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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화. 저랑 손잡으시죠 (2) (150/529)

 155화. 저랑 손잡으시죠 (2)

 난 허성훈 회장과 허민웅 앞에서 했던 얘기를 그대로 해주었다.

 향후 본격적인 수소차의 시대가 열릴 테고 그 중심에 넥스트로젠이 있다. 대충 조만간 매출과 수익 모두 폭발적으로 성장할 거라는 얘기였다.

 “얼마를 생각하시나요?”

 “지분 51퍼센트에 80억 달러입니다.”

 “······.”

 사라는 할 말을 잃은 표정이었다.

 컨티뉴 캐피탈은 토머스 모터스 사태 이후 1000만 달러를 투자해 넥스트로젠 지분 60퍼센트를 사들였다.

 그러니까 몇 달 만에 대략 90배 정도 뻥튀기해서 파는 셈이다.

 내가 부르고도 좀 비싸다 싶긴 하다.

 “그리고 추가로 회사에 20억 달러를 투입했으면 합니다. 대출도 좋고, 투자도 좋습니다.”

 “넥스트로젠은 아직 차를 한 대도 안 만들었잖아요.”

 “그렇죠.”

 “그러면 이 회사가 토머스 모터스와 다를 게 뭔가요?”

 “기술력이 있고 없고가 다르죠.”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그게 돈이 될지 안 될지는 해보기 전까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러니까 아직 차 한 대 만들지 못한 기업의 시총을 약 160억 달러로 잡은 거군요.”

 뭐, 토머스 모터스는 400억 달러도 갔는데. 지금은 그 10분의 1도 안 되지만.

 “양산만 하면 매출과 수익 모두 폭발적으로 성장할 겁니다. 장담컨대 5년 안에 시총이2000억 달러까지 뛸 기업입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그런 확신이 없었다면 투자도 하지 않았겠죠.”

 사라는 살짝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물론 내 말이 아직은 와닿지 않을 것이다.

 현재 전기차 업체의 선두주자라 할 수 있는 티슬라도 아직 시총이 2000억 달러가 안 된다.

 그런데 차 한 대 내놓지 않은 수소차 플랫폼 회사가 2000억 달러를 갈 거라고 하니 좀 황당하겠지.

 “그렇게 좋은 기업이면 왜 매각하겠다는 건가요?”

 난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당장 돈이 필요하니까요.”

 게다가 지금은 본격적인 공장 증설을 위한 투자가 필요한 시점인데, 현재 컨티뉴 캐피탈에는 추가 투자를 할 만한 여력이 없다.

 그러니 파트너를 끌어들이는 게 최선이다.

 “그래도 금액이 너무 높아요. 미래의 가치를 현재의 가치에 더한 건 너무 하지 않나요?”

 “하기야 나중에 오를 테니 비싸게 사라는 건 사기꾼들이나 하는 말이긴 하죠. 그러나 제 말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습니다.”

 “그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나요?”

 말로만 하는 보증은 아무 의미가 없기 마련이지.

 그래서 난 다른 조건을 제시했다.

 “만약 리스크가 없다면 투자할 만하지 않겠어요?”

 “무슨 말인가요?”

 내 조건을 들은 사라는 눈을 크게 떴다.

 “그게 정말인가요?”

 “예.”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제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네요.”

 “그렇겠죠.”

 하지만 그녀의 의견은 상당히 중요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녀는 왕족인 데다가 몇 년 후면 사우디 국부펀드 본부장이 되는 사람이니.

 “상의해보고 말씀해주세요.”

 * * *

 라시드 왕자는 컨티뉴 캐피탈에서 보낸 투자보고서를 읽어보았다.

 3억 달러를 투자해 3개월 만에 약 22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투자 기간을 고려해볼 때 수익률은 경악할 만하다.

 사실 금액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금액이지만 그에게 그 정도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었다.

 설사 다 날려서 회수를 못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해도 그냥 그림을 비싸게 샀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능력이었다.

 주현진의 폭언과 폭행을 폭로해 여론을 돌리고,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를 막고, 화안그룹을 끌어들여 유상증자를 막아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위임장을 받아와 판을 뒤집었다.

 ‘정말로 한국의 10대 그룹을 무너뜨리다니.’

 통찰력과 행동력 모두 보통 사람의 수준을 뛰어넘었다.

 이쯤 되니 사우디인이 아닌 게 아쉬울 정도다.

 ‘밑에 둘 수는 없겠지?’

 권력자는 사람을 둘로 나누는 경향이 있다. 자신보다 위인지 아래인지. 한미루는 어느 쪽도 아니었다.

