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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화. 잘하면 한 대 치겠네 (1) (147/529)

 152화. 잘하면 한 대 치겠네 (1)

 난 주현진을 보았다.

 몰골이 말이 아니다.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고, 머리카락과 옷은 헝클어져 있고, 눈은 흐리멍덩했다.

 몸에서는 술 냄새가 풀풀 났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술병들을 보니 그동안 술에 절어서 산 모양이다.

 손에 든 술병을 보니 그래도 재벌이라고 비싼 술 마신다. 서민들은 소주로 병나발 불 때 꼬냑으로 병나발을 불다니.

 뒤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 왔어, 오빠?”

 그는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방에 있어!”

 난 감탄했다.

 “오!”

 이 와중에 여자까지 끼고 있어?

 이게 대한민국 재벌이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주현진이 내 멱살을 움켜잡았다.

 “니가 여기가 어디라고 와?”

 “제가 못 올 데라도 왔나요?”

 “너지? 너 맞지?”

 “뭐가요?”

 “니가 이 모든 일을 꾸민 거잖아!”

 “제가요?”

 “그래!”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내가 모를 것 같아!?”

 “흐음.”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다.

 주현진은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너 때문에 내가 어떻게 됐는지 알아!?”

 “그게 왜 저 때문인가요? 본인이 한 일 때문이지.”

 애처럼 아직도 남 탓이나 하고 있는 걸 보면 정신 덜 차린 모양이다.

 “이 개새끼가!”

 그는 당장이라도 나를 때릴 듯 손을 들어 올렸다.

 난 심드렁하게 말했다.

 “잘하면 한 대 치겠네요. 치고 싶으면 한번 쳐봐요. 총수일가가 주주 때리지 말라는 법도 없잖아요.”

 주현진은 꽉 쥔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전이야 지나가다 만난 사람 정도였으니 때려도 상관없었겠지만, 지금 난 컨티뉴 캐피탈의 대리인.

 가뜩이나 운전기사 갑질로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투자사의 대리인을 폭행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어떻게 될까?

 주총이 사흘 앞이다.

 지금 여론이 들끓기라도 하면 주총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주현진은 당장이라도 나를 죽일 것 같은 기세였으나 차마 주먹을 내지르지는 못했다. 멱살을 잡은 손이 슬그머니 풀렸다.

 “내, 내가 네놈 뜻대로 할 것 같아?”

 분노조절장애라더니 이렇게 참을성이 뛰어날 줄이야. 그런데 대체 뭔 놈의 분노조절장애가 사람 봐가면서 발동하는지, 신기하다.

 그나저나 어째 예전에 반대의 상황이 있었던 것 같은데.

 난 구겨진 옷깃을 바로 했다.

 “잘했어요. 그러고 보니 누가 그러던데. 돈 없고 힘없으면 참아야지 어쩌겠냐고. 오늘 보니 그 말이 맞는 모양이네요.”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

 “다 알아내는 방법이 있죠.”

 그가 제주도 별장에 내려와 있다는 게 비밀까진 아니어도 아는 사람만 아는 일이다.

 다행히 성윤아가 알아봐주었고 덕분에 이렇게 무사히 만났다. 나중에 밥이라 한번 사야 할 것 같다.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나에게 접근한 거지? 날 이용해 먹기 위해서!”

 이건 또 뭔 소리야?

 “본인이 먼저 시비를 걸었다는 사실은 잊었나요?”

 “니가 일부러 유도한 거잖아!”

 “으음······.”

 표정을 보니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대체 나한테 무슨 원한이 있어서 그래?”

 “원한이요?”

 “그래!”

 주현진은 억울하다는 듯 소리쳤다.

 “내가 너한테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기억 안 나서 묻는 건가요?”

 “진짜 그날 일 때문에 그러는 거야?”

 난 씨익 웃었다.

 “뭐, 꼭 그날 일 때문만은 아니고.”

 “씨발! 그럼 뭔데!? 너 나 알아? 그전에 만난 적이라도 있어?”

 그는 모르고 있겠지만 우리의 인연은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다.

 “제가 한정치킨을 참 좋아했거든요.”

 “한정치킨? 그게 뭐 어쨌는데?”

 “아는 사람이 한정치킨 가맹점을 운영했는데 본사의 갑질로 망해서요.”

 “······.”

 잠시 어이없다는 표정을 나를 보던 주현진은 신음처럼 말했다.

 “장난해?”

 “장난 아닌데.”

 “고작 그것 때문에 이런 일을 벌인 거라고?”

 “고작?”

 이 새끼는 이 지경이 돼서도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구나.

 돈이 넘쳐나서 치킨집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다들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거지.

 난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남의 밥그릇을 빼앗았으면, 본인 밥그릇도 빼앗길 수 있다는 걸 알아야지. 안 그래요, 주현진 씨?”

