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7화. 레전드게임즈 (2) (182/529)

 187화. 레전드게임즈 (2)

 블록 밸리 성공 이후.

 스티브 보스틱은 뒤늦게 회사를 상대로 돈을 요구했다.

 자신이 개발 아이디어를 제시했고, 초기에 개발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1천만 달러를 제시했지만, 창업자들은 이를 거절했고, 스티브는 금액을 열 배로 올려 1억 달러의 소송을 걸었다.

 이 정도 소송을 진행하려면 비용이 수십만 달러에서 100만 달러가 들어간다.

 하지만 미국은 소송의 나라.

 돈이 될 것 같자 로펌들이 소송비는 성공 보수로 받겠다며 달려들었고, 법정 싸움이 벌어졌다.

 문제가 되는 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스티브가 직원이 아닌 5만 달러를 투자했던 공동 창업자였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중간에 회사를 나가긴 했어도 지분 관계 포기 의사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블록 밸리 개발에 있어서 그가 얼마만큼의 기여를 했는지에 대해서 서로의 입장이 엇갈렸다.

 기나긴 법정 싸움 끝에 결국 양측은 합의했다.

 정확한 합의 금액은 비밀이었지만, 최소 2천만 달러를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더해 블록 밸리 매출의 0.5퍼센트도 지급하기로 했다.

 이게 어느 정도 금액이 될지는 당시만 해도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합의를 끝내고 몇 년 지나지 않아 블록 밸리 매출은 메타버스 열풍을 타고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스티브 보스틱은 매년 앉아서 수천만 달러를 챙겼다.

 찰스는 그동안의 불만을 늘어놓았다.

 “스티브는 항상 지시를 내리기만 할 뿐 일은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한 번은 농담처럼 자신은 감독이고 우리는 선수라고 하더군요.”

 “그래도 너한테는 쿼터백이라고 해줬잖아. 난 와이드 리시버였어.”

 “그것도 웃기지. 우리 팀 쿼터백은 루퍼스잖아.”

 쿼터백은 미식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포지션.

 켄이 말했다.

 “그런데도 스티브는 식사 시간만 되면 루퍼스에게 그만 좀 먹으라며 구박했어요. 가뜩이나 돈이 부족한데 식비가 많이 나간다나 뭐라나?”

 “심지어는 루퍼스에게만 식비를 따로 내라고 해서 저희가 말렸습니다. 사람이 먹는 것 가지고 뭐라고 하는 건 좀 아니잖아요.”

 “그 얘기 듣고 루퍼스가 충격 받아서 한동안 의기소침해 있었어요. 어이가 없었죠. 루퍼스가 남들보다 두 배는 먹긴 해도 일은 서너 배로 하거든요. 만약 스티브가 아니라 루퍼스가 나갔다면 퍼플게임즈는 진작 해체됐을걸요.”

 찰스는 고개를 내저었다.

 “솔직히 회사를 나간다고 했을 때 화가 나긴 했지만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어렵고 힘든 건 모두가 마찬가지였으니까요.”

 그 말에 켄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저도 몇 번이고 그만두고 싶었어요. 그래서 스티브가 회사를 떠난 뒤 더티독에 취직했다고 들었을 땐 잘됐다고 축하도 해줬죠.”

 “그런데 나중에 지인을 통해 들으니, 회사를 나가기 전 이미 입사가 결정됐었더군요.”

 “다 같이 밤새가며 고생하고 있을 때 그 자식은 몰래 수십 군데 면접을 보러 다녔던 겁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자기 몫을 요구하는 거구요.”

 “더 화가 나는 건 취업을 하기 위해 ‘해머 워리어’를 자신이 혼자 기획하고 개발했다는 식으로 말하고 다녔다는 겁니다. 그래서 대형 게임사인 더티독에 입사할 수 있었구요.”

 이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그동안 쌓인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사실 공동 창업의 경우 창업들끼리 갈등이 생기는 건 자주 있는 일이다. 아니, 오히려 없는 경우가 드문 편이지.

 둘의 말만 들으면 스티브 보스틱이 나쁜 놈인 것 같지만, 사람 일은 한쪽 얘기만 들어서는 잘 모르는 법.

 스티브의 말을 들어보면 또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가 착한 놈이냐, 나쁜 놈이냐가 아니다. 나중에 블록 밸리 매출을 뜯어간다는 게 문제지.

