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4화. 랜섬웨어 (2) (169/529)

 174화. 랜섬웨어 (2)

 시드는 블랙우드 직원, 그리고 수사기관 전문가들과 함께 서버실로 들어가 암호화된 서버를 살펴보고 풀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다들 기대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이런 어린애가 얼마나 도움이 되겠냐 싶겠지.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분위기가 달라졌다.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던 조사관들은 어느새 허리를 숙인 채 시드의 말 한마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난 데이비드와 통화했다.

 데이비드는 한숨을 내쉬듯 말했다.

 [일이 잘못되면 정말 주가조작으로 잡혀갈 판이로군요.]

 “잘되면 주가조작이 아니지 않겠어요?”

 해결하겠다고 나서서 주가를 끌어올렸다. 만약 해결은 못 했는데 이익만 내고 끝난다면 정말 잡혀가도 할 말 없을 것이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전 보스만큼 루카스 CEO를 믿지는 않습니다.]

 “그럼요?”

 [하지만 루카스 CEO를 믿는다는 보스의 말은 믿습니다.]

 난 웃음을 지었다.

 “아! 그보다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어요.”

 내 지시를 들은 데이비드가 물어보았다.

 [벌써 일이 끝난 뒤를 생각하고 계신 겁니까?]

 “예. 우수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잖아요.”

 통화가 끝난 다음 난 회장실로 향했다.

 테일러 회장은 지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괜찮으세요?”

 “내가 괜찮아 보이나?”

 “힘들어 보이긴 하네요.”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이제까지 여러 위기를 겪었지만, 이번 위기는 최악이네. 주주들이 날 총으로 쏘지나 않으면 다행이겠군.”

 주가가 반토막 났으니, 주주들의 분노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만약 내일이 주총이라면 바로 모가지다.

 난 소파에 앉아 비서가 가져다준 커피를 마셨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테일러 회장이 말했다.

 “어째서 그렇게 태평한 건가? 일이 잘못되면 그쪽도 문제가 이만저만이 아닐 텐데.”

 어차피 한 차례 털어먹었으니(?) 금전적으로 손해 볼 건 없다.

 하지만 이렇게 자신 있게 나섰는데 해결하지 못한다면 컨티뉴 캐피탈과 스노우 크래시의 명성에 금이 가게 될 것이다.

 “저까지 초조한 모습을 보이면 회장님께서 더 불안하시지 않겠습니까?”

 “자신이 있는 건지, 겁이 없는 건지 모르겠군.”

 “둘 다입니다.”

 나도 가끔 이런 내가 신기하다.

 미래를 아는 것에 대한 자신감일까? 아니면, 한번 죽었기 때문에 무서운 게 없어졌기 때문일까?

 테일러 회장은 헛웃음을 지었다.

 “아들놈이 좀 보고 배웠으면 좋겠군. 비슷한 나이인데 그놈은 아직 철딱서니가 없어서.”

 집에 돈이 1억 달러쯤 있을 텐데, 굳이 철들 필요가 있나?

 뭐, 아무리 부자여도 자식 걱정은 매한가지겠지.

 테일러 회장은 서랍을 열어서 뭔가를 꺼내들었다.

 “담배 피우시게요?”

 내 물음에 그는 손에 든 걸 들어 보였다.

 “담배가 아니라 대마네. 한 대 피우겠나?”

 “······사양하겠습니다.”

 대마가 합법인 미국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엄연한 마약이다.

 가뜩이나 여기저기 찍힌 게 많은 상황에서 대마를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귀국하자마자 체포당할지도 모른다.

 그는 대마에 불을 붙였다.

 매캐하고 퀴퀴한 냄새가 퍼졌다. 담배연기와는 비교도 안 되게 독하다.

 이런 걸 사무실에서 피워도 되나?

 테일러 회장은 대마를 입에 문 채 말했다.

 “이곳에 있을 날도 얼마 안 남았군.”

 “무슨 말씀이신가요?”

 “주가가 이 정도로 폭락했는데 계속 자리를 지킬 수 있겠나?”

 주가가 아무리 폭락해도 자리를 지키는 한국 재벌기업들과는 달리, 미국 기업들인 실적 안 좋으면 바로 갈린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위기는 언젠가 극복되기 마련 아니겠습니까?”

 “누가 그런 말을 했나?”

 “회장님께서요.”

 “내가?”

 “예. 금융위기로 경제가 침체됐을 때 투자를 늘리며 말씀하셨죠.”

 지금 들으면 너무 당연한 얘기 같지만 당시의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다. 모두가 세계 경제는 망했다고 말하던 시절이었으니.

 경쟁기업이 사업규모를 축소할 때 대규모 투자에 나설 만한 배짱이 있는 경영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제 생각에는 이번 일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블랙우드의 최우선 가치가 뭡니까?”

 “고객이지.”

