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화. 오코너 버거 (2)
블랙우드에서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어쩌다 보니 창업 컨설턴트가 된 것 같은 느낌이다.
어차피 다 본인들이 할 일인데 왜 이렇게 빼는지 모르겠다.
사람 귀찮게 말이지.
“오코너 버거는 재료비가 꽤 비싼 편이라 푸드트럭에는 안 맞을 것 같은데요.”
푸드트럭은 아무래도 간편하고 저렴한 음식들이 선호되기 마련.
하지만 오코너 버거는 단품 가격만 9달러. 이 정도면 햄버거치고는 비싼 가격이다.
“괜찮아요. 이 동네 사람들이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맛과 특색만 있으면 기꺼이 구매할 겁니다. ‘맨해튼의 명물’이나 ‘뉴욕 최고의 햄버거’라고 하면 사람들이 몰리지 않을까요?”
숀 오코너는 당황했다.
“어, 음, 저희 가게가 그 정도로 유명하진 않은데요.”
지금 시점에서는 그저 작은 펍에서 파는 햄버거일 뿐. 그러나 수년 뒤면 전 세계인이 즐기는 햄버거가 된다.
“원래 홍보란 그렇게 하는 거죠. 그리고 제가 먹어본 결과 틀린 말도 아니에요.”
“필요한 게 한둘이 아닌데.”
“푸드트럭은 구매하면 되고. 번과 패티 등 핵심 재료는 본사······ 아니, 집에서 보내달라고 하면 되지 않겠어요?”
“그렇긴 한데······.”
난 망설이는 그에게 말했다.
“다음 사업 아이템을 구상할 겸 딱 1개월만 해보세요. 이번에 만든 앱으로 위치 알려주고 홍보하면 될 거예요. 투자는 제가 하죠.”
페르난도가 슬쩍 물었다.
“투자라면 얼마나요?”
펍에서 만났을 때와는 다르게 지금은 주머니가 두둑하다.
“푸드트럭 구매와 운영비는 물론이고, 초기비용으로 500만 달러를 투자해 프랜차이즈화까지 지원할 예정입니다.”
내 말에 두 사람은 입을 쩍 벌렸다.
“헉! 500만 달러!”
돈 없는 창업자에게는 투자자가 갑이다.
거절하기에는 너무 큰 돈이겠지.
* * *
숀과 페르난도는 바로 움직였다.
먼저 중고 푸드트럭을 하나 구했고, 영업허가를 신청했다. 페르난도가 트럭을 말끔하게 단장하는 사이, 숀은 핸드폰을 앞에 두고 고민했다.
‘성공해서 당당하게 돌아가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몇 달 만에 집에 손을 벌려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나마 돈 빌려 달라는 게 아니라, 재료를 보내달라는 거라서 다행이지만.
그는 심호흡을 한 다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아버지.”
[무슨 일이냐?]
“드릴 말씀이 좀 있어서요.”
[뭔데?]
“친구와 푸드트럭을 해보려고 하는데, 햄버거 재료들을 보내주셨으면 해서요.”
[푸드트럭? 회사는 어쩌고?]
숀은 솔직하게 사정을 설명했다.
“열심히 했지만 잘 안 됐어요. 그래서 푸드트럭을 해보며 다시 도전하려구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설마 당장 집으로 돌아오라고 하시는 건 아니겠지?’
뭐라고 설득하면 좋을지 고민하는데, 바로 대답이 들려왔다.
[알았다. 바로 만들어서 보내주마.]
“아, 감사합니다.”
[크흠, 감사는 무슨. 날씨 추운데 건강 잘 챙기고.]
전화를 끊기 전 숀은 말했다.
“아버지도 건강 잘 챙기세요. 조만간 집에 한번 갈게요.”
* * *
오코너 펍의 사장 칼 오코너는 담담하게 전화를 끊었다.
그는 전화가 오기 전 이미 소스와 패티 등을 잔뜩 준비해놓은 상태였다. 포장까지 해놔서 항공배송으로 보내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미리 준비할 수 있었던 건 딸이 찾아와서 귀띔을 해줬기 때문.
그는 딸을 보며 말했다.
“너무 많이 준비한 것 같은데. 숀이 이걸 다 팔 수나 있을까?”
트리시는 고개를 저었다.
“미루 씨가 그러는데, 많으면 많을수록 좋을 거래요.”
그녀는 한미루와 했던 통화를 떠올렸다.
블랙우드 랜섬웨어 사태가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특종을 제보하나 했는데, 갑자기 뜬금없는 얘기를 꺼냈다.
‘오코너 버거를 세계적인 프랜차이즈로 만들겠다고?’
만약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사기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미루라면 얘기가 다르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정말로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그 사람이 실패할 때도 다 있네.’
그가 투자한 것 중 잘되지 않은 게 없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하나하나가 상상을 초월하는 대박이었다.
아마 실패한 건 이번이 유일할 것이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푸드트럭으로 오코너 버거를 팔아보라고 제안한 게 좀 수상한데. 설마 처음부터 이럴 계획으로 투자한 건가?’
