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오코너 버거 (1)
최근 세계적으로 스타트업 열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기술의 발전 덕분에 창업은 쉬워졌고, 리스크는 낮아졌다. 과거에는 창업이 특별한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이제는 실력과 열정만 있으면 누구든 할 수 있었다.
자고 일어났더니 백만장자가 됐다는 건 이제 드문 일도 아니었다.
평소 창업에 관심이 많았던 숀 오코너는 친구인 페르난도 도밍고와 함께 시장에 뛰어들어 기회를 잡아보기로 했다.
운 좋게 실리콘밸리로 떠나기 전, 여동생과 함께 가게를 찾은 한국인에게서 10만 달러의 투자를 받았다.
처음에는 그냥 돈 많은 동양인이 심심풀이로 투자한 거라고 여겼고,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컨티뉴 캐피탈이라는 회사 이름을 들었을 때만 해도 그저 그런 벤처캐피탈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컨티뉴 캐피탈은 리포트 하나로 토머스 모터스를 폭락시켜며 월가에 이름을 알렸다. 이어서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비싼 스타트업이라는 스노우 크래시(쿨라우드)를 인수했다.
이런 엄청난 사모펀드가 자신들의 회사에 투자한 것이다!
월스트리트에서 떠오르는 사모펀드의 투자를 받았다는 사실에 두 사람은 잔뜩 고무됐다.
“우리에게 투자한 게 컨티뉴 캐피탈이라니!”
“오오! 왠지 엄청 대박 날 것 같아!”
숀은 페르난도의 원룸에서 함께 먹고 자고 하며 개발에 매달렸다.
실리콘밸리의 거주비는 그가 생각한 것 이상이었다. 단칸방의 월 렌트비가 무려 3천 달러.
그들은 커피 한 잔 값까지 아껴가며 열정을 불태웠다.
실리콘밸리에는 그들과 같은 창업자들이 많았다. 그들은 세미나와 앱을 통해 다른 개발자들과 만나고 정보를 교류하며 부족한 부분을 조금씩 수정해나갔다.
그렇게 개발을 끝마친 두 사람은 끌어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개발자들은 대체로 같은 꿈을 꾼다.
바로 자신들이 만든 앱이 출시하자마자 대박을 치는 꿈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그들이 만든 앱은 시장에서 별로 환영을 받지 못했다.
처음에는 좋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문제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UI는 엉망이고, 앱은 버벅거리기 일쑤였다. 지도와 연동도 잘되지 않았고, 수시로 오류가 발생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밤을 새워가며 고쳐보았지만, 문제는 계속됐고 제휴업체를 제대로 확보하지도 못했다.
가장 큰 문제는 동일한 앱이 있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몇몇 업체들은 5달러, 10달러짜리 쿠폰을 마구 뿌려댔다.
당연히 이용자들은 전부 그쪽으로 몰려갔다. 접속자는 급감했고 어느 순간부터 악평도 올라오지 않자 두 사람은 깨달았다.
망했다!
사실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스타트업 열 중 아홉은 3년 안에 망한다는 통계가 있다. 하지만 누구도 자신이 그 아홉 안에 들어갈 거라 생각하고 사업을 시작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게 현실이 되니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가입자만 늘면 되는데.”
“그런데 가입자가 안 늘잖아.”
“우린 안 되겠지?”
두 사람은 앱을 살려보기 위해 온갖 애를 썼지만, 결국 실패를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의 고생이 물거품이 됐다는 생각에 그들은 망연자실했다. 하지만 투자사에게 보고는 해야 했다.
숀 오코너는 컨티뉴 캐피탈로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얼마 후 누군가에게서 연락이 왔다.
[안녕하세요, 한미루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다름 아닌 그에게 처음 투자했던 바로 그 한국인이다.
컨티뉴 캐피탈이라고 하면 데이비드 록허트의 이름만 알려졌지, 한미루의 이름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숀은 여동생에게 전해 들어서 알고 있었다. 실제 자금을 대고 컨티뉴 캐피탈 설립을 주도한 사람은 바로 그라는 것을.
[보내주신 메일은 확인했습니다. 일단 만나서 얘기를 하고 싶은데요.]
“마, 만나서요?”
[예. 지금 바로 실리콘밸리로 가겠습니다.]
* * *
난 다시 실리콘밸리로 돌아왔다.
역시나 공짜로 이용 가능한 팔로알토의 JR블랙우드 호텔에 체크인했다.
이번에도 지배인이 직접 내려와서 인사했다.
“저희 호텔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대표님. 머무시는 동안 불편함 없이 모시겠습니다.”
