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9화. 랜섬웨어 (7) (174/529)

 179화. 랜섬웨어 (7)

 테일러 회장은 나를 보며 말했다.

 “그동안 숙박공유업 진출에 대해 검토를 안 해본 건 아니네. 하지만 사업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지.”

 “어째서요?”

 “뒤늦게 뛰어든다고 해서 에어비앤씨나 다른 업체들과 상대가 되겠나? 오히려 숙박공유업 진출로 인해 브랜드 이미지가 하락할 경우 호텔업마저 위험해질 수 있지.”

 하긴, 숙박공유업이 쉬웠다면 다른 호텔기업들도 진작 시작했겠지.

 뭐든 말은 쉽다.

 하지만 그걸 실행으로 옮기려면 수많은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 다행히 난 그에 대한 해결책을 가지고 있다.

 “기존 업체와의 경쟁과 브랜드 이미지 하락을 피할 방법이 있다면요?”

 “그 방법이 뭔가?”

 “하이엔드 마켓을 공략하는 겁니다. 우선 저가의 숙소가 아닌 고가의 대저택과 유럽의 고성들을 선보이는 거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양극화는 더욱 심해졌다. 부자들은 더욱 부자가 됐고, 명품과 고급차 수요는 폭증했다.

 고가 여행 시장에 대한 수요는 충분하다. 좋은 서비스가 있다면 기꺼이 돈을 지불할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그런 대저택과 성을 확보해야 하지 않겠나?”

 “대도시에 있는 고급주택이야 누군가 거주하고 있겠죠. 그런 곳에는 어차피 블랙우드 호텔이 있을 테니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부자들의 별장이 있는 지중해나 카리브해 섬들이나, 경치 좋은 시골에 있는 대저택의 경우 1년에 300일 이상이 비어있습니다. 유지하느라 세금과 관리비만 나갈 뿐이죠. 이걸 빌려줄 수 있다면 수익 창출이 가능해지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테일러 회장은 탐탁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좋은 생각이네만······ 내가 아는 부자들이라면 모르는 사람에게 집을 빌려주느니 차라리 비워두는 걸 택할 거네.”

 “어째서요?”

 “불특정 다수가 집을 어떻게 쓸 줄 알고 빌려주겠나? 실제로 블랙컨슈머가 집을 망쳐놓은 사례는 종종 있지 않나? 나라도 돈 몇 푼 벌자고 골치 아프거나 불쾌한 일을 겪고 싶지는 않을 거네.”

 “부자는 아무에게나 집을 빌려주지 않는다는 겁니까?”

 “그렇지.”

 “그럼 아무나가 아니면 되는 거 아닙니까?”

 “무슨 말인가?”

 “블랙우드에는 그동안 쌓아놓은 고객 데이터가 있지 않습니까? 누가 돈이 많은지 없는지, 누가 머무는 곳을 깨끗하게 쓰는지 아닌지, 누가 좋은 고객인지 나쁜 고객인지.”

 데이터는 기업의 자산이다.

 중요한 건 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다.

 “블랙우드가 가진 데이터를 기반으로 엄선한 VIP고객과 우수고객들에게만 빌려주면 됩니다. 또한 블랙우드는 그동안 5300개의 호텔을 완벽하게 관리해온 노하우가 있습니다. 블랙우드가 맡아서 저택을 관리하고 청소한다면 집을 빌려주는 사람이나 빌리는 사람 모두 안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내 말에 테일러 회장은 화들짝 놀랐다. ‘그동안 왜 이런 생각을 못 했지?’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이다.

 “또한 유럽에는 수많은 고성들이 있고, 이 중 상당수는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지자체에서 헐값에 팔려고 해도 살 사람이 없을 정도죠. 대다수의 성들이 교통이 불편한 외딴곳에 있는 데다가, 일종의 문화재다 보니 개조나 구조변경도 쉽지 않으니까요. 이러한 곳들을 블랙우드가 매입하거나 임대해서 보수하는 겁니다. 누구도 성에서 평생 살고 싶지 않겠지만, 누구나 며칠 정도는 살아보는 경험을 하고 싶을 테니까요.”

 테일러 회장은 신중한 표정으로 자료를 들여다보았다.

 “만약 서비스를 선보일 경우 호텔 고객이 감소할 가능성은 얼마나 되겠나?”

 신제품을 내놓는 바람에 주력상품의 매출이 떨어지면 기업 입장에서는 손해다. 이를 자기잠식효과, 또는 카니발리제이션(Cannibalization)이라고 한다.

