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오코너 버거 (3)
며칠 전까지 앱 개발을 하다가 갑자기 푸드트럭 장사를 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숀은 아버지 가게에서 일한 경험이 있고, 페르난도 역시 학창시절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때문에 서툰 것도 잠시뿐. 두 사람은 금세 적응해 손발을 맞췄다.
연습 끝에 푸드트럭을 몰고 장사를 시작했지만, 판매는 저조했다.
500만 달러를 투자해 프랜차이즈화를 하겠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그것도 장사가 잘될 때의 얘기.
지금처럼 안 팔리면 투자를 받아봐야 안 될 게 뻔하다.
“가격이 너무 비싼 게 문제인가?”
숀의 말에 페르난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푸드트럭 햄버거치고는 비싸긴 하지.”
맥도날드의 저렴한 세트는 5달러. 하지만 오코너 버거는 무려 15달러. 거의 세 배는 비싼 셈이다.
실제로 가격만 보고, 뭐 이리 비싸냐며 다른 곳으로 간 사람들도 많았다.
“뉴욕에서는 그 가격에 잘 팔렸다며?”
“거기야 펍이니까.”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먹는 펍은 다소 가격이 비싸도 팔린다. 하지만 직장인 상대로 하는 푸드트럭은 아무래도 가격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2달러 정도 낮춰볼까?”
페르난도는 숀의 제안에 대해 한참을 고민한 다음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가격은 낮추기는 쉬워도 올리기는 어려워. 그렇다고 저렴한 빵과 패티를 쓰면 다른 햄버거와 별 차이가 없고. 오코너 버거는 프리미엄 버거로 가는 게 맞아.”
함부로 낮췄다가는 싸구려 이미지가 생길 우려가 있다.
그냥 이벤트성으로 장사하는 거라면 수익이 많든 적든 별 상관없다. 하지만 프랜차이즈화까지 생각한다면 지금부터 이미지 관리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
무엇보다······.
“내가 먹어본 오코너 버거는 분명 그 돈 내고 먹을 가치가 있었어. 이제 시작이니 기다려보자.”
다행히 며칠 지나자 슬슬 고객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몇몇 고객은 맛있다며 매일 같이 찾아오기도 했다.
푸드트럭 개점 일주일째.
숀과 페르난도는 또다시 푸드트럭을 몰고 장사에 나섰다.
“오늘 날씨가 춥네. 손님이 오려나?”
“준비한 재료만큼만 다 팔면 좋겠는데.”
“그러면 대박인데.”
“오늘도 열심히 해보자!”
코너를 돌자 푸드트럭이 주차하는 공터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줄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뭐지? 오늘 인기 푸드트럭이라도 오나?”
“그러게. 엄청나게 많은데.”
“좋겠다. 대체 얼마나 맛집이기에······.”
“우리도 이따 사 먹어볼까?”
페르난도는 정해진 위치에 주차를 했다.
그러자 사람들의 함성이 터졌다.
“왔다!”
“드디어 왔다!”
“오코너 버거 트럭이다!”
“와아아!”
그 반응에 두 사람은 깜짝 놀랐다.
“자, 잠깐. 이 사람들 우리를 기다렸던 거야?”
숀은 재빨리 내려서 트럭의 옆문을 열었다.
“바로 판매되나요?”
“얼마나 기다려야 해요?”
“그, 금방 준비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판매가 시작되자 줄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은 재빨리 돈을 내밀며 말했다.
“오코너 버거 다섯 개 포장이요!”
“세트로 열두 개 포장이요!”
“스물일곱 개 포장해 주세요!”
그러자 뒤에 선 사람들이 거센 항의가 쏟아졌다.
“아니, 앞에서 그렇게 많이 사면 다른 사람들은 뭐가 됩니까?”
“니들은 양심도 없냐?”
“인당 한두 개만 사라!”
“나 오전 7시부터 와서 기다렸어!”
“거, 밀지 좀 맙시다!”
숀과 페르난도는 좁은 푸드트럭 안에서 정신없이 패티와 빵을 굽고 햄버거를 만들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페르난도는 판매 정책을 바꿨다.
“이제부터 인당 두 개씩만 판매하겠습니다!”
그럼에도 줄은 줄어들기는커녕 점점 늘어났다.
‘이거 뭐야? 무서워.’
어렵게 구매에 성공한 사람들은 바로 먹는 대신 사진과 영상을 찍느라 바빴다.
개점한 지 두 시간도 되지 않아 재료가 전부 동났다.
“죄송합니다만, 오늘 영업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그러자 줄을 선 사람들은 탄식했다.
“말도 안 돼!”
“또 언제 오나요?”
“내일은 어디서 파나요?”
