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화. 랜섬웨어 (6)
블랙우드 인터내셔널 CISO 테리 그루핀.
CISO란 최고정보보호책임자로, 기업 내 정보보안을 총괄하는 위치다.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은 CISO를 두도록 법으로 강제하고 있다. 이는 이용자 보호를 위해서라도 기업이 정보보안을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서버가 악성코드에 감염돼 통째로 암호화되는 일이 발생했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복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상황은 점점 최악으로 흘러갔다.
서버가 멈추자 모든 시스템이 멈췄고, 모든 사람들이 그가 어서 문제를 해결하기만을 바랐다.
‘나보고 뭘 어쩌라고?’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사표를 쓰고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이건 사표를 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랜섬웨어 사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블랙우드에서 쫓겨나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회사에 취직도 힘들 것이다.
사실상 그의 커리어가 여기서 끝나는 것이다.
하루하루가 피가 마르는 느낌이었다.
식사를 언제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지만, 배고프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잠긴 서버를 풀 수 있다면 악마와도 손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에게 누군가 나타났다.
스노우 크래시 CEO 시드 루카스.
그에 대한 얘기는 평소 많이 들어왔다.
‘실리콘밸리 최고의 천재라고 했지?’
하지만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소문이란 언제나 과장되기 마련.
그리고 현대의 컴퓨터 시스템 체계는 너무 복잡해서 사람 한 명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열 명 정도 되는 팀이라면 모를까,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하지만 시드 루카스는 좀 달랐다.
마치 프로그램을 자신의 손발처럼 다뤘다. 코드를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뭐가 문제인지를 순식간에 알아냈다.
어느새 다들 하던 일을 멈추고 시드만 쳐다보았다.
‘얜 대체 뭐지?’
글로벌 호텔기업의 CISO 자리에 오기까지 여러 천재들을 만나봤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건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반나절 정도 서버 복구에 매달리더니 결국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면서 시간이 부족하다는 핑계를 댔다.
‘그럼 그렇지.’
이대로 포기했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의 얘기를 꺼냈다.
바로 모나앱을 해킹하겠다는 것이다.
‘뭔 헛소리야?’
보안 담당자인 만큼 모나앱의 보안이 얼마나 완벽한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모나앱을 해킹하느니 차라리 암호화된 서버를 복구하는 게 훨씬 쉬울 것이다.
그런데······.
시드 루카스는 보란 듯이 모나앱을 해킹했다.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천재다! 아니, 신이다!’
그다음 일은 술술 풀렸다.
복호화키가 넘어오자 시드는 즉시 작업에 들어갔다.
앉아서 일하는 동안 단 한 순간도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고, 키보드에서 손가락을 떼지 않았다.
놔두면 쓰러질 것 같아서 주위에 사람이 달라붙어서 음료와 식사를 도와줘야 할 정도였다.
“어! 역시 악성코드가 숨겨져 있네요. 이걸로 데이터를 빼내려 했던 모양인데요.”
다들 시드가 찾아낸 코드를 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만약 말해주지 않았다면 절대로 찾지 못했을 것이다.
“대체 어떻게 저게 가능한 거죠?”
부하직원의 말에 테리 그루핀은 고래를 저었다.
“저건 노력해서 되는 게 아니야.”
“그럼요?”
“그냥 저렇게 타고난 거지.”
깔끔하게 악성코드 제거까지 끝마친 시드는 농담처럼 중얼거리며 키를 눌렀다.
“빛이 있으라.”
그러자 빛이 있었다.
서버가 정상 작동하는 걸 본 미켈 더든과 테리 그루핀, 그리고 프로그래머들은 일제히 두 손을 치켜들며 소리를 내질렀다.
“와아아!”
“좋았어!”
다들 얼싸안으며 방방 뛰었고, 몇몇 직원들은 감격의 눈물을 쏟아 냈다.
시드는 그 모습을 보며 졸린다는 듯 하품을 했다.
* * *
시드는 약속한 대로 하루 만에 서버를 복구해냈다.
테일러 회장은 바로 사내에 서버 복구 사실을 알렸다. 그러자 본사가 떠나갈 듯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어찌나 발을 구르는지 건물이 흔들리는 것 같은 착각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난 시드의 어깨를 두드렸다.
“고생 많았어.”
“뭘요. 나름 재밌었어요.”
시드는 잠도 자지 않고 20시간 넘게 서버 복구에만 매달렸다. 가뜩이나 하얀 얼굴이 더 창백해 보였다.
