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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화. 병진공업 (1) (154/529)

 159화. 병진공업 (1)

 설 연휴가 끝난 뒤.

 난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가 운영하는 회사로 향했다.

 일단 벤츠는 놔두고 원래 아버지 차를 타고 이동했다. 실내는 좁고 노면의 요철이 시트를 통해 그대로 느껴졌다.

 슬슬 허리가 아프기 시작한다.

 확실히 바꿀 때가 되긴 했구나. 남들 눈치 보지 않고 마음 편하게 벤츠를 타고 다니실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병진공업을 키워야 한다.

 “정말로 우리 회사에 투자를 하겠다고?”

 “예. 어차피 초과수익으로 하는 거라서요.”

 내가 직접 돈을 투자하겠다고 하면 반대하실 게 뻔하다. 그래서 서류상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고 거기에 돈을 넣었다.

 명목상으로는 투자회사가 투자를 하는 거다.

 “그리고 아직 투자한다고 결정한 건 아니에요. 투자하기 전 확인해보고,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을지 없을지 판단해보겠습니다.”

 “그렇다면야······.”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자 공장과 사무실이 붙어있는 건물이 나타났다.

 여기가 바로 병진공업이다.

 이른 시간부터 기계 돌아가는 소음이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사무실 안에는 반달눈에 서글서글한 인상의 중년 남자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내가 인사하자 그는 반갑게 나를 맞았다.

 “이게 누구야? 미루구나. 많이 컸네.”

 그동안 아버지 회사라고 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동업자가 있다. 바로 아버지의 고향 후배이자 현재 부사장직을 맡고 있는 김철우.

 아버지가 공장을 운영하던 초기에 철우 아저씨가 바로 합류해 지금까지 함께 일하고 있다. 무뚝뚝한 아버지와는 달리 성격도 좋고 인맥도 넓다.

 때문에 아버지가 공장을 맡아서 운영하고, 철우 아저씨가 거래처를 관리하고 납품 계약을 따왔다.

 사업에 큰 소질이 없는 아버지가 그래도 이만한 공장이라도 운영하는 것에는 철우 아저씨의 도움이 컸다.

 회사 지분구조는 아버지가 6, 철우 아저씨가 4.

 “어쩐 일로 온 거야?”

 “다른 게 아니라 제가 요즘 투자회사에서 일하고 있거든요. 투자금 중 남는 돈이 있어서 병진공업에 투자를 좀 해보려구요.”

 철우 아저씨는 반색하며 물었다.

 “그래? 얼마나 투자할 건데?”

 “10억 정도 생각 중입니다.”

 내 말에 철우 아저씨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10억! 그, 그게 정말이야?”

 “예. 괜찮으시죠?”

 “그럼. 우리야 좋지. 안 그래도 요즘 좀 힘들었는데.”

 철우 아저씨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런 작은 회사에 10억이면 가뭄에 단비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바로 넣을 거야?”

 난 아버지와 철우 아저씨를 보며 말했다.

 “아무리 병진공업이 아버지 회사라고 해도, 공은 공이고 사는 사 아니겠습니까? 10억이라는 돈이 애 이름도 아니고 말이죠.”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럼 제대로 투자 계약서를 써야 하지 않을까요?”

 내 말에 철우 아저씨는 껄껄 웃었다.

 “어우! 역시 미루가 아주 똑 부러지네. 그럼그럼. 공은 공이고 사는 사지.”

 함께 있던 옆에 여자 경리도 맞장구를 쳤다.

 “정말요. 사장님은 좋겠네요. 이런 멋진 아들 둬서.”

 철우 아저씨는 나를 보며 물었다.

 “계약서 한 장 뽑을까?”

 “아! 제가 미리 준비해왔습니다. 한번 읽어보시고 사인해주세요.”

 난 준비해온 계약서를 꺼내 내밀었다.

 두 분은 계약서를 천천히 읽어보았다. 철우 아저씨는 계약서에 적힌 항목 중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여기 ‘회사는 투자자에게 기업 상태에 대한 모든 정보를 공개하고, 실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한다’는 건 뭐야?”

 “아! 그냥 형식적인 겁니다. 그럴듯한 회사 간판만 걸어놓고 투자자를 모은 다음 투자금만 받고 잠적하는 유령 회사도 있어서요. 그래서 규칙상 투자 결정할 때는 확인을 하도록 되어 있어요.”