페르난도는 그들에게 말했다.
“영업시간과 장소는 블루웨건 앱을 확인해주세요.”
* * *
실리콘밸리에서는 때아닌 햄버거 열풍이 불었다.
햄버거는 미국인들의 소울푸드나 다름없다.
미국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부자인 에런 화이트 회장은 아침마다 맥도날드에서 맥모닝을 먹고, 한 대통령은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햄버거를 먹었다가 대중들의 거센 비난을 받기도 했다.
햄버거는 손으로 들고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미국인들의 햄버거에 대한 애착은 남다르고, 작은 맛의 차이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햄버거라고 하면 보통 저렴하게 한 끼 때울 수 있는 패스트푸드로서의 이미지가 강하다. 건강에 안 좋은 음식이라는 소문이 퍼지며 한때는 비만의 주범으로 인식되기도 했고.
하지만 오코너 버거는 이와는 정반대다.
오코너 버거는 갓 구운 감자번에 두툼한 고기패티, 신선한 야채와 스크램블에그. 그리고 콜라 대신 캘리포니아 오렌지로 갓 짜낸 주스를 함께 판매한다.
패스트푸드가 아닌 건강한 프리미엄 버거라는 인식이 퍼지기만 하면, 비싼 가격은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난 인터넷으로 여론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혹시나 나로 인해 뭔가 달라지는 바람에 오코너 버거가 흥행을 못 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기우였다.
생각해보면 원래도 이슈 때문에 버거가 뜬 게 아니라, 버거가 맛있어서 이슈가 생겼었으니.
과거에는 소문이 퍼지려면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지금은 그야말로 빛의 속도.
에이튜브와 톡틱 등에는 오코노 버거를 먹고 감상을 올리는 것이 마치 유행처럼 번졌다. 뭔가가 유행하면 하고 싶어지는 사람들의 심정.
사람들은 실시간으로 오코너 버거의 사진과 영상을 올렸고, 거기에는 수많은 댓글들이 달렸다.
하지만 좁은 푸드트럭에서 두 명이 하루에 팔 수 있는 양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집에서 보내주는 재료에도 한계가 있을 테고.
때문에 개점 한두 시간 만에 문을 닫는 일이 반복됐다.
하도 먹기 힘들다 보니, 구매를 성공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온갖 드립이 쏟아졌고, 이는 못 먹은 사람들의 욕구를 더욱 자극했다.
일종의 헝거 마케팅이라고 봐야 하나?
여기에 숀 오코너의 사연 역시 눈길을 끌었다.
[실리콘밸리를 강타한 오코너 버거 열풍]
(전략) 유명 IT회사 블롬블록 CEO 제이크 블롬은 ‘오코너 버거는 햄버거의 혁신이다’라며 극찬했고, 에이튜버 음식 리뷰어인 파티나잇은 ‘단언컨대 오코너 버거는 내가 먹어본 최고의 햄버거다. 뉴욕에 본점이 있다고 하는데, 뉴요커라면 즉시 달려가서 먹어보기 바란다’라고 말했다.
(중략)
오코너 버거를 팔게 된 계기도 흥미롭다.
숀 오코너는 많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개발자로서 성공을 꿈꾸며 고향을 떠나 실리콘밸리로 왔다.
그러나 사업은 망했고, 월세마저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
어쩔 수 없이 다음 창업 아이템을 찾을 때까지 집에서 먹던 오코너 버거를 팔아보기로 하고 푸드트럭 장사에 나섰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인기를 끌게 된 것이다.
난 기사를 쓴 당사자를 보았다.
“잘 썼네요. 사진도 먹음직스럽게 잘 찍었고.”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금 오코너 펍까지 난리 났어요. 뉴요커들이 몽땅 몰려온 거 알아요?”
“그래요?”
“아빠는 이러면 단골들이 떨어져 나간다며 한숨을 내쉬는 중이에요. 대체 뒤에서 무슨 수를 쓴 거예요?”
“수를 쓰다니요. 전 아무것도 안 했는데.”
트리시는 미심쩍다는 시선으로 나를 보았다.
“정말요?”
“예.”
난 피식 웃으며 물었다.
“그런데 여기는 어쩐 일이에요?”
“취재를 위해 출장 왔어요.”
“오! 뉴욕의 지역 인터넷 언론사가 캘리포니아까지 출장도 보내주다니.”
트리시는 두 손을 허리에 얹으며 말했다.
“왜 이래요? 우리 요즘 엄청 잘나가요.”
“하긴, 그렇겠네요. 특종을 그렇게 많이 터트렸으니.”
미국 최고의 경제지라고 하면 당연히 월스트리트저널(WSJ).
