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8화. 출장 (4) (163/529)

 168화. 출장 (4)

 요한벨 대표는 나를 보며 말했다.

 “먼저 저희 영역을 침범한 건 스노우 크래시 아닌가요? 중복되는 서비스를 철회해달라고 요청했는데 거절당했죠.”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들은 많지 않습니까? 정말 그 이유 때문이라면 업체들 절반을 제재해야 할 텐데요.”

 스마트폰에는 메일앱과 지도앱 등 제조사가 만든 기본 앱들이 깔려있다. 그렇다고 동일한 앱을 출시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클라우드 서비스 역시 마찬가지다.

 어차피 데이터를 활용한다는 건 똑같은 만큼 비슷한 서비스는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그럼에도 스노우 크래시만 콕 집어서 견제하는 이유는······.

 “혹시 스노우 크래시의 서비스가 더 뛰어나기 때문인가요?”

 그는 내 말을 부인하지 않았다.

 30대에 세계 최대 클라우드 회사 CEO 자리에 올라선 사람이다.

 이 나이에 이 정도 성공을 거둔 걸 보면 어디 가서 천재 소리 듣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본인이 천재인 만큼 시드가 얼마나 대단한 능력을 지녔는지 누구보다 확실하게 깨달았을 것이다.

 고객 입장에서는 그냥 써보니 더 좋다는 수준이지만, 프로그램을 본 개발자들은 경악했겠지.

 똑같은 프로그램을 만들거나 개선하면 되지 않겠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게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거라면 남들은 그동안 왜 안 했겠는가?

 아마도 엄청난 위협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강하게 나오는 거겠지.

 요한벨 대표는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이며 말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죠. 저희는 스노우 크래시에 관심이 매우 큽니다.”

 솔직해서 좋다.

 이미 들은 얘기가 있는 만큼 난 고개를 끄덕였다.

 “루카스 CEO에게 따로 영입을 제안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실례가 됐다면 죄송합니다.”

 난 손을 내저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인재를 헤드헌팅하는 건 당연한 일이죠. 선택은 어차피 당사자가 하는 거니까요.”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 시드가 떠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

 시드의 지분만 무려 30퍼센트다. 그리고 미미르는 시드의 분신이나 다름없다. 아무리 좋은 조건을 제시한다 한들 회사를 떠날 리 없다.

 그러니 남은 방법은······.

 “저희는 스노우 크래시를 인수할 의향도 있습니다.”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기업에게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했을 때 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둘 중 하나다.

 더 크기 전에 없애든지, 인수해서 밑에 두든지.

 지금 실리콘밸리의 가장 큰손은 바로 글로벌 IT기업들이다.

 이들은 이미 벌어들인 막대한 자본이 있다. 아예 사내에 투자부서를 만들어 놓고 가능성이 있는 스타트업들을 집어삼키며 제국을 무한하게 확장 중이다.

 “지분을 다 넘길 필요는 없습니다.”

 “얼마나 원하나요?”

 “51퍼센트면 됩니다.”

 “금액은요?”

 “미미르에 대한 권리까지 포함해 300억 달러를 생각 중입니다.”

 그럼 회사 전체 가치는 600억 달러라는 얘기다.

 난 쓴웃음을 지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낮은 가격이네요. 스노우 크래시는 현재 1천억 달러의 가치를 평가받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후려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좀 심하게 후려친다.

 하여간 있는 놈들이 더하다.

 “그건 회사가 지속적인 성장을 한다고 가정할 경우 아닙니까? 그리고 컨티뉴 캐피탈이 인수한 가격보다는 훨씬 높지 않습니까? 아직 인수 대금을 다 지불하지 못한 걸로 알고 있는데.”

 그런 것까지 알고 있는 걸 보니 우리에 대해 정보를 꽤 수집한 모양이다.

 “이 정도만 해도 ZWS 역사상 최대의 인수합병입니다. 그리 나쁜 제안은 아닐 겁니다. 제안만 받아들인다면 ZWS는 스노우 크래시를 적극 지원할 생각이니까요. 기업 가치는 지금보다 몇 배로 늘어나게 될 겁니다.”

 대기업에 인수되면 안정적인 지원을 받으며 성장할 수 있다.

