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효도는 돈으로 (2)
집에 도착하니 역시나 분위기가 삭막했다.
어머니는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었고, 아버지는 무릎만 꿇지 않았을 뿐 죄인처럼 앉아 계셨다.
“저 왔습니다.”
아버지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어, 미루 왔니?”
표정을 보니 어머니에게 어지간히 잔소리를 들은 모양이다.
어머니는 나를 보며 물었다.
“밥은?”
“안 먹었어요.”
“기다려봐. 차려줄 테니까.”
한 소리 들을 줄 알았는데, 밥 먹는 내내 두 분 다 돈 얘기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밥을 다 먹고 난 후 어머니는 거실에 앉아 과일을 깎아주었다.
아버지는 괜한 헛기침을 하며 물었다.
“크흠, 요즘 일은 잘하고 있고?”
“예.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래그래.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하지.”
갑자기 침묵이 흘렀다.
대체 내가 뭔 사업을 하고 있는 건지 빌려 간 돈은 잘 있는지 매우 궁금하지만, 차마 물어보지 못하는 것 같은 분위기다.
난 이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먼저 말을 꺼냈다.
“아버지.”
“어, 왜?”
“지난번에 빌려 간 돈 말인데요.”
“그, 그게 왜?”
“잘 썼습니다.”
내 말에 세나가 소리쳤다.
“뭐? 1억 5천만 원을 벌써 다 썼다고?”
부모님도 깜짝 놀랐는지 어머니는 사과를 깎던 손을 멈췄고, 아버지는 포크를 떨어트렸다.
난 놀라는 가족들에게 차분하게 말했다.
“그동안 잘 썼으니까 이제 갚겠다구요. 계좌 알려주시면 당장 보내겠습니다.”
“버, 벌써 갚겠다고?”
이렇게 바로 갚겠다고 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예.”
아버지는 계좌를 알려주었고, 어머니는 옆에서 한마디 덧붙였다.
“이름 잘 확인하고 보내. 잘못 보내면 큰일 나.”
“예.”
난 스마트폰으로 바로 돈을 입금했다.
“아들 믿고 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동안 잘 썼습니다.”
“그렇다니 다행이긴 한데······ 그런데 이렇게 다 갚아도 일은 문제 없는 거냐?”
“그럼요.”
거래금액이 조 단위인 판에서 1억 5천만 원쯤은 푼돈이나 다름없다.
“아! 그리고 이자 대신 소소한 선물을 하나 준비했습니다.”
“선물?”
“잠깐 나와 보세요.”
난 부모님과 세나를 데리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거기에는 검은색 대형 세단이 주차되어 있었다.
난 리모컨 키로 차 문을 열었다.
삐빅!
부모님 세대는 포르쉐고 벤틀리고 다 필요 없다. 벤츠······ 그중에서도 S클래스가 최고 존엄이다.
사실 롤스로이스 팬텀 뽑으려다가 참았다.
차 나오기까지 1년 넘게 걸리기도 하고, 처음부터 그거 타면 나중에 업그레이드할 차가 없다.
“벤츠 S클래스 마이바흐입니다. 앞으로 이거 타세요.”
좋아하실 줄 알았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다.
고개를 돌려 보니 부모님은 물론이고 세나까지도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왜 이래?
다들 벤츠 처음 보는 사람처럼.
잠시 후,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아버지가 말했다.
“이걸 타고 다니라고?”
“예. 지금 차는 파세요. 아니면 세나 타고 다니라고 주든지.”
우리 집 차는 연식이 10년쯤 된 국산 중형차. 슬슬 바꿀 때가 되긴 했지.
세나는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아, 뭐야? 그냥 내가 이 차 타면 안 돼?”
“니가 S클래스가 왜 필요해?”
“학교 갈 때 타고 다니게.”
“······.”
얘가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어?
아버지는 더듬거리며 물었다.
“요즘 이런 차는 얼마쯤 하니?”
“2억 좀 넘던데요.”
“······.”
뭐, 한 번에 다 낸 건 아니고 장기 리스로 끊었다. 리스 이자야 어차피 벌면 되는 것 아니겠나?
“니가 대체 돈이 어디서 나서?”
난 당당하게 말했다.
“말씀드렸잖아요. 이번에는 효도하겠다고.”
그동안 안 하던 효도를 너무 갑자기 해서인지, 부모님은 충격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런 비싼 차를······.”
“엄마는 지금 차 타도 되는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아버지와 어머니는 차를 이리저리 훑어보았다.
그러는 사이 세나가 내 팔을 붙잡더니 되지도 않는 애교를 부렸다.
“오빠앙, 나 벤츠는 괜찮으니까 미니라도 한 대 사주면 안 돼?”
미니라면 못 사줄 것도 없다.
하지만.
