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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화. 랜섬웨어 (9) (176/529)

 181화. 랜섬웨어 (9)

 미리 약속을 잡아놨기 때문에 직원이 바로 대표실로 안내해주었다.

 1년 전에 완공된 신사옥이라 그런지 넓고 아늑하다. 잠시 앉아서 기다리자 요한벨 대표가 들어왔다.

 그는 인사를 하자마자 나에게 말했다.

 “그사이 놀라운 일을 해냈군요.”

 “전부 루카스 CEO가 한 일인데요.”

 “문제 해결을 확신하고 거액을 투자한 건 한 대표님의 판단이지 않습니까?”

 난 겸손하게 말했다.

 “그건 록허트 대표의 판단이었습니다. 전 그저 옆에서 도왔을 뿐이죠.”

 요한벨 대표는 미소를 지었다.

 “아무튼 그레이트넷 체포는 매우 잘된 일입니다. 이번 일로 사이버 테러가 좀 줄어들면 좋겠네요. 그런데 대체 어떤 방식으로 추적에 성공한 겁니까?”

 “저도 잘은 모릅니다. 나중에 루카스 CEO를 만나시면 직접 물어보세요.”

 해킹은 모든 IT기업들의 골칫거리다. 추적하는 기법 같은 게 있다면 돈을 내고라도 알고 싶겠지.

 안타깝게도 그런 게 있지도 않을 뿐더러, 있다고 해도 알려주지는 않겠지만.

 요한벨 대표는 의자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그건 그렇고······ 스노우 크래시가 저희 고객을 빼앗았더군요.”

 “저희가요?”

 “FBI와 NSA와 업무 협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던데.”

 “아! 그건 그쪽에서 하도 해달라고 사정사정해서요. 국가안보를 위한 일에 협조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강압적으로 밀어붙이니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제가 들은 것과는 좀 다르네요.”

 “실무자들이야 항상 자기들 유리한 쪽으로 말하는 법이죠.”

 “그럼 블랙우드는요? 설마 ZWS 고객이라는 걸 몰랐다고 하지는 않겠죠?”

 블랙우드는 세계 최대 호텔 체인을 운영하는 회사인 만큼 ZWS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고객이다.

 이런 고객을 눈앞에서 빼앗긴 것이다. 심지어는 저가 수주 때문도 아니고, 서비스 경쟁에서 밀렸다.

 ZWS 입장에서는 상당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테일러 회장은 ZWS와의 관계를 고려해 말을 아꼈지만, 블랙우드가 ZWS 대신 스노우 크래시를 택한 이유에 대해 여기저기서 말이 흘러나왔다.

 언론에서는 관련 기사가 쏟아졌고, 기업들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난 사과를 하는 대신 당당하게 말했다.

 “그건 ZWS 측에서 먼저 신뢰를 저버렸기 때문 아닌가요?”

 요한벨 대표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처음 랜섬웨어 사태가 터졌을 때 블랙우드 측에서 ZWS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거절하지 않았습니까? 반면 스노우 크래시는 달려가서 밤을 지새워가며 도와줬고 서버를 정상화시켰습니다. 이랬는데도 저희가 고객을 강제로 빼앗았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ZWS가 그런 말을 할 만한 입장이 되나요?”

 “······.”

 엄밀히 말해 ZWS가 나서서 도와줄 의무는 없다.

 하지만 ZWS가 손 놓고 있을 때 스노우 크래시가 발 벗고 나서서 도운 것은 사실.

 여기에 대해 할 말이 있을 리 없다.

 “상당히 불쾌한 얘기네요. 그 말은 우리와 맞서겠다는 겁니까?”

 난 손을 내저었다.

 “그럴 리가요. 스노우 크래시는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ZWS와 협력할 생각입니다.”

 요한벨 대표는 비웃음인지 아닌지 모를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정말로 그럴 생각이 있다면,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어떻게 말인가요?”

 “일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우리는 스노우 크래시 지분을 인수하고 싶습니다.”

 “그때와 조건은 동일한가요?”

 “원하는 금액이 있다면 한번 말씀해 보시죠.”

 이전까지만 해도 스노우 크래시는 여러 경쟁자들 중 하나였을 뿐이다.

 하지만 이번 일을 보며 시드의 능력이 그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인수하겠다는 건가?

 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 얘기하기 전에 드릴 말씀이 한 가지 있습니다.”

 “뭔가요?”

 난 슬슬 본론을 꺼내들었다.

 “블랙우드는 자체 서버를 운용하며, ZWS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악성코드 감염 경로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중요한 사실이요?”