* * *
재료가 준비되자 숀과 페르난도는 좁은 푸드트럭에서 동선을 맞추는 연습을 했다.
원래 오코너 버거는 펍에서 판매했다. 때문에 흑맥주와 함께 팔았으나, 푸드트럭에서 주류 판매는 안 된다.
집에서 술까지 보내달라고 하기도 힘들고.
“그냥 콜라와 함께 팔면 다른 햄버거와의 차별점이 별로 없을 것 같은데.”
페르난도가 의견을 냈다.
“오렌지주스는 어때?”
“오렌지주스?”
“캘리포니아 하면 오렌지 아니겠어? 그냥 시판 주스가 아니라, 신선한 오렌지로 짜낸 주스를 같이 파는 거지.”
그 의견에 따라 같이 만들어서 먹어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잘 어울렸다.
하지만 숀은 여전히 걱정이 앞섰다.
“주위에 유명 푸드트럭과 맛집들이 가득한데, 이런 곳에서 과연 오코너 버거가 잘 팔릴까?”
그는 어렸을 때부터 오코너 버거를 질리도록 먹어왔다. 때문에 그다지 특별한 맛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숀이 만들어준 버거를 먹어본 페르난도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무슨 말이야? 엄청 잘 팔릴 것 같은데.”
“가격도 너무 비싸잖아. 다른 푸드트럭과 경쟁하려면 3달러 정도는 낮춰야 할 것 같은데.”
“재료비가 비싸서 그 가격에 팔아도 남는 것도 얼마 없어. 다들 사 먹으려고 줄을 설 테니 걱정하지 마.”
“그랬으면 좋겠는데.”
어쨌거나 준비를 끝마친 두 사람은 푸드트럭을 몰고 첫 장사에 나섰다.
숀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실리콘밸리까지 와서 햄버거를 팔게 될 줄이야.’
착잡해하는 숀과는 달리 페르난도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왜 이렇게 신나지? 혹시 이게 내 천직인가?’
* * *
블랙우드 랜섬웨어 사태 이후 스노우 크래시는 주요 고객들을 여럿 확보했다.
고객이 늘어서 좋긴 한데, 그에 따라 해야 할 일도 늘었다.
FBI와 NSA를 위한 클라우드 시스템 구축, 블랙우드의 숙박공유업 진출을 위한 시스템 구축 및 앱 개발, 여기에 ZWS의 보안 시스템 개편까지.
직원들은 늘어난 업무량에 비명을 질렀다.
가장 바빠진 사람은 다름 아닌 CEO.
시드는 거의 쉬지도 않고 계속 일에 매달렸다. 그 모습을 보며 다른 직원들은 경외심을 금치 못했다.
나름 똑똑하다고 자부하던 이들도 시드가 작업하는 걸 보다 보면, 자신은 그저 한낱 인간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겸손해지기 마련이지.
내가 어깨를 두드리자 시드는 쓰고 있던 헤드폰을 벗고 나를 보았다.
“어! 형 왔어요?”
난 손에 든 봉투를 들어 보였다.
“점심 먹자. 햄버거 사왔어.”
“하던 거 마저 끝내야 하는데.”
“먹고 해. 그러다 쓰러질라.”
난 시드를 데리고 휴게실로 향했다.
“콜라는요?”
“오렌지주스랑 팔던데. 한번 같이 먹어봐.”
푸드트럭에서 맥주까지 팔기는 힘들다. 그래서 흑맥주 대신 택한 게 오렌지주스.
나중에 정식 매장을 내고 나면, 둘 다 같이 판다.
시드는 포장지를 뜯고 햄버거를 한 입 먹어보더니 깜짝 놀랐다.
“어!”
“왜 그래?”
“이거 엄청 맛있는데요.”
“그래?”
“예. 이제까지 제가 먹어본 햄버거 중 가장 맛있는 것 같아요. 이거 무슨 햄버거예요?”
난 이름을 말해주었다.
“오코너 버거야.”
“아! 이게 형이 말한 오코너 버거예요?”
“응. 오늘부터 푸드트럭 장사를 시작했는데 잘 될 것 같지 않아?”
시드는 햄버거를 오물오물 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라면 맨날 사먹을 것 같은데요.”
실제로 시드는 오코너 버거를 좋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난 웃으며 말했다.
“프랜차이즈 1호점은 스노우 크래시 근처에 내라고 할게.”
* * *
실리콘밸리에는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대형 IT회사들과 대기업 연구소들이 위치해 있었다.
또한 창업의 요람이라는 명성답게 직원 몇 명짜리 소규모 회사들도 많았다.
래리 카빌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는 동료 네 명과 함께 스타트업을 시작했다. 다행히 개발은 순조로웠고, 투자자들의 문의도 이어졌다.
서비스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경쟁자들보다 빠르게 출시해야 한다. 때문에 시간은 항상 부족했다.
“나가서 먹을 것 좀 사올게.”
점심시간이 되자 래리는 동료들을 대신해 푸드트럭이 모인 공터로 향했다.
