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5화. 오코너 버거 (4) (180/529)

 185화. 오코너 버거 (4)

 난 트리시와 함께 호텔 조식을 먹었다.

 복장은 베이지색 슬랙스에 하얀 니트. 곱슬머리는 하나로 묶고, 안경을 썼다. 남매라고 생각하고 보면 확실히 숀과 닮았다.

 아버지와는 전혀 안 닮았지만.

 그러고 보니 그런 아저씨에게서 이런 딸이 나왔다는 건 혹시 어머니가 엄청 미녀인 건가?

 트리시는 접시에 음식을 잔뜩 담더니, 핸드폰으로 사진을 여러 장 찍고 셀카도 찍었다.

 “여기 조식 너무 맛있지 않아요?”

 좋아하는 모습이 왠지 귀엽다.

 “그렇게 맛있어요?”

 “네. 아침에 일어나서 이렇게 먹으면 일도 더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럼 블랙우드 호텔에서 숙박하지 그랬어요?”

 “출장비가 그만큼 나왔으면 그랬겠죠. 저 비행기도 이코노미 타고 왔어요.”

 그래서 근처의 가성비 좋은 비즈니스호텔을 이용 중이다. 회사가 잘 나간다고 자랑하더니 아직은 좀 힘든 모양이다.

 “어차피 두 명까지는 공짜니까 내일도 와서 먹어요.”

 트리시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왜 공짜예요? 따로 돈 내야 하지 않아요?”

 “이번에 도와줬다고 블랙우드에서 카드 하나 주던데요. 숙박부터 부대시설 이용까지 무료로 이용 가능한.”

 “우와! 정말요?”

 “예. 지금 머무는 방도 침실 세 개짜리예요.”

 트리시는 눈을 크게 떴다.

 “어! 그럼 저도 거기서 자면 안 돼요?”

 “예?”

 이게 뭔 소리야?

 순간, 트리시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그녀는 자신이 한 말에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 그, 그런 의미는 아니구요.”

 “그런 의미가 뭔데요?”

 “그, 그건······ 그냥 제가 있는 호텔은 지저분한데 침실이 여러 개라기에.”

 “그렇군요.”

 “오해하지 마요.”

 “예. 오해 안 해요.”

 “······.”

 그러자 트리시는 잠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왜 그래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러면서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너무 오해 안 하는 것도 좀 그런데’라고 중얼거렸다.

 “뭐라구요?”

 트리시는 급하게 화제를 돌려는 듯 다른 얘기를 꺼냈다.

 “오빠는 푸드트럭 몰고 샌프란시스코로 갔던데요. 줄 서고 난리도 아니래요.”

 “저도 영상 봤어요.

 이미 인터넷으로 유명해진 만큼 가는 곳마다 선풍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심지어는 트래픽이 몰리는 바람에 푸드트럭 위치를 알리는 앱이 다운됐을 정도다.

 페르난도가 프랜차이즈 1호점 개점 준비를 진행하느라 여기 남아있는 만큼, 푸드트럭에서 일할 직원은 따로 고용했다.

 “사실 아빠는 프랜차이즈를 싫어하세요. 다른 식당을 가도 프랜차이즈는 가지 않을 정도로요. 만약 다른 사람이 오코너 버거를 프랜차이즈로 만들겠다고 했으면 화부터 냈을걸요. 그런데 오빠랑 미루 씨가 함께 한다고 하니 믿고 맡길 수 있을 것 같대요.”

 “아들이야 그렇다 쳐도 저를요?”

 트리시는 눈을 찡긋했다.

 “미루 씨 덕분에 저도 오빠도 잘되고 있잖아요.”

 1회차 때도 숀은 오코너 버거 창업자로 돈도 많이 벌고 엄청 유명해진다. 반면 트리시에 대한 얘기는 없었다.

 하기야 내가 아니었다면 WST는 그저 그런 인터넷 언론사였을 테고, 그녀 역시 유명 기자가 되는 일은 없었을 테니.

 사람 인연이라는 게 참 신기하단 말이지.

 난 커피를 마시며 물었다.

 “스노우 크래시 취재는 잘되고 있어요?”

 “예. 아! 그런데 하나만 더 부탁해도 돼요?”

 “뭔데요?”

 “회사 취재는 허락받았는데, 루카스 CEO 인터뷰는 거절당해서요.”

 “시드가 원래 모르는 사람이랑은 얘기를 잘 안 해요.”

 트리시는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꼭 좀 부탁드릴게요. 사실 여기 오기 전 루카스 CEO 인터뷰 따낼 거라고 바넷사한테 큰소리쳐놨거든요. 못했다고 하면 비웃을 게 뻔한데.”

 “그게 누구예요?”

 “그냥 그런 애가 있어요.”

 “······.”

 그런데 왜 이렇게 경쟁심을 불태우고 있어?

 어쨌거나 표정을 보니 간절한 모양이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한번 얘기해볼게요.”

 “고마워요. 다음에 제가 맛있는 거 살게요.”

 “맛있는 것 됐고 기사나 잘 써줘요.”