“아! FBI랑 NSA랑은 잘 얘기했어.”
아직 정식 계약을 맺은 건 아니지만, 양쪽 모두 바로 손을 잡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하루도 안 돼 결정한 걸 보면 다른 곳이 독점으로 가져가는 것만큼은 참을 수 없었나 보다.
뭐, 쓰다 보면 우리 쪽으로 조금씩 넘어오겠지. 그렇게 야금야금 ZWS의 점유율을 뺏어올 생각이다.
“FBI와 NSA도 고객이 됐네요.”
“다 모나앱 해킹툴 덕분이지.”
시드는 날 보며 물었다.
“어떻게 해킹한 건지 아직도 궁금해요?”
“비밀이라며? 말 안 해줘도 괜찮아.”
“그래도 형한테만 특별히 말해줄게요.”
“······.”
굳이?
친절하게 풀어서 설명해준다고 해도 뭔 소리인지 못 알아들을 텐데.
그런데 시드의 말은 전혀 뜻밖이었다.
“그거 사실 제가 만든 거예요.”
“······응?”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안 된다.
“알아. 해킹툴 니가 만든 거.”
“그거 말고요.”
“그거 말고 뭐?”
“모나요.”
순간, 소리칠 뻔했다. 난 터져 나오는 소리를 간신히 목구멍으로 삼켰다.
아니, 이게 대체 뭔 소리야?
난 마음을 진정시킨 다음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자, 잠깐. 니가 모나를 만들었다고?”
“예.”
“어떻게?”
시드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토크잇에서 일하고 있을 때 이것저것 배우고 있었거든요. 그러다 해킹에도 관심이 좀 생겨서 다크웹에 해커들이 모인 사이트에도 가끔 들어갔어요. 어쩌다 보니 거기서도 좀 유명해졌는데, 누가 저한테 의뢰를 했어요. 특수칩에서만 작동되는 앱을 만들어달라는 의뢰였는데, 딱히 이상한 앱도 아니고 메신저앱이라기에 용돈벌이라도 할 겸 만들어줬죠. 혹시 몰라 백도어를 만들어 놨지만요.”
“그, 그게 모나인 줄 알았어?”
시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때 이후로는 잊고 있었거든요. 나중에 이름을 들어보긴 했는데, 사용하지는 않아서 제가 만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어요.”
의뢰인은 시드가 만들어준 프로그램 설계를 기반으로 커스텀한 다음, 보드에 특수칩을 박은 핸드폰에 깔아 암시장에서 판매했다.
“그런데 이번에 추적하는 과정에서 살펴보니까 제가 예전에 만들었던 것과 똑같더라구요. 이것저것 많이 바꿔놓긴 했지만 기본 설계는 그대로였어요. 그래서 백도어로 들어가서 그냥 싹 털었죠.”
“······.”
이건 1회차 때도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이다.
어쩐지 다들 불가능하다고 한 걸 손쉽게 해냈다 했더니, 설마 이런 비밀이 숨어 있었을 줄이야!
기가 막혀 아무 말도 못 하는 나를 보며, 시드는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설마 범죄에 쓰일 거라고는 생각 못 했어요.”
엄밀히 말해 모나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앱이다.
그걸 범죄자들이 사용하는 게 문제일 뿐.
어쨌거나 자신이 만든 앱이 범죄에 사용됐다고 하니 책임감 같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FBI와 NSA에 해킹툴을 그냥 넘겨줬던 거고.
난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하하!”
만약 시드랑 친해지지 않았다면 영원히 몰랐을 일이다.
“비밀이니까 아무에게도 말하면 안 돼요.”
“그럼. 약속할게.”
시드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그런데 악성코드 침투 경로를 추적하다가 재밌는 걸 하나 찾아냈어요.”
“뭔데?”
시드는 나에게 자신이 알아낸 것을 말해주었다.
이건 1회차 때 들어서 알고 있던 내용이다. 하지만 난 전혀 생각도 못 했다는 듯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정말이야?”
“네.”
난 속으로 웃었다.
“알았어.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일단 좀 자고 있어.”
시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졸려 죽을 것 같아요.”
* * *
시드가 자는 사이, 난 테일러 회장을 만났다.
“한숨 돌렸군.”
애써 표정을 관리했지만, 입꼬리가 슬슬 올라갔다.
