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9화. 블랙우드 인터내셔널 (1) (164/529)

 169화. 블랙우드 인터내셔널 (1)

 팔로알토의 JR블랙우드 호텔.

 블랙우드 인터내셔널 계열사 중에서 가장 고급 호텔 라인이다. 위치가 실리콘밸리 한복판이다 보니 여행보다는 출장 온 사람들이 많이 이용했다.

 5성급 호텔로 가장 싼 방에 500달러를 넘음에도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방을 잡기가 힘들 정도다.

 다행히 미리 예약했다.

 난 이곳에서 머물며 오전마다 로비에 있는 카페로 내려와 커피를 마셨다.

 시드에게 자신 있게 말은 했지만, 사실은 초조한 마음이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사건이 일어나기만 한다면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겠지만······ 그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경우에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짧은 시간이지만 난 제법 많은 일을 했다.

 일어날 일을 일어나지 않게 만들기도 했고, 일어나지 않은 일을 일어나게 만들기도 했다.

 내가 개입한 순간부터 미래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10년 뒤의 미래는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과 전혀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내가 한 일이 과연 어디까지 영향을 미쳤냐는 것이다.

 나비효과에 따라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미래를 바꿀 수 있다. 천재지변 같은 거야 상관없겠지만, 금융계 쪽에는 여러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래도 그 일에는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 것 같은데.

 정확한 시기는 언제였더라?

 대충 이때쯤인 걸로 기억하는데, 아무래도 오래된 일이다 보니 확실하지 않다.

 커피를 마시며 계속 생각하는데 카운터 쪽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체크인이 안 된다구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죄송합니다, 고객님, 지금 전산망 접속이 지연되고 있으니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예. 얼마나 걸릴까요?”

 “금방 해결될 겁니다.”

 오류가 생겼다는 말에 고객은 잠시 기다렸다. 하지만 30분이 지나도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체크인 시간이 다가오며 대기 인원은 점점 많아졌다.

 그런데도 전산망은 여전히 장애를 일으켰다.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지배인이 지시를 내렸다.

 “일단 바우처를 가져온 손님들부터 체크인해드려.”

 “알겠습니다.”

 그런데 요즘 시대에 종이로 바우처를 뽑아서 다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그나마 모바일 바우처를 캡처라도 했으면 다행이다.

 “결제했다니까! 돈은 돈대로 받아먹고 안 된다고 하면 어쩌라는 거야?”

 “바우처를 보여주시면······.”

 “홈페이지에 접속이 돼야 바우처를 보여줄 거 아니야?”

 “그렇긴 한데······.”

 참다못한 고객들은 일제히 항의했다.

 “대체 뭐 하자는 거야?”

 “5성급 호텔의 서비스가 뭔 이따위야!?”

 “다른 호텔로 갈 거니까 당장 결제 취소해!”

 “지금은 취소가 안 됩니다.”

 “체크인도 안 되고 취소도 안 되면 어쩌라는 거야?”

 어쩔 수 없이 일단은 신분증을 확인하고 수기로 적으며 체크인과 체크아웃을 처리했다.

 동네 여관에서도 벌어지지 않을 일이 5성급 호텔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난 혼란스러운 로비를 보며 터져 나오려는 환호성을 간신히 삼켰다.

 역시 일어날 일은 일어나는구나!

 난 바로 시드에게 전화했다.

 [예, 형.]

 “지금 블랙우드 호텔 전산망이 마비된 모양이야. 무슨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알아봐 줄 수 있어?”

 시드는 이유도 묻지 않고 말했다.

 [제대로 조사하려면 시간이 걸릴 텐데요.]

 “확실하거나 근거가 필요한 건 아니야. 한번 살펴보고 대략적인 느낌만 말해주면 돼.”

 [알았어요.]

 * * *

 블랙우드 인터내셔널.

 호텔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회사다. 웬만큼 큰 도시에는 이 호텔의 체인이 반드시 하나 있으니까.

 창업자는 존 로날드 블랙우드.

 그는 영국 하급귀족의 아들로,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그의 부모는 별다른 재산을 남겨주지는 못했지만 다른 중요한 것을 남겨주었다.

 그것은 바로 귀족으로서의 정체성과 아비투스(Habitus)였다.

 그는 결혼 후 아내가 물려받은 여관을 함께 운영했다.

 어떻게 하면 경쟁자들에 비해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까 고민하던 그는 고객을 마치 귀족이라 생각하고 접대했다.

 그러자 고객들은 좋아 어쩔 줄을 몰랐다.

