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화. 랜섬웨어 (8)
[(WST 단독) 블랙우드 인터내셔널 피터 테일러 회장 인터뷰]
(전략) 오코너: 이번 사태로 인해 디지털 전환에 제동이 걸릴 거라는 시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테일러: 디지털 전환을 더 완벽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보안을 강화하는 방법입니다. 우리는 최악의 위기 속에서도 고객의 정보를 지켜냈습니다. 이는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오코너: 향후 회사의 계획은 어떻게 됩니까?
테일러: 이번 일을 겪으며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진화하는 소비자의 니즈에 발맞추기 위한 혁신의 일환으로 여행업과 숙박공유업에 진출할 계획입니다.
오코너: 블랙우드가 숙박공유업을 한다면 기존 업체들과는 어떤 차별성이 있습니까?
테일러: 우선 미국과 유럽의 최고급 주택과 성들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이렇게 하면 대형 호텔이 없는 여행지에서도 블랙우드의 고객들은 최고의 서비스를 누릴 수 있습니다.
오코너: 시스템 구축 계획은 어떻게 됩니까?
테일러: 이를 위해 스노우 크래시와 협업을 하기로 했습니다. 블랙우드 인터내셔널은 더 이상 호텔기업으로만 머물지 않을 겁니다. 종합트래블테크 기업으로 도약해 고객들에게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우리의 새로운 목표입니다.
이 기사는 또 다른 충격이었다.
세계 최대 호텔기업의 숙박공유업과 여행업 진출 선언은 관련 업계를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신산업에 진출한다고 해서 무조건 주가가 오르는 것은 아니다. 경쟁 악화와 투자비 증가 등의 우려로 주가가 하락하는 일도 많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달랐다.
두 기업의 협력이 강력한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예상되며 주가는 그야말로 천장을 뚫고 오르기 시작했다.
주주들은 환호했지만, 공매도를 한 헤지펀드들은 망연자실했다.
마이클 프레스턴은 실시간으로 폭등하는 주가를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런 씨발······.”
* * *
예상대로 발표 이후 주가는 폭등했다.
순식간에 350달러를 돌파하며 52주 신고가를 기록했다. 이는 사태 이전보다 무려 50퍼센트나오른 것이다.
시총 역시 260억 달러가 증가하며 800억 달러를 눈앞에 뒀다.
이렇게 주가가 뛴 이유는 호텔업종과 테크업종은 시장에서 평가하는 PER이 다르기 때문. 게다가 테일러 회장은 명확한 비전과 구체적인 플랜을 제시했다.
전부 내가 만들어준 거지만.
데이비드가 말했다.
[공매도에 나섰던 헤지펀드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추가증거금을 내지 못해 청산하는 곳도 한둘이 아닙니다.]
“안타까운 일이네요.”
가장 큰 손실을 본 걸로 알려진 곳은 샤크 매니지먼트.
다름 아닌 1회차 때 데이비드 록허트가 일했던 곳이다. 만약 내가 낚아채지 않았다면 이번에도 거기서 일했을 것이다.
왠지 좀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러게 사라고 할 때 샀으면 벌었을 텐데.
반면 컨티뉴 캐피탈은 막대한 수익을 냈다. 120달러까지 떨어졌을 때부터 주식을 긁어모았고, 콜옵션도 일부 매수했으니까.
우리가 사들인 주식만 무려 10퍼센트가 넘는다. 어느새 대주주가 된 셈. 이 주식을 당장 팔기도 힘들다.
[처음 보스가 해결한다고 나섰을 때만 해도 왜 어려운 일에 끼어드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성과를 보니 감탄만 나오네요.]
스노우 크래시는 대중들에게까지 이름을 알렸고, FBI, NSA와는 협력계약을 맺었고, 블랙우드 인터내셔널이라는 세계 최대 호텔회사를 고객으로 끌어들였다.
블랙우드의 주가가 오른 것 이상으로 스노우 크래시의 가치가 커졌다.
기존 고객들은 물론이고, 다른 기업들 역시 스노우 크래시의 기업 인프라 솔루션에 큰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문제는······.
[블랙우드는 ZWS에게도 중요한 고객입니다.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자체 데이터센터가 없다는 게 이렇게 서러운 일일 줄이야. 더더욱 우리도 데이터센터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가뜩이나 안 좋은 사이가 더 안 좋아지게 생겼구나.