 아마 누구의 밑에서 일할 생각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손잡는 것은 가능하겠지.’

 사라는 보고서와 함께 한미루의 제안을 전했다.

 “HJ퓨어셀이라······.”

 수소는 미래의 에너지원으로 부상 중이고, 라시드 역시 이전부터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발전소용 연료전지라면 스마트시티 사업과도 관련이 깊다.

 이번 기회에 인수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인수비용이라고 해봐야 어차피 10억 달러밖에(?) 안 되기도 하고.

 중요한 건 두 번째 제안이다.

 “넥스트로젠 지분을 인수하라고?”

 [예. 80억 달러에 지분 51퍼센트를 인수하고 20억 달러를 추가로 투자해 달라고 하던데요.]

 무려 100억 달러다.

 이 정도 금액이면 에이오일이 아니라 아람코나 사우디 국부펀드가 나서야 한다.

 “양산에 들어간다고 해도 성공할 거라는 확신은 없지 않나?”

 [무조건 성공할 거라고 자신하던데요. 그래서 조건을 내걸었어요.]

 “어떤 조건?”

 [풋백옵션을 걸겠대요.]

 풋백옵션(Put Back Option)이란 인수합병에서 재무적 투자자의 보유 지분을 미리 약정한 시기에 약정 가격으로 되사주기로 약속하는 것.

 어디까지나 옵션인 만큼, 투자자는 행사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

 “행사가는?”

 [3년 후 160억 달러를 제시했어요.]

 이는 3년 후 투자금의 두 배 이상 오르지 않으면 컨티뉴 캐피탈이 그 가격에 주식을 되사주겠다는 것이다.

 “컨티뉴 캐피탈에 현재 그만한 자금이 있나?”

 [원한다면 스노우 크래시 지분 20퍼센트를 풋백옵션의 담보로 잡겠다고 하네요.]

 스노우 크래시는 현재도 1000억 달러의 가치를 평가받고 있다. 지분 20퍼센트라면 담보로는 충분하다.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건가?’

 그 짧은 시간 동안 해낸 일들을 보면 충분히 자신할 만했다.

 [어떻게 할까요?]

 “네 생각은 어때?”

 [제안대로라면 어느 모로 보나 손해 볼 건 없잖아요.]

 넥스트로젠의 기업가치가 매수가의 두 배 이상으로 오르면 좋은 거고, 그렇지 않으면 다시 컨티뉴 캐피탈에 매각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라시드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한미루가 그렇게 말한 이상 실패할 일은 없겠군.”

 * * *

 난 창가에 서서 발밑으로 펼쳐진 유성타운을 내려다보았다.

 거대한 빌딩들이 줄지어 늘어선 모습은 마치 거대한 왕국 같았다. 왠지 매일 출근해서 이런 전경을 보고 있으면 뿌듯하지 않을까?

 고개를 돌려 보니 벽 한쪽에 그림이 걸려있었다.

 “여기에 걸어놓으셨네요.”

 다름 아닌 내가 선물해준 그림이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남자가 물었다.

 “알아보니까 랭크시 그림이더군요. 대체 저걸 어떻게 구한 겁니까?”

 알아낸 것도 신기하다. 설마 바로 감정을 맡겼나?

 “센트럴파크에서 우연히 샀어요.”

 유재호 회장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웃었다.

 “랭크시가 SNS에 올린 ‘미스터 한’이 미루 씨였군요. 기업 보는 눈이 있는 건 알았지만, 그림 보는 눈까지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난 손을 내저었다.

 “그저 운이 좋았어요.”

 혹시 미술품 감정이라도 해달라고 부탁하면 곤란하다.

 난 화제를 바꿀 겸 그에게 물었다.

 “한정그룹 분위기는 어떤가요?”

 “정신없을 겁니다. 횡령, 배임, 분식회계, 자회사 몰아주기 등등. 치워야 할 자료가 만만치 않을 테니까요. 그동안 돈 먹은 정치권 인사들도 불똥이 튀지는 않을지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원래 건설사는 불법 종합선물세트다.

 수주와 인허가가 필수인 만큼 정치인, 공무원과 유착관계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정규직보다는 일용직 노동자가 많은 특성상 비자금 조성도 쉽고.

 사과 박스에 돈을 넣어 차떼기로 전달해주는 것은 옛날 방식.

 요즘은 보통 친인척 명의로 하청업체를 만들거나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거래하는 방식으로 돈을 받는다.

 그 부분만 까봐도 여야 정치인들 명단이 줄줄 나올 것이다.

