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8화. 레전드게임즈 (3) (183/529)

 188화. 레전드게임즈 (3)

 스티브는 계속해서 말했다.

 “처음 회사를 차리자고 한 것도 나였어. 내가 아니었으면 지금도 다들 스타게이트에서 남의 게임이나 만들고 있었을걸.”

 찰스와 켄은 화난 목소리로 반박했다.

 “뭐라고?”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내가 뭐 틀린 말 했어?”

 “니가 한 일이 뭔데? 작업해온 거 보고 마음에 안 든다는 소리만 해놓고는.”

 “매번 트집 잡는 바람에 개발이 지연된 게 한두 번이야? 너 나가고 나서부터 일이 잘되기 시작했어.”

 “그거야 내가 개발 방향을 잡아놓고 나간 거니까.”

 “뭔 헛소리야?”

 세 사람은 점점 언성을 높였다.

 금방이라도 달려들어 멱살잡이를 할 것 같은 켄을 찰스가 말리며 말했다.

 “어쨌거나 넌 회사를 나갔고, 회사 지분을 포기했어. 이제 와서 권리를 주장한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아니, 회사를 나간다고만 했지 지분을 포기한다고는 안 했어. 계약서를 쓴 것도 아니잖아.”

 “법인 지분을 변경할 때 분명히 말했잖아. 너도 동의했고.”

 “동의한 게 아니라 그냥 멋대로 하라고 했을 뿐이야.”

 “그게 동의한 게 아니라고?”

 “전혀 다르지.”

 찰스는 이를 갈듯 스티브에게 물었다.

 “그래서 뭘 어쩌자는 건대?”

 “말했잖아. 다시 퍼플게임즈로 돌아가겠다고.”

 “그건 안 돼.”

 “어째서?”

 켄은 비웃듯 말했다.

 “니가 돌아오면 루퍼스가 나가겠대. 너 나간 뒤로 일이 더 잘 된 것과는 달리 루퍼스가 나가면 퍼플게임즈는 진짜 망하는 거지.”

 “······.”

 어차피 억지로 우겨서 돌아간다고 해도 반겨줄 리 없다는 건 그 역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말을 한 건 다른 걸 요구하기 위함이겠지.

 스티브는 당당하게 말했다.

 “난 그동안 퍼플게임즈를 위해 최선을 다했어. 그러니 대가를 받을 자격이 있어.”

 그는 정말로 자신이 퍼플게임즈에 큰 기여를 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하기야 그러니까 훗날 1억 달러나 되는 소송을 진행한 거겠지.

 켄은 쏘아붙이듯 물었다.

 “결국 목적은 돈이잖아. 그래서 얼마를 달라는 건데?”

 “100만 달러.”

 “뭐라고?”

 스티브는 뻔뻔한 태도로 말했다.

 “어차피 게임이 성공하면 그것보다 훨씬 벌 거 아니야?”

 “······.”

 난 기가 막혀 아무 말도 못하는 두 사람을 대신해서 물었다.

 “대체 무슨 근거로 100만 달러라는 금액이 나온 겁니까? 설마 기업가치를 1000만 달러로 잡고 대충 그 10퍼센트면 100만 달러라는 계산은 아니겠죠?”

 “······.”

 대답 못하는 걸 보니 진짜인가 본데.

 나중에 벌어질 소송을 생각한다면 지금 100만 달러 주는 것도 싸게 먹히는 셈이다.

 하지만 뻔뻔한 태도를 보니 굳이 그러고 싶지 않다. 돈이야 적게 줄수록 좋은 거기도 하고.

 “아무튼 그동안 제가 고생한 걸 생각하면 100만 달러는 받아야겠습니다.”

 난 웃으며 말했다.

 “뭔가 오해를 좀 하신 것 같은데, 오늘 보스틱 씨를 보자고 한 건 묻고 싶은 게 있어서입니다.”

 “저한테요?”

 “듣기로는 여러 게임사에 입사를 지원하며 ‘해머 워리어’의 디렉터를 맡아 게임 기획부터 레벨 디자인, 개발 스케줄 관리까지 본인이 다 했다는 포트폴리오를 제출했다는데, 사실인가요?”

 “그게 왜요?”

 난 괜히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해머 워리어는 퍼플게임즈의 중요한 IP입니다. 이 게임을 보고 컨티뉴 캐피탈이 투자를 결정했으니까요. 그런데 회사를 나간 외부인이 혼자 다 만들었다는 식으로 주장한다면 투자자 입장에서는 상당히 곤란합니다.”

 내 말에 그는 당황했다.

 “아, 아니, 제가 다 만들었다고 한 적은 없는데······.”