 “예. 아마 대표님께서도 이미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말을 하며 그의 표정을 살폈다.

 여전히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고 있지만, 살짝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군요.”

 이상하네. 이쯤 말하면 알아들었을 것 같은데.

 어쩔 수 없이 직접 말해주었다.

 “ZWS 클라우드의 보안이 뚫렸던데요.”

 요한벨 대표는 당황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발뺌을 하시겠다?

 “왜 모른 척하시죠? ZWS 측도 이를 인지해 블랙우드 사태 직후에 보안 프로그램을 업데이트하지 않았습니까?”

 “대, 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 겁니까?”

 아무렇지 않다는 듯 되물었지만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보안 패치 사실을 부인하시는 건가요?”

 “······.”

 아마 내가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떠한 공지도 없이 몰래 업데이트했을 테니까.

 일명 잠수함 패치다.

 난 계속해서 말했다.

 “하긴, 며칠 사이 보안 취약점을 확인하고 패치하느라 정신없었을 테니, ZWS의 도움 요청을 거절한 것도 이해가 됩니다. 보안이 뚫렸다는 사실을 고객사한테는 숨겨야 했을 테니까요. 어쨌거나 정말 다행입니다. 이번 사태로 일찍 눈치를 챘기에 망정이지, 까딱 잘못했다가는 사상 최악의 보안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었을 테니까요.”

 엄밀히 말해 완전히 뚫린 건 아니다. 그랬으면 벌써 난리가 났겠지.

 댐으로 비유하자면 균열이 생긴 정도. 그대로 놔뒀다면 댐이 붕괴하고 물이 쏟아졌을 것이다.

 지금은 급하게 땜질해 구멍이 나는 것을 막은 상황.

 나중에라도 비슷한 문제가 생기는 걸 막으려면 보안 시스템을 전면 개편해야 할 것이다.

 내가 이걸 아는 이유는 1회차 때는 나중에 다 까발려졌기 때문. 롤프 부치는 ZWS의 눈치를 봐서 모른 척 넘어갔지만 나는 다르다.

 요한벨 대표는 나에게 물었다.

 “ZWS 보안이 뚫렸다는 명확한 증거가 있습니까?”

 난 테이블 위에 USB 하나를 올려놓았다.

 “이 안에 증거가 있습니다.”

 그는 그것을 슬쩍 보더니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얼토당토않은 증거로 이러는 거라면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정말로 얼토당토않은 증거라고 생각하신다면 이걸 언론에 넘겨도 상관없겠군요. 만약 허위사실이라면 기꺼이 처벌받겠습니다.”

 “······.”

 요한벨 대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지금쯤이면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떠오르고 있을 것이다.

 지난번 만났을 때와는 입장이 완전히 뒤집어졌다.

 세계 최대 클라우드 회사의 CEO인 만큼 누구를 만나도 갑의 위치에서 협상을 해왔을 테고, 이 정도로 궁지에 몰리는 상황은 겪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난 계속해서 몰아쳤다.

 “얼마 전, 미 국방부가 합동 방어 인프라 사업 제다이(JEDI) 프로젝트를 발표했죠.”

 스타워즈에 나온 포스를 사용하는 공화국 기사단을 뜻하는 건 아니고······ 조인트 엔터프라이즈 디펜스 인프라스트럭처(Joint Enterprise Defense Infrastructure)의 약자다.

 그래도 굳이 이렇게 이니셜을 맞춘 걸 보면 스타워즈 덕후들이란······.

 어쨌거나 제다이 프로젝트는 미 국방부의 방대한 IT 인프라를 클라우드로 이전해 현대화하는 사업.

 여기저기 분산되어 있는 데이터 시스템을 통합해 보안 수준에 따라 실시간으로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하고, 적의 감시와 신무기 개발 등에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사업 규모는 10년간 무려 100억 달러.

 워낙 엄청난 규모의 사업이다 보니 이름 좀 있는 클라우드 업체들은 전부 도전장을 던졌다.

 AMZ, NS, 구블, IMB, 오리온 등등.

 “사실 소규모 기업 입장에서는 어느 클라우드 서비스가 더 좋은지 판단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정부기관의 공공사업을 따냈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은 레퍼런스가 되죠.”

 수익도 수익이지만 미 국방부 사업을 따냈다는 것은 세계 최고의 보안과 최신 기술을 갖췄다는 걸 증명하는 셈이다.

 수주하는 것만으로 다른 기업들보다 보안과 서비스 측면에서 우위에 있음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다.

