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9화. 레전드게임즈 (4) (184/529)

 189화. 레전드게임즈 (4)

 레전드게임즈(Legend Games).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컬럼비아에 위치해 있는 이 게임사는 게임 개발사이자, 게임 엔진 개발사이자, 게임 유통사이자, 게임 판매사이다.

 FPS 게임인 써릴 시리즈가 대박을 치며 이름을 알렸고, 이때 개발에 사용했던 써릴 엔진을 다른 게임사들에 라이센스 수익을 얻었다.

 또한 퍼블리싱에서도 두각을 나타내 여러 유명 게임을 유통했고, 최근에는 ESD까지 런칭했다.

 레전드게임즈의 창업자이자 CEO는 탐 스콧은 최근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었다.

 문제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차세대 엔진 개발.

 게임 엔진 라이센스는 원래 레전드게임즈의 주력사업.

 하지만 써릴 엔진4는 구형이 됐고, 이디티 엔진과의 경쟁에서도 밀리고 있었다. 이를 일거에 뒤집을 카드가 바로 써릴 엔진5다.

 그런데 개발이 계속 지연되는 중이었다.

 얼마 전에는 개발을 총괄하던 브라이언 클로이가 개인 사정으로 갑자기 그만두는 바람에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이 때문에 써릴 엔진5를 활용해 게임을 만들려 했던 개발사들의 일정마저 줄줄이 밀리는 사태가 벌어졌다.

 둘째는 레전드스토어.

 최근 레전드게임즈는 직접 게임을 개발하기보다는 엔진 라이센스 사업과 퍼블리싱에 치중했다.

 이런 와중에 오랜만에 직접 신규 IP를 개발했다.

 바로 FPS 게임 나이트라이트다.

 이 게임의 출시와 함께 레전드게임즈는 자체 ESD를 출시했다.

 파격적인 판매수수료로 게임사들을 유치하고, 돈을 쏟아부어 무료게임을 뿌리고, 독점작을 런칭했다.

 하지만 점유율은 미미했고, PC ESD 시장은 여전히 스트림의 독무대였다.

 한동안 적자를 볼 각오를 하긴 했지만, 그 금액은 예상보다 훨씬 컸다.

 전문가들은 레전드스토어는 사실상 실패했다고 판정을 내렸다.

 그나마 이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1년 전 출시한 FPS 게임 나이트라이트가 큰 성공을 거뒀기 때문.

 여기서 나오는 수익으로 엄청난 적자를 메우는 중이지만, 자금은 점점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사업을 너무 벌였나?’

 그러나 여기서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새로운 엔진 개발과 레전드스토어를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

 스콧 CEO는 외부 투자를 받기로 했다.

 레전드게임즈가 투자를 받겠다고 하자 사방에서 투자 제안이 들어왔다. 그중에는 게임업계의 큰손으로 불리는 소뉴와 NS, 위챈트도 있었다.

 ‘소뉴와 NS는 자체 콘솔과 ESD를 가지고 있는 만큼, 이 회사들의 투자를 받았다가는 어느 한쪽에 편중될 우려가 있어.’

 때문에 자연히 위챈트 쪽으로 마음이 기울였다.

 위챈트의 투자를 받으면 두 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는 투자는 하되 경영에는 간섭하지 않는다는 거고, 둘째는 중국 시장 진출이 수월해진다는 것이다.

 위챈트는 그동안 전 세계 수십 개의 게임회사들을 인수해 자회사로 만들었다. 하지만 경영의 독립성을 보장해주었기에 더욱 신뢰가 갔다.

 게다가 중국 게임 시장은 위챈트가 장악하고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위챈트의 투자를 받으면 중국 시장 진출이 편해진다.

 위챈트 실무진들 역시 투자에 적극적이었고, 그가 원하는 조건을 맞춰주었다.

 세부 조건의 조율은 끝났고, 사실상 사인만 남겨놓은 상황에서 그는 다른 투자사의 연락을 받았다.

 * * *

 난 레전드게임즈 본사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40대 후반의 백인으로 마른 체구에 흰색 머리카락과 수염. 검은색 뿔테 안경을 꼈다.

 그는 바로 레전드게임즈의 CEO 톰 스콧.

 오기 전, 미리 연락을 해놓았기 때문에 그는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다.

 “어서 오십시오.”

 “반갑습니다.”

 우리는 자리에 앉았다.

 “록허트 대표님에 대해서는 얘기를 많이 들었지만, 이렇게 젊은 분께서 공동대표로 계신 줄은 몰랐습니다.”

 “컨티뉴 캐피탈에 대해 알고 계신가요?”

 “그럼요. 스노우 크래시를 인수한 데다가 이번에 블랙우드 랜섬웨어 사태도 해결했는데,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아! 퍼플게임즈에도 투자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예. 저희가 게임산업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요. 레전드게임즈에서도 투자사를 찾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마 위챈트의 투자를 받을 거라고 예상되는 데 맞나요? 기업가치는 180억 달러쯤으로 책정됐을 테고요.”

