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병진공업 (4)
난 허민웅과 바로 공장으로 향했다.
차를 세우자 공장 밖으로까지 쩌렁쩌렁한 소리가 울렸다. 사무실로 들어서자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안에는 아버지와 함께 두 명의 남자가 함께 있었다.
한 명은 김철우. 그리고 그 옆에 앉은 사람은 50대 후반 정도 되는 남성이다.
덩치가 보통이 아니다.
스프라이트 무늬의 정장을 입었고, 목에는 열 돈은 될 법한 금목걸이를 차고, 손에는 알이 큰 금시계를 찼다.
오른손에는 담배를 들고 있었다. 얼마나 피웠는지 재떨이에는 꽁초가 가득했고, 사무실 안은 연기로 자욱했다.
“이러면 어떻게 같이 큰일을 하나, 한 사장. 아, 진짜 답답하네. 대체 사람 말을 왜 이렇게 못 알아들어? 나 이러면 같이 장사 못 해.”
“회장님. 일단 진정 좀 하시고······.”
“진정?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목이 아프지도 않은지 그는 계속 소리를 쳤고, 아버지는 그 앞에서 어찌할 줄을 몰라 했다.
우리가 들어서자 그는 누구냐는 표정으로 우리를 보았고, 김철우는 옆에서 ‘사장 아들입니다’라고 작은 목소리로 말해주었다.
난 인사를 하며 그에 물었다.
“안녕하세요. 한미루라고 합니다. 누구신가요?”
그러자 중년남자는 큰 목소리로 자기소개를 했다.
“나 육호경이야.”
이름만 들으면 알 거라는 강한 자신감이 느껴졌다.
그런데 전혀 모르겠다.
“뭐 하시는 분인데요?”
“한 사장 아들이라며? 그런데 날 몰라?”
“예.”
그러자 그는 어이없다는 듯 혀를 차며 부연설명을 붙였다.
“나 엔식스엔지니어링 회장이야.”
허민웅은 작은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오우! 사장도 아닌 회장이라니. 대체 얼마나 큰 기업을 운영하시는 거야?”
“······.”
아무리 커봐야 그가 보기에는 구멍가게냐 동네마트냐의 차이 정도겠지.
그래도 밑바닥부터 시작해 IMF와 금융위기의 파고를 넘어 회사를 대기업 3차 벤더까지 키워낸 사람이다.
그리 만만한 상대는 아니겠지.
허민웅은 몸이 근질거린다는 표정이었다. 난 그에게 나서지 말라는 의미로 눈짓을 주었다.
이 둘을 당장 입 닥치게 하고 쫓아내는 건 쉽다.
하지만 이 상황이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기회에 인간의 밑바닥을 한번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그러면 저런 인간은 확실하게 끊어내는 게 좋다는 걸 아버지도 깨달으실 테니.
난 아버지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제가 얘기하겠습니다.”
이제까지 상대하느라 진이 다 빠졌는지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육호경 회장은 날 보더니 말했다.
“그래? 한 사장 아들이라고? 니가 수작 부려서 철우를 내쫓았다며?”
난 피식 웃었다.
“초면부터 반말이시네요.”
“······뭐?”
내 말에 그는 살짝 당황했고, 허민웅은 옆에서 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그럼. 초면에 반말하고 그러면 안 돼.”
“······.”
초면에 나한테 반말했던 건 벌써 잊은 모양이다.
뭐, 그럴 수 있어.
육호경 회장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허허! 이놈 봐라. 시퍼렇게 젊은 놈이 아주 막 나가네. 그래. 반말했다. 어쩔래?”
본인이 반말하겠다는데 어쩌고 말고 할 게 뭐 있나?
“먼저 하나 묻겠습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병진공업 내부의 일입니다. 여기에 육호경 회장님께서 나서시는 이유가 뭡니까?”
그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처남 일이니까! 가족 일에 나서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처남 일이 곧 내 일이고, 내 일이 곧 처남 일이야.”
“비즈니스보다 패밀리가 우선이라는 건가요?”
“당연!”
훌륭한 마인드다.
“그래서 방금 무슨 말씀을 하고 계셨죠? 거래를 중단하겠다고 말씀하셨나요?”
육호경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그동안 처남 얼굴 보고 병진공업에 일감 줬는데, 이제 어떻게 믿고 맡기나? 나 이러면 같이 장사 못 해. 무슨 말인지 알아?”
난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뭘 알겠다는 거야?”
“회장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내 말에 육호경 회장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허허! 이거 젊은 친구가 말이 좀 통하네.”