“그럴 리 없을 테니 안심해요.”
언제나 그렇듯 아쉬운 쪽이 양보하기 마련이지.
* * *
무사히 일을 해결했으니, 더 이상 남아있을 이유가 없다.
난 시드와 함께 돌아가기로 했다. 무작정 찾아왔을 때와는 다르게 돌아갈 때는 환송을 받았다.
난 리드 조사관과 윌튼 조사관과 인사를 나눴다. 수사가 종료된 만큼 두 사람도 떠날 예정이었다.
“두 분 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리드 조사관이 웃으며 말했다.
“덕분에 수사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윌튼 조사관도 말했다.
“기회가 되면 또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생각해보면 신기한 경험이다.
살면서 FBI와 NSA를 도와 수사에 참여할 일이 얼마나 되겠는가?
테일러 회장은 나와 시드에게 각각 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설마 손 편지는 아니겠지?
열어보니 안에 검은색 카드가 있다.
“뭔가요?”
“JRB카드네. 이 카드가 있으면 전 세계 블랙우드 체인 어디를 가도 스위트룸 이상을 내줄 거네.”
“어! 정말요?”
존 로날드 블랙우드의 이름을 딴 이 카드는 엄청난 혜택을 지니고 있다.
먼저 블랙우드에 속해있는 5300개 호텔을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다. 심지어 1년에 5회까지 펜트하우스 이용이 가능하다.
펜트하우스 중에는 하룻밤에 10만 달러짜리 방도 있다지만, 그건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JR블랙우드 호텔만 그렇고 보통은 1만 달러 내외.
이것만 해도 엄청난데, 호텔에서 진행하는 각종 행사 참석과 부대시설도 이용 가능하다.
유효기간은 5년. 그 뒤로는 매년 적합성 심사를 한다고 한다.
“모든 비용은 회사가 부담할 테니 아낌없이 쓰게.”
“정말 그래도 돼요?”
“회사를 구해준 은인들에게 뭘 못 해주겠나? 회사에서 못 내겠다고 하면 내 월급에서라도 까라고 하겠네.”
돈이야 차고 넘치도록 있지만, 아무래도 월급쟁이 시절의 습관이 남아있기 때문인지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게 된다.
하루 숙박비를 1000달러라고 하고 매일 사용하면 36만 5천 달러. 여기에 펜트하우스 이용비 5만 달러에 레스토랑이나 부대시설 이용비 10만 달러.
그럼 1년에 대략 50만 달러인가?
그야말로 엄청난 혜택이다.
이 카드 하나만 있어도 집 없이 살아도 되지 않을까?
하기야 개같이 멸망할 뻔한 회사가 부활했는데 이 정도 못 해주겠는가? 어차피 남는 방 내주는 거니 회사에 큰 부담도 안 될 테고.
좋아하는 나와는 달리 시드는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전 별로 필요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받아둬.”
가져다 팔아도 100만 달러는 되지 않을까?
물론 본인 외에는 못 쓰니 판매는 불가능하다.
테일러 회장은 공항으로 가는 길에 타고 가라며, VIP 고객들을 모실 때 쓰는 롤스로이스 팬텀과 기사까지 내줬다.
호의는 사양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편하게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난 공항에 도착해서 시드에게 말했다.
“먼저 실리콘밸리로 돌아가.”
“형은요?”
“난 잠깐 들러야 할 곳이 있어서.”
“알았어요.”
왠지 불안한 마음에 난 다시 물었다.
“그런데 혼자서 갈 수 있지?”
시드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제가 애도 아닌데요.”
“······.”
그런데 뭐지? 어린애 혼자 비행기 태워 보내는 것 같은 이 느낌은.
시드는 좋아하는 일에 대해서는 열정을 불태우지만,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무관심한 성격이다.
혼자 놔두면 딴생각하다가 공항에서 헤매지 않을까?
아무래도 걱정돼서 난 시드를 먼저 비행기에 태워서 보낸 다음, 스노우 크래시에 연락해서 직원이 공항으로 마중 나가 있으라고 지시했다.
그러고는 나도 비행기를 타고 시애틀로 향했다.
* * *
시애틀도 벌써 두 번째다.
도착하니 어느새 저녁이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식당과 카페에 모여들었다. 어디를 가나 사람들로 가득했고, 도시 전체에 활기가 넘쳤다.
이것도 다 AMZ가 들어온 덕분이겠지.