 “그걸 어떻게······?”

 “가능성을 추려봤습니다. 써릴 엔진을 사용하는 게임사들과의 관계와 향후 퍼블리싱 등을 고려할 때 NS나 소뉴의 투자를 받으면 한쪽 콘솔에 편중될 우려가 있잖아요. 그래서 위챈트의 투자를 받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기업가치 산정은 그동안 위챈트가 투자한 다른 게임사들과 비교해서 예상해봤구요.”

 그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 정도로 정확하게 맞추다니. 정말 놀랍네요.”

 뭐 놀랄 것까지야.

 사실은 이때쯤 해서 지분 48퍼센트를 90억 달러에 위챈트에 매각한 게 공개됐기 때문.

 그는 유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평소 컨티뉴 캐피탈에 대한 명성은 듣긴 했지만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무슨 일로 저희 회사를 찾아오신 건가요?”

 “혹시 퍼플게임즈가 제작하는 블록 밸리라는 게임을 알고 계신가요?”

 스콧 CEO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공개된 영상은 봤습니다. 게임 안에서 유저가 상상하는 모든 걸 구현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컨티뉴 캐피탈은 블록 밸리의 성공 가능성을 매우 높게 보고 투자를 하는 중입니다.”

 “어느 정도로 말입니까?”

 “저희 예상대로라면 역사상 가장 큰 매출을 올릴 게임이 될 겁니다.”

 “······예?”

 그는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인디 게임이 그런 매출을 올릴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지금이야 믿기 힘드시겠지만, 저희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농담이나 지나친 자신감 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컨티뉴 캐피탈의 투자 성공 사례를 보면 그냥 흘려듣기는 힘들겠지.

 “레전드게임즈와 블록 밸리의 퍼블리싱에 대해 논의해보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그 말에 스콧 CEO는 기뻐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 그러셨군요. 그럼 잘 오셨습니다.”

 퍼블리셔는 단지 게임을 유통만 하는 게 아니다.

 마케팅은 물론이고, 개발비 지원, 현지화, 번역, 운영, 서버 관리 등을 책임진다.

 퍼블리셔 중에는 개발 단계에서부터 이것저것 지시를 내리거나, 비용을 청구하거나, 심지어는 지적재산권 일부를 요구하는 곳도 있다.

 하지만 레전드게임즈는 다르다.

 “저희 회사는 개발사들이 최대한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합니다.”

 보통 이렇게 말하는 놈치고 자기 잇속 안 챙기는 놈이 없기 마련이지만, 레전드스토어는 진짜였다.

 개발사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고, 필요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개발사의 수익을 최대한 보장해주었다.

 적어도 돈 문제와 관련해 개발자들 사이에서 뒷말이 나온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괜히 퍼플게임즈 창업자 셋이 레전드게임즈라면 좋다고 동의한 게 아니다.

 “저희에게 맡겨주신다면 전 세계 퍼블리싱은 물론이고 레전드스토어를 통한 자체 판매도 가능합니다.”

 난 그에게 물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어째서 레전드스토어를 만든 건가요?”

 “똑같은 게임이라도 다른 ESD에서 판매하면 수수료를 줘야 하지만, 직접 판매하면 수수료를 아낄 수 있으니까요.”

 대형 게임사들 역시 자체 ESD를 운영 중이다. 하지만 이들 중 실제 수익을 내는 곳은 없다고 봐도 좋다.

 레전드스토어 역시 지금 레전드게임즈 적자의 주범.

 그나마 F2P(Free to Play) 게임으로 내놓은 나이트라이트가 성공했기에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진작 사업을 철수했을 것이다.

 “ESD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콘솔 ESD.

 린텐도, 소뉴, NS가 판매하는 콘솔에는 해당 회사에서 제공하는 ESD에만 접속할 수 있고,이곳을 통해서만 게임을 설치할 수 있다.

 둘째는 스마트폰 앱마켓.

 스마트폰의 게임들은 다른 앱과 마찬가지로 마켓을 통해 다운 받아 설치한다. 이때는 해당 OS의 앱마켓이 ESD 역할을 하는 셈이다.

 셋째는 PC ESD.

 소비자는 게임을 개별적으로 사서 깔아도 되고 원하는 ESD에서 구매해 설치해도 된다.따라서 콘솔과 스마트폰에 비하면 훨씬 자유로운 경쟁이 이뤄질 수 있지만······ 이 시장은 사실상 스트림(Stream)이 독점하고 있다.

 스트림을 운영하는 회사는 젤뷰 코퍼레이션.

 창업자는 게이브 맥렌.

 그는 원래 NS에서 일하던 개발자로, NS가 상장하며 백만장자 반열에 올랐다.