“예. 같이 장사 못 하시겠다고 하셨으니, 그럼 안 하는 걸로 알겠습니다.”
이번에는 당황했다.
“뭐? 지금 뭐라고 했어? 우리 회사랑 거래를 끊겠다고?”
“정확히는 회장님께서 끊겠다고 말씀하셨고, 전 거기에 동의한 거죠.”
“그러니까 동의한다는 건 거래를 끊겠다는 거 아니야?”
“그렇습니다.”
“그래서 정말로 거래를 끊겠다고?”
”끊고 싶으시다면서요?“
“아니, 그러니까······.”
“왜요? 계속 같이 장사하고 싶으세요?”
“같이 장사 못 한다니까!”
“네. 그럼 안 하는 걸로 알겠습니다.”
“진짜 안 하겠다고?”
“예. 진짜 안 하겠습니다.”
“······.”
육호경 회장은 말문이 막히는지 잠시 입을 닫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코웃음을 쳤다.
“하! 이놈 이거 아주 건방지네.”
허민웅은 옆에서 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우. 정확하게 보셨는데.”
“······.”
쫓아낼까?
육호경 회장은 밀리지 않겠다는 듯 큰소리쳤다.
“좋아! 오늘부터 거래 다 끊어!”
하청 준 걸 무슨 시혜라도 베푼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단가가 맞았기 때문이다.
거래를 끊으면 새로운 거래처를 찾아야 하는 건 저쪽도 마찬가지다. 단가가 맞고, 설비와 제작 공법이 맞는 하청업체를 찾으려면 시간 좀 걸릴 거다.
그렇다 해도 하청을 주는 쪽과 받는 쪽 중 어느 쪽이 더 타격을 받을지는 분명하다.
하지만 어차피 업종을 전환할 생각이니 아쉬울 건 없다.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우리 회사랑 거래를 끊으면 다른 거래처는 멀쩡할 것 같아? 내가 인천중소기업성장발전지원협회 협회장이야!”
허민웅은 또다시 작은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대체 뭐 하는 협회기에 이름이 저렇게 길어?”
“그냥 인천시 중소기업들 사장 모임이겠죠.”
“아아, 전경련 비슷한 건가?”
“뭐······.”
취지야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비슷하다고 하기에는 규모가 너무 차이 나지 않나?
“그래서 저 협회가 하는 일은 뭔데?”
“글쎄요.”
그냥 조기축구나 등산모임 같은 거 하지 않을까? 원래 이름이 긴 단체일수록 실제 하는 일은 없기 마련이다.
그래도 회사 규모도 되고 협회장을 맡고 있을 정도면 나름의 영향력은 있는 모양이다.
“내 말 한마디면 다른 사장들은 가만히 있을 것 같아?”
“가만히 안 있으면요?”
“전부 거래를 끊겠지!”
난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게 하세요.”
“거래 다 끊기면 병진공업이 한 달이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저희가 업종을 전환할 예정이라서요. 안 그래도 기존 거래처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 중이었는데, 회장님께서 나서서 싹 정리해주신다고 하면 저희야 감사하죠.”
“······.”
김철우와 육호경 회장 모두 이런 대답이 돌아올 거라는 예상은 못 했는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자, 그럼 이제 얘기 끝난 건가요?”
육호경 회장은 버럭 소리쳤다.
“끝나긴 뭐가 끝나!”
“더 하실 말씀 있나요?”
“더 할 말 있냐고? 당연히 있지. 그동안 내가 철우 얼굴 봐서 여기서 장사하게 해준 건데. 당장 기계랑 사무실이랑 다 빼!”
아버지는 깜짝 놀랐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회장님.”
그가 이렇게 큰소리 칠 수 있었던 것에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그건 바로 병진공업이 있는 이 부지가 엔식스엔지니어링 소유라는 것.
조물주 위에 건물주 아니겠나?
난 침착하게 말했다.
“아직 계약기간이 남아있지 않나요? 그 기간 안에 멋대로 세입자를 내쫓는 건 불법일 텐데.”
내 말에 육호경 회장은 기가 차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하하! 계약기간?”
“예. 임대차보호법이라는 게 있잖아요.”
“어린놈이 벌써부터 법 따지고 있네.”
“그럼 뭘 따져야 하나요?”
“오냐! 그렇게 법 좋아하면 법대로 해볼까? 이 공장 앞의 도로도 내 땅이야. 어디 내 땅에 펜스 한번 쳐봐?”
