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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화. 랜섬웨어 (3) (170/529)

 175화. 랜섬웨어 (3)

 샤크 매니지먼트는 일찍 공매도에 나선 만큼 아직 손실을 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 반등으로 인해 수익의 70퍼센트가 순식간에 날아갔다.

 마이클 프레스턴은 휘둘리지 않고 차분하게 생각했다.

 블랙우드 서버를 암호화시킨 곳은 다름 아닌 그레이트넷.

 이들은 사상 최악의 사이버범죄 조직으로 불리는 곳이다.

 그레이트넷과 협상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주가를 끌어올렸지만, 이는 상당히 리스크가 있는 일이다.

 만약 서버 복구에 실패한다면, 결국 협상에 나서야 할 테고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그동안 그레이트넷이 벌인 랜섬웨어 범죄 중 돈을 건네지 않고 자력으로 해결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이러는 거지?’

 고심하는 마이클에게 여동생의 전화가 걸려 왔다.

 [저예요, 오빠. WST 기사 보셨나요?]

 “봤어.”

 에리카 프레스턴이 말했다.

 [정말이지 대단하지 않나요? 주가를 떨어트려서 돈 벌고, 이번에는 주가를 올려서 돈을 벌다니.]

 이런 식의 투자 방식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 타이밍을 정확하게 맞추고, 거기에 자산을 전부 베팅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처음 샤크 매니지먼트에 영입을 제안했을 때만 해도 데이비드 록허트는 저평가 우량주였다.

 하지만 어느새 그는 월가의 유명인이 됐다. 고작 지역 인터넷언론사에 불과한 WST의 기사를 모든 언론들이 받아쓸 정도로 말이다.

 ‘젠장! 빅토리 인베스트먼트가 망하자마자 데려왔어야 했는데.’

 지나간 일은 후회하지 않는 성격이지만, 데이비드 록허트에 대해서만큼은 달랐다. 괜히 뜸 들였다가 남 좋은 일만 시켜준 셈이니.

 [누가 이 방식을 설계했는지 궁금하네요. 데이비드 록허트일까요, 한미루일까요?]

 ‘그러고 보니······.’

 이전까지 데이비드 록허트의 투자 방식과는 전혀 달랐다. 그렇다면 그 한국인이 뭔가 영향을 끼친 걸까?

 “당장이야 주가를 끌어올린다 해도 해결하지 못하면 소용없어. 그전까지는 팔지도 못할 테고.”

 기사가 나간 뒤 블랙우드 인터내셔널 주식은 180달러 선까지 올랐고, 거래량은 10배 이상 늘었다.

 주가가 치솟자 공매도 역시 폭증했다.

 말 한마디로 이런 상황을 만들어놓고 본인들은 팔고 나간다면, 주가조작으로 고발당하게 될 것이다.

 [데이비드 록허트는 사흘 안에 해결하겠다고 공언했어요.]

 “사흘 안에 해결하는 건 불가능해.”

 [알렉스 오빠의 생각은 다르던데요.]

 알렉스 프레스턴은 불과 얼마 전까지 스노우 크래시의 CEO였다. 그런 만큼 스노우 크래시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정말로 랜섬웨어를 해결할 만한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뭐라고 했는데?”

 [시드 루카스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대요. 사흘의 기간을 제시한 것에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그러니 참고하세요.]

 “알았어.”

 통화를 끝낸 뒤, 마이클은 머릿속으로 생각을 이어나갔다.

 ‘설마 알렉스는 록허트의 기사를 보고 주식을 매수했나? 아니면, 공매도를 해놓고 다른 정보를 흘리는 건가?’

 당장 몸값을 지불하고 복호화키를 넘겨받아도 정상화에는 일주일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됐다.

 따라서 컨티뉴 캐피탈이 제시한 사흘 안에는 무슨 수를 써도 불가능하다.

 ‘제시한 기한 안에 정상화를 시키지 못한다면 주가는 다시 폭락하게 될 텐데.’

 지금 공매도가 폭증하고 있는 건 다들 그와 같은 생각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번만은 록허트가 틀렸다.

 그럼 지금 시점에서 먼저 발표를 한 이유는 뭘까?

 ‘설마 앞으로는 주식을 매수하며 뒤로는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다른 투자를 하고 있는 건가?’

 데이비드 록허트라면 그런 비도덕적인 행동을 할 리 없다.

 하지만 그 한국인이라면?

 이제까지 행보를 보면, 그는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들었다.

 ‘일을 해결할 때까지 주가를 위아래로 계속 흔들 속셈인 건가? 그사이 계속 샀다 팔았다를 반복하며 돈을 벌고?’