 그는 프로그램 판매를 조사하던 과정에서 NS의 운영체제보다 더 많이 깔린 프로그램이 있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그 프로그램은 다름 아닌 게임.

 당시만 해도 컴퓨터는 지금과는 비교하기도 힘들 정도로 비싼 제품이었고, 주로 업무용으로 쓰이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거액을 주고 산 컴퓨터로 하라는 일은 안 하고 다들 게임부터 깔고 있었던 것이다!

 컴퓨터의 보급이 늘어날수록 게임 시장이 성장하게 될 거라고 생각한 그는 사표를 던지고 NS를 나와 젤뷰를 창업했다.

 그리고 게임 개발을 하며 그 게임을 판매할 사이트 스트림을 만들었고, 현재는 세계 최대 ESD로 성장했고, 게이브 맥렌은 게임업계 최대의 부자가 됐다.

 그야말로 미래를 내다보고 움직여서 기회를 잡았다랄까?

 “하지만 콘솔이든 스마트폰이든 PC든, 모든 ESD의 공통점은 30퍼센트의 수수료를 떼간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10달러짜리 게임을 팔면 그들은 3달러를 챙겨가죠. 전 이게 말도 안 되는 폭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레전드스토어의 수수료를 그렇게 낮게 책정한 건가요?”

 “그렇습니다.”

 레전드게임즈가 내세운 수수료 정책은 그야말로 파격적이었다.

 기존 ESD가 30퍼센트인데 비해 그 절반도 안 되는 12퍼센트를 내세웠다.

 만약 써릴 엔진을 사용해 개발한 게임이라면 레전드스토어 판매분에 대해서는 라이센스 비용을 면제해준다.

 써릴 엔진으로 개발한 게임을 스트림에서 판매했을 경우 총 35퍼센트를 내야 하지만, 레전드스토어에서 판매하면 12퍼센트만 내면 되는 것이다.

 12퍼센트도 많은 거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운영비를 제하고도 결제수수료와 각종 부대비용을 제하면 실제 수익은 그 절반도 안 된다.

 웬만큼 규모의 경제를 만들지 못하는 이상 수익을 내기는 힘들다. 실제로도 적자만 쌓이는 중이고.

 난 고개를 끄덕였다.

 “취지는 매우 좋네요. 하지만 공격적인 가격 정책은 후발주자가 쓰기 어렵습니다. 가격경쟁이 벌어질 경우에는 후발주자가 더 큰 피해를 보게 될 테니까요. 만약 스트림이 수수료를 20퍼센트나 15퍼센트로 내린다면요? 그럼 게임사들이 굳이 레전드스토어를 선택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요?”

 스콧 CEO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그럼 그거대로 잘된 일이죠. 저희야 손해를 보더라도, 적어도 다른 게임사들 수익은 늘어날 테니까요. 애초에 스트림의 수수료가 그 정도로 낮았다면 레전드스토어를 만들지도 않았을 겁니다.”

 이렇게 말하는 걸 보면 개발자들을 위한다는 말이 진심인 모양이다.

 이 사람 엄청 마음에 드는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라도 레전드스토어가 성공해야 하지 않을까요? 오기 전 잠깐 봤는데도 문제가 한둘이 아니던데.”

 “어떤 문제가 있나요?”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되나요?”

 “예.”

 난 원하는 대로 솔직하게 말해주었다.

 “일단 UI가 구립니다. 기능은 더 구리죠. 클라우드 저장도 안 되고, 유저 평가와 토론도 안 되고, 모드 지원도 안 되고, 아이템 거래는 막혀있고, 라이브러리 공유도 안 되고, 스트리밍도 안 되고, 스크린샷도 안 되고, 방송도 안 되고, 채팅도 안 되고, 심지어는 장바구니조차 없습니다. 스트림의 30퍼센트 수수료는 말이 안 되고, 뒤늦게 나온 레전드스토어의 기능이 이 모양인 건 말이 됩니까?”

 팩트 폭행에 스콧 CEO는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그, 그건 서둘러 출시하다 보니 생긴 문제였습니다. 조금씩 개선해나갈 예정입니다.”

 그럼 처음부터 개선해서 출시했으면 되지 않았나?

 “편의기능이야 둘째치더라도 서버 문제가 심각해 에러는 예사고, 다운로드는 지연되기 일쑤던데.”

 스콧 CEO는 할 말이 없는지 괜히 헛기침을 했다.

 “크흠, 최대한 빠르게 고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어느 세월에?

 난 그에게 제안했다.

 “차라리 스노우 크래시에 맡기는 게 어떤가요?”

 “예?”

 “장담컨대 그쪽 개발자 100명이 한 달 동안 매달려 작업하는 것보다 루카스 CEO가 일주일 동안 작업하는 게 더 빠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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