 “그렇죠. 그러니까 이번 기회에 그 부분을 더욱 강하게 어필하는 겁니다.”

 “어떻게 말인가?”

 이걸 굳이 일일이 설명해줘야 하나?

 하지만 최대한 주가를 끌어올려야 나에게도 이득이니, 기꺼이 그에게 말해주었다.

 “아시다시피 그레이트넷은 테러단체로 지정됐습니다. 다시 말해 이들은 단순 범죄조직이 아니라 국가 전복 세력입니다.”

 “그래서?”

 “블랙우드는 테러리스트와는 절대 협상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겁니다.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것은 고객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과도 같다구요.”

 눈앞에서 터지는 폭탄테러에 비해 사이버테러는 왠지 위기감이 들지 않는 것이 사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사이버테러도 테러라는 것을 대중에게 알리고, 맞서 싸우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911 이후 미국인들은 테러라면 치를 떨지 않습니까? 나라를 지키기 위해 협상을 안 하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테일러 회장은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애국 마케팅을 하라는 건가?”

 “예. 애국은 항상 먹히는 키워드죠.”

 내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요즘 같은 시대에는 더욱 필요하지.”

 “한발 더 나아가서 돈을 건네면 서버를 풀 수 있겠지만, 그 경우 데이터가 유출될 위험이있습니다. 블랙우드는 차라리 회사가 망하면 망했지, 고객 개인정보는 단 한 건도 유출시킬 수 없다고 하는 겁니다. 최악의 위기 상황에서 회사의 안위보다 고객을 지키는 회사라면, 고객들이 더 큰 신뢰를 갖지 않겠습니까?”

 고객 최우선을 말하는 회사는 많아도 이를 실제로 실천하는 회사가 몇이나 되겠는가?

 잠시 멍하니 있던 테일러 회장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크흠, 괜찮은 아이디어로군.”

 “뭘요.”

 내가 생각해낸 것도 아니고, 나중에 다 본인이 했던 말이다. 나한테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

 이내 그는 한숨을 내쉬듯 말했다.

 “그런데 그때까지 내 목이 무사할지 모르겠네.”

 “그럼 지금 바로 실행해 떨어지는 주가부터 끌어올리죠.”

 “뭐?”

 “방금 한 얘기를 언론에 당당하게 말씀하세요.”

 테일러 회장은 당황하며 말했다.

 “그래놓고 자력으로 해결하지 못하면? 결국 테러단체에 돈을 건네줘야 할 것 아닌가?”

 “돈이야 저희가 낼 텐데요.”

 “그래도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겠나? 내 체면은 뭐가 되고?”

 테러리스트와 협상은 없다고 큰소리쳐놓고는, 며칠 안 돼 돈을 건네주며 복호화키 달라고 하면 꼴사납긴 하겠지.

 “어차피 그 상황이 되면 회장님은 물러서셔야 합니다. 그럼 회장님은 본인 말을 어길 필요가 없습니다. 협상은 후임자가 알아서 할 테니까요. 그리고 책임은 스노우 크래시가 다 떠안겠습니다.”

 말한 대로 된다면 전화위복이고, 안 되면 잘리기 전에 사표 쓰면 된다. 그의 입장에서는 어느 쪽이든 손해 볼 건 없을 것이다.

 난 테일러 회장을 보며 물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 *

 [(WST 단독) 컨티뉴 캐피탈, 블랙우드 랜섬웨어 사태 금방 해결될 것. 주가 회복 기대돼]

 (전략) 블랙우드 계열 5300개 호텔들이 랜섬웨어로 인해 영업을 중단한 지도 사흘이 흘렀다. 암호화된 서버가 언제 풀릴지 알 수 없는 상황인 만큼 다들 회의적인 분위기다.

 몇몇 전문가들은 이번 일로 블랙우드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내놓았고, 주가는 계속 하락 중이다.

 처음 하락을 주도하고 매도의견을 낸 사람은 컨티뉴 캐피탈의 대표 데이비드 록허트.

 추가 하락 여부를 묻는 질문에 대해 놀랍게도 그는 전혀 반대의 의견을 내놓았다.

 록허트 대표는 ‘스노우 크래시가 FBI와 NSA를 도와 블랙우드 랜섬웨어 사태 해결에 나섰다. 다행히 데이터 유출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사흘 안에 서버가 복구되고 영업이 정상화될 걸로 확신한다’라고 대답했다.

 투자의견을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지금이야말로 가장 싸게 블랙우드 인터내셔널 주식을 살 수 있는 기회다. 향후 10년 안에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컨티뉴 캐피탈은 이미 매수를 끝냈다. 돈이 있었다면 더 샀을 것이다’라며 매수를 강력하게 추천했다.

 이 보도가 나가자 인터넷은 난리가 났다.

 -아니, 이 새끼들 뭐야?

 -언제는 존나 팔라며?