 그렇다면 사흘 후에는 주가가 크게 한번 빠지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이건 절호의 기회다.

 마이클 프레스턴은 이전보다 수량을 배로 늘려 블랙우드 인터내셔널 주식을 공매도했다.

 * * *

 제시한 사흘 중 벌써 하루가 지나갔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시간이 초조하게 흘러가는 가운데 긴급회의가 열렸다.

 이유는 시드가 할 말이 있다며 복구 작업을 중단시켰기 때문.

 회의실에는 테일러 회장, 미켈 더든 CIO(최고정보책임자), 나, 그리고 FBI와 NSA 조사관들이 앉았다.

 그 앞에 선 시드는 곱슬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작업을 좀 해보니까 서버가 통째로 잠겼어요. 백신도 복구 소프트웨어도 전부 안 먹히고. 명령 프롬프트는 아예 열리지도 않고.”

 너무 당연한 얘기다. 그게 됐다면 진작 복구했겠지.

 다들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었다.

 “시간만 있으면 풀 수 있을 것 같은데, 시간이 부족해요.”

 귓가에 테일러 회장의 한숨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리드 조사관이 물었다.

 “시간이 얼마나 더 필요하다는 건가요?”

 “한 열흘 정도면 될 것 같은데요.”

 윌튼 조사관은 코웃음을 쳤다.

 “하! 그런 말은 누가 못해?”

 테일러 회장은 중얼거리듯 말했다.

 “어째 프로그래머들은 뭘 시키든 매번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말만 하는군.”

 사람들의 시선은 어느새 나에게 향해있었다.

 그렇게 큰소리쳐 놓고는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는 거겠지.

 난 시드에게 물었다.

 “혹시 다른 방법 있어?”

 시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생각해봤는데 여기서 서버를 푸는 것보다 해커를 잡는 게 더 빠르지 않겠어요? 넷워커를 잡으면 잠긴 서버도 풀 수 있을 테니.”

 “그렇지.”

 자물쇠를 잠근 놈을 찾으면 열쇠는 따라오기 마련이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나와는 달리 다른 사람들은 다들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윌튼 조사관은 짜증 섞인 투로 말했다.

 “참나! 그러니까 대체 어떻게 넷워커를 잡겠다는 건가? 설마 우리가 그동안 잡기 싫어서 안 잡았다고 생각해?”

 시드는 그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왜 화를 내세요?”

 그러자 그는 당황했다.

 “아, 아니, 화를 낸 게 아니라······.”

 난 그에게 말했다.

 “사과하세요.”

 “뭐? 내가 왜······.”

 난 윌튼 조사관을 무시하고 시드에게 말했다.

 “저 사람 신경 쓰지 말고 계속 말해.”

 “예. 그래서 모나를 해킹해 봤거든요.”

 그 말에 진짜 화를 내려던 윌튼 조사관은 입을 다물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테일러 회장은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물었다.

 “모나가 대체 뭔가?”

 리드 조사관이 설명해주었다.

 “메신저앱입니다.”

 시드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나(MONA)가 뭔지 알아야 한다.

 모나는 특수 메신저앱.

 일반적으로 앱은 스마트폰의 앱스토어에서 다운받는다.

 하지만 모나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이 앱이 깔려있는 특수 핸드폰을 암시장에서 구매해야 한다.

 구매한다고 바로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기존 사용자 3명의 추천이 있어야 하고, 돈을 내야 한다. 가입비 5천 달러에, 1년 사용료 5천 달러.

 공짜 앱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대체 왜 가입도 힘들고 돈도 많이 드는 이런 앱을 사용하는 걸까?

 그 이유는 막강한 보안성을 자랑하기 때문.

 모든 메시지는 암호화돼서 전송되고, 메시지를 보낸 다음 일정 시간 후 사라지게 만들 수도 있고, 한번 사라진 메시지는 무슨 수를 써도 복원되지 않는다.

 이러한 점들이 알려지며 범죄자들 사이에서 필수앱이 됐다. 이 앱을 통해 조직원을 모으고 범죄를 모의하는 일이 당연해졌다.

 윌튼 조사관은 헛웃음을 흘렸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시드가 되물었다.

 “왜 말이 안 돼요?”

 “그걸 어떻게 해킹한다는 거지? 그건 불가능한 일인데.”

 “왜 불가능해요?”

 그는 당황했다.

 “왜냐니······.”

 당연히 불가능한 일을 왜 불가능하냐고 물어보면 할 말이 없겠지.

 그동안 수사기관들은 이 앱을 해킹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당연히 아무 소용없었다.

 심지어는 테러범의 스마트폰을 입수했지만, 그 안에 있는 메시지를 복구하는 것도 실패했다.