“앞으로 너 하는 거 봐서.”
“······.”
* * *
난 거실에서 아버지와 함께 술을 마셨다.
여동생는 내 옆에 찰싹 붙어 앉았다.
“좀 떨어져서 앉지?”
세나는 배시시 웃으며 두 손을 내밀었다.
“오빠 나 용돈 좀.”
“너 혹시 나한테 용돈 맡겨놨니?”
“오빠아앙.”
“······.”
용돈무새인가?
아버지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 차 말인데. 환불은 안 되겠지?”
“어! 마음에 안 드세요? 다른 차로 바꿔드릴까요?”
아버지는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 당연히 마음에 들지. 세상에 벤츠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니? 그런데 돈 좀 벌었다고 차부터 사는 건 좀 위험하기도 하고.”
“전 포르쉐 뽑았습니다.”
“······.”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내가 얼마를 벌었는지 잘 모르시기 때문.
얼마 벌었는지 아셨다면 롤스로이스를 뽑아왔어도 그러려니 하셨을 거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니까요.”
“대체 어떻게 그렇게 돈을 벌었는데?”
“알고 보니 제가 투자에 소질이 좀 있더라구요.”
“그래?”
“예.”
세나는 재빨리 말했다.
“뭔 소리야? 예전에 선우 오빠랑 투자한다고 했다가 등록금까지 날려 먹을 뻔했잖아.”
“······그 실패의 경험 덕분에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지.”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
정확히는 그때는 회귀하기 전이었고, 지금은 회귀한 후다.
난 여동생을 보며 말했다.
“나 아버지랑 할 얘기 있으니, 넌 방에 들어가 있어.”
“왜? 나도 술 마실래.”
“용돈 필요 없으면 계속 앉아있고.”
세나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버지와 오라버니 두 분 말씀 나누세요.”
술이 들어갔기 때문인지 아버지는 속마음을 털어놓듯 말했다.
“그동안 걱정하고 있었는데, 괜한 우려였던 모양이구나. 잘되고 있다니 정말 다행이다.”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정말이지 큰 도움이 되었다.
그 돈을 벌써 수만 배는 불렸으니. 만약 집에서 1억 5천만 원을 빌리지 못했다면 수익은 크게 줄어들었을 것이다.
어쩌면 스노우 크래시 인수에 실패했을지도 모르지.
“그래도 나중에 어려울 때를 생각해야지. 집에 차가 있는데 뭐 하러 저 비싼 차를 사와?”
“이자라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저 차는 회사에 타고 다기는 힘들 것 같은데.”
“어째서요?”
“크흠, 다른 사람들 눈치가 보여서 말이다.”
아버지 회사인 병진공업은 주문받은 금속 부품을 규격에 맞게 제작해 납품하는 공장 하나짜리 회사.
거래처는 대기업이 아닌 주로 3차, 4차 벤더들.
다시 말해 제조업 중에서도 가장 끝에 위치한 하청업체라 할 수 있다.
하청업체 사장이 벤츠 S클래스 마이바흐를 타고 다니면, 주위에서 어떻게 생각할까?
보나마나 대체 얼마나 남겨 먹었기에 저런 비싼 차를 타고 다니냐고 생각하며, 납품가를 깎으려 들겠지.
아버지도 그 점을 걱정하시는 거고.
난 슬쩍 생각하고 있던 얘기를 꺼냈다.
“저 이제 돈 잘 버니까 회사 그만두고 싶으면 언제든 그만두셔도 돼요.”
“회사를 그만두라고?”
“예. 제가 집도 더 좋은 곳으로 옮겨드리고 생활비도 드리겠습니다.”
아버지는 고개를 저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니가 돈을 아무리 잘 벌어도 일은 계속해야지. 아들 돈 받아서 생활하는 건 너희 엄마도 원치 않을 거다. 그리고 이 집이 어때서? 40평대 아파트면 충분하지.”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새집으로 옮겨드리고 싶다.
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은 부모님이 평생 고생해서 장만한 집이다.
당신의 힘으로 더 좋은 곳으로 가는 거라면 모를까, 아들 도움으로 옮기는 건 원치 않으실 거다.
“그리고 내가 그만두면 직원들은 어떡하고?”
이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다.
아버지 성격상 내가 집에 아무리 많은 돈을 가져다드린다고 한들 평생 해오던 일을 그만두실 리 없다.
사람이 일을 하는 가장 큰 목적은 돈을 벌기 위함.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개인적 성취감 역시 중요하다.
그래서 은퇴한 노인들이 소일거리라도 찾는 거고.
“회사는 잘되고 있나요?”
“그럼. 적자 안 날 정도는 되니 걱정할 것 없다.”
사회 전반적으로 디지털화가 빠르게 진행 중이지만, 제조업은 아직도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주요 산업이다.