 “그래요? 그럼 이 부분에 대한 명확한 사실 관계 확인을 위해 더티독 측에 정식으로 문의하겠습니다.”

 “······예?”

 한마디로 그가 경력을 과장했다는 걸 지금 다니는 회사에 알리겠다는 것.

 “또한 현재 더티독에서 개발하는 게임이 ‘해머 워리어’나 ‘블록 밸리’와 조금의 유사성이라도 있을 경우 소송을 진행하겠다는 내용증명을 발송하겠습니다.”

 “뭐, 뭐라구요?”

 “본인 입으로 퍼플게임즈와의 관계가 확실하게 정리된 게 아니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럼 그동안 내놓은 아이디어는 전부 회사에 귀속된 거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

 더티독은 소뉴의 자회사이자 대형 게임사.

 퍼플게임즈가 이런 거대한 회사를 상대로 소송할 수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컨티뉴 캐피탈은 다르다.

 진짜로 소송을 할지 안 할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이전에 몸담았던 회사와 분쟁이 벌어지는 것만으로도 그는 더티독에서 찬밥 신세가 될 것이다.

 어렵게 입사한 회사에서 잘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그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잠깐만요. 이러는 게 어디 있습니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더티독은 이번 일과 아무 관련이 없는데, 왜 그런 걸 보냅니까?”

 “저희는 게임사가 아닌 투자사입니다. 모든 걸 확실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저랑만 얘기하면 되지, 왜 더티독에······.”

 “그게 싫으시다면 이번 기회에 서로 관계를 깨끗하게 정리하시죠.”

 “어떻게 말입니까?”

 “그거야 창업자들끼리 알아서 할 일이죠.”

 난 알아서 하라는 의미로 찰스와 켄을 보았다.

 어쨌거나 그는 자금을 투자한 공동 창업자이고, 블록 밸리의 초기 개발에 참여했다. 그 점이 인정되었기에 사실상 소송에서 이긴 거고.

 찰스는 한숨을 내쉬듯 말했다.

 “좋아. 그럼 처음 투자했던 5만 달러는 돌려줄게.”

 “그거야 당연한 거잖아. 내가 투자한 돈이니까.”

 “그리고 해머 워리어와 블록 밸리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는 대가로 5만 달러를 더 줄게.”

 “10만 달러에 모든 권리를 포기하라고?”

 “이것도 우리 입장에서는 최대한 무리하는 거야.”

 10만 달러면 직장인 입장에서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하지만 스티브는 불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본인은 100만 달러를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가만히 놔두면 거절할 것 같아서 난 먼저 치고 들어갔다.

 “그래도 두 분은 옛정을 생각해 10만 달러를 드리겠다고 하는 것 같은데, 투자자 입장에서는 납득하기 힘든 액수로군요.”

 “뭐라구요?”

 스티브뿐 아니라 찰스와 켄 역시 당황하기는 마찬가지.

 10만 달러를 주기로 한 건 오기 전 미리 상의했던 부분이기 때문이다.

 “먼저 보스틱 씨가 회사에 그만한 기여를 했는지가 의문입니다. 또한 블록 밸리가 주목받고 있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인디 게임 중에서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게임 개발이라는 게 언제 끝날지, 제대로 된 결과물이 나올지는 알 수 없는 일이죠. 작년 산타모니카의 한 유명 게임사가 4천만 달러를 들여 게임을 만들었는데, 완성 직전 내부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고 폐기하는 일도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 상황이 생긴다고 해도 그때 가서 10만 달러를 돌려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슨······.”

 “그러니 이렇게 하는 건 어떻습니까?”

 “어떻게요?”

 “블록 밸리 매출의 0.5퍼센트를 드리겠습니다.”

 “0.5퍼센트요?”

 “예. 현재 예산으로도 개발이 빠듯한데 10만 달러 추가 지출은 무리입니다. 그러니 그냥 매출의 0.5퍼센트 받는 걸로 서로 정리하기로 하죠.”

 매출의 0.5퍼센트로 10만 달러를 받으려면, 게임이 2000만 달러만큼 팔려야 한다. 게임 가격을 20달러라고 한다면 무려 100만 카피가 팔려야 한다.

 각종 수수료를 제한다면 실제 판매량은 이 두 배가 돼야 할 테고.

 트리플A급 게임 중에서도 100만 카피가 안 팔리는 것들이 허다하다. 정말로 이만큼 팔린다면 인디 게임으로서는 경이적인 수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도 게임이 중간에 엎어지지 않고 제대로 만들어졌을 때의 얘기다. 그리고 블록 밸리가 망하기라도 한다면 회사는 아예 사라지게 될 것이다.