 “스노우 크래시에서 미미르를 활용해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결과 호텔 고객 감소에는 거의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여행의 목적과 패턴이 다르니까요. 통계에서 보면 알 수 있듯 숙박공유를 이용하는 사람은 호텔을 이용하는 사람에 비해 머무는 기간이 두 배 이상이고 더 많은 돈을 씁니다. 물론 영향을 끼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더더욱 빨리 뛰어들어야 합니다. 다른 업체가 먼저 시작한다면 고객을 빼앗기게 될 테니까요. 하지만 블랙우드가 시작한다면 회원카드와 포인트를 함께 관리해 더 많은 고객을 유인할 수 있습니다.”

 꼭 가보고 싶은 저택이나 성이 있는데 VIP회원만 예약이 가능하다면?

 그럼 고객은 블랙우드 호텔을 더 자주 이용함으로써 자신의 등급을 올리려 할 것이다.

 반대로 숙박공유를 해서 얻은 포인트나 쿠폰이 있다면?

 그럼 이 포인트를 쓰기 위해서라도 출장시 다른 호텔이 아닌 블랙우드 호텔을 이용하려 할 것이다.

 테일러 회장은 어느새 몸을 앞으로 잔뜩 기울였다.

 “여행 쪽은 어떻게 하면 좋겠나?”

 “숙박공유 사업을 시작하면 이미 블랙우드 호텔이 자리하고 있는 도시를 넘어서 전 세계 다양한 곳까지 여행지를 넓힐 수 있습니다. 지역의 체험 관광 상품과도 연계할 수 있을 겁니다. 여기에 추가로 전용기를 공유하는 서비스는 어떻습니까?”

 “전용기?”

 “예. 부호들이 가진 전용기 대부분은 공항에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를 VIP고객들에게 임대해주는 거죠. 이 역시 블랙우드가 관리한다고 하면 부자들이 믿고 맡길 수 있을 겁니다. 이러한 서비스는 신생기업이 쉽게 할 수 없는 일입니다. 100년 넘게 고객과의 신뢰를 쌓아온 블랙우드만이 가능한 일이죠.”

 혁신이라는 게 거창한 게 아니다.

 기존에 있는 것들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이야말로 혁신이다.

 “생각해보세요. 전 세계 공항에서 전용기를 빌려 타고, 세계 각지의 저택과 성을 돌아다니며 여행을 즐기는 겁니다.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다면 고객들은 기꺼이 돈을 지불할 겁니다. 이는 오직 블랙우드만이 가능한 서비스입니다. 그리고 스노우 크래시는 이에 필요한 시스템을 구축해드릴 수 있습니다.”

 테일러 회장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대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한 건가?”

 “블랙우드가 발전하고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몇 날 며칠 고심해서 생각해냈습니다.”

 사실 내가 생각해낸 건 아니고, 나중에 블랙우드가 ZWS와 손잡고 이렇게 한다. DA증권에서 일할 당시 이와 관련한 리포트를 열심히 썼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

 난 테일러 회장을 보며 물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대답은 정해진 거나 다름없었다.

 * * *

 최근 미국증시에서 가장 많이 거래된 종목은 바로 블랙우드 인터내셔널.

 매수세와 매도세가 부딪히며 하루에도 주가가 10퍼센트씩 오르내리기를 반복했다. 공매도 역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IT전문가들과 애널리스트들 모두 사흘 안에는 해결이 불가능할 거라 예상했다.

 그리고 드디어 약속한 사흘째가 됐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런 발표도 나오지 않았다. 주가는 다시 150달러 아래로 미끄러졌고, 공매도량이 치솟았다.

 일부 언론에서는 랜섬웨어 사태가 장기화되면 주가가 100달러 아래까지 추락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그런데 갑자기 기사가 떴다.

 [(WST 단독) 그레이트넷 조직원들 일제 검거, 블랙우드 인터내셔널 서버 복구 성공!]

 WST 기사를 시작으로 다른 언론사들의 기사도 쏟아졌다.

 [FBI, NSA 합동으로 사이버 테러단체 그레이트넷 일망타진]

 [블랙우드 인터내셔널, 테러단체와 협상하는 대신 수사에 협조. 끝까지 고객과의 신뢰 지켜]

 [FBI, 이번 검거는 스노우 크래시가 해킹 경로를 역추적하는데 성공한 덕분]

 [NSA, 향후 사이버 범죄조직 추적에 스노우 크래시와 공동대응하기로 협약]

 [스노우 크래시, 국가안보를 위해 기꺼이 협조하기로······]

 기사를 본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해커조직의 랜섬웨어 범죄는 모든 기업들이 공포에 떠는 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레이트넷은 수많은 해커조직 중에서도 가장 악명 높은 곳.