 난 두 사람에게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찰스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냥 무시하는 게 답이죠.”

 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놈한테는 단 1페니도 주고 싶지 않아요.”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혼자 살겠고 떠난 것도 화가 나는데, 이제 와서 자기 몫을 요구하다니. 말도 섞고 싶지 않겠지.

 하지만······.

 “아니요. 이번 기회에 한번 만나보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두 사람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요?”

 난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발암요소는 미리 제거해놔야죠.”

 그래야 나중에 암에 안 걸린다.

 * * *

 트리플A급 게임들의 경우 보통 거대 게임사들이 대규모 자본과 대규모 인원을 투입해 제작한다.

 반면 소규모 자본과 적은 인원으로 만드는 게임을 인디 게임이라 한다.

 ESD의 등장 이후 게임의 유통과 판매가 쉬워졌다. 게임을 잘 만들기만 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며 인디 게임 전성시대가 열렸다.

 한 개발자는 혼자서 게임을 만들어 출시했는데 엄청난 대박을 치며 수천만 달러 돈방석에 앉았고, 인디 게임으로 출시된 마이 크래프트는 NS에 무려 20억 달러에 팔렸다.

 스타게이트 스튜디오에서 일하던 스티브 보스틱은 큰돈을 벌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게임을 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혼자서는 무리였다. 그래서 회사의 실력 있는 동료들을 꼬드겼다.

 “언제까지 여기서 하청받은 게임만 만들고 있을 거야? 우리끼리 힘을 합쳐서 게임을 만들어보자. 혹시 알아? 엄청난 게임을 만들어낼지?”

 동료들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의기투합한 네 사람은 회사를 박차고 나와 퍼플게임즈라는 게임사를 차렸다. 그렇게 해서 만든 첫 게임이 바로 ‘해머 워리어’.

 게임 출시를 앞두고 스티브는 꿈에 부풀었다.

 ‘게임이 대박이 터지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을 거야. 대형 게임사에서 퍼플게임즈를 수백만 달러에 인수한다고 하면 어떡하지? 바로 100만 달러 버는 건가?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인디 게임 중 성공하는 것은 극소수. 대부분이 빛을 보지 못하고 망하는 걸 생각한다. 다행히 해머 워리어는 그럭저럭 팔려 50만 달러 가까이 벌었다.

 이렇게만 보면 괜찮은 것 같지만, 네 사람이서 나누면 한 사람에 고작 10만 달러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이는 다음 게임 개발을 위해 써야 했다.

 ‘이럴 거면 그냥 회사 다니는 게 나았잖아.’

 고생은 고생대로 하는데 돈은 벌지도 못했다.

 자금은 점점 떨어져 가는데, 차기작 개발은 방향을 잡지 못하고 표류했다. 그는 점점 개발에 대한 의욕을 잃어갔다.

 그가 한 푼이라도 아껴보려고 노력하는데 동료 한 명은 엄청나게 먹어댔다. 다른 사람들 메뉴 하나 먹을 때 혼자 두세 개를 시켜서 먹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속에서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앞으로는 메뉴 한 개까지는 지금처럼 공금으로 내고, 추가로 시키는 메뉴는 개인 돈으로 내는 걸로 하자.”

 그가 생각하기에 이는 너무나도 상식적이고 당연한 요구였다.

 공금으로 내는데 누군가 두 개를 먹으면 한 개만 먹는 사람은 손해를 보게 된다. 이처럼 불공평한 일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는가?

 ‘이렇게 해서 적게 먹는다면 건강에도 도움이 될 거 아니야?’

 하지만 다른 동료들은 그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어째서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야? 이런 마인드로 개발을 하니까 게임이 그 모양이지. 내가 왜 잘 다니던 회사를 나와 이런 짓을 벌였지?’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해졌다. 발밑에 점점 물이 들어차는 느낌이었다.

 침몰하는 배에서는 1초라도 빨리 탈출해야 한다.

 스티브는 동료들이 개발에 매진하는 사이 몰래 다른 게임사들 면접을 보러 다녔다. 다행히 대형 게임사이자 소뉴의 자회사인 더티독에 합격했다.

 연봉 역시 이전에 스타게이트 스튜디오에서 받던 것보다 두 배는 높았다.

 ‘더티독이라니! 그래도 그동안 고생한 게 헛되진 않았네.’