처음 월스트리트타임즈(WST)의 이름을 들은 사람들은 월스트리트저널의 짝퉁이냐며 비웃었다.
그런데 최근 대중들의 입에는 WSJ보다 WST가 더 오르내렸다.
그 이유는 토머스 모터스 사태부터 시작해 WSJ도 내지 못한 특종들을 줄줄이 터트렸기 때문.
이제는 WST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특종 제보한 사람에게 밥이라도 사야 하는 거 아니에요?”
트리시는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와! 있는 사람이 더 하다더니. 그래도 부탁할 게 있으니, 밥은 제가 살게요.”
“무슨 부탁인데요?”
“혹시 스노우 크래시를 취재할 수 있을까요?”
“독점으로 말이죠?”
“그러면 더 좋죠.”
안 그래도 블랙우드 사태 이후 사방에서 취재 요청이 밀려드는 중이다. 그만큼 기업들뿐 아니라 대중들의 관심이 높아지기도 했고.
WST가 계속 잘나가야 내가 앞으로 할 일에도 도움이 되겠지?
“알았어요. 시드에게는 제가 말해둘게요.”
“앗! 고마워요. 은혜 잊지 않을게요.”
* * *
난 블루웨건 창업자들을 만났다.
숀와 페르난도는 거의 녹초가 된 모습이었다. 눈 주변이 퀭하고 온몸이 흐느적거린다. 장사라는 게 이렇게 힘든 것이다.
“직접 해보니 어때요? 프랜차이즈로서 가능성이 보이지 않나요?”
숀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이 정도로 인기를 끌 거라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페르난도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런데 너무 서둘러 진행하면 품질 관리가 힘들지 않을까요? 먼저 재료 생산 공장과 유통망, 창고 등을 확보해 놓고 맞춰서 진행해야 할 것 같은데.”
“그렇죠. 저도 서두를 생각은 없어요.”
역시 그 부분에 대해 이미 생각하고 있었구나.
오코너 버거가 유명해진 건 단지 숀 오코너 때문만은 아니다. 페르난도 도밍고 역시 엄청난 역할을 했다.
한 매장에서 요리를 만드는 것과 100개의 매장에서 동일한 요리를 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게다가 식자재 같은 경우 공장에서 찍어내는 게 아닌 만큼, 계절과 작황과 관계없이 수량과 품질을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
이처럼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같은 맛을 제공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맛집 소리 듣는 음식점이 무작정 지점을 늘리다가 망하는 사례가 어디 한둘이겠는가?
따라서 프랜차이즈화를 위해서는 뛰어난 경영자의 역할이 필수다.
그러한 역할을 페르디난도 도밍고가 해낸다.
맥도날드를 만든 건 맥도날드 형제였지만, 이를 프랜차이즈화한 건 레이 크록. 그가 아니었다면 맥도날드는 그저 동네에서 유명한 햄버거 가게 정도로 남았을 것이다.
스타벅스 역시 하워드 슐츠가 아니었다면, 전 세계에 커피 문화를 전파하지 못하고 동네 카페로 남았겠지.
페르난도가 물었다.
“정말로 오코너 버거를 프랜차이즈로 키울 생각이세요?”
“예. 일단 500만 달러를 투자하겠습니다. 컨티뉴 캐피탈이 지분 55퍼센트를 추가로 인수해 70퍼센트를 확보할 생각인데, 이의 없으시면 이대로 계약 진행하겠습니다.”
숀과 페르난도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망한 스타트업 창업자에서 순식간에 자본 500만 달러짜리 기업의 사장이 된 셈이니까.
숀 오코너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어째서 그렇게 큰 금액을 투자하시는 건가요?”
“오코너 버거가 맛있어서요. 그 햄버거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어요.”
“그, 그래도 그냥 베낄 수도 있었을 텐데. 레시피도 그렇게 복잡한 것도 아니고.”
작정하고 베끼면 똑같은 맛을 내지 못할 것도 없다.
하지만······.
“아무리 맛이 똑같아도 그건 오코너 버거가 아니잖아요.”
똑같은 가죽으로 똑같이 만든 가방이라도 명품 브랜드 로고가 박혀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가격은 열 배 이상 차이 난다.
브랜드란 곧 정체성이다.
오코너 버거라는 이름을 쓰지 못한다면 이 햄버거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도밍고 씨는 프랜차이즈 1호점과 유통망을 준비하고, 그사이 오코너 씨는 푸드트럭을 몰고 샌프란시코와 LA 일대를 돌아다니며 장사하세요.”
지금의 유명세면 어디를 가든 사람들이 몰릴 것이다. 할리우드의 스타들이 먹고 SNS에 올리면 더욱 유명해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