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랜섬웨어 (5)
두 사람은 당황한 듯 눈빛을 교환했다.
당연하지만 FBI와 NSA가 모나앱을 해킹할 수 있을 리 없다. 옆에서 보면서도 시드가 어떤 방식으로 해킹했는지 짐작조차 못하고 있을 테니.
윌튼 조사관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흠흠, 설명이 좀 부족했던 모양안데, 저희 얘기는 해킹툴을 제공해달라는 거였습니다.”
난 그제야 알아들었다는 듯 말했다.
“아! 그러니까 루카스 CEO가 제작한 해킹툴을 FBI와 NSA에 넘기라는 얘기였군요.”
“그렇습니다.”
“윗선과는 얘기가 된 겁니까?”
리드 조사관이 말했다.
“물론입니다. FBI 브릿랜드 국장님께서 직접 지시하신 사항입니다.”
“NSA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드 말로는 그냥 시간 날 때 대충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런 것치고는 기능이 매우 좋았다.검색 기능도 있어서 ‘테러’나 ‘해킹’ 같은 특정 키워드를 찾는 것도 가능했다.
이것만 있으면 그야말로 모나앱에서 오가는 대화를 손바닥 보듯 들여다볼 수 있다. 수사에 활용하면 저인망 그물로 바닥을 훑듯 범죄자들을 줄줄이 낚을 수 있게 되는것이다.
아마 FBI와 NSA 수뇌부는 이 얘기를 전해 듣고 두 팔을 들고 환호하지 않았을까?
난 내키지 않는다는 투로 말했다.
“그건 좀 곤란한데요.”
“어째서입니까?”
“무슨 문제라도······?”
난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모나는 메신저앱이잖아요.”
“그렇죠.”
“해킹툴이 있으면 오가는 메시지를 들여다볼 수 있구요.”
“예.”
“그럼 범죄 모의나 테러 모의, 마약 거래 말고도 선량한 이용자들의 일상적인 대화도 멋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내 말에 두 사람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범죄자가 아니면 그 앱을 누가 그걸 쓴다고······.”
“대체 어떤 선량한 이용자가 암시장에서 핸드폰을 구매해 5천 달러씩 내며 메시지를 보냅니까?”
“글쎄요. 가족의 반대를 피해 몰래 연락을 주고받는 연인이라든지?”
“······지금 장난합니까?”
“장난이라니요? 99명의 범죄자를 놓치더라도 한 명의 선량한 사람을 붙잡아서는 안 된다는 얘기도 있잖아요.”
“······.”
두 사람은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러다가 정말로 99명의 범죄자를 놓치게 생겼다!
리드 조사관이 말했다.
“루카스 CEO에게 물어봤는데, 제공하겠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윌튼 조사관도 재빨리 거들었다.
“맞습니다. 제작자의 의사가 가장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난 고개를 저었다.
“안 그래도 아까 얘기 전해 듣고, 수사기관이 개인을 감시하는데 악용할 위험이 있다고 충고해주었습니다. 그러자 저보고 결정하라던데요.”
“아니, 왜 그런 말을······.”
“사실이니까요. 생각해보세요. 요즘같이 개인정보에 민감한 시기에 수사기관이 멋대로 개인의 사생활을 감시하면 문제가 되지 않겠습니까? 피해를 본 이용자가 스노우 크래시에 소송이라도 하면 저희도 곤란해질 테구요.”
리드 조사관이 말했습니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해킹툴 제공 사실은 철저하게 비밀로 붙이겠습니다.”
“그걸 어떻게 믿나요? 지난번에 FBI 직원이 정보 빼돌려서 팔아먹다가 걸리지 않았나요?”
“······.”
안 되겠다 싶었는지 윌튼 조사관은 강압적인 투로 말했다.
“국가안보를 위한 일입니다. 테러를 막지 못해 사람이 죽으면 미스터 한이 책임질 겁니까?”
난 뭔 소리 하냐는 듯 말했다.
“그걸 제가 왜 책임지나요? 꼬박꼬박 세금으로 월급 받으며 테러범들을 제때 못 잡은 FBI와 NSA가 책임져야지.”
그는 언성을 높였다.
“국가안보를 위한 일에 협조하지 않는다면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난 짐짓 무섭다는 듯 몸을 움츠렸다.
“어! 지금 협박하신 거예요?”
그러자 그는 더욱 강하게 밀어붙였다.
“협박이면 어쩔 겁니까?”
“어쩌긴요. 루카스 CEO가 말하길 누가 해킹툴 강제로 빼앗으려고 하면 그냥 삭제해버리라고 했으니 영구 삭제해야죠.”
그 말에 그는 재빨리 꼬리를 내렸다.
