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6화. 레전드게임즈 (1) (181/529)

 186화. 레전드게임즈 (1)

 사라는 나에게 말했다.

 “펀드의 운영은 PIF가 맡을 거예요. 이의 있나요?”

 애초에 모든 돈을 PIF가 쏟아붓는 거니 당연한 일이지만······.

 “그러다가 멋대로 운영해서 손실이 나면요?”

 “대신 컨티뉴 캐피탈에는 비토권을 드릴게요.”

 투자에 대해 거부할 권한을 주겠다는 건가?

 애초에 PIF가 직접 투자하는 대신 펀드를 만드는 이유는 내 투자 조언을 받기 위함. 굳이 내 말을 듣지 않을 이유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법.

 “펀드의 최종 결정권자가 누구냐에 따라 생각을 좀 해봐야겠는데요. 귀가 꽉 막혀있는 사람이면 어떡해요?”

 “제가 최종 결정권자예요. 보다시피 제 귀는 멀쩡하구요.”

 그럴 거라 예상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괜찮겠네요.”

 사라는 계속해서 말했다.

 “일전에 제안대로 넥스트로젠 지분 51퍼센트를 80억 달러에 인수할게요. 그다음 30퍼센트 유상증자를 진행해 50억 달러를 추가로 투자할 생각이에요.”

 “처음 얘기했던 20억 달러에서 30억 달러를 추가한 걸 보니, 뭔가 다른 계획이 있는 모양이네.”

 내 말에 사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1차 공장은 미국에 짓더라도 2차 공장은 사우디의 네옴시티에 짓게 할 생각이에요.”

 역시 계획이 다 있구나.

 “신도시에 수소차 공장이라. 좋은 생각이네요. 제조업도 육성하고 수소산업도 육성할 수 있으니.”

 “사우디라고 언제까지 오일만 팔 수는 없잖아요.”

 실제로 라시드 왕자는 쿠데타 이후 사우디의 경제개혁을 시작한다. 이번 투자 역시 그것의 일환이라 할 수 있겠지.

 “그럼 기왕 투자하는 김에 관광업 육성을 위해 블랙우드 주식도 사는 건 어때요?”

 랜섬웨어 사태로 주가가 바닥을 쳤을 당시, 컨티뉴 캐피탈은 숏 포지션을 청산하고 바로 주식을 박박 긁어모았다.

 그렇게 사들인 주식이 10퍼센트가 넘는다.

 워낙 규모가 크다 보니 함부로 내다 팔 수도 없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주가가 폭락할 수도 있으니까.

 가장 좋은 건 장내 매도가 아닌 블록딜(Block Deal)로 넘기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수급에 영향을 주지 않고 매각할 수 있다.

 “최근 주가가 폭등했던데.”

 “여기서 최소 두 배는 더 오를 거예요. 장담컨대 지금 주가가 가장 싼 가격입니다. 만약 3년 뒤 매각가보다 주가가 하락하면 그 가격에 컨티뉴 캐피탈이 되살게요.”

 이익이 나면 좋고, 손실이 나면 다시 컨티뉴 캐피탈에 넘기면 된다. 그야말로 땅 짚고 헤엄치는 투자다.

 사실 미래의 주가가 어찌 될지는 누구도 모른다.

 실제로 이런 식의 옵션 하나 잘못 걸었다가 회사가 망하는 일도 있다. 그러나 난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사라는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자신하는 건가요?”

 “제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요.”

 1회차 때도 블랙우드는 숙박공유업에 진출했다. 하지만 하이엔드 시장에서만 약간 두각을 나타냈을 뿐 에어비앤씨의 상대가 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그때는 ZWS와 손을 잡았지만, 이번에는 스노우 크래시와 손을 잡았으니까.

 “블랙우드 인터내셔널은 스노우 크래시의 실력을 제대로 보여줄 좋은 레퍼런스죠. 블랙우드가 성공을 거둔다면 다른 기업들도 앞다퉈 디지털 전환을 스노우 크래시에 맡길 테니까요. 블랙우드는 3년 후면 세계 최대 호텔회사가 아닌, 세계 최대 숙박공유회사가 될 겁니다.”

 “그렇게 성장할 기업이라면 어째서 매각하려는 거죠?”

 “어차피 매각해도 절반은 여전히 컨티뉴 캐피탈의 몫이잖아요. 그리고 전 그 돈으로 또 사야 할 기업이 있어서요.”

 잠시 생각하던 사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한번 검토해볼게요.”

 “시작부터 대화가 잘 통해서 다행이네요.”

 그녀는 맥주잔을 내밀었다.

 “앞으로 잘 부탁해요.”

 난 가볍게 맥주잔을 부딪쳤다.

 “저도요.”

 이걸로 사우디 자본을 등에 업은 셈이다.

 “그러고 보니 가장 중요한 걸 아직 안 정했네요.”

 “뭔가요?”

 “펀드 이름이요. 좋은 이름 생각나는 거 있어요?”

 난 잠시 생각한 다음 말했다.

 “러시 펀드는 어때요?”

 “빠르게 움직인다는 뜻인가요?”