 스티브는 발끈해서 말했다.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전 지금 당장 10만 달러를 받아야겠습니다. 방금 전 창업자들끼리 알아서 할 일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찰스가 제안했는데 왜 거기에 딴소리를 하는 겁니까?”

 “그건······ 알겠습니다.”

 난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러났다.

 그러자 찰스는 준비해온 서류를 내밀었다.

 “여기에 사인해.”

 켄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그 시선을 견디기 힘들었는지 스티브는 재빨리 사인했다.

 이걸로 깔끔하게 정리됐다. 앞으로 다시는 회사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겠지.

 난 서류를 챙겼다.

 “돈은 내일까지 보내드리겠습니다.”

 스티브는 웃는 얼굴로 두 사람에게 말했다.

 “게임 잘되길 바랄게. 혹시 나중에라도 내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고.”

 찰스는 인상을 썼다.

 “너랑 다시 연락하는 일은 없을 거야.”

 켄은 이를 갈듯 말했다.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

 “······.”

 * * *

 우리는 다시 회사로 돌아왔다.

 얘기를 전해들은 루퍼스는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자, 잘됐네요. 더 이상 걔 얼굴 안 봐도 돼서.”

 문득 의문이 들었다.

 개발비화 같은 거 봤을 때 엄청 목소리가 크고 말이 많았다는 것 같은데. 혹시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난 작은 목소리로 찰스에게 물었다.

 “루퍼스 씨는 원래 저렇게 말수가 적나요?”

 그는 피식 웃었다.

 “낯을 가려서 그래요. 우리끼리만 있을 때는 얼마나 수다쟁이인데요. 더듬거리지도 않구요.”

 “아! 그렇군요.”

 친해지면 또 다른 모양이다.

 켄이 슬쩍 물었다

 “그런데 아까 어째서 스티브에게 매출의 0.5퍼센트를 제안한 건가요?”

 난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야 나중에 후회할 테니까요.”

 지금이야 그래도 10만 달러 챙겼다고 좋아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 블록 밸리의 매출을 보고 나면, 매출의 0.5퍼센트 대신 10만 달러를 선택한 걸 평생 후회하겠지.

 내 말을 들은 세 사람은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게임 대박 나서 후회하는 꼴을 보면 좋겠네요.”

 “나중에 또 찾아오면 그땐 엉덩이를 걷어차 줘야지.”

 “나, 난 그냥 안 봤으면 좋겠어.”

 웃음이 가라앉고 나자 난 투자 얘기를 꺼냈다.

 컨티뉴 캐피탈이 퍼플게임즈에 투자한 돈은 총 200만 달러.

 이중 100만 달러는 창업자들에게 주었고, 개발비로 지급한 돈은 100만 달러다. 사무실을 구하고 직원을 뽑으며 이 돈은 급격하게 소진되는 중이다.

 “컨티뉴 캐피탈은 추가 투자를 진행해 지분 20퍼센트를 추가로 확보하고 싶은데, 어떠신가요?”

 “얼마나 말입니까?”

 “당장 1천만 달러를 투자하고, 순차적으로 9천만 달러를 투자할 생각입니다.”

 “예?”

 “얼마라구요?”

 “······.”

 다들 ‘잘못 들었나?’하는 표정이었다.

 “지, 지금 1억 달러를 말씀하신 거예요?”

 “예.”

 “개발비가 그렇게 많이는 필요 없는데······.”

 트리플 A급 게임이라 해도 개발비가 1억 달러를 넘는 게임은 손으로 꼽을 정도다.

 “전부 개발비는 아니고, 추후 운영비까지 포함해서입니다. 저희는 블록 밸리로 당장 수익을 낼 생각이 없습니다. 서비스 초기에는 큰 적자를 감수하더라도 매출과 수익을 늘리는데 집중할 생각이니까. 제 생각에 블록 밸리는 역사상 가장 성공한 게임이 될 겁니다.”

 그리고 투자한 돈은 우습게 생각될 정도의 돈을 벌어들이겠지.

 난 계속해서 말했다.

 “일전에 말씀드렸던 대로 퍼블리싱을 위해 퍼블리셔도 인수할 생각입니다.”

 게임을 잘 만드는 것만큼이나 퍼블리싱을 어떻게 하느냐도 중요하다. 제품이 좋아도 마케팅을 잘못하면 망하기 마련이니.

 “어떤 회사인가요?”

 난 생각하고 있는 회사의 이름을 말해주었다.

 그러자 켄과 찰스, 그리고 루퍼스의 표정이 밝아졌다.

 세 사람은 바로 동의했다.

 “그 기업이면 좋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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