 지분 51퍼센트를 500억 달러에 넘기더라도, 남은 지분의 가치가 1천억으로 올라간다면 충분히 남는 장사라고 할 수 있겠지.

 때문에 시너지를 얻기 위해 일부러 싼값에 지분을 넘기는 경우도 많다.

 난 그에게 물었다.

 “하나 묻죠. 원하는 게 스노우 크래시입니까, 시드 루카스입니까? 만약 루카스 CEO가 떠난다 해도 인수 조건은 동일한가요?”

 요한벨 대표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루카스 CEO가 7년 동안 일하는 게 조건입니다.”

 “역시 그렇군요.”

 그 이후에도 각종 스톡옵션을 등을 조건으로 회사에 옭아매려 할 것이다. 일명 황금사슬이다.

 ZWS는 스노우 크래시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파트너. 굳이 이 자리에서 얼굴 붉힐 필요는 없겠지만······.

 “제안은 감사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이렇게 바로 거절할 줄은 몰랐는지 요한벨 대표의 표정이 굳었다.

 “어째서입니까?”

 “지향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클라우드 시장에서의 성공만을 바란다면 ZWS에 인수되는 게 나을지 모른다. 하지만 시드가 원하는 것은 모든 클라우드와 연결된 메타버스다.

 만약 AMZ가 스노우 크래시 인수 후 사업 방향을 전환한다면, 향후 열릴 메타버스 시장의 주역은 AMZ가 될 것이다.

 그 고생을 해가며 인수했는데 남 좋은 일 시켜줄 생각은 없다.

 먹을 거면 내가 다 먹어야지.

 요한벨 대표는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잘 생각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아무리 뛰어난 천재라도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분명하니까요.”

 다정한 말투와는 달리 내용은 사실상 경고에 가까웠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니 아직 시드에 대해 잘 모르시는 것 같네요.”

 그는 나를 보며 물었다.

 “무슨 뜻입니까?”

 “시드는 그냥 천재가 아닙니다.”

 “그럼요?”

 “인류 역사상 손에 꼽을 정도의 천재죠.”

 “······.”

 살짝 황당하다는 표정이다.

 내가 지금 이렇게 말한다 한들 그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나중에 시드가 만든 세상을 봐야 이해할 수 있겠지.

 요한벨 대표는 웃으며 말했다.

 “방금 대답은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제재 조치는 예정대로 실행될 겁니다. 그러면 생각이 바뀔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때 다시 찾아오시죠.”

 자신만만한 태도다.

 그리고 이러한 자신감이 허세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ZWS의 클라우드 시장 지배력은 확고하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조만간 다시 뵙겠습니다.”

 당연하지만 그때도 내 생각이 바뀌는 일은 없을 거다.

 하지만 그의 생각이 바뀔 수는 있겠지.

 * * *

 시애틀에서 미팅을 끝마친 나는 실리콘밸리로 이동했다.

 그리고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스노우 크래시로 향했다.

 인수한 이후로 이곳을 찾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이야 고작(?) 미국 최대 스타트업이자 미국 클라우드 업계 4위에 불과하지만, 10년 안에 세계 최대 시총을 기록할 기업이다.

 이 기업이 내 기업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뿌듯하다.

 사무실은 그대로지만 직원은 많이 바뀌었다.

 롤프 부치와 알렉스 프레스턴을 따르던 직원들을 대거 내보내고, 새로운 사람들을 뽑았다.

 이로 인해 잠시 혼란을 겪었지만 현재는 안정된 상태.

 직원 숫자도 20명 정도 늘었다.

 한국에서 청년들이 취업난을 겪는 것과는 다르게 실리콘밸리는 구인난을 겪고 있다.

 IT업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고용 인원은 늘었지만 인재의 숫자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

 스타트업, 대기업 할 것 없이 인재 확보 경쟁이 치열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개발자들 연봉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오죽하면 실리콘밸리에서는 연봉 10만 달러를 받으면 불우이웃 취급을 받을 정도다.

 뭐, 그만큼 집세와 물가도 따라 올랐지만.

 다행히 스노우 크래시는 비교적 수월하게 인재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시드의 천재성이 알려지며 많은 개발자들이 함께 일하고 싶어 했기 때문.

 “형!”

 안으로 들어서자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낡은 크록스를 신은 청년이 나를 반겨주었다. 곱실거리는 갈색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있고, 얼굴에는 아직 주근깨가 남아있다.