 입사가 결정되자 그는 공동창업한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망해가는 회사의 지분 따위는 관심도 없었다.

 “난 더 이상 못하겠어. 너희끼리 계속하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해.”

 그는 퍼플게임즈의 리더였다.

 따라서 자신이 나가면 팀은 자연히 해체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료들은 계속 남아서 게임을 만들었다.

 그는 그 모습을 보며 비웃었다.

 분명 얼마 못 가 회사는 문을 닫을 테고 다들 급하게 일자리를 구하는 처지가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자신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하겠지.

 그런데······.

 망하기는커녕 어딘가의 투자를 받더니 사무실을 구하고 직원을 더 뽑았다.

 나중에 투자사의 이름을 들은 그는 깜짝 놀랐다.

 ‘컨티뉴 캐피탈이라고?’

 토머스 모터스를 폭락시키며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린 컨티뉴 캐피탈은 가치가 1000억 달러가 넘는다는 클라우드 회사 스노우 크래시를 인수하며 월가의 샛별로 떠올랐다.

 이런 곳의 투자를 받았다는 것만으로 퍼플게임즈는 게임사들과 게이머들의 주목을 끌었다. 대형 게임사는 그들이 개발하는 게임에 큰 관심을 나타냈다.

 그가 모래성이라고 생각했던 블록 밸리는 마치 초고층빌딩을 건축하기라도 하듯 기반을 탄탄하게 닦아 한 층씩 쌓아 올리고 있었다.

 게임의 성공 가능성이 커지며 기업가치가 최소 1000만 달러는 될 거라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스티브는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그가 기껏해야 연봉 10만 달러의 개발자로 만족하는 사이 그의 동료들은 백만장자가 된 것이다!

 ‘너희가 일하는 그 회사. 그 회사가 내 회사였어야 해. 너희가 만드는 그 게임. 그 게임이 내 게임이었어야 해.’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실제로 그랬다!

 가만히 있었다면 부와 명예를 누렸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손으로 그 모든 걸 버리고 나왔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이전처럼 지분 25퍼센트는 아니더라도 자신의 몫을 챙겨야 했다. 그래서 그는 동료들에게 연락해서 말했다.

 “블록 밸리 아이디어는 내가 제시했고, 초기 개발에도 내가 참여했잖아. 그러니 나한테도 대가가 있어야 할 거 아니야?”

 창업을 하자고 한 것도 그였고 법인 설립도 그가 진행했다. 그가 아니었다면 동료들은 지금도 하청업체에서 남의 게임이나 만들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동료들은 그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억울한 마음에 창업할 때 투자한 5만 달러라도 돌려달라고 했지만 그것도 거절당했다.

 그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게임이나 확 망해버려라.’

 생각할수록 너무 억울했다. 밤에 잠도 잘 오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며칠 후.

 갑자기 찰스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지금 시간 돼?]

 * * *

 직접 만나본 스티브 보스틱은 말끔하게 생겼다. 피부도 깨끗하고 수염도 잘 다듬었다.

 그는 나를 보며 물었다.

 “누구신가요?”

 난 손을 내밀며 자기소개를 했다.

 “안녕하세요. 컨티뉴 캐피탈의 한미루라고 합니다.”

 “아! 전 스티브 보스틱입니다.”

 스티브는 찰스와 켄을 보며 말했다.

 “오랜만이야. 다들 잘 지냈지? 루퍼스는 왜 안 나왔어?”

 그러자 찰스가 딱 잘라 말했다.

 “니 얼굴 보고 싶지 않대.”

 “······.”

 어쨌거나 인사를 끝내고 다 같이 자리에 앉았다.

 나를 보는 스티브의 표정이 조금은 미묘했다. 아마 회사에 남아있었다면 자신이 나와 투자 협상을 진행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난 바로 본론을 꺼냈다.

 “얘기는 전해 들었습니다. 개발 중인 게임과 관련해 본인의 몫을 달라고 요구하셨다는데 사실인가요?”

 스티브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전 퍼플게임즈의 공동 창업자니까요. 블록 밸리도 제가 기획했던 게임입니다.”

 그러자 켄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기억 안 나? 처음 샌드박스 게임 아이디어를 제시한 건 나였잖아. 내 아이디어가 아니었으면 블록 밸리는 만들어지지도 못했어.”

 “······.”

 그의 뻔뻔함에 찰스와 켄은 할 말을 잃은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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