 -이미 매수했다고? 한순간에 숏에서 롱으로 갈아탄 건가?

 -스노우 크래시는 컨티뉴 캐피탈 소유잖아. 그럼 자기들이 나서서 해결하겠다는 거 아니야?

 -지난번에는 데이터가 유출됐다고 하지 않았나?

 -아······ 다시 읽어보니 블랙우드 데이터가 유출됐다는 게 아니라, 그런 사례가 있었다고만 해놨네.

 -ㅅㅂ새끼들. 말장난 하냐?

 -야! 이 개새끼들아! 니들 말만 믿고 공매도 쳤는데, 이게 지금 뭔 지랄이야?

 -공매도 하라며 ㅜㅜ

 -ㅋㅋ공매도 한 니들이 병신이지.

 -공매도 하는 새끼들은 다 나가 죽어야 함.

 -그래서 지금이라도 사야 하는 거 아니야?

 -뭔 소리야? 랜섬웨어 해결 못 하면 이대로 망할 텐데.

 -지금 상폐 간다 만다 하는 상황임.

 -혹시 자작극 아닐까? 지들이 랜섬웨어 걸어서 주가 폭락시켜 돈 벌고, 다시 해결해서 돈 버는 거지.

 -어! 듣고 보니 그러네.

 -ㅋㅋㅋ 역대급 투기네.

 -아니, 이런 식으로 장난쳐도 괜찮은 거야?

 -이 정도면 희대의 주가조작 사건 아닌가?

 -SEC는 뭐 하고 있냐? 이런 놈들은 안 잡아가고.

 -당장 출동해서 체포해라!

 -체포고 뭐고 지금 FBI랑 NSA랑 같이 작업 중이라는데.

 -왜 협상 안 하고 이러는 거지?

 -그냥 돈 주고 키 받으면 되는 거 아니야?

 -그러게. 돈 아까워서 그러나?

 기사의 파장은 엄청났다.

 폭락을 주도한 장본인이 순식간에 포지션을 뒤바꿀 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이는 거의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이어서 피터 테일러 회장의 인터뷰 기사가 나갔다.

 [(WST 단독) 블랙우드 인터내셔널 피터 테일러 회장 인터뷰]

 (전략) 랜섬웨어 범죄의 경우 대부분 범죄조직에게 돈을 건네고 복호화키를 건네받아 해결한다.

 하지만 블랙우드는 스노우 크래시와 수사기관과 협력해 랜섬웨어를 직접 해결하는 중이다.

 어째서 협상을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피터 테일러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그레이트넷은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테러단체다. 이런 곳에 돈을 건네는 것은 미국의 안보, 더 나아가 고객의 안보를 위태롭게 만드는 일이다. 따라서 블랙우드는 절대 협상하지 않겠다.’

 서버를 늦게 풀수록 영업정지 기간은 길어지고, 데이터가 망가질 위험 역시 커진다.

 그러나 테일러 회장의 입장은 단호했다.

 ‘지난번 사태에서 보듯 복호화 과정에서 고객정보가 빠져나갈 위험이 있다. 블랙우드의 가장 큰 자산은 호텔 건물도 데이터도 아닌 고객이다. 호텔이 무너지고, 데이터가 없어져도 고객이 있으면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지만, 고객의 신뢰를 잃으면 그걸로 끝이다. 회사가 망할지언정 단 한 건의 고객정보도 새나가게 할 수 없다는 게 우리의 방침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피터 테일러 회장에 대해서는 대체로 비난 일색이었다.

 하지만 기사가 나가고 나자 분위기가 반전됐다.

 -이야! 테러리스트와는 협상을 하지 않는다니!

 -회사가 망할지언정 단 한 건의 고객정보도 넘겨줄 수 없다니!

 -이게 진정한 기업이지.

 -테러에 맞서 싸운다니! 응원합니다!

 -이런 기업이 미국 기업이라는 게 너무 자랑스럽다!

 -테러하는 새끼들은 전부 감방에 처넣어 스팸만 처먹여야 한다.

 -말로만 고객 우선을 외치는 다른 기업들과는 차원이 다르네.

 -앞으로는 블랙우드 호텔만 이용한다!

 -그런데 이러다가 진짜 망하면 어떡해?

 기사의 효과는 확실했다.

 사태 이후 120달러 아래까지 떨어졌던 주가는 순식간에 60퍼센트 가까이 폭등했다.

 하지만 주가 향방에 대해서는 애널리스트들마다 의견이 엇갈렸다.

 컨티뉴 캐피탈을 따라 공매도에 나섰던 헤지펀드들 역시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뒤늦게 뛰어든 헤지펀드들은큰 손실액을 보고는 분노를 터트렸다.

 “이 새끼들 대체 뭐야?”

 “젠장! 팔라고 해서 팔았더니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쳐?”

 “그래서 사야 돼? 팔아야 돼?”

 “아! 진짜! 뭘 어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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