 그의 이름은 시드 루카스.

 스노우 크래시의 CEO이자 세계 최고의 천재 개발자다.

 “그동안 잘 지냈어?”

 “예.”

 “집에도 잘 안 들어가고 회사에서 먹고 자고 한다며?”

 회사에 수면실과 샤워실, 헬스장 등이 있어서 지내는데 지장이 없긴 하다. 그래도 집에서 쉬는 것만은 못하겠지만.

 “집에 가봐야 할 것도 없는데요. 일하는 게 더 재밌어요.”

 “······.”

 천재가 이렇게 열심히 살다니.

 난 이 나이 때 술 퍼마시러 다녔던 것 같은데.

 “형 활약은 잘 봤어요.”

 “활약은 무슨.”

 시드는 궁금하다며 이것저것 물었고, 난 당시 상황에 대해 하나씩 설명해주었다. 별로 재밌는 얘기도 아닌데, 시드는 상당히 재밌어했다.

 “아! 이번에 새로 만든 프로그램 보실래요?”

 “뭔데?”

 “버그가 생겼을 때 원인을 찾는 프로그램이에요. 기존에는 일일이 코드를 살펴봐야 했는데, 이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버그가 생겨난 코드를 바로 찾아 수정할 수 있어요.”

 “오······.”

 이 프로그램으로 인해 누군가의 일자리가 또 사라지겠구나.

 그나저나 이렇게 쉽게 만들 수 있는 거였으면 다른 개발자들은 그동안 왜 안 만들었을까?

 그 외에도 시드는 이것저것 보여주었다.

 “대체 이 많은 걸 언제 다 개발한 거야?”

 “그냥 일 안 할 때 심심해서 한번 만들어본 것들이에요.”

 “······.”

 냅킨에 낙서를 했더니 명화가 탄생했다는 얘기랑 비슷한 건가?

 내가 프로그래머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이런 걸 심심풀이로 만들었다는 얘기를 들으면 그만두고 싶어졌을 테니.

 난 계속 자랑하듯 보여주려는 시드에게 말했다.

 “할 얘기가 좀 있는데.”

 우리는 미팅룸으로 자리를 옮겼다.

 “중복 서비스 철회 요구에 대해 거절했다며?”

 시드는 슬쩍 내 눈치를 보며 물었다.

 “예. 혹시 거절하면 안 되는 거였나요?”

 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잘했어.”

 “정말요?”

 “응, 니가 CEO잖아.”

 설마 이렇게 말할 줄은 몰랐는지, 시드는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왜 그래?”

 “혼낼 줄 알았거든요.”

 “회사 인수하며 말했잖아.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해준다고.”

 그 말에 시드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사실 말은 이렇게 해도 그걸 다 지키는 투자사가 몇이나 되겠는가?

 “처음부터 빅3의 견제는 예상하고 있었어. 문제는 예상했던 것보다 시기가 빨라졌고 강도는 세졌다는 거지만. 안 그래도 그 문제 때문에 ZWS 대표를 만나고 오는 길이야.”

 “뭐래요?”

 난 요한벨 대표와 나눴던 대화를 요약해서 말해주었다.

 내 말에 시드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앗! 설마 회사를 넘길 건 아니죠?”

 “니 생각은 어때? ZWS로 갈 생각 있어?”

 거대 기업에 인수되면 안정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시드는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싫어요.”

 “어째서?”

 “걔들이 위에서 이래라저래라 할 거 아니에요? 거기도 얼간이들 많을 텐데. 당장 대표만 해도 얼간이고.”

 “······.”

 얘 기준에서 보면 얼간이 아닌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어쨌거나 시드는 누가 간섭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성격.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고 한들 남 밑으로 들어갈 생각은 없을 것이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른 걱정 하지 말고 지금처럼 하던 대로 계속해.”

 “정말 괜찮아요?”

 “응. 내가 다 책임질 테니 나만 믿어.”

 시드 웃으며 대답했다.

 “형만 믿을게요.”

 내가 아무 대책 없이 이렇게 말하는 건 아니다.

 내 기억에 따르면 며칠 안에 어떤 사건이 발생한다.

 그 사건이 일어나기만 한다면 지금 상황은 생각보다 쉽게 해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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