 “······.”

 한정치킨.

 치킨공화국이라 불리는 대한민국에서 무려 40퍼센트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치킨 프랜차이즈다.

 1회차 때 나는 선우와 함께 한정치킨 가맹점을 차렸다.

 모든 걸 쏟아부은 소중한 가게였다. 우리는 열심히 치킨을 튀기고 배달했고 장사는 꽤 잘됐다.

 하지만 회사의 부당행위를 폭로했고, 사장은 맞은편에 직영점을 세우는 것으로 보복했다.

 그 사장이 바로 주현진이다.

 뭐, 그의 입장에서는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겠지만.

 하지만 나는 가게에 찾아왔던 그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1회차 때는 합병이 성공했고, 주현진은 자신의 몫으로 HJ푸드를 챙겼다. 그러나 이번에는 회사에서 쫓겨나고 유배당하는 신세가 됐다.

 이 모습을 보니 회귀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현진은 더 이상 화낼 기운도 없어 보였다.

 “당장 꺼져.”

 “에이, 너무 그러지 마요. 오늘은 일 얘기를 하러 온 거니까.”

 “일 얘기?”

 “이제 사흘 후면 주총이네요. 거기서 모든 게 끝나겠네요.”

 주현진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 니들이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아직은 주철진이 우위를 잡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기야 비자금까지 쏟아부어가며 주식을 긁어모았으니.

 “형이 이기길 바라는 건가요?”

 내 물음에 주현진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뭔 개소리야? 그럼 설마 니들이 이기길 바랄까?”

 난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원하는 대로 주철진 부회장이 이긴다 치죠. 그럼 주현진 씨는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뭐?”

 “주민재 회장은 공식적으로 은퇴했고, 그룹은 이제 주철진 부회장이 물려받게 되겠죠.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부회장님이 동생을 다시 회사 경영에 복귀시켜줄까요? 제주도까지 내려보낸 걸 보면 그러진 않을 것 같은데.”

 “······.”

 주현진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합병은 실패했고 이제는 경영권마저 위협을 받고 있다. 이렇게 일이 꼬이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바로 그다.

 따라서 주철진이 그를 경영에 복귀시키는 일은 없을 것이다. HJ푸드의 계열사 분리 역시 이뤄지지 않겠지.

 복귀가 물 건너갔다는 건 그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주현진은 이를 갈듯 말했다.

 “날 놀리러 온 거야?”

 “고작 놀리려고 제주도까지 내려오진 않죠. 제안을 하나 드리고 싶어서요.”

 “제안? 헛소리 그만하고 꺼져.”

 “헛소리인지 아닌지는 한번 들어보세요.”

 그는 맞은편에 앉아 탁자 위에 놓인 술병을 붙잡고 마셨다. 여전히 찢어 죽일 것 같은 눈빛을 하고 있었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걸로 봐서 내가 무슨 얘기를 하러 왔는지 궁금하긴 한 모양이다.

 난 뜸 들이지 않고 바로 말했다.

 “저희 편에 서시죠.”

 “푸훗!”

 주현진은 사레가 들렸는지 마시던 술을 그대로 뿜어냈다.

 그는 몸을 숙인 채 한참 기침을 했고, 난 옆에 있던 생수를 건네주었다.

 주현진은 물을 벌컥벌컥 마신 다음 날 보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나보고 배신을 하라고?”

 “배신이 아니라 선택이죠.”

 내 말에 주현진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이거 완전 미친 새끼네. 내가 배신을 해도 설마 니 편을 들겠냐? 사람 부르기 전에 당장 꺼져.”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게 당연하겠지.

 이미 예상했던 만큼 난 태연하게 말했다.

 “한번 생각해봐요.”

 “뭘 생각해봐, 새꺄?”

 “간신히 경영권 방어에 성공한다 해도 여기저기서 잡음이 나올 겁니다. 주주들 입장에서 주민재 회장은 믿을 수 있어도 주철진 부회장의 경영능력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으니까요. 게다가 이번에 주주들을 개돼지로 취급하다가 걸리는 바람에 온갖 주주환원 정책을 약속했습니다. 그중에는 본업과 상관없는 비핵심 계열사 처분도 포함되어 있죠. 건설과 식품은 별로 관계가 없죠. 그러니 아마 HJ푸드를 매각할 겁니다.”

 “······.”

 HJ푸드는 원래 주현진의 몫으로 내정되어 있다.

 계속 가지고 있어 봐야 언젠가는 동생에게 주며 계열 분리를 해야 한다. 그러느니 처분해서 현금으로 만드는 게 낫다.

 난 그를 보며 말했다.

 “이는 곧 주현진 씨가 돌아갈 자리가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하죠.”

 주현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마 본인도 진작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말 아직 안 끝났다.