가는 곳마다 이렇게 환대를 해주니, 역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해준 게 있으면 받는 것도 있는 법이지.
난 짐을 풀고 적당히 쉰 다음 로비의 카페에서 블루웨건 창업자들을 만났다.
“오랜만이네요.”
숀 오코너는 내가 내민 손을 붙잡았다.
“예. 오랜만에 뵙습니다.”
트리시 오코너를 따라서 갔던 펍에서 그를 만났던 게 기억 난다.
그땐 둥글둥글한 인상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살이 많이 빠졌다. 눈 밑에 다크서클이 짙은 걸 보면 그동안 고생이 많았던 모양이다.
이번에 직접 부딪쳐보며 스타트업이 만만치 않다는 걸 깨달았겠지.
“처음 뵙겠습니다. 페르난도 도밍고입니다. 숀에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동업자이자 친구는 맥시코계 청년이다.
키는 175센티 정도, 까무잡잡한 피부에 민머리. 인사만 나눴는데도 쾌활한 성격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처음 만났을 때와 달리 숀 오코너는 잔뜩 긴장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일단 그때랑 지금의 컨티뉴 캐피탈의 위상이다. 그리고 당시 그는 스타트업을 꿈꾸는 창업자였지만 지금은 망했다.
왠지 좀 의기소침한 것 같기도 하고.
페르난도는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말했다.
“이번에 스노우 크래시가 랜섬웨어 사태를 해결했다고 하는데, 혹시 거기에 다녀오신 건가요?”
“예. 루카스 CEO와 함께 블랙우드 본사를 다녀왔습니다.”
“저도 소식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다들 난리도 아니에요. 만나기만 하면 그 얘기를 하고 있을 정도니까요.”
이번 일로 클라우드 업계의 지각변동이 일어날 거라는 전망까지 나오는 판이다.
IT기업 종사자라면 관심을 안 가질 수 없겠지.
실리콘밸리의 풍문에 따르면, 랜섬웨어로 모두가 고통과 절망에 빠져있는 순간, 시드 루카스가 홀연히 나타나 범죄자들을 붙잡고 서버를 열었다고 한다.
“‘빛이 있으라’라고 했더니, 서버에 불이 들어왔다는 게 진짜예요?”
“······.”
걔가 그런 말을 했어?
어쨌거나 이쯤 되면 영웅담이 따로 없다. 우리 시드가 어느새 스타가 되었구나.
실리콘밸리에서 팬미팅회 한번 하면 개발자들이 우르르 몰려오지 않을까?
“나중에 만나시면 제가 정말 존경한다고 전해주세요.”
난 그에게 말했다.
“그건 직접 만나서 얘기하세요.”
“예?”
“어차피 근처인데요. 조만간 한번 소개해드릴게요.”
내 말에 페르난도와 숀은 좋아 어쩔 줄 몰라 했다.
난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이제 블루웨건에 대해 얘기해보죠.”
그 말에 두 사람의 표정이 순간 어두워졌다.
숀은 회사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이런저런 말을 했지만 결론은······.
“투자금은 다 썼고, 앱은 망했다는 거군요.”
“그, 그렇습니다.”
두 사람은 마치 죄라도 지은 것처럼 고개를 숙였다.
“뭐라고 하는 건 아닙니다. 사업이란 잘될 때가 있으면 안될 때도 있는 법이죠. 투자 역시 마찬가지구요.”
스타트업의 십중팔구는 실패한다.
그럼에도 VC(벤처캐피탈)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이유는, 아홉 개가 실패하고 하나만 성공해도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패는 실패로 끝나지 않는다.
당사자는 실패를 발판 삼아 새로운 창업에 도전하고, 다른 기업들 역시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니까.
이렇게 창업의 선순환이 이뤄지는 거지.
내 말에 두 사람의 표정이 조금은 밝아졌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실 건가요? 설마 이대로 회사 문을 닫을 건 아니죠?”
그 물음에 숀은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요. 가능하다면 계속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좋은 마음가짐이네요. 그런데 어떤 도전을 하고 싶나요?”
“음, 그게······ 사실은 그 부분을 가장 고민 중입니다.”
뭔가를 하고 싶은 의욕은 있는데, 뭘 해야 할지는 아직 모르겠다는 건가?
초보 창업자들이 흔히 겪는 고민이다. 급한 마음에 대충 트렌드 따라 창업하면 또 망하는 거고.
“일단은 이쪽 분야의 앱 개발을 계속해보고 싶습니다.”
