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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화. 랜섬웨어 (1) (168/529)

 173화. 랜섬웨어 (1)

 일을 시작하기 전, 난 수사기관의 간단한 조사를 받았다.

 40대 중반 정도의 라틴계 여성의 이름은 엘리노어 리드. FBI 소속이다. 그리고 옆에 있는 통통한 백인 남성의 이름은 빅터 윌튼. 이쪽은 NSA.

 분위기를 보니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 같다.

 그 이유는 랜섬웨어 사건과 관련해 FBI와 NSA가 공동수사를 벌이고 있기 때문.

 난 요구한 자료를 제출했다.

 그중에는 거래내역이 담긴 자료도 있었다.

 두 사람은 컨티뉴 캐피탈의 거래내역을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전산망 마비가 발생한 다음 공매도에 나선 만큼 별문제는 없을 것이다.

 리드 조사관은 나에게 물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투자 결정을 할 수 있었나요?”

 “때마침 팔로알토의 JR블랙우드 호텔에 있었거든요. 혼란 상황을 보자마자 서버에 문제가 생겼다고 직감했죠.”

 “랜섬웨어라고 확신한 이유는요?”

 “루카스 CEO가 그런 것 같다고 말해줬거든요. 당시 통화내역이 남아있습니다.”

 두 사람은 차례대로 질문을 던졌고, 난 술술 대답했다.

 약 30분가량의 응답이 끝난 뒤, 난 그들에게 물었다.

 “이제 의심은 풀린 건가요?”

 윌튼 조사관이 말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직접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았어도 관련자를 통해 정보를 얻었을 가능성은 있으니까요.”

 “윗선에서는 자작극이 아니냐는 의심도 하고 있습니다.”

 난 리드 조사관의 말에 웃음을 지었다.

 “그랬으면 이 자리에 나타나지도 않았겠죠. 그리고 범죄조직이 그레이트넷이라는 건 모두가 알지 않나요?”

 어차피 의심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풀리게 되어있다.

 윌튼 조사관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이번 일에 컨티뉴 캐피탈에 나선 이유가 뭡니까?”

 “랜섬웨어 해결을 도와주기 위함이죠.”

 그는 코웃음을 쳤다.

 “당신 생각을 모를 줄 압니까?”

 “제 생각이 뭔데요?”

 “성공하면 투자이익을 챙기고, 실패할 것 같으면 그 전에 재빨리 팔아치울 생각이겠죠. 이렇게 하면 3억 달러를 낸다 해도 손해 볼 것 없다는 계산 아닙니까?”

 “아! 그건 오해입니다. 랜섬웨어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단 한 주도 팔 생각 없으니까요. 필요하다면 서류에 사인이라도 하죠.”

 “······.”

 설마 이렇게 말할 줄은 몰랐는지 그는 입을 다물었다.

 난 역으로 그들에게 질문했다.

 “그레이트넷의 이름은 많이 들어봤는데, 정확히 어떤 조직인가요?”

 리드 조사관은 한숨을 내쉬듯 말했다.

 “지금 하는 얘기는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 되는 내용들입니다. 새어나갈 경우 법에 의해 처벌을 받게 될 수도 있습니다.”

 “예. 저만 알고 있겠습니다.”

 경고하듯 말했지만, 어차피 중요한 정보는 말해주지 않을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본인들도 모르고 있겠지.

 “수장의 명칭은 넷워커. 조직원은 열댓 명 정도. 이제까지 수법을 보면 미국 내에서 활동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뒷얘기를 기다리는데, 더이상 말이 없다.

 “그리고요?”

 “끝입니다.”

 난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건 인터넷만 찾아봐도 나오지 않나요? 1년 넘게 합동조사한 걸로 알고 있는데 알아낸 게 고작 이거예요?”

 이쯤 되면 세금이 아깝지 않나?

 두 사람도 할 말이 없는지 얼굴을 살짝 붉혔다.

 “크흠, 랜섬웨어라는 게 원래 추적이 쉽지 않습니다.”

 “과거에도 인터넷 범죄는 주로 계좌 추적을 통해 이뤄졌습니다. 그런데 암호화폐 등장 이후 상황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디지털화의 부작용이라 할 수 있겠지.

 실제로 암호화폐가 생겨난 이후 랜섬웨어를 비롯한 사이버범죄가 수백 배 폭증했다.