 “아아, 그렇구나.”

 그 외에 거슬리는 내용은 없는지, 더 이상 질문 없이 두 분 다 사인했다.

 난 사인 받은 계약서를 챙겼다.

 “그럼 병진공업의 상태를 한번 확인해보겠습니다.”

 철우 아저씨는 여전히 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 그래. 장부나 재무제표 같은 거 보여주면 되는 거니?”

 “예.”

 난 일단 재무제표를 확인해보았다.

 병진공업의 월 매출은 약 15억 안팎.

 이렇게 보면 그럭저럭 괜찮은 회사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좀 다르다.

 제조업의 영업이익률은 대기업이라도 해도 10퍼센트가 안 된다. 중소기업이면 그 절반에도 못 미치고, 하청 단계가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이익률 역시 점점 낮아진다.

 매출이 높은 건 어디까지나 가격을 낮춰 많은 양을 납품하기 때문.

 은행과 여기저기서 빌린 채무는 12억.

 번 돈에서 대출금 갚고 다시 재투자하고 나면, 실제 수익은 얼마 안 된다.

 물론 그렇게 해서 회사 규모가 커지고 자산이 늘어나면 좋겠지만, 매출과 이익 모두 몇 년째 제자리걸음 중.

 이게 뭔 유망 스타트업도 아니고, 그냥 제조 하청이다.

 이런 회사에 10억을 넣는다고 해서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기껏해야 기계 몇 대 더 들여놓고 사람 몇 명 더 뽑는 정도겠지.

 지금 중요한 건 투자금을 넣는 게 아니라 경영을 효율화시키는 거다. 그리고 경영을 효율화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있다.

 내가 서류를 덮자 철우 아저씨가 물었다.

 “이제 끝난 거야?”

 “서류는 충분히 봤으니, 이제 다른 걸 확인해봐야죠.”

 “다른 거라니?”

 “장부와 자산이 맞는지, 그 과정에서 혹시 숨겨진 부실이나 새어나간 돈은 없는지 등등.”

 철우 아저씨는 당황했다.

 “아, 아니, 그걸 어떻게 확인할 건데?”

 “안 그래도 사람 불렀어요.”

 “응?”

 대화를 하는 사이 공장 부지 안으로 승합차가 한 대 들어왔다.

 “아! 마침 도착했나 보네요.”

 우리는 같이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승합차 안에서는 여섯 명의 남녀가 내렸다. 그중 40대 남자가 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한미루 님 되시죠?”

 “예, 맞습니다.”

 “안녕하세요. 오영욱 팀장입니다.”

 “오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무슨 일인지 들으셨죠?”

 “예. 대표님께 전해들었습니다.”

 난 그들에게 말했다.

 “바로 시작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아버지와 철우 아저씨는 깜짝 놀랐다.

 “이 사람들은 뭐야?

 “국내 유명 사모펀드에서 일하시는 분들입니다. 기업 실사를 전문적으로 하는 분들로, 오늘 병진공업 실사를 위해 이 자리에 불렀습니다.”

 정확히는 KSGI M&A 부서에서 일하는 직원들이다. 강남에서 일하는 이들이 이 먼 곳까지 온 이유는 내가 김성권 대표에게 부탁했기 때문.

 한국 3대 사모펀드의 실사팀이 고작 월 매출 15억짜리 중소기업을 실사하겠다고 달려온 것이다.

 당사자들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 아닐까?

 철우 아저씨는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시, 실사?”

 “예.”

 인수합병이나 투자라고 하면 양복 입은 전문가들이 회의실에 모여 숫자놀음 하는 장면을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마지막 과정이다.

 그전에 기업과 공장, 거래처 등을 찾아가 정밀하게 들여다보고 가격 범위를 책정한다.

 KSGI 실사팀 중 세 명은 사무실로 들어가고, 다른 세 명은 공장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마치 압수수색하는 검찰 조사관처럼 신속하게 움직였다.

 “장부 있는 거 다 가져오세요.”

 “캐비닛 열어주시겠습니까?”

 “아니, 당신들이 뭔데······?”

 금융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책상머리에서 펜대나 굴리는 샌님으로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사람이든 기업이든 숨기고 싶은 것들이 있기 마련.