 AMZ는 클라우드 시장의 선구자였던 만큼 그동안 공공기관의 수주를 독점해왔다. 하지만 다른 클라우드 업체들도 적극적으로 이 시장에 뛰어들었고 점유율은 점차 떨어지는 추세였다.

 이번 입찰은 향후 클라우드 사업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한 경쟁이나 다름없다.

 사업 규모가 규모다 보니, 전문가들은 대부분 AMZ와 NS의 싸움이 될 거로 예상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진행되는 중이다.

 AMZ는 이번 사업에 엄청난 공을 들여왔다.

 국방부 관계자들과 정치인들에게 대규모 로비를 펼치는 한편, 전직 국방부 참모들을 회사로 영입했다.

 “ZWS는 그동안 강력한 보안을 자랑해왔고, 이를 통해 각종 정부 공공사업을 따냈죠. 그런데 보안이 뚫렸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보안이 뚫린 회사에게 미 국방부가 클라우드 전환 사업을 맡길 리가 있겠는가?

 다른 회사들 역시 그 점을 집중 공격하며 물어뜯을 테고, 이번 사업뿐 아니라 그동안 맺은 계약들에도 각종 불이익이 따를 것이다.

 “······협박하시는 겁니까?”

 “그럴 리가요. 어찌 감히 ZWS를 협박하겠습니까?”

 “하고 싶은 말이 대체 뭡니까?”

 “전 협박하러 온 게 아니라, 귀사에 도움을 드리고 양사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왔습니다.”

 “도움이요?”

 “먼저 보안 취약점에 대해서는 스노우 크래시가 해결해드릴 수 있습니다. 다시는 이번 같은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완벽하게 말이죠.”

 물론 그에 따른 비용은 받을 생각이다. 여기에는 입막음 비용까지 포함되겠지.

 “또 있습니까?”

 “스노우 크래시는 ZWS와 협력을 지속하고 싶습니다. 대표님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이전까지는 스노우 크래시를 압박하는 것에 아무런 부담이 없었겠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그랬다가는 자신들도 큰 타격을 입게 될 테니.

 내 제안을 거절해도 상관없다. ZWS가 등을 돌린다고 하면 이걸 들고 NS를 찾아가 협력을 요청하면 되니까.

 ZWS와 적대관계가 되는 건 여전히 부담이지만, 빅3가 다 같이 등을 돌리는 최악의 상황만 피하면 된다.

 한참 후, 그는 입을 열었다.

 “검토해 보고 대답해도 되겠습니까?”

 결정을 미루는 건 나쁜 버릇인데.

 다행히 내가 나쁜 버릇을 고쳐줄 좋은 방법을 안다.

 “그럼 저도 이걸 WST에 넘길지 말지 회사로 돌아가 검토해보겠습니다.”

 내가 USB 메모리를 향해 손을 뻗자, 그는 다급하게 내 손목을 붙잡았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난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진작 이럴 것이지.

 * * *

 난 ZWS를 나왔다.

 날씨는 춥지만, 일이 잘 해결되어서 그런지 마음이 홀가분하다.

 ZWS가 스노우 크래시와 계속 협력한다면 다른 업체들의 견제는 무의미해진다. NS와 구블 역시 함부로 제재에 나서기는 힘들 것이다.

 다행히 모든 게 다 잘 끝났구나.

 그나저나 이젠 어디로 가야 하나?

 실리콘밸리로 갈까, 맨해튼으로 돌아갈까?

 난 일단 데이비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고는 조금 전 ZWS와의 협상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앞으로도 계속 친하게 지내기로 했어요.”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쉽게 해결되다니. 루카스 CEO가 정말 엄청난 일을 했네요.]

 “그렇죠.”

 애초에 이 모든 것들은 시드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방금 블루웨건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블루웨건이 뭐 하는 곳이죠?”

 데이비드는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기억 안 나십니까? 숀 오코너가 창업한 스타트업입니다.]

 “아! 맞다.”

 내가 펍에서 만나 10만 달러를 투자했다.

 회사 이름이 블루웨건이었어? 나중에 오코너 버거로 바뀌어서 기억을 못 하고 있었다.

 “어떻게 됐나요?”

 [방금 연락 왔는데, 망했다고 합니다.]

 “그렇군요.”

 [안 놀라십니까?]

 “스타트업이 망하는 게 당연하잖아요.”

 투자한 것마다 잘되는 내가 이상한 거지.

 어디로 갈지에 대한 고민이 사라졌다.

 난 데이비드에게 말했다.

 “제가 실리콘밸리로 가서 한번 만나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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