“혀, 협박 아닙니다.”
“협박인 것 같은데.”
“오해입니다. 어디까지나 그런 우려가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정보전달 차원에서 조심스럽게 알려드린 것뿐입니다.”
이들은 베테랑 수사관들.
적당히 말로 구슬리면 넘겨줄 거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내가 거기에 따를 이유는 없다.
내가 자선사업 하는 사람도 아니고, 이번 기회에 받아낼 수 있는 건 최대한 받아내야겠지.
리드와 윌튼 모두 나를 설득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강압적으로 말했던 것도 잠시뿐.
나중에는 거의 사정하는 어조로 말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사회의 안녕과 국민의 생명을 위한 일입니다.”
난 확답을 받듯 말했다.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 걸 보니, FBI와 NSA 모두 모나앱 해킹툴이 꼭 필요한 모양이네요.”
리드 조사관은 순순히 인정했다.
“그렇습니다.”
윌튼 조사관 역시 매달리듯 말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릴 수 있을 겁니다.”
밀당은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난 적당히 뜸을 들인 다음 입을 열었다.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국가안보를 위한 일이라고 하니, 협조를 안 할 수 없겠네요.”
그 말에 두 사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잘 생각하셨어요.”
“훌륭한 결단을 하셨습니다.”
아직 좋아하기는 이르다.
내 말 아직 안 끝났으니까.
“그런데 설마 공짜로 해달라는 건 아니죠?”
“예?”
“공짜 점심은 없다는 얘기 못 들어보셨어요? 유명한 격언인데.”
“······.”
반응을 보아하니 말 안 했으면 날로 먹으려 했던 모양이다.
윌튼 조사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비용은 얼마나 생각하는지······?”
“제가 원하는 금액 말씀드리면 아예 예산을 따로 편성해야 할걸요.”
“······.”
말은 이렇게 했지만 정말로 돈이 필요한 건 아니다. 돈은 투자로 얼마든지 벌 수 있으니.
필요한 건 명성.
FBI와 NSA는 중요한 정보를 다루는 수사기관.
이런 곳을 고객사로 삼는다면 스노우 크래시의 입지가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난 괜히 고심하는 척한 다음 말했다.
“그래도 국가안보가 걸려있는 일이니 제 이익만 내세울 수는 없겠죠.”
“가, 감사합니다.”
“단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뭔가요?”
“FBI와 NSA 모두 스노우 크래시와 클라우드 분야에서 협력을 맺는 겁니다.”
“무슨 말씀인가요?”
“모나앱을 해킹한다고 해도 그걸로만 수사하는 건 아니잖아요. 범죄 사건 하나에만 수십 테라의 데이터가 수집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수집한 데이터를 잘 활용하는 것만으로도 사전에 범죄를 예방하고, 범죄자를 추적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스노우 크래시는 수사와 관련한 솔루션을 제공해드릴 수 있습니다.”
두 사람 다 곤란하다는 표정이었다.
“FBI는 이미 ZWS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NSA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공공기관들 역시 디지털 전환이 이뤄지는 중이다.
이러한 공공 클라우드 분야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곳은 역시나 ZWS. 혼자서 이 시장의 70퍼센트를 점유하고 있다.
이유는 가장 먼저 클라우드 사업에 뛰어들었기 때문.
과거 수사기관은 수집한 자료를 일일이 눈으로 보고 손으로 찾았다. 하지만 클라우드의 도입은 이러한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ZWS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단순 업무의 90퍼센트가 줄고, 인력 효율은 80퍼센트가 오르고, 분석 시간은 70퍼센트 빨라졌다고 한다.
실제로 검거율 역시 크게 올랐다.
난 마치 처음 알았다는 듯 말했다.
“아! 그래요? FBI와 NSA 모두 ZWS와 클라우드 협력을 하고 있었을 줄이야. 전혀 몰랐네요.”
“그렇습니다.”
“그래도 상관없지 않나요?”
“예? 상관없다니······.”
“ZWS를 쓴다고 스노우 크래시를 쓰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요. 멀티 클라우드를 쓰는 곳이 한둘이 아니고.”
난 슬쩍 자료를 내밀었다. 컨티뉴 캐피탈 직원들이 밤새가며 만든 거다.
“동일한 데이터를 분석한다 쳤을 때 ZWS와 스노우 크래시를 비교한 자료입니다. 스노우 크래시가 정확도와 효율이 20퍼센트 높고, 분석 시간은 30퍼센트 빠릅니다.”
공공기관들은 아무래도 일반 기업에 비해 데이터 활용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당장 데이터를 다루는 사람의 능력부터 차이가 난다.
