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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화. 병진공업 (2) (155/529)

 160화. 병진공업 (2)

 난 김철우에게 물었다.

 “횡령한 돈 다시 채워 넣을 수는 있으세요?”

 “그, 그건······.”

 회삿돈 빼돌려서 경마에 베팅할 때는 좋았겠지. 하지만 그 돈은 이미 다 탕진했을 테니 당연히 물어줄 돈이 있을 리 없다.

 난 오영욱 팀장에게 물었다.

 “이런 경우에는 보통 어떻게 하나요?”

 “횡령은 중죄입니다. 당연히 고발해서 사법처리해야 합니다.”

 “이 정도면 형량이 어느 정도 나올까요?”

 “업무상 횡령은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의 벌금형에 처해지는 중죄입니다. 금액에 따라 다르지만 이 경우 보통 징역 3년 이상에 처해집니다.”

 실사 과정에서 이런 상황을 한두 번 본 게 아닌지 대답이 술술 나왔다.

 난 김철우를 보며 말했다.

 “그렇다네요.”

 징역을 살 수도 있다는 말에 그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난 못 본 척 아버지에게 말했다.

 “경찰에 신고하시죠.”

 “뭐?”

 “아니면 제가 신고할까요?”

 내 말에 김철우는 아버지에게 고개를 숙였다.

 “형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발 신고는 하지 말아주세요. 돈은 제가 빌려서라도 어떻게든 채워 넣겠습니다.”

 난 냉정하게 말했다.

 “빼간 돈을 돌려놓는다고 횡령 사실이 없어지는 건 아닙니다. 그동안의 기회비용도 생각해야 할 테구요. 당장 신고해야 합니다.”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신고는 좀······.”

 난 계속해서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에게 사기 친 사람을 용서하는 건 아버지 마음입니다. 하지만 사장이 회사에 피해를 끼친 직원을 용서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 돈은 아버지 개인의 돈이 아닌 회사의 돈이니까요. 전에 저한테 말씀하셨죠. 병진공업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전부 아버지만 믿고 따르고 있다고. 당장 그 돈이면 사람을 더 뽑을 수 있었고, 상여금이라도 더 챙겨줄 수 있었습니다. 김철우 씨는 그 돈을 가로챈 거구요.”

 “······.”

 아버지는 내 말을 반박하지 못했다.

 김철우는 나를 보며 애원하듯 말했다.

 “미루야, 제발 이러지 마라. 내가 잠깐 뭐에 쓰였던 모양이야. 한 번만 기회를 주면 안 되겠니?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도 있잖니?”

 “······.”

 너무 좋은 말이지만, 죄지은 사람이 할 말은 아니다.

 난 회사가 망한 뒤 거실에서 탄식하던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버지가 느꼈을 허탈함과 배신감을 생각하면 이 자리에서 실컷 쥐어패도 부족하다. 하지만 그 전에 할 일이 있다.

 난 서류를 내밀었다.

 “일단 여기 사인하세요.”

 “이게 뭔데······?”

 “병진공업 지분을 전부 내놓겠다는 계약서입니다. 그럼 사법처리는 면하게 해드리죠.”

 “뭐, 뭐라고?”

 “설마 횡령이 적발되고도 같이 일할 생각은 아니죠?”

 반성하는 척하는 것도 잠시뿐.

 궁지에 몰리자 김철우는 본색을 드러냈다.

 그는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이제 보니 아주 계획적이었네! 날 회사에서 쫓아내려고 아들 데려와서 쇼한 거지? 맞지? 내가 모를 줄 알아?”

 아버지는 놀라 소리쳤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동안 내가 이 회사를 위해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데! 30년 넘게 개고생한 나를 내쫓겠다고?”

 “철우야!”

 김철우는 억울하다는 듯 계속 소리쳤다.

 “막말로 형님이 그동안 한 게 뭐가 있습니까? 이 회사 제가 다 키운 거 아닙니까? 저 아니었으면 병진공업 진작 망했어요!”

 “뭐? 너 지금······.”

 “나한테 이러고도 이 회사가 멀쩡할 것 같아!?”

 난 비웃음을 지었다.

 “망하게 하겠다는 협박처럼 들리네요.”

 김철우는 내 말을 못 들은 척하며 아버지를 보며 소리쳤다.