어제까지만 해도 잘리네 마네 했었는데, 이제는 테러의 위협에 굴하지 않고 회사를 지켜낸 훌륭한 CEO가 됐다.
테일러 회장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네.”
“제가 한 일이 뭐 있나요? 감사는 루카스 CEO가 받아야죠.”
“안 그래도 따로 감사를 표할 생각이네.”
아마 시드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
이번 일로 가장 이익을 본 건 컨티뉴 캐피탈.
돈도 돈이지만, 스노우 크래시의 이름과 시드 루카스의 천재성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FBI와 NSA라는 고객도 확보했고.
하지만 여기서 끝낼 생각은 없다.
“그동안 주주들 볼 면목이 없었는데 정말 다행이네. 발표하고 나면 주가도 회복되겠지.”
“제 생각에는 지금 같은 분위기라면 주가를 더 끌어올릴 수 있을 텐데요.”
주가도 기세가 중요하다.
상승 흐름을 탔을 때 장작을 넣어주면 더욱 활활 타오르기 마련.
내 물음에 테일러 회장이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스노우 크래시와 클라우드 분야에서 협력을 하는 게 어떤가요?”
테일러 회장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이미 ZWS와 협력하고 있네만.”
“알고 있습니다.”
이번이 털린 걸 보면 알 수 있듯 블랙우드는 자체 서버를 운용하고 있다. 하지만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ZWS와 손을 잡았다.
블랙우드는 전 세계 5300개의 호텔을 운영하는 글로벌 호텔기업.
호텔 하나를 운영하는 것과 수천 개를 운영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객실, 직원, 비품, 서비스 등등 신경 써야 할 게 한둘이 아니다.
ZWS 클라우드 서비스를 사용한 이후 이를 통합 관리하는 것이 쉬워졌고, 전 세계 어디에 있든 블랙우드의 같은 라인의 브랜드는 고객에게 같은 서비스를 제공해주었다.
“장담컨대 저희가 훨씬 나은 서비스를 제공해드릴 수 있습니다. 이번에 실력은 충분히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이번 일에 대해서는 수백 번 감사해도 부족하겠지만, 그래도 하루아침에 서비스를 바꾼다는 건 불가능하네.”
“어째서요?”
“아무 이유 없이 ZWS와의 계약을 파기할 수는 없지 않나? 이사회와 주주들도 반대할 테고.”
블랙우드 이사회에는 ZWS에서 파견한 사람도 한 명 있다.
그만큼 두 회사는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난 그런 고객을 뺏으려 하는 거고.
“블랙우드의 경쟁자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그야 달튼 호텔 같은 다른 호텔기업들이겠지.”
난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블랙우드의 진짜 경쟁자는 숙박공유업체입니다. 자료를 한번 보시죠.”
난 컨티뉴 캐피탈이 만든 자료를 내밀었다.
거기에는 숙박공유업체들의 현황과 함께 호텔업에 진출했을 경우 호텔업종이 받게 될 타격이 그래프로 정리되어 있었다.
테일러 회장은 그걸 들고 자세히 보았다.
“에어비앤씨는 비상장임에도 이미 블랙우드의 시총을 제쳤습니다. 상장만 하면 이보다 두 배는 뛸 겁니다.”
“거긴 거기고 우린 우리지. 숙박공유업이 호텔업을 대체할 수는 없지 않겠나?”
처음 숙박공유업체가 생겨났을 때만 해도 호텔들이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뒤로도 호텔은 호텔대로 성장해왔다.
이는 어느 정도 시장이 나뉘어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에어비앤씨는 몇 년 안에 호텔업까지 진출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숙박공유회사는 호텔과 직접적으로 경쟁하게 될 겁니다.”
“설마 그런 일이 생기겠나?”
“예. 설마 그런 일이 생깁니다.”
“······.”
처음 만났을 때 이 얘기를 했다면 내 말을 흘려들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공헌한 대로 사흘 안에 랜섬웨어를 해결했다. 그때와 지금의 내 말은 무게가 다르다.
테일러 회장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겠나?”
“블랙우드는 더 이상 호텔업에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저쪽에 파이를 빼앗기기 전에 먼저 나서서 숙박공유업과 여행업에 진출해야 합니다.”
“그걸 위해 ZWS를 버리고 스노우 크래시로 갈아타라는 건가?”
난 당당하게 말했다.
“예. 스노우 크래시와 손잡으면 블랙우드를 단지 호텔기업이 아닌 종합트래블테크 기업으로 만들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