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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화. 잘하면 한 대 치겠네 (2) (148/529)

 153화. 잘하면 한 대 치겠네 (2)

 역시나 주현진은 형을 몰아내는 위임장에 사인했고, 그 위임장 덕분에 막판에 판을 뒤집을 수 있었다.

 내 얘기를 들은 김성권 대표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왜 미리 말 안 했습니까?”

 “마지막 순간 꺼내는 게 더 멋있잖아요.”

 내 말에 그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멋있긴 했습니다. 심장이 멎는 줄 알았지만요.”

 농담은 아닌 게 그사이 초췌해진 것 같은 모습이다.

 적대적 M&A 한 번 하고 나면 수명이 10년은 줄어든다고 하던데, 괜히 나온 말이 아닌 모양이다.

 “정말 그 이유 때문입니까?”

 사실 다른 이유도 있긴 하다.

 “표결 직전까지 주철진 부회장이 이겼다고 생각하기를 바랐거든요.”

 만약 지거나 박빙이라고 생각했다면 주철진은 표 관리에 들어갔을 것이다. 어쩌면 안건 표결 직전에 주현진에게 전화를 했을 수도 있다.

 그랬다면 어떻게 됐을까?

 주현진은 나약한 인간이다.

 형이 다정하게 다독이거나 무섭게 윽박지르면 표결 직전 얼마든지 마음을 바꿀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주철진은 이겼다고 생각하고 방심했고, 주총 날까지도 동생에게 아무런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

 어차피 경영에서 쳐낼 생각이었으니 따로 연락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겠지.

 그 결과가 이것이다.

 내 말을 들은 김성권 대표는 혀를 내둘렀다.

 “놀랍군요.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었을 줄이야. 만약 주현진 이사가 위임장을 쓰지 않았으면 어쩌려고 했습니까?”

 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글쎄요. 그럼 어쩔 수 없었겠죠.”

 사실은 다른 패가 하나 더 있었다.

 그는 코카인 중독이다. 이것 역시 나중에 언론을 통해 밝혀진 사실.

 가뜩이나 궁지에 몰려 있는 상황에서 상습적으로 마약을 복용했다는 사실까지 알려지면 그야말로 끝장이다.

 그걸 약점 삼아 협박했다면 결국 내 말을 따를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김성권 대표는 고개를 내저었다.

 “솔직히 말씀드려 제안을 받았을 때만 해도 이길 거라는 기대는 크게 없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해낼 줄이야. 그날 제안을 거절했으면 큰 후회를 할 뻔했네요.”

 “여러 가지로 운이 좋았죠.”

 그는 웃음을 터트렸다.

 “절대 운이 아닙니다. 그런 건 실력이라고 하죠. 저도 오늘 한 수 제대로 배웠네요.”

 “뭘요.”

 다 미래를 알고 있었던 덕분이다.

 그걸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를 만들긴 했지만.

 “그나저나 다른 재벌들 심기가 상당히 불편할 겁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죠.”

 주식회사는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만큼은 많은 사람들이 기업을 재벌의 소유라고 생각하고, 기업과 총수를 동일시한다.

 그리고 이러한 국민적 인식은 재벌들이 그룹을 운영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때문에 경영을 거지같이 해도, 심지어는 횡령과 배임으로 회사에 큰 피해를 끼쳐도, 여전히 자리를 지킬 수 있었고, 경영능력보다 핏줄에 따라 경영권을 세습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졌다.

 물론 대기업 계열사의 사장 중에는 전문경영인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들을 임명한 것은 어디까지나 재벌 회장이다.

 임명한 전문경영인이 일을 잘못하면 본인 책임인 거고, 일을 잘하면 그건 사람을 잘 쓴 회장의 덕분이다.

 난 김성권 대표에게 말했다.

 “이번 일로 경영을 잘못하면 쫓겨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을 겁니다. 그동안 방만한 경영을 일삼았던 재벌들도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겠죠.”

 애초에 경영을 잘해 주가가 높으면 지분을 사들이는 비용이 그만큼 커지는 만큼 경영권 공격이 쉽지 않다.

 설사 공격을 한다 해도 기관과 소액주주들은 기존에 경영을 잘하고 있는 경영진의 편을 들 테고.

 “한국 재계가 그동안 좀 고여 있긴 했죠.”

 1회차 때 기회를 놓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동우정밀이 중국에 넘어가는 바람에 유성전자와 LK닉스는 반도체 산업에서 밀려났고, 토머스 모터스 사태로 인해 수소 에너지를 포기하는 바람에 화안그룹은 몰락했다.

 다른 대기업들 사정 역시 비슷했다.

 기술력에서는 미국, 일본, 독일 등의 선진국에게 밀렸고, 인건비 면에서는 인도와 베트남 등 신흥시장에 밀렸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위협은 중국의 부상.

 중국은 이미 몇몇 첨단산업에서 한국보다 앞서 있고, 엄청난 자본을 활용해 한국 기업들을 집어삼키는 중이다.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그대로 잡아먹힌다.