기업들이야 연봉을 수십만 달러씩 주고 인재를 고용하지만,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은 기껏해야 연봉 수만 달러의 공무원이니까.
때문에 시스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리드 조사관이 말했다.
“그건 좀 곤란합니다.”
“어째서요?”
“ZWS도 반발할 테고, 국장님께서도 동의하지 않으실 겁니다.”
“이상하네요. 아까는 국가안보를 위해 당연히 협조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국가안보를 위한 일인데 ZWS가 반발하거나 국장님께서 동의하지 않으실 리 없지 않나요?”
“······.”
관료조직은 변화를 싫어하고, 한번 정해진 업체를 잘 바꾸지 않는다. 기존 업체를 제치고 새로운 계약을 맺는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아마 몇 년을 로비를 벌여도 힘들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좀 다르다.
모나앱 해킹툴은 수사기관 입장에서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나 다름없으니까. 이걸 손에 넣기만 하면 범죄 검거율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다.
난 바로 윌튼 조사관에게 물었다.
“NSA 역시 마찬가지 의견인가요?”
그 역시 곤란하다는 투로 말했다.
“이 문제는 제가 쉽게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결정을 못 하는 바람에 테러로 사람이 죽으면 조사관님께서 책임지시나요?”
윌튼 조사관은 황당하다는 듯 반문했다.
“아니, 그걸 왜 제가 책임집니까?”
“그럼 아까는 왜 저한테 책임지라고 했나요?”
“······.”
난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저희는 해킹툴이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경우를 우려합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스노우 크래시 클라우드에서가 아니라면 사용은 절대 불가능합니다. FBI와 NSA 모두 안 하겠다고 했으니, 방금 얘기는 없었던 걸로 하고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내가 일어나려 하자 두 사람은 깜짝 놀라 나를 붙잡았다.
“자, 잠깐만요.”
“일단 앉아보시겠습니까?”
“왜요? 안 된다면서요?”
두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안 된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일단 윗선과 상의를 해보겠습니다.”
“저도 국장님을 설득해보겠습니다.”
“설득하실 수 있겠어요?”
“그럼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말은 이렇게 해도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
의사결정 과정이 느린 건 관료조직의 특징. 가만히 놔뒀다가는 회의하느라 시간만 흘려보낼 것이다.
어느 나라나 공무원은 비슷한 법이지.
그래서 빠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내가 좀 도와주기로 했다.
“아! 그럼 이 말도 전해주세요. 먼저 계약하는 쪽이 원한다면 독점으로 해드리겠다고.”
“그게 무슨······?”
“독점이면 다른 쪽은 못 쓰게 된다는 것 아닙니까?”
“어차피 다 같은 미국 수사기관인데 필요할 때마다 서로에게 협조를 부탁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
다 같은 미국 수사기관이기 때문에 부처 간의 강한 알력이 존재할 것이다.
FBI와 독점계약하면 NSA는 수사 자료를 얻기 위해 FBI에게 문의해야 하고, NSA와 독점계약하면 반대로 해야 한다.
제대로 협조해줄지도 모르고, 괜히 협조 요청했다가 중간에 실적으로 가로채거나 할지도 모른다.
어느 쪽도 그런 상황을 원치는 않을 것이다.
두 사람은 잠시 눈치를 보더니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화 좀 하고 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천천히 다녀오세요.”
난 의자에 앉아 느긋하게 기다리며 1회차 때를 떠올렸다.
롤프 부치는 해킹툴을 수사기관에 넘겨주었다. 아마 시드가 그렇게 하길 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FBI와 NSA는 잡범은 건드리지도 않고 중범자들만 잡아들였다. 그러고는 언론에는 마치 다른 수사기법을 활용해 체포한 걸로 발표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3년쯤 지나자 범죄자들도 슬슬 이상함을 느꼈다.
사실이 알려지기 직전 FBI와 NSA는 마지막으로 한탕(?)하고 끝내자고 생각했는지, 그동안 수집한 정보를 인터폴과 각국 수사기관에 뿌렸고 전 세계 범죄자들을 일망타진했다.
이때 검거된 범죄자만 해도 3천 명이 넘었다.
모나앱 해킹툴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 결국 내 요구 조건을 들어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뭐든 시작이 힘든 법이다. 한번 써보면 ZWS보다 스노우 크래시 서비스가 뛰어나다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될 것이다.
그동안 협력해온 ZWS 입장에서는 고객을 빼앗기는 셈이니 강하게 반발하겠지만······ 상관없다.
ZWS가 데이터 이용을 제한하겠다고 협박하거나 헐값에 지분을 넘기라고 스노우 크래시를 압박하는 건 우리를 만만하게 보기 때문.
그러니 이번 기회에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