 실사 과정에서 서류 한 장 보는 걸 놓고도 실랑이나 몸싸움이 벌어지는 일도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이런 일을 한두 번 해본 게 아닌 만큼 기세부터가 남달랐다.

 낯선 사람들이 사무실을 까뒤집기 시작하자 철우 아저씨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난 철우 아저씨에게 말했다.

 “협조해주시면 금방 끝납니다.”

 “뭐?”

 “아니면 숨기는 거라도 있으신가요?”

 “그, 그게 무슨 말이야? 날 못 믿겠다는 거야?”

 “당연히 믿죠. 그래서 그 믿음을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려구요.”

 철우 아저씨는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당장 멈춰!”

 “신경 쓰지 말고 계속 진행하세요.”

 말려도 내가 듣지 않자 철우 아저씨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형님! 정말 이대로 놔두실 겁니까?”

 “미루야.”

 난 아버지가 뭐라 말하기 전, 단호하게 말했다.

 “사장님께서는 계약서에 적힌 내용에 동의하고 사인하지 않으셨습니까? 방금 한 계약도 어긴다면 어느 투자자가 병진공업에 투자하겠습니까?”

 “······.”

 그 말에 할 말이 없는지 아버지는 입을 다물었다.

 난 철우 아저씨를 보며 말했다.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절차입니다. 장부에 있는 자산이 실제로는 없거나, 작정하고 회삿돈을 빼돌린 게 아니라면 아무 문제없을 겁니다.”

 어째서인지 내 말에 그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했다.

 * * *

 기업실사란 회계, 법률, 비즈니스, 세무, 설비 등을 면밀하게 살펴보고 기업의 가치를 정확하게 판단하는 행위.

 변호사, 회계사, 뱅커 등 수십 명의 인력이 동원되고, 기간은 기본 한 달에 길면 반년도 걸린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기업 규모가 조 단위를 넘는 회사의 경우.

 병진공업의 경우에는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

 난 그 자리에서 바로 오영욱 팀장이 내민 보고서를 받아보았다.

 “생활비와 쇼핑한 금액을 경비로 올려 처리했습니다.”

 법인카드를 본인 카드처럼 유용한 모양이다.

 그나마 여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정조치로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다. 진짜 문제는 이다음이다.

 “장부상에는 구매한 걸로 되어 있는 기계 두 대가 없습니다. 그리고 어음 할인율이 지나치게 높게 책정되었고, 특정 업체 한 곳과만 거래를 해왔습니다. 정상 할인율과 비교하면 크게 차이납니다.”

 “무슨 뜻인가요?”

 “어음 할인율을 높여서 매각하는 방식으로 차익을 횡령한 걸로 추정됩니다.”

 “그래서 횡령액이 어느 정도인가요?”

 “최근 3년 동안 확인되는 금액만 5억입니다.”

 아버지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5억이라고!?”

 이런 작은 기업에서 빼돌렸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큰 금액이다.

 이 돈을 빼돌린 장본인은 다름 아닌 김철우 부사장.

 아버지는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저, 정말이야? 철우 니가 그만한 돈을 빼돌렸다고? 거짓말이지? 뭐라고 말 좀 해봐.”

 “······.”

 다그치듯 물었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횡령한 돈이 몇천에서 1억 정도라면 그럴 수 있다고 납득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확인된 것만 무려 5억이다.

 아버지가 회사를 접겠다고 하셨으면, 그동안 얼마를 빼돌렸든 나도 별 신경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계속하시기를 원하는 이상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

 난 김철우에게 물었다.

 “이 돈 다 어디에 쓰셨어요?”

 “그, 그게······.”

 “경마하셨죠?”

 내 말에 그는 깜짝 놀랐다.

 “그걸 어떻게!”

 그야 나중에는 다 알려지니까 알지.

 아무래도 이때부터 경마 중독이었던 모양이다.

 “허······.”

 아버지는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설마 믿었던 고향 후배이자 동업자가 경마에 빠져 회삿돈을 빼돌리고 있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겠지.

 김철우는 병진공업을 망하게 만든 주범이다.

 지금이야 빼돌린 돈이 겨우(?) 5억이지만, 나중에 이 금액은 20억까지 올라간다. 나중에 걸릴 것 같자 남은 회삿돈마저 싹 다 빼서 잠적했다.

 그렇게 병진공업은 파산했고, 뒤늦게 아버지는 사람을 잘못 봤다며 탄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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