 10대 그룹뿐 아니라 다른 기업들 역시 앞으로 살아남기 위해 뭘 해야 할지 고민을 해봐야 할 것이다.

 김성권 대표는 새삼 놀란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일종의 메기 효과(Catfish Effect)로군요.”

 정어리가 가득 담긴 수족관에 메기를 넣으면, 정어리들은 살아남기 위해 활발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

 이건 기업 역시 마찬가지다. 외부 자극이 있으면 생존을 위해 더 치열하게 움직이기 마련이지.

 “뭐, 그래도 여전히 정신 못 차리는 놈들은 있겠지만요.”

 “그런 놈들은 빨리 잡아먹히는 게 도움이 될 겁니다. 어차피 그 자리는 새로운 물고기들이 차지할 테니까요.”

 맞는 말이다.

 경쟁에서 밀려나면 도태되는 게 당연하지.

 “이제부터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내 물음에 그는 엄살 부리듯 말했다.

 “앞으로가 큰일이네요. 해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닙니다.”

 주철진이 대표이사직을 상실했으니 대표이사를 새로 뽑고 한정그룹의 경영권을 장악해야 한다.

 그다음 숨겨진 부실을 정리하고, 복잡하게 꼬인 계열사들의 지분을 정리해서 팔 건 팔고 남길 건 남겨야 한다.

 김성권 대표는 주총 이전에도 한정물산의 부실자산을 일거에 정리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다.

 이는 곧 총수일가의 경영실패 책임을 묻겠다는 뜻이었다. 기존 경영진의 잘못을 부각시킴으로써 경영권 확보를 정당화시키는 것이다.

 일명 빅배스(Big Bath)다.

 이건 그의 전문분야니 알아서 잘할 것이다.

 어차피 지분을 전부 매각하기로 했으니, 나야 돈만 챙기면 그만이지.

 * * *

 한정그룹 총수일가가 경영권을 빼앗겼다는 소식으로 재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그야말로 재계의 지각변동이었다.

 그동안 10대 그룹의 지위는 철옹성과도 같았다.

 정치권의 각종 지원과 특혜를 받았고, 문어발처럼 계열사를 확장하며 자신들만의 성을 쌓았다.

 그런데 사모펀드 연합의 공격에 그 성이 무너진 것이다.

 경영을 잘못한 재벌을 주주들이 합심해 쫓아내다니!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지만 현실에서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 일이기도 하다.

 뭐든 시작이 어렵다.

 이번에 가능하다는 사실이 알려진 만큼 비슷한 일이 또 벌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일부 재벌들은 그동안 방만한 경영을 해왔고, 회삿돈을 자기 돈처럼 유용하며 횡령과 배임을 저질렀다. 그룹의 덩치를 키우는 데만 관심이 있었지, 주주에게는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번 일이 이슈화되며 경영이나 주총에 별 관심이 없던 소액주주들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제대로 경영하고 주주를 챙기지 않으면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다.

 때문에 각 그룹들은 발 빠르게 경영 상황을 점검하는 한편 주주 챙기기에 나섰다.

 주총의 여파가 이어지는 가운데 총수일가에 대한 동정론도 일었다.

 하지만 이 일말의 동정마저 사라지는 일이 발생했다.

 바로 마약 투약 혐의로 인한 주현진의 구속이었다.

 * * *

 한정그룹 주총이 끝난 지 며칠이 지났지만 언론에서는 여전히 이 문제를 주요 뉴스로 다뤘다.

 그동안 언론들은 한정그룹 경영권 분쟁에서 삼자연합이 승리하면 기업이 무너지고, 직원들이 전부 실업자가 될 것처럼 떠들어댔다.

 하지만 주총이 끝난 이후에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저 주철진 부회장이 그룹 내의 모든 직책을 사임하고 나갔을 뿐이다.

 사모펀드가 한정물산의 경영권을 장악하고 나면 그다음에는 계열사들 차례다.

 누나인 주혜진도 자리를 지키기 힘들 것이다. 온 가족이 나란히 회사에서 쫓겨나는 것이다.

 주현진은 TV를 보며 중얼거렸다.

 “내가 가질 수 없으면 아무도 못 가지는 게 맞잖아.”

 주총이 끝난 직후부터 전화가 계속 울렸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아예 전화선을 뽑고 핸드폰을 꺼놓았다.

 이제 모든 게 끝났다.

 회사는 잘렸고 가족들도 원수가 됐다. 그가 돌아갈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크크! 시발, 꼴좋게 됐네.”

 상관없다.

 어쨌거나 자신의 몫만 챙겨가면 그만이다. 그 돈이면 뭐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새롭게 회사를 차릴 수 있을지도 모르지.

 ‘박 실장은 날 따라오겠지? 그래도 밑에서 일할 놈 하나 정도는 필요한데.’

 혼자 술을 마시며 앞으로의 일을 계획하는데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띵동! 띵동!

 그는 문을 열지 않았다. 그러자 잠시 후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쾅쾅쾅!

 “안에 계십니까? 문 좀 열어보세요.”