 “뭐, 그런 거죠.”

 게임할 때 무한정 돈을 쏟아붓는 걸 코인 러시(Coin Rush)라고 한다.

 사우디는 오일을 팔아서 번 돈이 넘쳐난다.

 시작은 겨우(?) 500억 달러지만, 제대로 수익이 나기 시작하면 얼마든지 더 많은 투자금을 끌어올 수 있을 것이다.

 * * *

 조건 조율은 다 끝났으니, 서면계약은 컨티뉴 캐피탈과 PIF 측에서 진행하면 된다. 일단 넥스트로젠 지분을 판매대금이 들어오면 알렉스 프레스턴에게 바로 지급할 예정이다.

 약간 돌려막기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하지만······ 뭐, 상관없겠지.

 우리는 얘기가 끝난 뒤에도 계속해서 술을 마셨다.

 “이제 어디로 갈 거예요?”

 “LA로 돌아가야죠. 저 아직 휴가 중이에요.”

 “아! 휴가 중이라서 집에 온 거군요. 아무튼 잘됐네요. 저도 LA로 가야 하는데. 같이 가요.”

 “무슨 일로요?”

 “거기에 투자한 회사가 하나 있어서요.”

 사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출발해요.”

 “휴가 끝나면 어디서 일하는 거예요?”

 그녀는 에이오일을 그만두고 PIF로 자리를 옮긴다. 그럼 사우디로 돌아가는 건가? 아님 미국?

 “미루 씨와 상의해서 운영해야 하니, 한국에 계속 있을 예정이에요.”

 “그렇군요. 잘됐네요.”

 역시 아는 사람이 편한 법이지.

 PIF와의 공동 투자 사실이 알려지면 컨티뉴 캐피탈의 위상은 한층 더 올라갈 것이다. 이걸 잘 포장해서 홍보를 해야 할 텐데.

 다행히 내가 좋은 언론사를 알고 있다.

 한창 술을 마시던 도중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를 받자 트리시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에요? 호텔에 있어요?]

 “근처 펍에서 술 한잔하고 있어요.”

 [혼자요?]

 난 사라를 한번 본 다음 말했다.

 “아는 사람이랑 함께 있는데, 괜찮으면 올래요?”

 [제가 가도 되는 자리예요?]

 “특종 하나 줄게요.”

 그러자 트리시는 바로 말했다.

 [어디에요? 바로 달려갈게요.]

 잠시 후, 트리시가 도착했다.

 숨을 헐떡거리는 걸 보니 정말로 달려온 모양이다.

 그녀는 놀란 눈으로 나와 사라를 번갈아 보았다. 그러더니 작은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설마 여자친구?”

 난 괜한 오해를 하지 않도록 말해주었다.

 “이쪽은 사라 에어버리. 원래 에이오일에서 일하다가 현재는 사우디 국부펀드에서 일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쪽은 트리시 오코너. WST 기자예요.”

 사라는 먼저 손을 내밀었다.

 “말씀 많이 들었어요. 그동안 쓰신 기사도 잘 봤구요.”

 “예.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인사가 끝나자 트리시가 물었다.

 “그런데 특종은 뭐예요?”

 난 그녀에게 맥주잔을 건네며 말했다.

 “일단 앉아서 이것부터 마시며 숨 좀 돌려요.”

 * * *

 다음 날.

 난 시드에게 떠난다는 얘기를 전한 다음, 사라와 함께 비행기에 올라탔다.

 여기서 LA까지는 금방이다.

 LA국제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공항에서 헤어졌다.

 “그럼 나중에 한국에서 봐요.”

 “잘 가요.”

 난 사라를 택시 태워 보낸 다음, 나도 택시를 타고 산타모니카로 향했다.

 LA 서부 해안에 위치한 인구 10만 명가량의 해안 도시에는 유명 게임사들이 몰려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는 컨티뉴 캐피탈이 투자한 퍼플게임즈도 있다.

 그동안은 자금이 부족해 집 거실에 모여서 일했는데, 투자를 받은 이후에는 제법 규모가 있는 스튜디오를 마련했다.

 직원도 15명가량 뽑았고.

 회사에 들어서자 찰스 그리핀과 켄 어틀리가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서 오세요.”

 “오랜만이네요.”

 처음 투자했을 때 만난 이후로는 처음이다.

 왠지 그때보다 둘 다 얼굴이 피폐해진 모습이다. 게임 개발이라는 게 다 그렇지.

 그들은 가장 먼저 한 남자를 소개시켜주었다.

 나이는 30대 초반. 키 180센티 정도에 몸무게가 150킬로는 될 것 같은 거구다. 얼굴 전체에는 관리하지 않은 수염이 나 있고, 알이 작은 둥그런 안경을 썼다.

 “이 친구가 루퍼스 베일리입니다.”

 소개 받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난 손을 내밀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컨티뉴 캐피탈의 한미루입니다.”

 루퍼스는 과자 부스러기가 묻어있는 손을 바지에 한번 닦은 다음 내 손을 붙잡았다.

 “아, 안녕하세요.”