그러나 하청 제조 분야는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들의 추격이 매섭다.
밀리는 가격경쟁력을 품질로 커버하고 있지만, 이것도 몇 년 안에 추격당하고 만다. 그런 상황을 피하려면 대체 불가능한 기술력을 키워야 한다.
난 1회차 때를 떠올렸다.
당시 대한민국은 미래 산업의 주도권을 놓쳤고, 대기업들은 큰 어려움을 겪었다.
대기업들이 어려워졌다는 건 그 밑의 중소기업들은 죽어났다는 뜻이다. 아버지 회사도 이때쯤 큰 위기를 겪고 결국 공장 문을 닫았다.
뭐, 결정적인 원인이 따로 있긴 했지만······.
그 뒤로 아버지는 기운을 잃고 의기소침해지셨다. 마치 한순간에 중년에서 노인이 된 듯했다.
돈을 떠나서라도, 평생을 바친 기업이 넘어간 일이 그만큼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공장 하나짜리 작은 회사지만, 아버지에게는 자식과도 다름없는 존재다.
회귀하기 전, 거실에 쓸쓸하게 앉아있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는 아버지와 이렇게 얘기를 나누지도 않았고 집안 사정에 별로 관심도 없었다. 프리머스 사태로 인해 회사를 그만둔 뒤로는 집에도 잘 가지 않았으니까.
다 큰 아들이 아무것도 안 하고 의욕 없이 놀고 있었으니, 아마 부모님 속이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선우와 함께 치킨집이라도 하겠다고 했을 때 기뻐하며 어려운 살림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고.
생각해보면 내내 불효만 저지른 셈이다.
그러니 이번에는 정말 효도해야 한다.
“정말로 일을 그만두실 생각은 없다는 거죠?”
아버지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그 얘기는 그만!”
더 말하면 화내실 것 같다.
하기야 아버지는 이 집의 가장이자 한 회사의 사장.
그걸 아들이 멋대로 그만둬라 마라 하는 것도 불효다.
그리고 의기소침해 멍하니 앉아 계신 것보다 지금처럼 열정을 불태우는 편이 훨씬 보기 좋다.
아버지께서 일을 그만두기를 원하셨다면 적당히 회사를 매각할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업을 계속하길 원하신다면 방법은 하나.
바로 지금 하는 사업이 잘되게 해드리는 것이다.
사실 손이 훨씬 많이 가긴 해도 이게 옳은 방향이다.
회사가 잘돼 돈을 많이 버시면 그 돈으로 더 좋은 집을 사서 옮기면 된다. 이렇게 하면 가장으로서의 체면도 살고, 성취와 보람도 느끼실 수 있겠지.
나중에 은퇴한 뒤에도 본인이 만든 회사가 커가는 걸 보며 뿌듯하실 테고.
“아버지의 꿈은 뭐였나요?”
“꿈?”
“예. 처음 회사를 시작하셨을 때 목표가 있으셨을 거 아니에요.”
아버지는 쑥스럽다는 듯 웃었다.
“그야 뭐······ 대단한 건 아닌데.”
“말씀해주세요.”
아버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대기업까지는 아니더라도 기술력이 뛰어난 강소기업을 만들고 싶었지. 대기업들이 서로 납품해 달라고 사정사정하는.”
“외국기업들도 서로 주문하구요?”
“그렇지. 수출까지 하면 좋지. 외화도 벌어오고.”
생각만 해도 좋은지 아버지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현실은 3차 벤더에도 제발 납품 좀 받아달라고 사정하는 중이겠지.
“비록 그렇게 되지는 못했지만 지금도 충분히 만족한다.”
“······예?”
아니, 여기서 만족하면 어떡해?
직원이야 월급 받으며 만족해도 되지만 사장은 만족해서는 안 된다.
사업은 성장하지 않으면 몰락한다. 때문에 끝없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아버지는 사업가로서 자질이 부족하다. 애초에 능력이 있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크게 성장했겠지.
정이 깊고 주변 사람을 챙기다 보니 여기저기 빌려준 돈도 많고 사기도 몇 차례 당하셨다.
이런 성격이 사람으로서는 좋을지 몰라도 사장으로서는 꽝이다.
게다가 지금 업종은 그다지 비전이 없다. 그렇다고 공장 접고 IT회사나 스타트업으로 업종을 전환하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난 술을 마시며 생각했다.
돈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해도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해주기 마련.
여기에 더해 나에게는 예전에 없던 인맥도 있다. 이것만 잘 활용해도 얼마든지 구멍가게를 대형마트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래. 비전이 없으면 만들어드리면 그만이지.
난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버지 회사에 투자를 좀 해도 될까요?”
“······응?”
“일단 10억 투자하겠습니다.”
역시 효도는 돈으로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