 “설마 거기까지 가지는 않겠죠.”

 김성권 대표가 내세운 전문경영인이 자료를 확보하더라도 굳이 청탁과 뇌물은 터트리지는 않을 것이다.

 칼은 뽑지 않았을 때 가장 위험한 법이니, 적당한 부실은 묻어두고 가겠지.

 난 커피를 마시며 유재호 회장을 보았다.

 몇 번 만나고 자주 통화도 하지만 대한민국 최고 재벌을 독대하고 있으니 여전히 신기하다는 느낌이다.

 번호표 뽑고 대기 중인 사람이 한둘이 아닐 텐데.

 “주현진 씨는 구속됐더군요. 청렴한 검사가 있으면 소개해달라고 했던 게 이것 때문이었습니까?”

 내가 검찰이나 경찰에 아는 사람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부탁 좀 했다.

 검찰에서 지시가 내려오자 관할 경찰서 마약단속반은 바로 쳐들어가 주현진을 체포했다.

 “범죄 신고는 시민의 의무잖아요.”

 한정그룹이 멀쩡했다면 수사기관도 쉽게 움직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룹에서 쫓겨나고 가족과도 등을 돌렸다면 굳이 봐줄 필요가 없지.

 유재호 회장은 소리 내서 웃었다.

 “지금쯤이면 사람 잘못 건드렸다고 후회하고 있겠네요.”

 “설마요.”

 지금쯤이면 구치소에서 내 욕이나 실컷 하고 있겠지. 사람 그렇게 쉽게 안 변한다.

 “아! 감사를 전해야겠네요. 말씀해주신 덕분에 수익을 낼 수 있었다고.”

 “뭘요. 저도 큰 도움을 받았는데요.”

 모르긴 몰라도 두 배는 먹었을 것이다.

 건네받은 위임장이 주총에서 큰 도움이 됐다.

 문득 유성그룹의 비자금 규모가 얼마나 될지 궁금해졌다. 3대에 걸쳐 비자금을 조성했을 테고, 이를 지금처럼 각종 방법으로 불렸을 것이다.

 투자란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지만, 유성그룹 정도쯤 되면 얘기가 다르다.

 왜냐하면 그 자체로 가격조성자가 될 수 있으니까. 공장이나 건물을 짓겠다고 하면 주변 땅값이 들썩거리고, 어떤 사업에 진출한다고 하면 관련 회사 주가가 요동을 친다.

 여기에 더해 대한민국의 온갖 개발계획과 정부정책을 수집할 수 있다. 타이밍 맞춰서 샀다 팔았다만 해도 두세 배씩 버는 건 일도 아니다.

 그의 공식적인 재산은 약 20조 원. 여기에 비자금을 더하면 얼마나 되려나?

 “회장님께서는 이번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재벌들의 방만한 경영에 경종을 울렸다는 측면에서는 좋게 생각합니다. 재벌 체제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에서는 약간 걱정이 되지만요.”

 대한민국에서 재벌의 세습경영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당장 지금 언론 기사만 봐도 ‘경영권을 빼앗겼다’, ‘자기 기업에서 쫓겨나는 게 말이 되냐’라는 논조로 쓰고 있다.

 이는 그룹을 재벌의 소유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당장 유성그룹만 해도 유재호 회장이 아닌 다른 사람이 경영하는 건 상상할 수조차 없다.

 “그런데 어째서 저를 도와주신 건가요?”

 만약 유성그룹이 나서서 한정그룹을 지원했다면 주총 승리는 절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비자금으로 산 주식의 의결권을 넘겨주는 방식으로 나를 도와주었다.

 “한정그룹은 유성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미루 씨에게는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권혁준 부회장이 그러더군요. 동우정밀 하나만 해도 100조 원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역시 제대로 봤구나.

 만약 동우정밀이 중국에 넘어갔다면 배상금과 로열티로만 50조 원은 넘게 냈을 것이다.

 게다가 독자적으로 노광장비를 개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것만 해도 추가로 50조 원 이상의 가치가 있다.

 “그 외에도 AD쿼넷과 NP세미 인수를 끝마쳤습니다. ADM 지분 15퍼센트도 사들였구요.”

 AD쿼넷 인수에는 16억 달러, NP세미 인수에는 35억 달러, 그리고 ADM 지분 인수에 20억 달러가 소모됐다.

 이는 유성전자가 카먼을 인수한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인수합병이었다.

 유성전자가 인수를 하겠다고 나서자, 상장을 통해 엑시트를 할 생각이었던 사모펀드들은 기꺼이 지분을 매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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