맛집으로 유명한 푸드트럭에는 이미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줄이 거의 없는 트럭으로 다가갔다. 그곳에서는 두 명의 청년이 햄버거를 팔고 있었다.
가격은 단품이 9달러. 세트는 15달러다.
‘뭐가 이렇게 비싸?’
평소 같았으면 안 샀겠지만 배는 고프고 시간은 없는 상황. 세트에는 콜라가 아닌 갓 짜낸 오렌지주스가 포함되어 있었다.
‘햄버거에 오렌지주스라. 잘 어울리려나?’
“다섯 개 포장해주세요.”
그는 햄버거를 들고 다시 회사로 돌아왔다.
“먹고 합시다.”
“이건 어디 햄버거야?”
“앞에 푸드트럭이 새로 생겼기에 한번 사 와봤어.”
“그래?”
동료들은 하나씩 집어 들었다.
“어! 특이하게 스크램블 에그가 들어있네.”
“흠, 생긴 건 별로인데.”
“맛은 있으려나?”
다들 별 기대 없다는 표정으로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입 베어 무는 순간······ 모두가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어!”
“이게 뭐지?”
“계란 때문에 이런 맛이 나는 건가?”
“빵도 좀 특이한데.”
상상도 못 했던 엄청난 맛이 느껴진다거나 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까지 다른 햄버거에서 느끼지 못했던 독특함이 있었다.
이 햄버거는 뭔가 다르다!
“오렌지주스랑 먹으니 더 맛있는데.”
“이렇게 맛있는 건 처음 먹어봐.”
“회사 근처에 이런 푸드트럭이 있었어?”
떠들던 것도 잠시.
어느 순간부터 모두가 말없이 햄버거를 음미하며 먹기 시작했다. 별로 배가 고프지 않다고 했던 동료마저도 하나를 다 먹어치웠다.
다른 동료가 래리에게 물었다.
“이거 어디서 사왔다고?”
“앞의 사거리 공터에 있는 푸드트럭에서.”
“이름이 뭐야?”
“글쎄. 기억이 잘 안 나는데.”
그들은 재빨리 포장지와 봉투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어디에도 상호는 적혀있지 않았다.
“자, 잠깐. 인생 최고의 햄버거를 먹었는데 이름을 모른다고?”
“푸드트럭이면 내일은 그 자리에 없을 수도 있잖아.”
“이 햄버거라면 매일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다시는 못 먹으면 어떡해?”
지금 일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래리는 동료들과 함께 아까 햄버거를 산 곳으로 뛰어가 보았다. 하지만 이미 점심시간은 끝났고, 그 자리에 있던 푸드트럭은 사라진 뒤였다.
래리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아, 안 돼!”
* * *
실리콘밸리는 미국 산업의 중심지.
투자자들과 창업자들 모두 기존의 것들을 식상하게 여겼고, 항상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맸다. 이는 음식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오코너 버거에 대한 소문은 SNS를 타고 순식간이 퍼져나갔다.
뉴욕에서 넘어왔다는 햄버거는 실리콘밸리 사람들의 입맛을 그대로 저격했다. 며칠 만에 지역 커뮤니티에는 오코너 버거에 대한 얘기가 오르내렸다.
-아까 낮에 별 기대 없이 푸드트럭에서 햄버거를 사먹는데, 너무 맛있어서 기절할 뻔.
-무슨 햄버거인데?
-오코너 버거.
-어! 나도 그거 먹어봤어. 맛보고 깜짝 놀람.
-처음에 9달러라고 하기에 뭐지 싶었는데, 그 두 배 가격이어도 기꺼이 사먹었을 듯~
-오렌지주스와의 조합이 환상임.
-뉴욕의 명물이라는데.
-허얼! 그동안 뉴요커들만 이런 맛있는 햄버거를 먹었던 거야?
-아니, 대체 맛이 어떻기에?
-그렇게 맛있나요?
-햄버거가 맛있어 봐야 햄버거 아니야?
-누가 설명 좀.
그러자 온갖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내가 먹었던 건 햄버거가 아니었다.
-세상에 진정한 버거는 오코너 버거뿐이다.
-내 인생을 바꾼 단 하나의 버거!
-먹을수록 입에 남는 여운.
-달콤하고 기름진 애틋한 맛.
-햄버거와 오렌지주스가 입안을 감싸는 순간 천국에 온 줄 알았습니다.
-인간은 오코너 버거를 먹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닐까?
-오코너 버거를 먹고 가족끼리 얼싸안고 울었습니다.
-사람은 둘로 나뉜다. 오코너 버거를 먹어본 사람과 안 먹어본 사람으로.
-한 번도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다.
-오코너 버거를 먹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너무 감동적임. 심장이 멎는 듯한 맛.
-미국 햄버거의 자존심. 이건 걸작이다.
-내 나이 32. 이 햄버거를 먹고 처음으로 눈물이라는 것을 흘렸다.
-나는 햄버거를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코너 버거를 먹어보지 않은 사람일 뿐이었다.
-오코너 버거를 먹고 암이 나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