 굳어졌다. 그리고 이제는 마치 불변의 법칙처럼 모든 곳에 통용되고 있다.

 사실상 모든 게임사들이 30퍼센트의 수수료를 부당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누구도 쉽게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왜냐하면 상대는 엔플과 구블이니까.

 말로 불만을 토로하기는 쉬워도 행동으로 옮기기는 어렵다. 그런데 스콧 CEO는 실제 행동으로 옮긴다.

 다시 말해, 직접 총대를 메고 엔플과 구블과 한판 붙는다!

 이런 것만 봐도 확실히 보통 사람은 아니란 말이지.

 “오늘 이렇게 만나서 얘기를 나눠보니 확신이 서네요.”

 “어떤 확신이요?”

 난 슬슬 본론을 꺼냈다.

 “레전드게임즈의 지분 70퍼센트를 인수하고 싶습니다.”

 갑작스러운 얘기에 그는 당황했다.

 “70퍼센트나요?”

 “예. 금액은 140억 달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업가치를 200억 달러로 책정했다는 의미. 위챈트보다 10퍼센트 이상 높게 쳐주는 셈이다.

 자금은 블랙우드 주식을 러시 펀드에 매각해 마련할 생각이다.

 내가 레전드게임즈를 선택한 이유는 세 가지.

 첫째는 게임 개발, 유통, 판매까지 모든 걸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스콧 CEO가 당장의 수익 추구보다 유저와 개발사에 친화적이라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바로 게임 엔진을 만든다는 것. 써릴 엔진은 훗날 게임뿐 아니라 가상현실 구현에 폭넓게 사용된다.

 때문에 반드시 인수해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예상 밖의 일이네요. 설마 인수를 제안하실 줄이야.”

 “처음에 말씀드렸잖아요. 게임 산업에 관심이 많다고. 저는 게임이야말로 메타버스의 핵심 콘텐츠라 생각합니다.”

 메타버스란 디지털 세계 속에 또 하나의 현실을 만들어내는 것.

 이는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된다.

 첫째는 가상 오피스다.

 단지 원격으로 사무를 처리하는 것뿐 아니라, 가상 오피스 공간에 아바타가 출근해 사람을 만나고 회의를 할 수 있다.

 공간과 거리의 제약이 없이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면,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올릴 수 있다.

 기업들의 필요성 때문에라도 이 시장은 빠르게 성장 중이다.

 둘째는 게임.

 생산성 증가로 인해 노동시간은 줄어들고 여가는 늘어나는 추세. 이 여가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게임이다.

 어떻게 보면 게임이야말로 오래 전부터 메타버스의 개념을 실현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MMORPG는 캐릭터들끼리 모여서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보스를 잡고, 아이템을 매매하는 또 하나의 현실이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나이트라이트에 대해 조언 하나 드려도 될까요?”

 “뭔가요?”

 나이트라이트는 F2P 게임.

 게임 자체는 무료이나 그 안에서 이것저것 구매하는 방식이다.

 현질을 할 수록 강해지는 한국 게임들과는 다르게, 주로 판매하는 상품은 캐릭터 성능에는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는 스킨들이다.

 그런데 이게 또 불티나게 팔렸다.

 유저들은 기꺼이 돈을 내고 스킨을 구매해 자신의 캐릭터를 꾸몄다.

 “게임할 때가 아니어도 유저들이 그냥 접속할 수 있는 모드를 만드는 건 어떨까요?”

 “아무런 콘텐츠 없이 말입니까?”

 “예. 기껏 자기 개성대로 꾸민 캐릭터인데 총싸움만 하는 것도 아깝잖아요. 게임사가 콘텐츠를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세요. 놔두면 유저들이 알아서 만들 테니까요. 전장에 배치된 오브젝트를 활용해 새로운 맵이나 미니게임을 만들 수도 있을 테고, 친구들을 불러 자유롭게 대화하고, 음악을 틀어 파티를 즐길 수 있겠죠. 유명 가수가 콘서트를 열면 그걸 보기 위해 입장료를 내고 모일 수도 있을 테고.”

 “······.”

 여기까지는 아직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지, 스콧 CEO는 큰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어차피 나중에는 유저들의 요청이 빗발치며 실제로 이런 모드를 출시한다. 덕분에 나이트라이트는 FPS 게임을 넘어 메타버스 게임으로 불리게 된다.

 “가, 감사합니다. 한번 검토해 봐야겠군요.”

 “투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실 그동안 사모펀드들의 연락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전부 거절했습니다.”

 “어째서요?”

 “사모펀드는 나중에 지분을 다시 매각하지 않습니까?”

 난 고개를 저었다.

 “그 점은 걱정 마세요. 오히려 투자를 더 하면 했지, 엑시트를 할 생각이 없으니까요. 걱정이 되신다면 지분 재매각시에는 반드시 레전드게임즈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조건을 추가하죠.”

 하지만 그는 여전히 난감하다는 표정이었다.

 “저희 입장에서는 투자사와의 시너지도 감안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컨티뉴 캐피탈과 손을 잡는 게 최선의 선택이 될 겁니다.”

 “예?”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로 저희는 투자를 하되 경영에는 간섭할 생각은 없습니다. 지금처럼 원하시는 방향으로 회사를 운영해가시면 됩니다.”

 뭐, 이건 위챈트 역시 마찬가지일 테니 그리 매력적인 조건은 아니겠지.

 난 계속해서 말했다.

 “둘째로 저희는 스노우 크래시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시드 루카스가 CEO로 있고 미미르라는 가장 강력한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가진 클라우드 회사죠. 향후 모든 게임들은 클라우드화될 겁니다. 스노우 크래시는 클라우드에서 게임이 완벽하게 구동될 수 있도록 만들어드릴 수 있습니다. 당장은 나이트라이트가 그렇고, 향후 레전드스토어에서 판매하는 모든 게임들도 포함해서요. 이렇게 하면 게임을 PC의 성능도 저장용량도 신경 쓸 필요가 없겠죠.”

 스콧 CEO는 슬슬 흥미를 나타냈다.

 “마지막은 뭡니까?”

 “엔플이나 구블과 한판 붙으실 생각이시라면, 최선을 다해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예? 그게 무슨······.”

 “아닌가요?”

 “······.”

 속마음을 들켰기 때문인지 그는 살짝 당황했다.

 하지만 이내 나를 보며 물었다.

 “정말로 그랬다가는 엄청난 손해를 볼 수도 있을 텐데요.”

 엔플과 구블은 모바일 시장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이 시장에서 퇴출당할 위험이 있다.

 하지만······

 “손해를 보는 건 엔플과 구블이겠죠. 저희와 손잡으면 반드시 이기게 해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스콧 CEO는 눈을 빛냈다.

 “정말입니까?”

 “전 지는 게임은 하지 않습니다.”

 한참의 고민 끝에 스콧 CEO는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컨티뉴 캐피탈의 투자를 받겠습니다.”

 난 웃음을 지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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