“푸드트럭과 음식점 관련해서요?”
“예.”
둘의 표정을 보니 추가로 투자를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 엿보였다.
1회차 때는 투자금이 끊기는 바람에 먹고살기 힘들어서 어쩔 수 없이 푸드트럭에 뛰어든다.
그러니 이번에도 그런 방향으로 유도를 해야겠지.
난 슬쩍 말을 꺼냈다.
“두 분이 푸드트럭을 한번 해보는 건 어떤가요?
둘은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푸드트럭이요?”
“예. 직접 해보면 향후 사업 방향을 정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겁니다.”
기업이 처음 정한 사업모델을 그대로 밀고 가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시장 상황에 따라 조금씩 수정하기도 하고, 때로는 아예 사업모델을 전환하기도 한다.
이를 피보팅(Pivoting)이라고 한다.
페르난도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겠네요. 아무래도 현장을 경험해보면 관련 앱 개발에 도움이 될 수 있을 테니까요.”
숀은 난감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푸드트럭을 한다면 뭘 팔아야 좋을지······.”
아니, 이걸 왜 고민하고 있어?
“오코너 버거를 팔면 되잖아요.”
내 말에 숀은 깜짝 놀랐다.
“예? 오코너 버거를요?”
“기왕이면 만들 줄 아는 걸 파는 게 편하지 않겠어요?”
“그, 그렇긴 한데······ 여기에 싸고 맛있는 햄버거 가게가 많은데, 과연 장사가 잘될까요?”
그의 입장에서 오코너 버거는 집에서 항상 먹던 햄버거.
딱히 특별한 점을 느끼지 못하겠지만 이 동네 사람들에게는 다르다. 어디서도 먹어보지 못했을 맛일 테니.
“잘될 것 같으니 해보세요.”
“차라리 다른 걸 팔면 모를까, 그건 좀······.”
난 그의 행동에서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어째서요? 오코너 버거를 팔지 못할 이유라도 있나요?”
“그게······.”
잠시 대답을 머뭇거리던 숀은 한숨을 내쉬듯 말했다.
“사실 아버지께서는 제가 가게를 물려받기를 바라셨습니다. 그것 때문에 아버지와 자주 싸우기도 했죠.”
“정말요?”
난 오코너 사장의 외모를 떠올렸다.
내가 아들이었으면 싸울 엄두가 안 났을 것 같은데.
“한번은 아버지에게 ‘전 햄버거나 만드는 인생을 살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소리치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내가 회귀를 했다고 해도 모든 일을 다 알고 있는 건 아니다. 결과는 알아도 과정까지 알 수는 없으니.
오코너 버거에 이런 비화(?)가 숨어있었을 줄이야!
“물론 전 그곳을 사랑하긴 합니다. 그래도 제 삶이 거기에 갇히는 건 원치 않습니다. 결국 아버지께서도 고집을 꺾고, 제가 떠나는 걸 허락하셨죠.”
약간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하다.
인생이 정해진 레일대로 따라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 왠지 벗어나고 싶어지기 마련.
“그래서 뉴욕을 떠나 실리콘밸리로 왔는데······.”
동부 해안에서 서부 해안까지 날아왔다. 그런데 정작 여기서 그 햄버거로 장사를 하게 생겼다!
이래서 사람은 말을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
어쨌거나 그는 오코너 버거를 만들 운명이다. 숀 오코너가 아니라면 누가 오코너 버거를 만들겠는가?
“어째서 앱 개발을 선택한 건가요?”
말하기 부끄러운지 숀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잖아요. 성공하면 돈도 많이 벌 수 있고.”
“맛있는 햄버거는 좋은 앱 이상으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그래 봐야 햄버거인데요?”
“록허트 대표에게는 몸이 아픈 딸이 하나 있습니다. 메기라고 하는 작고 귀여운 소녀죠. 그 아이가 오코너 버거를 한입 먹어보더니 ‘오코너 버거를 먹으니 빨리 낫고 싶어졌어요. 오코너 버거는 저에게 용기와 희망을 줬어요. 언젠가 다 나아 병원을 나서는 그날, 아빠와 손 잡고 오코너 버거를 먹으러 가고 싶어요’라고 말하며, 그 뒤로는 치료도 열심히 받고 있습니다.”
숀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 그게 정말인가요?”
“······.”
다시 생각해보니, 그런 말까지는 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
그 부분은 넘어가기로 하자.
난 머뭇거리는 숀을 강하게 설득했다.
“오코너 버거는 반드시 성공합니다. 어쩌면 제2의 맥도날드가 될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