 “정말 저 내쫓고도 장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 매형이 누군지 몰라요? 나 나가면 납품이고 뭐고 다 끝입니다!”

 그가 이렇게 큰소리칠 수 있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바로 병진공업의 가장 중요한 납품처의 대표가 그의 매형이기 때문.

 아버지의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

 “철우야, 일단 진정하고······.”

 “됐고! 어디 한번 누가 이기나 해봅시다! 내가 이대로 순순히 쫓겨날 것 같아?”

 “야! 김철우!”

 아버지가 소리쳤지만, 김철우는 그대로 사무실을 박차고 나갔다.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아버지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못했다고 빌며 동정심 유발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나와주는 편이 쫓아내기 더 쉽겠지.

 “물 좀 드세요.”

 속이 타는지 아버지는 내가 내민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이게 대체 뭔 일인지 모르겠다. 철우가 그럴 놈이 아닌데······.”

 “······.”

 그럴 놈이 아니긴.

 그럴 놈이니까 그런 거지.

 사실 아버지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 게, 원래 김철우는 아버지 못지않게 성실했고, 회사를 위해 열정적으로 일했다.

 그랬는데 3년 전부터 경마에 빠져 사람이 망가진 것이다. 그나마 지금 적발했기에 망정이지, 계속 놔뒀으면 더 심해졌을 것이다.

 나중에는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회사도 잘 안 나오고 경마장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때까지도 아버지는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계셨다.

 만약 내가 진짜 투자자라면 이런 부실이 발견된 시점에서 투자고 뭐고 다 때려치웠을 것이다.

 하지만 병진공업은 아버지 회사고, 이건 투자가 아닌 효도.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 회사를 잘나가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회사 지분을 내놓으라고 한 건 뭐였냐?”

 “말 그대로입니다. 지분 돌려받고 내쫓아야죠.”

 아버지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래도 철우가 그동안 고생한 게 있는데. 젊은 시절 납품기일 맞추겠다고 나랑 며칠 밤새워서 공장에서 먹고 자며 일하고, 사장들 쫓아다니며 제발 일감 좀 달라고 사정도 하고. 그런데 한번 나쁜 짓 했다고 내쫓는 건 좀······.”

 김철우가 그동안 아버지와 함께 고생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명심하세요. 공은 공이고 사는 사입니다. 지금 쳐내지 못하면 나중에 더 큰 문제가 될 거예요.”

 내가 마음먹은 이상 몇 년 안에 병진공업 규모는 100배 이상 커질 것이다.

 거기에 저런 기생충 같은 인간을 함께 데려갈 수는 없다. 본격적으로 회사를 키우기 전에 잘라내야 한다.

 그래서 실사를 핑계로 횡령을 잡아낸 거고.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이건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

 정에 약한 아버지의 성격 역시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옆에서 제대로 잡아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동안 거래처 관리도 전부 철우가 했어. 철우가 없으면 회사가 안 돌아갈 텐데.”

 “뭘 걱정하시는지는 알지만,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잠깐 혼자서 생각 좀 하고 있으마.”

 “예.”

 난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오영욱 팀장과 KSGI 직원들이 대기 중이었다.

 “오늘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그보다 이제부터 어떻게 하실 겁니까? 재무제표를 봤을 때 엔식스엔지니어링과 거래가 끊기면 위험할 텐데요.”

 난 엔식스엔지니어링에 대한 자료를 살펴보았다.

 중소기업이라고 하면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대기업과 마찬가지로 회사 규모는 천차만별이다.

 대기업과 직접 거래하는 1차 벤더의 경우 직원을 수천 명씩 고용하고, 3차 벤더쯤만 돼도 사장이 어디 가서 목에 힘줄 정도는 된다.

 엔식스엔지니어링이 바로 3차 벤더다.

 직원 수만 350명에 두 개의 자회사를 거느린 나름 규모가 있는 곳이다.

 창업주이자 대표는 육호경 회장.

 김철우는 젊은 시절 그의 여동생과 결혼했고, 그 인연으로 지금까지 거래를 이어오고 있다.

 “매출 비중이 얼마나 되죠?”

 “36퍼센트입니다.”

 이게 날아가면 병진공업은 바로 적자로 돌아설 것이다. 어쩌면 정말로 회사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

 김철우가 괜히 큰소리친 게 아니었다.