그래도 시애틀까지 온 김에 스타벅스 1호점에 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줄이 길어서 그냥 근처에 있는 아무 카페에나 들어갔다.
앉아서 커피를 마시는데, 옆 사람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AMZ 직원들인지, 관련 IT회사 직원들인지 모르겠지만, 이번 일에 대한 얘기가 한창이었다.
“스노우 크래시가 그레이트넷을 추적해서 잡을 줄이야. 상상도 못 했는데.”
“대체 어떻게 한 걸까?”
“난 그보다 블랙우드와 손잡은 게 더 충격이던데. 서비스 경쟁에서 ZWS를 제쳤다는 거 아니야?”
“그러게. 스노우 크래시가 그 정도였어?”
“롤프 부치가 사기꾼으로 밝혀지고 창업자들이 팔고 떠나며 망할 줄 알았는데.”
“루카스 CEO가 진짜 천재인 모양이네.”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얘기가 들려왔다.
사람들이 이렇게 떠드는 걸 보면 확실히 업계의 이슈가 된 모양이다. 하기야 전 세계 언론에 대서특필됐으니, 이젠 스노우 크래시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은 없겠지.
그나저나 일단 숙소부터 잡아야 할 것 같다.
스마트폰으로 호텔을 검색해보려는데, 아까 받은 카드가 떠올랐다.
굳이 돈 쓸 필요 없겠지?
난 바로 택시를 잡아타고 JR블랙우드 호텔로 향했다.
시애틀의 JR블랙우드 호텔은 정상 영업 중이었다.
로비를 오가는 사람들과 바쁘게 움직이는 직원들을 보니 아무 문제 없이 잘 돌아가는 모양이다.
난 카운터로 다가갔다.
“어서 오십시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펜트하우스 비어 있으면 체크인하고 싶은데요.”
난 직원에게 JRB카드와 여권을 내밀었다. 카드를 조회해본 직원은 깜짝 놀라며 당황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예. 천천히 하세요.”
잠시 기다리자 중년의 남자가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이 호텔의 지배인 매튜 홀랜더입니다. 저희 호텔을 찾아주셔서 영광입니다. 바로 모시겠습니다.”
난 최상층의 펜트하우스로 안내되었다.
전면창 너머로 시애틀의 야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맞은편의 빌딩들 중 가장 높은 빌딩에서 AMZ의 로고가 빛나고 있었다.
지배인은 나에게 말했다.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말씀해주십시오.”
“저녁을 안 먹어서 그러는데 룸서비스 좀 부탁드릴게요.”
메뉴판을 보니 아시안 푸드부터 베지테리언 푸드, 할랄 푸드까지 다양하다.
난 깔라마리와 양고기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지배인은 나가기 전 나에게 말했다.
“블랙우드를 위해 해주신 일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언제든 성심성의껏 모시겠습니다.”
“뭘요. 영업이 재개돼서 저야말로 기쁩니다.”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전산망에 나에 대해 뭐라고 적어놨는지 좀 궁금해진다.
지배인이 나가고 나자 난 실내를 둘러보았다.
평수로 치면 대략 150평 정도. 침실을 포함해 방이 5개에 욕실 3개, 식당과 드레스룸은 따로 있다.
혼자 쓰기에는 지나치게 넓은 곳이다.
이런 곳에서 누가 자나 했는데 내가 자게 될 줄이야. 심지어는 공짜다.
즐길 수 있을 때 즐겨야겠지.
난 룸서비스로 온 저녁을 대충 먹은 다음 침대에 털썩 누웠다.
급격하게 피로가 몰려왔다.
“이제 좀 한숨 돌리겠네.”
사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며칠 동안 긴장의 연속이었다.
시드가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긴 했지만, 만에 하나 일이 잘못될까 봐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잘 끝났다.
하지만 모든 일이 끝난 건 아니다.
아직 중요한 일이 하나 남아있으니까.
* * *
다음 날.
공짜 조식까지 먹은 다음 전화로 체크아웃을 신청했다.
[필요하시면 기사와 차량을 대기시켜 놓겠습니다.]
좋은 서비스다.
짐을 챙겨서 나오자 정문에는 S클래스 마이바흐와 기사가 대기 중이었다.
뒷자리에 올라타자 기사가 물었다.
“어디로 모실까요?”
난 주머니에서 넥타이를 꺼내 매며 말했다.
“ZWS 본사로 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