 “그거야 당연하구요.”

 트리시는 팬케이크에 메이플 시럽을 뿌리며 슬쩍 물었다.

 “그런데 컨티뉴 캐피탈의 다음 투자계획은 어떻게 돼요?”

 “그건 비밀인데.”

 “그러지 말고 저한테만 살짝 말해줘요.”

 “취재하는 거예요, 그냥 궁금한 거예요?”

 “둘 다죠.”

 “엠바고 지켜줄 수 있어요?”

 “그럼요. 기사 내도 된다고 할 때까지는 아무 말도 안 할게요.”

 대단한 비밀도 아닌지라, 난 솔직하게 말해주었다.

 “게임 퍼블리셔를 인수할 계획이에요.”

 “퍼블리셔요?”

 “예. 게임사에 투자한 게 있어서, 그 회사가 만든 게임을 퍼블리싱을 할 만한 곳을 찾아야 하거든요.”

 “아! 퍼플게임즈요?”

 “맞아요.”

 트리시는 고개를 갸웃했다.

 “게임 하나를 런칭하기 위해 퍼블리셔까지 인수하겠다는 거예요? 보통은 그냥 맡기지 않나요?”

 난 씨익 웃었다.

 “그게 보통 게임이 아니라서요.”

 * * *

 난 호텔 근처의 테라스 카페에 앉아 본사에서 보내준 투자보고서를 검토했다.

 날씨는 좀 쌀쌀하지만, 태양의 도시라는 말처럼 강렬한 햇빛이 내리비쳐서 눈이 부실 정도다.

 그래서인지 길에서 선글라스를 쓰고 다니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투자보고서에는 게임 퍼블리셔와 ESD 회사들의 내용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과거 게임을 사려면 음반이나 책과 마찬가지로 직접 매장에 가서 구매해야 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구매한다 해도 상품을 배송받으려면 하루 이틀 기다려야 했고.

 하지만 현재는 다른 소프트웨어와 마찬가지로 인터넷으로 구매해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이를 ESD(Electronic Software Distribution, 전자 소프트웨어 유통망)라고 한다.

 ESD 덕분에 굳이 집 밖으로 나갈 필요 없이 누구나 손쉽게 게임을 구매하고 설치해서 바로 즐길 수 있다.

 개발사는 게임을 만들고, 퍼블리셔는 게임을 유통하고, ESD는 게임을 판매한다.

 하지만 이 셋의 영역이 명확하게 나뉜 것은 아니다. 대형 개발사의 경우 자체적으로 퍼블리싱하고, ESD도 운영하니까.

 반대로 퍼블리셔가 직접 게임을 만들기도 하고, ESD가 게임을 유통하기도 한다.

 편하게 생각한다면 퍼블리싱과 판매를 다른 곳에 맡기면 그만이다. 유통과 판매가 잘돼야 게임도 흥할 테니까.

 하지만 그렇게 하면 많게는 수익의 절반을 떼줘야 한다.

 블록 밸리의 성공은 이미 보장되어 있다.

 굳이 남 좋은 일 시켜줄 필요가 있나? 유통과 판매까지 직접 해서 혼자 다 먹을 생각이다.

 “문제는 돈인데.”

 현재도 게임시장은 매년 20퍼센트씩 급성장하는 중이다.

 다른 산업과 비교하면 말도 안 되게 빠른 성장세지만, 몇 년 후면 시장이 그야말로 미쳐 돌아가기 시작한다.

 그 이유는 디지털화의 가장 큰 수혜를 받는 산업이기 때문이다.

 더 늦기 전에 서둘러 움직여야 한다.

 사실 어느 회사를 인수할지는 이미 점찍어 놓았다.

 돈이 없을 뿐이지.

 “사우디 왕자님께서는 언제쯤 결정하시려나?”

 그러고 보니 이때쯤 슬슬 미국이 터키 경제제재를 시작할 텐데. 그거 보고 나면 빨리 나와 손을 잡고 싶어지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는데, 전화가 걸려 왔다.

 [안녕하세요.]

 난 반갑게 말했다.

 “오랜만이에요. 잘 지냈어요?”

 전화를 건 사람은 다름 아닌 사라 에이버리.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본 뒤로 꽤 시간이 흘렀다.

 그녀는 나에게 물었다.

 [지금 실리콘밸리예요?]

 “예.”

 [블랙우드 호텔에 머물고 있구요?]

 “어, 어떻게 알았어요?”

 [GIP가 알려줬어요.]

 그 말에 난 깜짝 놀랐다.

 “뭐라구요?”

 GIP란 사우디아라비아 중앙정보국(General Intelligency Presidency). 한국으로 치면 국정원 같은 곳이다.

 그런 곳에서 내 동선을 추적하고 있다니!

 사라는 웃으며 말했다.

 [농담이에요. 그런 짓을 할 리 없잖아요.]

 “그럼 어떻게······?”

 [동호 씨에게 전화해서 물어보니 알려주던데요.]

 “아, 그렇군요.”