 나름 믿는 구석이 있었다랄까?

 사실 김철우를 내쫓는다고 해도 모든 문제가 끝나는 건 아니다.

 아버지 혼자 회사를 운영할 수 있을 리 없다. 투자금을 넣으면 당장 문제는 해결되겠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이번 일만 봐도 알겠지만 아버지는 사장으로서의 능력과 자질이 부족하다.

 난 확실하게 마음을 굳혔다.

 아버지는 바지사장으로 둔다.

 그리고 제대로 된 사람을 데려와 경영시킨다!

 * * *

 난 허민웅의 전화를 받았다.

 [헤이, 브라더.]

 “제가 보내준 자료 봤어요?”

 [어, 대충 봤어.]

 “어때요?”

 허민웅은 심드렁하게 말했다.

 [어떻긴. 그냥 흔한 좆소기업이더만. 그런데 회사 이름이 좀 웃기네.]

 “병진공업이 어때서요?”

 [너무 병진 같잖아. 뭔 회사 이름이 이래?]

 “저희 아버지 성함이 한병진입니다. 그래서 병진공업이에요.”

 [아······ 어쩐지 이름에서부터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진다 했어. 병진······ 나란히 진격한다는 뜻인가? 병법의 기본은 병진이지.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강렬하고 좋은 이름이네. 발음하는 것만으로 웅혼한 기상이 풍겨 나오는 것 같아. 그나저나 아버지께서 이런 좆소······ 아니, 훌륭한 기업을 운영하고 계셨으면 진작 얘기를 하지 그랬어? 내가 뭐라도 좀 도와드렸을 텐데.]

 탈룰라 수습하느라 애쓴다 애써.

 “안 그래도 도움이 필요해서 연락한 거예요.”

 [내 도움이 필요하다고? 뭔데? 화안에너지와 거래 좀 트게 해달라는 뭐 그런 거야?]

 왠지 신난 목소리다.

 “봤으니 알겠지만, 그런 부탁할 만한 사이즈도 안 돼요.”

 대기업 1차 벤더는 아무나 하나? 그것도 능력과 자본이 돼야 하는 거다.

 [그래도 거래처 정도는 소개시켜줄 수 있지.]

 “그건 나중에 부탁하기로 하고, 그보다 사람을 먼저 소개해주세요.”

 [사람?]

 “예. 이 회사를 맡아서 키워줄 만한 사람이 없을까요? 하청업체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좋겠는데.”

 [전문경영인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거야?]

 “바로 그겁니다.”

 [아버지 회사라며? 그럼 아버지가 경영하실 거 아니야?]

 “공장 하나 정도 운영하는 거라면 모를까, 사업을 키울 만한 능력은 안 되세요.”

 [냉정하네.]

 “냉정한 게 아니라 객관적인 거죠. 아무튼 적당한 사람 있어요?”

 [흠, 이런 좆소······ 아니, 강소기업에 갈 만한 사람이 있으려나? 알다시피 다들 좆······ 강소기업은 기피하려고 해서.]

 “강소기업은 개뿔.”

 그냥 좆소기업이라고 해!

 [아무튼 경영을 하려면 적어도 임원급 정도는 되어야 할 거 아니야? 그런데 임원들은 대부분 퇴직하더라도 갈 자리가 정해져 있단 말이지.]

 임원쯤 되면 회사 내부사정에 대해 잘 알기 마련. 때문에 경쟁업체로 가지 못하게 퇴직 후 한 자리씩 챙겨준다.

 보통 1차 벤더의 사외이사나 고문 등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거기서 그동안의 인맥을 활용해 몇 년 더 일하다가 그 인맥빨이 떨어질 때쯤 그만두는 것이다.

 [아! 한 명 생각났어.]

 “누군데요?”

 [박용진 전무라고 화안중공업 평사원으로 입사해서 거래처 관리하는 역할을 했거든. 능력이 좋아서 쭉쭉 승진했지.]

 “오!”

 거래처를 관리했으면 인맥도 넓고, 하청업체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잘 알 것이다.

 “그런데요?”

 [나중에 화안솔루션으로 옮겼는데, 토머스 모터스 사태가 터지는 바람에 책임지고 옷을 벗었지.]

 “······.”

 그럼 사실상 나 때문에 잘린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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