 하지만 그는 열어줄 생각이 없었다.

 “아, 꺼지라고!”

 어차피 문을 부수고 들어올 것도 아니니 열어주지 않으면 알아서 돌아갈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걸?

 콰아앙!

 놀랍게도 문을 부수고 들어왔다!

 문 앞에는 여러 명의 남자들이 서 있었다. 그중 맨 앞에 선 중년 남자는 주현진을 보며 물었다.

 “주현진 씨 맞죠?”

 분노한 주현진은 마시던 술잔을 내던졌다. 힘 조절을 잘못했는지 술잔은 현관문 옆에 부딪혀서 깨졌다.

 “니들 뭐 하는 새끼들이야? 당장 경찰 부를 거야!”

 그러자 앞에 있던 중년 남자가 그의 눈앞에 경찰수첩을 들이밀었다.

 “저희가 경찰입니다.”

 “뭐?”

 “제주경찰서 마약단속반입니다.”

 “마약단속반?”

 순간,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마약단속반이 여기를 왜 온 거지?’

 남자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현진 씨가 이곳에서 마약을 하고 있다는 제보를 입수했습니다. 조사에 협조해주시기 바랍니다.”

 “뭐, 뭐?”

 ‘누가 제보한 거지?’

 그가 당황하는 사이 경찰들이 집을 멋대로 뒤지기 시작했다.

 주현진은 놀라 소리쳤다.

 “누구 마음대로 남의 집을 뒤져?”

 남자는 그에게 서류를 내밀었다.

 “압수수색 영장입니다.”

 주현진은 그것을 빼앗듯 살펴보았다. 정말로 압수수색 영장이 맞았다. 화를 참지 못한 그는 서류를 찢었다.

 “됐고 당장 꺼져. 니들, 내가 누군지 알기나 해?”

 압수수색 영장을 찢는다고 효력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경찰들은 개의치 않고 집안을 수색했다.

 “시발! 당장 꺼지라고!”

 주현진이 달려들자 경찰들은 양쪽에서 그를 붙들었다.

 마약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설마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기에 서랍에 대충 던져놓았던 것이다.

 그것을 확인한 남자는 증거품 봉지에 넣었다.

 “주현진 씨를 현 시각부로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체포하겠습니다. 주현진 씨는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고,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을 시 국선변호사가 선임될 겁니다.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수 있고, 변호사에게 대신 답변하게 할 수 있으나, 본인의 진술이 법정에서 불리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또한 체포구속적부심을 법원에 청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는 이제까지 온갖 사고를 쳐왔고, 그래서 이런 상황이 그리 낯설지만도 않았다.

 주현진은 비웃듯 말했다.

 “니들, 내가 누군지 알아?”

 “예. 알고 있습니다.”

 “내가 집에 전화 한 통만 하면······.”

 그는 소리를 치다가 멈칫했다.

 그전까지는 사고를 치면 그룹 기조실에서 나서서 비밀리에 사건을 처리해주었다. 피해자와는 합의를 해 입막음을 하고, 국내 최고 변호사들을 붙여주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를 대신해 죄를 떠안고 구치소에서 들어갈 사람을 섭외하기도 했다. 실제로 음주운전 사고를 냈을 때도 다른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무사히 빠져나왔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그는 회사에서 쫓겨난 상태고, 그건 가족들 역시 마찬가지다. 설사 남아있다고 해도 그를 위해 움직여주지는 않겠지만.

 이전이었다면 한정그룹이 방패막이가 되어주었겠지만, 이제는 아니다.

 이제 누가 그를 도와주겠는가?

 ‘그럼 난 어떻게 되는 거지?’

 순간, 술이 확 깨는 듯했다.

 “자, 잠깐······.”

 세아는 같이 끌려가며 소리쳤다.

 “오빠! 어떻게 좀 해봐! 전 몰라요. 전 그냥 오빠가 하라고 해서 한 것뿐이에요. 전부 저 남자가 시킨 거란 말이에요! 전 아무것도 몰랐어요. 흑흑!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돼요?”

 그녀의 말에 주현진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시발! 너도 좋아서 했잖아! 더 달라며?”

 그가 여자에게 달려들려고 하자 경찰들은 그를 바닥으로 짓눌렀다.

 “이거 안 놔! 내가 누군지 알아! 니들, 내가 절대 가만히 안 둬!”

 그는 몸부림을 쳤지만, 경찰들은 그의 몸을 양쪽에서 짓누른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한참 동안 발버둥을 치던 주현진은 제풀에 지쳐 멈췄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그가 코카인을 하고 있다는 건 가족들에게도 비밀이었다. 특히 형에게는 손찌검을 당할까 두려워 철저하게 숨겼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신고했을까?

 그 순간, 한 사람이 떠올랐다.

 ‘설마······?’

 단지 의혹일 뿐이다. 증명할 만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주현진은 확신할 수 있었다.

 분명히 그놈이다!

 주현진은 경찰들 손에 끌려가며 악에 받친 듯 소리쳤다.

 “으아아! 한미루 이 개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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