 그 순간, 그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신분제는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돈이 곧 새로운 신분이었다. 돈이 많은 이들은 귀족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좋아했고, 그에 걸맞은 대접을 받고 싶어했다.

 그러니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에 열광하는 것이다.

 존 블랙우드는 고객을 귀족처럼 모시도록 직원들을 교육했고, 아예 유럽에서 건너온 집사와 하인들을 대거 고용해 서비스의 질을 더욱 높였다.

 이런 방식은 큰 성공을 거뒀다.

 블랙우드 호텔에서는 단 하루만이라도 귀족과도 같은 삶을 누릴 수 있다!

 소문이 퍼지자 돈 좀 있다는 사람들은 기꺼이 블랙우드 호텔에 머물렀고, 부유층과 유명인들이 애용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일반인들도 한 번쯤은 가보고 싶어하는 곳이 됐다.

 세계대전을 전후해 미국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블랙우드 역시 거대 호텔 체인으로 발돋움했다.

 라스베이거스와 마카오의 카지노 사업에도 성공적으로 진출하며 현재는 세계 75개국 5300개의 호텔, 그리고 서른 개의 브랜드와 열 개의 자회사를 거느린 세계 1위 호텔 체인 그룹으로 성장했다.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디지털 전환도 서둘렀다.

 고객의 정보를 데이터화해 개개인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고객들은 만족했고, 재방문율 역시 높아졌다.

 여기에 여행과 비즈니스 수요 증가, 그리고 각종 컨벤션을 유치하며 매출은 크게 늘었다.

 디지털 전환을 성공적으로 해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주가는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현재 시총은 약 520억 달러.

 그런데······.

 갑자기 전산망이 마비되는 악재가 터졌다.

 이런 상황이 내가 머무는 호텔에서만 발생한 것은 아니었다.

 블랙우드 인터내셔널 체인에 속해있는 전 세계 5300개 호텔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예약한 방과 다른 방이 배정되는 일은 부지기로 일어났고, 고개들이 항의가 빗발쳤지만 호텔 측은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블랙우드 호텔 전산망 마비]

 [전 세계 5300개 호텔 예약 불가]

 [고객 불편 없도록 최대한 빠르게 복구하겠다고 밝혀······.]

 난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기사를 보며 데이비드에게 연락했다.

 “지금 JR블랙우드 호텔에 머물고 있는데 난리도 아니에요. 시장 분위기는 어때요?”

 [현재 블랙우드 인터내셔널 주가가 6퍼센트 하락했습니다. 일단 시스템 오류인 것 같은데, 일부에서는 디도스나 해킹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생기면 온갖 루머가 터져나오기 마련이지.

 난 이번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1회차 때도 똑같이 벌어졌으니까. 진작 공매도와 옵션에 투자했다면 돈을 벌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100퍼센트 일어난다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회귀한 순간부터 미래는 바뀌었다.

 이번 사태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일은 한 적이 없지만, 혹시라도 그동안 내가 한 행동들이 나비효과를 일으켜 원래는 일어났을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으니.

 둘째는 의심을 피하기 위함.

 내가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주가 하락에 베팅했다면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할까? 당연히 이번 사태와 뭔가 관련이 있을 거라고 의심하는 게 합리적이다.

 차후에도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의심은 더욱 증폭될 테고.

 하지만 이미 일이 터진 뒤라면 괜찮다.

 난 데이비드에게 말했다.

 “지금 바로 블랙우드 인터내셔널을 공매도하세요. 발행된 풋옵션 있으면 매수하구요.”

 [진심입니까?]

 “예. 보유 자산을 전부 투자하세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고 여겼는지, 데이비드는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얼마나 더 빠질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악재가 터졌을 때 주가가 얼마나 떨어질지 바닥이 어디인지 알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나는 확실하게 알고 있다.

 “이틀 안에 30퍼센트는 더 빠질 겁니다.”

 데이비드는 할 말을 잃은 듯했다.

 이 정도 대형주가 그렇게까지 폭락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물론 토머스 모터스라는 훌륭한(?) 사례가 있긴 하지만, 이것과는 경우가 좀 다르다.

 토머스 모터스는 매출과 수익 없이 기대감만으로 오른 주식이지만, 블랙우드는 역사만 100년이 넘고, 매출과 수익, 그리고 자산 모두 업계 1위인 기업이니까.

 [서버가 복구되면 주가는 금방 회복될 텐데요.]

 “아니요. 절대 복구 못 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이건 단순한 서버 다운이 아니에요.”

 [무슨 말씀입니까?]

 “랜섬웨어 공격에 당한 겁니다.”