 그런데 감염경로를 추적해 그레이트넷 조직원들을 체포하는데 성공해냈다니!

 이는 FBI, NSA, 사이버사령부가 1년 넘게 수사했는데도 이루지 못한 성과였다. 그걸 스노우 크래시가 손대자마자 해결해버린 것이다.

 주식시장은 바로 반응했다.

 떨어지던 주가는 기사가 나오자마자 수직으로 치솟았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사람들도 블랙우드 호텔들이 영업을 재개하자 믿지 않을 수 없었다.

 -뭐야? 진짜로 해결한 거야?

 -쟤들을 대체 어떻게 잡은 거지?

 -시드 루카스 CEO가 해킹 경로를 추적했다는데. 저게 가능한 거였어?

 -이야! 그동안 FBI, NSA, 사이버사령부도 못 한 일을 혼자서 해낸 거야?

 -진짜 대단하다!

 -이번에도 데이비드 록허트 말이 맞았네. 사라고 했을 때 샀으면 못해도 50퍼센트는 먹었겠는데.

 -아! 그때 살걸 ㅜㅜ

 -컨티뉴 캐피탈만 돈 쓸어갔네.

 -ㅎㅎ 공매도한 놈들은 망했겠네.

 237달러에서 120달러까지 떨어졌던 주가는 사태가 해결되자 다시 230달러 선을 회복했다.

 떨어진 주가가 다시 올랐을 뿐이니, 계속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던 사람이라면 그냥 해프닝 정도로 끝날 일이다.

 하지만 그 며칠 사이 공매도에 나선 투자자들의 입장은 전혀 달랐다.

 주가가 오를수록 손실액은 커졌고, 증거금을 감당하지 못한 곳들은 앞다퉈서 포지션을 청산했다.

 마이클 프레스턴은 당황했다.

 무슨 수를 써도 사흘 안에 해결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오히려 공매도를 크게 늘렸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설마 이걸 해낼 줄이야!’

 시드 루카스라면 가능할 수도 있다는 동생의 말이 맞았다. 그런데 그 말을 듣고도 무시했던 것은 바로 그였다.

 샤크 매니지먼트는 비상이 걸렸다.

 “항의 전화가 걸려 오고 있습니다.”

 “투자자들이 해명을 요구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마이클 프레스턴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했다. 주가란 오를 때 더 크게 오르고 떨어질 땐 더 크게 떨어지는 특징이 있다.

 그동안 공매가 20배 가까이 늘었던 만큼, 이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주식을 사야 한다.

 일명 숏커버링(Short Covering)이다.

 악재 해소에 더해 매수세까지 몰리며 일시적으로 주가가 치솟았을 뿐.

 ‘지금이야 사태 해결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조금만 지나도 분위기는 달라질 거야.’

 당장 영업 중단으로 인한 손실과 위약금은 이번 분기에 반영될 테고, 이번 사태로 인해 디지털 전환에도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때까지 기다릴 만한 여유가 없다.

 “어떻게든 주가를 끌어내릴 방법을 찾아.”

 그러자 한 직원이 말했다.

 “고객 개인정보가 새어나갔을 수 있다는 루머를 퍼트리는 건 어떻습니까?”

 “데이터 유출은 없었다고 하지 않았나?”

 “그건 어디까지나 회사 측 주장입니다. 어딘가에서 그럴듯한 파일이 돈다면, 아니라고 해명해봐야 누가 믿겠습니까?”

 악마의 증명이라는 말이 있다.

 악마가 있다는 걸 증명하는 것은 쉽다. 보여주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악마가 없다는 걸 증명하는 건 무슨 수를 써도 불가능하다.

 누구도 보지 못했다고 해도 어딘가에 있을 가능성까지는 배제할 수 없으니.

 마찬가지로 고객 데이터 유출이 있었다는 것은 입증할 수 있어도 없었다는 걸 입증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지금의 주가 상승은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고객의 개인정보를 지켰다는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그 신뢰가 무너진다면?

 주가는 다시 폭락하게 될 것이다.

 웬만해서는 쓰지 않았을 방법이지만, 지금은 물불 가릴 때가 아니다.

 그런데······.

 그가 미처 손을 쓰기도 전에 새로운 발표가 시장을 뒤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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