공장으로 들어오는 도로는 딱 하나다. 거기를 막아버리면 차도 사람도 못 지나다닌다.
아버지는 또다시 깜짝 놀랐다.
“아, 아니,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법대로 하자며? 내 땅에 내가 말뚝 박겠다는데 뭐가 문제야?”
문제다.
통행을 방해할 목적으로 설치했다면 위법이 맞다. 하지만 철거소송을 하는 사이 공장은 문을 닫게 될 것이다.
공격이 먹혔다고 생각했는지 육호경 회장은 으름장을 놓듯 말했다.
“저 앞에 개미 새끼 한 마리 못 다니도록 당장 펜스 쳐볼까? 응?”
아버지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회장님!”
난 나서려는 아버지를 막으며 육호경 회장에게 물었다.
“원하시는 게 뭡니까?”
“뭐?”
“뭘 원하냐고?”
“예. 정말로 공장을 빼길 원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달리 원하는 게 있으신가요?”
“크흠, 이제야 좀 대화가 되는 것 같네.”
그는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일단 철우 다시 회사로 복귀시켜.”
“그건 안 되죠. 회삿돈을 횡령한 사람을 다시 회사로 들이라니. 회장님이라면 범죄자와 함께 일할 수 있겠습니까?”
내 말에 김철우는 인상을 찡그렸지만 반박을 하지는 못했다.
육호경 회장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그게 싫으면 그쪽이 공장 넘기고 나가시든지.”
아버지는 놀라 물었다.
“뭐, 뭐라구요?”
“가격은 솔찬히 쳐줄 테니까 철우에게 공장 넘겨. 그게 싫으면 딴 데로 가든지. 아! 나갈 거면 법대로 철저하게 원상복구 해놓고. 패널 하나 타일 하나 깨진 것까지 다 청구할 테니까.”
공장을 뺀다는 것은 사실상 회사 문을 닫는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느니 적당한 가격에 넘기는 게 낫다.
이제까지 조용히 앉아있던 김철우도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돈 준다고 할 때 파시죠, 형님.”
아버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철우 니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그러는 형님이야말로 어떻게 저한테 이럴 수 있습니까? 병진공업은 제가 키워온 거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저에게 맡겨주세요.”
“경마에 빠져 회삿돈까지 횡령한 너한테 뭘 믿고 회사를 맡기라는 거야?”
“그럼 이대로 회사 문 닫을 겁니까? 직원들도 생각하셔야죠. 여기 아니면 다들 갈 데 없을 텐데.”
“······.”
그 말에 아버지는 입을 다물었다.
회사 문을 닫으면 직원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될 것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다른 일자리 찾기도 쉽지는 않겠지.
허민웅은 옆에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야, 이거 존나 흥미진진한데. 안 따라왔으면 어쩔 뻔.”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한다.
왜냐하면 나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무슨 막장 드라마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안 왔으면 어쩔 뻔.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는지 육호경 회장이 최후통첩을 날렸다.
“한 사장이 선택하쇼. 이대로 공장 접을지, 아니면 제값 쳐준다고 할 때 받고 넘길지.”
하는 짓거리를 보면 말로는 제값 쳐준다고 해도 실제로는 헐값에 넘기라고 할 게 뻔하다.
“만약 회사를 넘기면 직원들은요? 직원들은 끝까지 책임져줄 수 있습니까?”
아버지의 물음에 육호경 회장은 손을 내저었다.
“종신고용 문화가 사라진 지 언젠데 아직도 그런 소리를 하고 있나? 한 사장이 그런 구시대적 마인드로 경영을 하니 회사가 이 모양이지. 쓸 만한 놈들만 남기고 쓸모없는 놈들은 싹 다 잘라야 해. 이게 바로 경영효율화라는 거요.”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게 근속 연수가 높은 직원들부터 자르고, 그 자리를 값싼 외국인 노동자로 채우면 일시적으로 기업의 수익이 증가한다.
김철우는 한마디 덧붙였다.
“형님은 그냥 돈만 받고 나가시면 됩니다. 직원 걱정을 뭐 하러 하십니까?”
아마 처음부터 이게 목적이었을 것이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이번 기회에 아버지를 내쫓고 회사를 먹겠다는 건가?
그동안 이런 놈들 비위 맞춰가며 사업하신 아버지가 새삼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무릎 위에 있는 손만 부들부들 떨었다.
어쨌거나 이 정도 봤으면 충분하겠지?
슬슬 나서려고 하는데, 어디선가 웃음이 터져 나왔다.
“푸흡! 크크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