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4화. 저랑 손잡으시죠 (1) (149/529)

 154화. 저랑 손잡으시죠 (1)

 [(속보) 한정그룹 막내아들 주현진, 코카인 투약 혐의로 입건]

 [제주도 별장에서 여성과 함께 상습적으로 마약 투약!]

 [코카인 외에 엑스터시, 대마초 등도 발견]

 [함께 체포된 여성, 주현진에게 강제로 투약 당했다고 주장]

 [한정그룹, 입장 밝힐 만한 사안 아니야······]

 -와아! 이 새끼는 주총 와중에도 여자 끼고 놀러 가서 마약하고 있었어?

 -뭐지? 병신인가??

 -ㅋㅋㅋ 반성한다더니 제주도 가서 여자랑 마약 빨고 있었네~

 -주민재 회장이 자식 교육 하나는 아주 제대로 시켰네.

 -이번 주총에서 갈려나가서 다행이네.

 -진짜. 안 그랬으면 다시 경영 복귀했을 듯~

 -‘더 좋은 경영으로 국민들께 보답드리겠습니다!’ 이 지랄하며 ㅎㅎ

 -다른 비리도 탈탈 털어봐야 한다.

 -경영진 바뀌고 나면 횡령 배임 엄청 드러날 듯.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다~

 카페에 앉아 올라오는 기사와 댓글을 보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어, 형이야.]

 누가 들으면 친형인 줄.

 “무슨 일이에요?”

 [별건 아니고. 아! 주현진 기사 봤어?]

 “지금 보고 있어요.”

 [어쩐지 애가 상태가 좀 삐리하다 했는데 마약까지 하고 있었네. 쯧쯧!]

 난 지나가는 투로 말했다.

 “그러게요. 저도 좀 놀랐어요.”

 주현진 같은 건 어차피 별 관심 없었는지 허민웅은 본론을 꺼냈다.

 [그런데 HJW에너지 말이야.]

 “왜요?”

 [진짜 인수해도 괜찮은 거겠지?]

 “그럼요.”

 한정그룹 해체는 위기이자 기회다.

 생각이 있는 재벌그룹들은 이번 일이 산업계 전체에 미칠 파장을 분석하며 대응 방법을 고민했다.

 그중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는 곳은 화안그룹.

 겉으로는 대준건설 인수를 위해 움직이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HJW에너지 인수팀을 꾸리고 금융권과 협의해 자금 마련 계획을 준비했다.

 [적자가 만만치 않아. 풍력이 수익성 좋은 사업도 아니고.]

 “대신 자산도 만만치 않잖아요.”

 아직은 풍력이 그렇게 수익성 좋은 사업이 아닌 만큼 매 분기 적자가 발생하고, 부채도 상당하다.

 하지만 여전히 자산이 부채보다 크다.

 그 이유는 한정그룹 계열사답게 돈 생기면 땅부터 샀기 때문. 이렇다 보니 정작 본업은 뒷전이었다.

 “인수해서 안 쓰는 땅부터 팔고, 그 돈으로 설비 투자하면 비용을 크게 절약할 수 있을 거예요.”

 [HJ퓨어셀은 에이오일이 인수한대?]

 “그건 이제부터 얘기해봐야죠.”

 [아직 확실하진 않다는 거네.]

 에이오일의 최대주주는 아람코. 그리고 아람코는 사우디의 국영기업이다.

 사우디가 투자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수소 에너지 산업은 주목받게 될 것이다. 그럼 주주들의 반발도 덜하고 자금 마련도 쉬워진다.

 “설마 저 못 믿어요?”

 내 말에 허민웅은 펄쩍 뛰듯 말했다.

 [무슨 말이야? 형이야 당연히 너 믿지. 형만큼 너 믿는 사람이 없어.]

 “그 믿음 계속 간직하세요.”

 [그럼그럼.]

 “그때 말했던 건 어떻게 됐어요?”

 보이진 않아도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듯하던 허민웅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맞다. 그 얘기 하려고 전화했지. 태용실업이라고 있는데, 거기에 자리 하나 마련해놨어. 다음 달부터 출근하면 돼. 연락해보면 자세히 알려줄 거야.“

 “고마워요.”

 [훗! 우리 사이에 고맙긴.]

 “······.”

 우리 사이가 대체 무슨 사인데?

 난 허민웅과 전화를 끊은 다음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주현진의 전 운전기사 김승도.

 간단한 인사가 끝나고 그가 말했다.

 [주총 결과는 잘 봤습니다. 정말로 해내셨네요.]

 별다른 감정이 없는 담담한 목소리다.

 “그때 약속드렸잖아요. 제가 확실하게 끝장내겠다고.”

 그는 1회차 때도 녹취록을 공개했었다.