 시드는 굳이 말로 설명하는 대신 노트북을 열어서 자신이 해킹한 자료를 보여주었다.

 “이거 맞죠?”

 다들 눈을 크게 뜬 채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이걸 어떻게······.”

 “말도 안 돼······.”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이다.

 먼저 정신을 차린 리드 조사관이 물었다.

 “대체 이걸 어떻게 한 겁니까?”

 “몇 달 전에 해킹툴을 만들어 봤어요.”

 “그걸 왜 만들었습니까?”

 “해커들이 스노우 크래시 고객사에 악성코드를 심으려고 한 적이 있었어요. 그놈들 잡으려고 만들었는데, 그전에 붙잡혀서 쓸 일이 없었죠.”

 뒤늦게 정신을 차린 윌튼 조사관이 물었다.

 “그, 그래서 넷워커를 찾았습니까?”

 “예. 이쪽 업계에서는 유명한 사람이니까요. 메시지에 개인을 특정할 만한 정보는 없었는데, 전자지갑 중 하나가 코인맥스 거래소에 등록된 걸 확인했어요.”

 거래소를 이용하는 이유는 암호화폐를 팔아서 달러로 바꾸기 위함.

 연결된 계좌를 확인하면 본인을 추적하는 것도 가능하다!

 설명을 들은 리드 조사관이 말했다.

 “이 해킹툴, FBI도 사용할 수 있습니까?”

 “네. 어렵진 않아요.”

 월튼 조사관은 재빨리 말했다.

 “NSA도 수사에 필요합니다.”

 모나는 범죄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메신저앱.

 이것만 추적할 수 있어도 상당수의 범죄를 사전에 막거나, 범죄자들을 붙잡을 수 있을 것이다.

 뭐, 그건 그렇고······.

 난 조사관들을 보며 말했다.

 “뭐해요? 어서 거래소에 연락해 계좌 추적하지 않고? 이번 기회 놓치면 다시는 못 잡을 텐데요.”

 내 말에 화들짝 정신을 차린 FBI와 NSA 조사관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 * *

 LA 베벌리힐스의 대저택.

 집 안에서는 파티가 한창이었다. 시끄러운 음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젊은 남녀들은 술을 마시며 춤을 췄다.

 집주인이자 파티 주최자인 해리 프랭크는 소파에 기댄 채 핸드폰을 만졌다.

 그는 2년 전 암호화폐 전문 투자회사 프랭크코인을 창업해 엄청난 성공을 거둔 억만장자였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외부에 알려진 모습.

 실체는 따로 있었다.

 그가 보고 있는 핸드폰 화면에 채팅이 빠르게 올라왔다.

 [기사 봤어? 이놈들 진짜 돈 낼 생각 없는 건가?]

 [테러리스트와 협상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던데. 대체 무슨 배짱인 거지?]

 [정말로 데이터가 다 날아가도 상관없다는 건가?]

 [언론에는 저렇게 해놓고 뒤로는 깎아달라고 하려는 게 아닐까?]

 이제까지 랜섬웨어에 걸린 기업들은 순순히 돈을 지불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황이 좀 다르게 흘러갔다.

 돈을 지불하지 않고 알아서 서버를 복구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여기에 스노우 크래시가 나섰다.

 그는 CEO인 시드 루카스에 대해 알아보았다. 고작 20대 초반의 나이에 실리콘밸리 최고의 천재 프로그래머로 불렸고, 그만한 실력을 지녔다.

 ‘그래 봤자 나한테는 안 돼.’

 그동안 그는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해냈다. 모두가 그를 주목했고, 모두가 그를 두려워했다.

 그는 바로 그레이트넷의 리더 넷워커였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해리 프랭크는 잠시 생각한 메시지를 적었다.

 [협상 중단해. 그동안 너무 사정 봐줬어. 이번에 한번 어떻게 되는지 보여줘야 앞으로 순순히 달라는 대로 내겠지.]

 [돈을 받지 말자는 거야?]

 [정말로 서버를 망가뜨려도 괜찮을까?]

 [수사기관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지난번 사건으로 FBI, NSA, 사이버사령부까지 달라붙었어.]

 그레이트넷은 테러 단체로 지정됐고, 넷워커는 수배 대상이 됐다.

 하지만 위기감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가 넷워커라는 사실은 가족도 모르는 사실이다. 심지어는 그레이트넷 조직원들까지.

 넷워커는 오직 네트워크 속에만 존재한다.

 따라서 그가 잡힐 일은 결코 없다.

 해리 프랭크는 손가락으로 핸드폰을 두드렸다.

 [상관없어. 그놈들은 절대 우리를 못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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