 이러한 사이버범죄는 국가안보에까지 위협을 미치는 수준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폭탄테러나 총기난사보다도 질이 나쁘다.

 그나마 지금처럼 호텔 서버가 해킹 당하면 예약을 못하는 정도에서 그치지만, 병원 서버가 해킹당한다면 환자 수백 명의 목숨이 위험해진다.

 때문에 FBI와 NSA의 수사역량 역시 이쪽에 집중됐다. 그럼에도 실제 검거율은 점점 떨어지는 추세다.

 “대체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는 건가요?”

 “확신하지는 않습니다.”

 “확신하지 않는데, 자산을 전부 베팅했다는 건가요?”

 난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투자에 100퍼센트가 어디 있겠습니까? 다만 기회가 왔을 때 달려들 뿐이죠.”

 미래를 알고 있지 않다면 얘기가 다르지만.

 난 자신 있게 말했다.

 “루카스 CEO를 한번 믿어보세요. 후회하진 않을 겁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회의적인 표정이었다.

 랜섬웨어를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이는 극히 드문 일이다.

 윌튼 조사관은 비웃듯 말했다.

 “그레이트넷 수사에 이제까지 몇 명의 전문가들이 투입됐는지 아십니까? 그런데 그걸 어떻게 사흘만에 해결하겠다는 겁니까?”

 사실 이 부분은 의외로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상상도 못할 방법으로 말이지.

 난 주머니에서 100달러 한 장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그걸 본 리드 조사관이 물었다.

 “뭡니까”

 “저랑 내기하실래요? 사흘 안에 해결하는지 못하는지. 100달러 빵 어때요?”

 “······.”

 “······.”

 * * *

 유성전자에서는 연일 회장이 주재하는 회의가 열렸다.

 안건은 데이터센터 분야 진출.

 유재호 회장은 유성그룹 전체를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다. 때문에 회장이 뭘 하겠다고 하면, 대체로 따르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부정적인 의견이 훨씬 우세했다.

 그도 그럴 것이 데이터센터 분야 진출은 팹리스나 장비회사 인수와는 결이 달랐다.

 동우정밀 등의 인수합병은 어디까지나 반도체 사업 역량의 강화지 신산업 진출은 아니었다. 만약 문제가 생기더라도 인수한 돈만 날리고 끝이다.

 잘못된 투자로 수천억을 날리면 마음이 아프겠지만, 그 정도 돈이야 다시 벌면 그만이다. 그러나 데이터센터 산업은 다르다.

 이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전사적인 역량을 투입해야 한다. 유성전자뿐 아니라 유성건설과 유성전기 등등.

 모든 계열사가 달려들어 막대한 자본을 쏟아부어야 한다. 대체로 어느 산업이든 돈을 쓰면 성과가 나오기 마련.

 문제는 경쟁자들이다.

 데이터가 미래의 자원이라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

 그렇다 보니 거대 IT기업들이 전부 이 시장에 뛰어들어 각축전을 벌였다.

 AMZ, NS, 구블 엔플, 페이스노트 등은 전 세계 방방곡곡에 데이터센터를 짓고, 이를 연결하기 위해 해저케이블을 매설했다.

 중국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지니바바와 위챈트는 중국과 제3세계를 중심으로 데이터센터를 건설했고, 공산당에서는 데이터 주권론을 펼치며 중국에서 사업하는 IT회사들에게 자국 내에 데이터센터를 짓도록 강요했다.

 마치 영토전쟁이라도 벌이는 듯한 모습이다.

 1위에서 5위까지 기업들이 전부 미국과 중국에 몰려있고, 이들은 막대한 정부 지원까지 등에 업고 있다.

 이 분야에 진출한다는 것은 이들과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데 이들은 또 유성전자의 주요 고객이기도 했다.

 “빅3는 유성전자의 최대 고객입니다.”

 “만약 유성전자가 직접 데이터센터에 진출하면 당장 D램과 낸드플래시 발주량을 크게 줄이고 경쟁사로 옮겨갈 겁니다.”

 “다른 IT기업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데이터센터를 지었는데 사용량이 미치지 못한다면, 손실을 우리가 떠안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잘못했다가는 돈은 돈대로 날리고, 고객도 잃게 될 것이다.

 지금 사업만으로도 유성전자는 충분히 잘나가고 있고 주주들도 만족하고 있다. 굳이 협력사들을 적으로 돌리면서까지 신산업 개척에 나설 이유가 뭐란 말인가?