 그러나 주현진에게 별다른 타격을 주지 못했고, 오히려 엄청난 비난만 받으며 모습을 감춰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그의 녹취록은 한정그룹을 무너뜨리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주현진의 폭행과 폭언은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고, 한정그룹에 대한 여론을 악화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여기에 나온 ‘VIP’라는 발언은 차명재단 뇌물 사건의 근거가 됐다.

 그리고 궁지에 몰린 주현진은 형을 배신했다.

 “전부 김승도 씨가 용기를 내신 덕분입니다.”

 [아, 아닙니다. 제가 한 게 뭐가 있다구요.]

 “새 일자리도 정해졌으니, 푹 쉬시다가 다음 달부터 출근하시면 됩니다.”

 내부고발자는 아무리 좋은 일을 했어도 재취직이 힘든 게 현실이다. 그건 내가 누구보다 잘 알지.

 그래서 허민웅에게 일자리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화안에너지 하청업체 중 한 곳을 소개해주었다. 대충 알아보니 원래 한정그룹에서 일하던 임원이 퇴직하며 차린 회사인 모양이다.

 내가 이렇게 후속 조치까지 완벽하다.

 [정말 감사합니다.]

 “뭘요.”

 감사는 내가 해야지.

 얘기가 끝날 때쯤 한 외국인 여성이 다가왔다. 그녀는 내 맞은편에 앉았다.

 난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통화하는데 방해한 거 아니에요?”

 “아니에요. 어차피 끊으려고 했어요.”

 난 먼저 동호 선배가 정리한 보고서를 내밀었다.

 3300억 원을 투자해서 2조 5천억 원을 벌어들였다.

 이중 라시드 왕자가 투자한 돈은 약 1650억 원.

 이 투자금으로 벌어들인 1조 850억 원. 그중 컨티뉴 캐피탈의 몫이 70퍼센트, 나머지 30퍼센트인 약 3250억 원이 라시드 왕자의 몫이다.

 사라는 보고서를 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불과 몇 달 만에 이 정도 수익이라니. 라시드 왕자님도 흡족해하실 거예요.”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말은 이렇게 해도 라시드 왕자에게는 별로 큰돈이 아니다.

 사우디라는 나라를 통째로 가진 사람에게 수천억 원쯤이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겠지.

 “그보다 오늘 보자고 한 건 두 가지 제안을 드리고 싶어서요.”

 “그럴 것 같았어요. 어떤 제안인가요?”

 난 김성권 대표에게 한정물산이 보유한 HJW에너지와 HJ퓨어셀 지분 매각을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다.

 HJW에너지는 화안그룹이 이미 인수를 준비 중이다.

 남은 건 HJ퓨어셀.

 난 자료를 내밀었다. 이건 김범석이 만든 거다. 처음 하는 일임에도 깔끔하게 정리를 잘해놓았다.

 그녀는 그 자료를 살펴보았다.

 “HJ퓨어셀에 대한 거네요. 이걸 왜 보여주시는 건가요?”

 “한정물산은 HJ퓨어셀 지분 36퍼센트를 가진 대주주입니다. 이걸 에이오일이 인수하는 건 어떨까 해서요.”

 뜬금없는 얘기였는지 살짝 놀라는 반응이었다.

 “연료전지회사와 정유회사는 별로 관련이 없지 않나요?”

 “둘 다 에너지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죠. 오히려 석유와는 관계가 없기 때문에 투자할 이유도 충분할 겁니다.”

 HJ퓨어셀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발전용 연료전지 개발과 생산, 그리고 연료전지 발전소 건설과 유지보수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다.

 “인수가는 얼마로 예상하는데요?”

 “주당 36000원 정도로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현재 시가는 18000원이잖아요.”

 “경영권 프리미엄이라는 게 있잖아요.”

 “그걸 감안해도 너무 비싸지 않나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공장 짓겠답시고 전국에 사놓은 땅값만 해도 어마어마해요. 인수해도 손해 보시는 일은 없을 겁니다. 에이오일이 인수해 투자한다고 하면 주가는 바로 그 이상으로 뛸 테구요.”

 HJ퓨어셀은 한정그룹 내에 있으면서 제대로 된 투자를 받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에이오일이 인수하겠다고 하면 임직원과 주주들 모두 두 팔 들고 환영할 거다.

 아람코가 대주주로 있지만 어쨌거나 에이오일은 한국 기업.

 한국 기업이 나서서 인수하고 투자하겠다고 하는데 정계나 재계에서도 딱히 반대할 이유가 없다.

 “이 지분을 인수한 다음 유상증자를 통해 지분을 늘리면 될 겁니다. 적으면 50, 많으면 70퍼센트까지 늘려도 될 거예요. 그만큼 신규 투자도 필요할 테니까요.”

 유상증자를 하면 주식 수가 증가하는 만큼, 주가를 떨어트리는 악재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막대한 자본을 가진 모기업이 본격적으로 투자하겠다고 선언하는 건 호재다. 그러니 유상증자에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수소 생산이 본격화되면 수소를 연료로 하는 연료전지에 대한 수요가 폭발할 겁니다. HJ퓨어셀은 이 분야에서 꽤 기술력이 있는 회사입니다.”