 단순 시스템 오류면 하루 이틀 안에 복구할 수 있다. 하지만 랜섬웨어라면? 절대 쉽게 해결할 수 없다.

 전자라면 주가가 금방 회복하겠지만, 후자라면 주가는 더욱 크게 하락할 것이다.

 [근거가 있습니까?]

 “세 가지가 있죠. 첫째는 전산망이 일시에 다운됐다는 거고, 둘째는 서버에 상당한 보안 취약점이 있다는 거예요.”

 [그 정도 이유로 확신하시는 겁니까?]

 사실 내가 랜섬웨어임을 확신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미래를 알기 때문. 따라서 논리적으로 설득할 자신은 없다.

 “그래서 셋째가 가장 중요하죠.”

 [뭡니까?]

 “시드한테 물어보니까 느낌상 랜섬웨어인 것 같대요.”

 [······.]

 이보다 더 확실한 근거가 어디 있겠는가?

 반응은 잠시 후 나왔다.

 [루카스 CEO의 말만 믿고 공매도를 하겠다는 겁니까?]

 난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럼요. 걔는 천재니까요.”

 * * *

 데이비드는 직원들을 모아놓고 한미루의 말을 전해졌다.

 모리스 피어슨은 놀라며 물었다.

 “정말로 랜섬웨어라는 겁니까?”

 “그렇다는군.”

 모두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인터넷이 생겨난 후 현실에서 벌어지던 범죄 중 일부는 인터넷 세상으로 넘어왔다.

 이는 인질극 역시 마찬가지.

 과거 인질극은 사람을 납치하는 방식으로 이뤄졌으나, 현대의 인질극은 컴퓨터나 서버 안의 데이터를 납치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일명 랜섬웨어(Ransomware)다.

 몸값을 뜻하는 랜섬(Ransom)과 악성코드를 뜻하는 멀웨어(Malware)의 합성어로, 말 그대로 악성코드를 이용해 데이터를 암호화해 인질로 잡고 금전을 요구하는 방식을 뜻한다.

 사람을 인질로 잡고 돈을 뜯어내는 것보다 데이터를 인질로 잡고 돈을 뜯어내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범죄자들은 너도나도 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과거 기업들의 자산은 건물과 공장, 기계 등이었지만, 현재 기업들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바로 데이터다.

 때문에 IT기업들이 보안에 심혈을 기울이는 거고.

 그런데 만약 보안이 뚫려서 데이터가 유출되거나 사라진다면?

 그야말로 곳간을 몽땅 털린 거나 다름없다. 실제로 이로 인해 문을 닫은 기업도 있을 정도다.

 랜섬웨어라는 말에 모두가 놀란 와중에 가브리엘라 차베즈가 말했다.

 “서버가 다운되거나 전산망이 마비되는 일은 종종 있는 일입니다. 이것만으로 공격을 받았다고 보기는 무리 아닐까요?”

 “보스는 확신하고 있더군.”

 “어째서요?”

 데이비드는 이유를 말해주었다.

 “루카스 CEO도 랜섬웨어인 것 같다고 말했다는데.”

 그 말에 다들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에드워드 밴슨은 팔짱을 낀 채 말했다.

 “호텔 특성상 고객정보가 새나갔다면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모리스 피어슨은 고개를 저었다.

 “랜섬웨어가 사실이라고 해도, 데이터가 새나갔는지는 확실하지 않을 텐데.”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어?”

 “하긴. 아니라는 걸 입증하기도 쉽지는 않을 테니.”

 어느새 다들 랜섬웨어인 것을 전제로 얘기를 하고 있었다.

 데이비드는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고작 이 정도 근거로 모든 자산을 투자하겠다고?’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그냥 흘려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미루의 말이라면 다르다. 그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일들을 그동안 태연하게 성공시켰고, 데이비드는 누구보다 가까이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데이비드는 직원들에게 물었다.

 “보스의 말이 맞다면 어떻게 될 것 같나?”

 가브리엘라 차베즈가 말했다.

 “폭락은 이제부터 시작이겠죠.”

 다시 말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다!

 마침 컨티뉴 캐피탈 계좌에는 얼마 전 한미루가 벌어온 18억 달러가 고스란히 있었다. 이를 공매도와 풋옵션에 쏟아붓는다면 주가를 끌어내릴 수 있을 것이다.

 정보란 시간이 지나면 가치가 떨어진다.

 어차피 하루 이틀 안에 복구가 안 되면 모두가 문제가 생겼다는 걸 눈치챌 것이다.

 투자 방향이 정해졌으면 신속하게 움직여야 한다.

 데이비드는 지시를 내렸다.

 “실행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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