 말을 더듬고,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피하는 걸 보면, 사람 대하는 게 서툰 모양이다.

 실제로 블록 밸리가 뜬 이후, 찰스와 켄이 대중들 앞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며 소통한 반면 그는 거의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실력만큼은 최고라서, 사실상 그가 블록 밸리의 뼈대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 저기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저한테요?”

 “아, 아니요. 루카스 CEO에게.”

 “예. 그럼 핸드폰 번호······ 아니, 메일이 편하겠네요. 주소 알려드릴게요. 시드에게는 제가 말해 놓을 테니 메일 보내시면 돼요.”

 “가, 감사합니다.”

 표정을 보니 좋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개발자들 사이에서 시드의 인기란······.

 루퍼스는 자리에 앉아 계속 일했고, 난 두 사람과 함께 미팅실에 앉았다.

 난 게임 개발 상황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

 “먼저 PC로 출시하고, 반응을 본 이후 모바일과 콘솔 버전을 개발할 생각입니다.”

 난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할 것 없이 클라우드 게임으로 하는 건 어때요?”

 “예?”

 “클라우드 컴퓨팅 서버에서 게임을 작동시켜 스트리밍하는 거죠. 이렇게 하면 플랫폼에 따라 따로 개발할 필요도 없고, PC, 모바일, 콘솔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모니터와 TV만 있어도 자유롭게 접속해 게임을 할 수 있잖아요.”

 다시 말해 언제 어디서든 게임에 연결할 수 있다.

 찰스는 난감하다는 듯 말했다.

 “그게 기술적으로 쉽지 않은데······.”

 “걱정하지 마요. 그 부분은 스노우 크래시가 알아서 할 테니까요.”

 그 말에 두 사람의 표정이 밝아졌다.

 찰스가 말했다.

 “처음 투자받았을 때만 해도 컨티뉴 캐피탈이 그렇게 대단한 곳인 줄 몰랐습니다. 나중에 스노우 크래시 인수 소식을 보고는 깜짝 놀랐어요.”

 켄은 옆에서 거들었다.

 “이번에 블랙우드 사태를 보며 다 같이 응원했습니다. 랜섬웨어를 해결했다는 뉴스가 떴을 때는 두 손 들고 환호했구요.”

 그때와 지금은 컨티뉴 캐피탈의 위상이 완전히 다르다.

 그건 퍼플게임즈 역시 마찬가지.

 “여기저기서 투자 제안이 밀려 들어오고 있다면서요?”

 블록 밸리 콘셉트 공개 이후 거대 게임사와 IT기업, 그리고 사모펀드들은 큰 관심을 보였고, 투자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이제 투자금 걱정은 없으니 다 거절했습니다.”

 켄은 뭔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며칠 전 스티브에게서도 연락이 왔어요.”

 스티브 보스틱은 퍼플게임즈의 공동창업자 중 한 명.

 “무슨 일로요?”

 “다시 함께할 수 있겠냐고 묻던데요. 돌아오고 싶다고.”

 퍼플게임즈는 스타게이트 스튜디오라는 게임 하청기업에서 일하던 직원 네 명이 자신들만의 게임을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으로 공동 창업한 회사.

 찰스 그리핀, 켄 어틀리, 루퍼스 베일리, 스티브 보스틱은 각자 5만 달러씩을 투자하고 지분을 25퍼센트씩 나눠 가졌다.

 하지만 첫 게임인 ‘해머 워리어’가 크게 성공하지도 못하고, 다음 게임 개발이 지지부진하자 스티브는 지분을 놓고 회사를 떠났다.

 그런데 개같이 멸망하는 줄 알았던 회사가 컨티뉴 캐피탈의 투자를 받으며 불꽃처럼 부활했다.

 그리고 모래성 같던 블록 밸리는 모두의 주목을 받는 게임이 됐다.

 게임이 성공만 하면 수백, 수천만 달러는 우습게 벌 수 있다.

 당연히 생각이 바뀔 수밖에.

 “그래서 뭐라고 했나요?”

 찰스가 말했다.

 “당연히 안 된다고 했죠.”

 켄은 고개를 저었다.

 “스티브는 이전부터 말썽이 많았어요. 맡은 일을 제대로 안 해서 우리끼리 고생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에요. 지금은 그냥 저희 셋이서 일하는 게 편해요.”

 하기야 어려울 때 도망간 친구를 이제 와서 다시 받아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알았다고 하던가요?”

 “아니요. 그럼 자기가 처음 투자했던 5만 달러라도 돌려달라고 하던데요.”

 “그래서요?”

 “그것도 말이 안 돼요. 초기 투자금은 해머 워리어 개발에 썼고, 게임 출시 이후 각자 수익으로 10만 달러 이상을 챙겼어요. 지금도 해머 워리어 수익에 대해서는 25퍼센트씩 계속 지불하고 있구요.”

 켄이 찰스의 말을 거들었다.

 “우리가 요즘 잘나간다고 하니, 괜히 배 아파서 해본 말일 거예요.”

 두 사람은 스티브의 연락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이게 그렇게 대충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1회차 때 이 문제로 인해 엄청난 소송전이 벌어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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