 실제로 HJ퓨어셀은 10년 후면 시총이 50조로 30배 이상 성장한다.

 그렇다면 1회차 때 한정그룹은 그 수혜를 입었을까?

 안타깝게도 아니다.

 주철진 부회장이 경영을 개판으로 하는 바람에 그룹이 유동성 위기를 겪었고, 부채를 갚기 위해 HJW에너지와 HJ퓨어셀 모두 외국에 팔아넘겼으니까.

 HJ퓨어셀을 사간 곳은 중국의 국영 석유회사. 매각 직후 주가가 폭등했으니 남 좋은 일만 시켜준 셈이었다.

 “정말로 그 정도 수요가 있을까요?”

 “지금도 그렇지만 미래에는 모든 게 디지털화될 겁니다.”

 컴퓨터, 스마트폰, 태블릿 등등.

 인간의 모든 활동은 디지털······ 정확히는 클라우드 속에서 이뤄진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점점 가속화되는 중이다.

 이게 의미하는 바는 뭘까?

 그건 바로······.

 “당장 10년 후면 현재에 비해 필요한 전력 수요가 서너 배는 증가할 겁니다. 더 많은 전기를 생산해야 하지만, 각국이 탄소 배출량 감소를 합의한 만큼 화력발전소를 늘리기는 힘들죠.”

 “그 대안으로 재생 에너지를 확대하고 있잖아요.”

 “재생 에너지는 결국 수소로 귀결될 겁니다.”

 “그래서 수소연료전지를 만드는 회사를 사라는 건가요?”

 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수소 발전소는 발전소의 개념도 바꿔놓을 거예요.”

 “어떻게요?”

 “전기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곳은 도시예요. 하지만 정작 발전소는 항상 도시와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죠.”

 화력발전소는 유해물질 배출 때문에, 원자력발전소는 물의 필요성과 위험성 때문에 도시와 떨어져 있다.

 이건 다른 재생 에너지 역시 마찬가지다.

 태양광 발전은 엄청나게 넓은 부지를 필요로 하고, 풍력은 엄청난 소음을 발생시킨다.

 하지만 연료전지로 가동되는 발전소라면?

 수소로 전기를 생산하는 만큼 매연도 탄소도 소음도 발생시키지 않는다.

 그리하여 일반적으로 수소 발전소는 도시 안에 건설된다. 또한 필요한 전력이 늘어나는 것에 맞춰서 얼마든지 추가로 건설할 수 있었다.

 이는 도시설계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을 만큼 중요한 부분이다.

 “사우디에 스마트시티 건설 계획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위치는 홍해와 아카바만 해안.

 이곳은 동쪽으로는 요르단, 서쪽으로는 이집트를 연결되는 교통의 요지이고, 사막기후가 아닌 연평균 기온이 30도인 온화한 기후다.

 길이는 약 450킬로미터 부지는 약 2만 5천 제곱킬로미터고, 건설비는 무려 5000억 달러.

 일명 네옴(NEOM) 프로젝트다.

 현재는 계획 단계지만, 라시드 왕자는 왕세자가 된 뒤 실제로 건설에 착수한다.

 도시 안에 쓰이는 에너지는 100퍼센트 태양광과 풍력 등의 재생 에너지로 공급할 계획이다.

 그런데 정작 서울보다 40배는 큰 스마트시티의 전력을 대체 어떻게 재생 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건지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스마트시티의 전력을 수소발전소로 충당하라는 건가요?”

 “전부 수소로 충당하긴 힘드니 원전도 지어야겠지만요.”

 한동안 자료를 살펴보던 사라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검토해볼게요.”

 사우디는 재생 에너지 분야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고, 실제로 몇 년 후면 수소 에너지 산업에 본격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한다.

 소프트박스의 송 가즈키 회장과 손잡고 인사이트펀드를 통해 투자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러니 이 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다른 제안은 뭔가요?”

 난 또다시 자료를 내밀었다.

 그녀는 그것을 보더니 물었다.

 “넥스트로젠?”

 이건 본사에서 만든 넥스트로젠 관련 자료다.

 “예. 자료에 나와 있는 대로 수소트럭 플랫폼을 만드는 회사입니다. 이 회사의 지분을 인수하는 건 어떤가요?”

 컨티뉴 캐피탈은 계약에 따라 6개월 안에 80억 달러를 지불해야 한다.

 계약을 맺은 뒤 벌써 3개월이 지났지만 현재까지 마련한 돈이라고 해봐야 고작(?) 20억 달러 정도.

 그렇다고 스노우 크래시 지분을 팔 수는 없는 노릇.

 다행히 팔 만한 지분이 하나 있으니, 바로 넥스트로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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