 ‘왜 이렇게 요즘 경영을 직접 챙기지?’

 ‘인수 몇 개 성공했다고 너무 자신감 넘치는 거 아니야?’

 ‘소 뒷걸음질 치다가 어쩌다 쥐 좀 잡은 것 가지고.’

 ‘이번에는 또 어떤 놈이 헛바람을 불어넣은 거야?’

 다들 최선을 다해 쓸데없는 짓(?)을 벌이려는 회장을 말렸다.

 “스노우 크래시를 단독 파트너로 하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큽니다.”

 “아직 기업 솔루션 쪽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을 뿐, 클라우드에서 스노우 크래시가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합니다.”

 “빅3가 견제에 나서거나 지분을 인수할 거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주주들의 반대도 문제입니다.”

 “관련 기업들을 인수합병해야 하고 설비투자를 하려면 당장 들어가는 비용만 10조 원이 넘습니다.”

 “고객사들이 반발하면 주가는 폭락할 위험이 있습니다.”

 “3년 전 유성경제연구소에서 검토했을 때도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한 사실들은 유재호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 한미루의 말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맴돌았기 때문이다.

 ‘미래는 클라우드에 있다고 했지? 이 시장을 놓치면 유성전자는 그저 부품사 중 하나로 남게 될 거라고.’

 유성전자는 90년대부터 반도체 사장의 최강자였다.

 NS와 엔플이라면 모를까 AMZ, 구블, 페이스노트, 위챈트, 지니바바 등은 유성전자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회사들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위치가 뒤바뀌었다.

 유성전자가 열 배 성장하는 동안 그 회사들은 수천, 수만 배 성장했다. 시총은 두 배 이상 벌어졌고, 협상에 있어서도 유성전자가 갑이 아닌 을이 됐다.

 그렇다고 그 회사들이 유성전자보다 돈을 엄청 많이 버는 것도 아니었다. 어떤 회사의 경우 순이익은 유성전자의 절반에 불과하지만 시총은 두 배가 높았다.

 시장이 아무 이유 없이 그렇게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그 회사들은 미래에 얻게 될 엄청난 과실들이 있는 반면, 유성전자는 그렇지 않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고민을 하는 사이 미국에서 컨티뉴 캐피탈에 대한 소식이 들려왔다.

 블랙우드 인터내셔널의 공식 발표가 나오기도 전에 랜섬웨어를 발표하며 공매도를 했다고 선언했다. 역시나 랜섬웨어임이 밝혀졌고 주가는 폭락했다.

 증권가에서는 컨티뉴 캐피탈이 20억 달러는 챙겼을 거라는 얘기가 돌았다.

 ‘이쯤 되니 별로 놀랍지도 않군.’

 그렇게 생각하는데 한미루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유재호는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기사 봤습니다. 또 한 건 하셨군요.”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끝난 게 아니라니요?”

 [지금 텍사스 오스틴에 와있습니다.]

 지명을 듣자마자 유재호는 알아차렸다.

 “블랙우드 인터내셔널 본사가 있는 곳이로군요. 그곳에는 무슨 일로 가신 겁니까?”

 그런데 한미루는 대답 대신 뜬금없는 얘기를 꺼냈다.

 [저라면 지금 블랙우드 인터내셔널 주식을 살 겁니다.]

 “무슨 말입니까?”

 [루카스 CEO가 서버 복구를 위해 나섰습니다. 랜섬웨어 문제가 해결되면 주가는 폭등할 겁니다.]

 “······.”

 기가 막혀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랜섬웨어임을 알려서 주가 폭락시켜서 돈 벌어놓고, 이번에는 랜섬웨어를 해결해서 돈을 벌겠다는 건가?

 이 정도면 투기라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정말로 해결할 수 있습니까?”

 [예. 사흘 안에 정리될 겁니다.]

 유재호는 전화를 끊은 다음 생각했다.

 보안은 모든 기업들이 가장 우려하는 문제다. 이 때문에 클라우드 이전을 피하는 기업들도 많다.

 그런데 스노우 크래시가 이 문제를 해결하면 어떻게 될까?

 ‘예전과 똑같은 상황인가?’

 지금이야 스노우 크래시는 유성전자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기업이다. 하지만 클라우드는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만약 스노우 크래시가 그 중심에 선다면?

 어쩌면 몇 년 후에는 스노우 크래시를 찾아가 사정해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지금 손을 잡아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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