 하기야 전화만 하면 알 수 있는 일을 굳이 정보기관 동원해서 추적할 리가 있나?

 [저녁에 시간 괜찮아요? 만났으면 하는데. 제가 그쪽으로 건너갈게요.]

 “지금 미국에 있어요?”

 [예. 저도 캘리포니아에 있어요. 저녁 7시 어때요?]

 “좋아요.”

 * * *

 펍에 들어서자 누군가 손을 들어 보였다.

 “여기예요.”

 뚜렷한 이목구비에 어깨까지 내려오는 갈색 머리카락. 실크 블라우스에 정장을 입고, 옆에는 코트를 벗어놓았다.

 난 맞은편에 앉았다.

 “여기서 만나니 더 반갑네요. 설마 절 만나러 미국에 온 거예요?”

 “겸사겸사요. 오랜만에 집에도 한번 갔다 오고요.”

 “집이요?”

 “부모님이 LA에 살고 계세요.”

 그녀는 엄연히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인이다. 물론 사우디 국적도 있겠지만. 그나저나 집이 LA인 줄은 몰랐다.

 우리는 맥주를 마시며 밀린 얘기를 나눴다.

 “컨티뉴 캐피탈은 그사이 또 유명해졌던데요. 설마 사흘 만에 랜섬웨어를 해결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제가 직접한 일도 아닌데요.”

 “요즘 유행하는 오코너 버거에도 컨티뉴 캐피탈이 투자했다는 얘기가 있던데.”

 “그건 창업자랑 인연이 좀 있어서요.”

 “신기하네요.”

 “뭐가요?”

 “하는 일마다 다 잘된다는 게요.”

 “운이 좋았어요.”

 사라는 피식 웃었다.

 “그 운이 계속되면 좋겠네요. 지난번 제안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컨티뉴 캐피탈과 PIF의 공동 펀드 투자 말이죠?”

 “예.”

 사라는 바로 결론을 말했다.

 “제안을 받아들일게요.”

 “아직 미국이 터키 경제제재를 하지 않았는데.”

 “이미 그런 분위기던데요. 그전부터 사힌 대통령의 행보에 대해서는 우려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터키 관련 자산들을 조금씩 매각 중이었구요.”

 “역시 관련 정보를 수집 중이었던 모양이네요.”

 하기야 터키의 상황은 중동 정세에도 영향을 끼칠 테니, 사우디 입장에서는 예의주시하고 있겠지.

 사라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시간을 두고 우리 쪽으로 유리하게 조건을 조정해볼 생각이었어요.”

 사실 급한 건 나였다.

 스노우 크래시 잔금 기일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넥스트로젠 지분부터 서둘러 매각하려 했던 거고.

 그걸 알기에 시간을 좀 끌었던 모양이다.

 “그런데요?”

 “이번에 블랙우드에 투자해 얻은 수익을 보니, 빨리 진행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판단했어요.”

 그전까지 컨티뉴 캐피탈의 현금은 20억 달러에 불과했다. 하지만 블랙우드가 폭락할 때 투자하고 폭등할 때 투자한 덕분에 현재는 160억 달러까지 불어났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잘 생각했어요. 자금 규모는 얼마로 생각해요?”

 “500억 달러요.”

 난 속으로 놀랐다.

 내가 처음 제안했던 금액은 100억 달러. 이것만 해도 11조 원이다.

 그런데 규모를 무려 다섯 배로 키웠다. 이 정도면 PIF가 가진 현금자산을 전부 여기에 쏟아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왜요? 너무 많나요?”

 “예상보다 많긴 하네요. 큰돈에는 큰 책임이 따르는 법이라던데.”

 “자신 없으면 지금 얘기해요.”

 난 고개를 저었다.

 “자신 없긴요. 돈은 언제나 많을수록 좋은 법이죠.”

 PIF가 이 정도 금액을 투자하는 건 라시드 왕자의 결정 없이는 불가능하다. 만약 펀드가 잘못되면 그의 책임론이 불거질 것이다.

 아무리 내 실력을 믿는다고 해도 이렇게 과감하게 투자하다니. 역시 보통 사람은 아니라는 건가?

 “투자 방식은요?”

 “일전에 제안한 5대5 그대로요.”

 새로 펀드를 조성해 국부펀드와 컨티뉴 캐피탈이 5대5로 투자하는 방식이다. 컨티뉴 캐피탈이 투자하는 돈은 국부펀드가 대출 형식으로 빌려주고.

 “그럼 컨티뉴 캐피탈이 250억 달러를 빌리는 셈이네요.”

 “예. 상환기한은 펀드를 청산할 때까지로 하고, 이자는 어떻게 지불할 생각이에요?”

 이율은 무려 연 10퍼센트.

 250억 달러의 10퍼센트면 이자만 매년 25억 달러다.

 “······.”

 생각해보면 이거 미친 거 아닌가?

 “나중에 복리로 몰아서 낼게요.”

 “7년이면 이자가 원금만큼 나올 텐데요.”

 “괜찮아요.”

 투자해서 그 이상 벌기만 하면 아무 문제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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