 “게다가 상속세도 문제죠. 지주회사 지분을 팔아 상속세를 낼 리는 없을 테니, 비상장 계열사들 상장도 서두를 겁니다.”

 한정그룹은 수십 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기업집단. 그중에는 증시에 상장된 기업들도 있지만, 비상장기업들이 다수다.

 이 기업들의 특징은 총수일가의 지분율이 높고 계열사들과의 거래비중이 높다. 왜냐하면 전형적인 일감 몰아주기로 키우고 있는 회사이기 때문이다.

 상장하면 적게는 수배에서 열 배 이상의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기업을 비상장으로 운용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비상장기업은 상장기업에 비해 규제나 감시가 상대적으로 덜하다. 주주들 눈치를 덜 봐도 되고.

 평소였다면 상장을 서두를 필요가 전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주철진은 자기 지분이 높은 기업들부터 상장해 경영권 방어를 위한 자금을 확보하려 할 것이다.

 주현진은 인상을 찡그렸다.

 “뭔 소리야? 니들이 경영권을 잡아도 어차피 그렇게 할 거 아니야?”

 “그건 그렇죠.”

 상장해 회사 자산이 늘어나면 그만큼 주가를 끌어올릴 수 있다. 결국 누가 경영권을 갖든 비상장 계열사를 상장시킨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한 가지 큰 차이가 있다.

 “주철진 부회장이 상장을 시킨다면 과연 동생 몫을 그대로 챙겨줄까요? 제 생각에는 상장 전에 지분을 헐값에 넘기라고 강요할 것 같은데.”

 내 말에 주현진의 표정이 바뀌었다.

 “그게 무슨······.”

 “거절하면 계열사들끼리 인수합병이나 유상증자를 통해 주현진 씨 지분율을 강제로 낮추겠죠. 아니, 그 전에 한정물산 지분부터 내놓으라고 하지 않을까요?”

 “······.”

 주현진의 직책은 단지 HJ푸드의 이사만이 아니다.

 한정그룹 비상장 계열사 HMH, HJ스마트, HJ플러스 등의 사외이사나 고문을 맡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직책들도 전부 사임했고, 그가 회사에 영향을 끼칠 방법은 전무하다.

 주민재 회장은 그룹을 장남에게 물려줬지만 막내에게도 한몫 챙겨주었다. 그래서 HJ푸드를 계열 분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과연 주철진도 똑같은 생각일까?

 천만에.

 아버지라면 아들의 몫을 챙겨줄 이유가 있지만, 형은 동생의 몫을 챙겨줄 이유가 없다.

 이번 기회에 동생을 그룹 경영에서 완전히 배제시키려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그가 가진 지분 대부분을 빼앗을 테고.

 난 그를 보며 계속 말했다.

 “이번 주총에서 누가 이기든 주현진 씨가 다시 한정그룹 내에 복귀할 일은 없습니다. 그러니 본인 몫이라도 챙겨서 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한번 생각해보세요. 경영권 방어에 성공한다고 해서 주철진 부회장이 동생에게 고마워할까요? 아니면, 이렇게 된 건 전부 동생 탓이라며 두고두고 원망할까요?”

 “······.”

 주현진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형의 성격에 대해서는 나보다 그가 더 잘 알고 있겠지.

 지금은 녹취가 공개되며 주현진이 쓰레기 취급을 받고 있지만, 사실 주철진에 비하면 새 발의 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주철진에게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는 아직 피멍이 가시지 않은 얼굴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었다.

 총수일가의 한정물산 지분은 7.8퍼센트.

 이중 주민재 회장이 2.7퍼센트를 들고 있다.

 일반적인 경우 지주회사의 지분은 후계자에게 물려주고, 그 외의 주식이나 부동산 등을 다른 자식에게 물려주기 마련이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주민재 회장은 3남매에게 한정물산 지분을 골고루 나눠주었다.

 주철진이 2.3퍼센트, 그리고 주혜진과 주현진이 각각 1.4퍼센트씩.

 계획대로 HJ로직스와의 합병이 이뤄졌다면 이는 별문제가 안 됐을 것이다. 그런데 합병은 실패했고 경영권은 위협받는 상황이다.

 지금 1.4퍼센트면 판을 완전히 뒤집을 수 있다.

 주현진의 눈빛이 갈등으로 흔들렸다.

 회사에 그의 자리는 이미 사라졌고, 돌아가도 아무도 반겨주지 않을 것이다.

 그가 이쪽 편에 선다는 것은 회사를 배신하고, 가족을 배신하는 일이다. 사실상 완전히 연을 끊는 셈이다.

 절대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과연 그는 어떤 선택을 할까?

 난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그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

 주현진이라는 인간은 속이 옹졸하고 자신의 이익을 가장 우선시한다. 사소한 원한조차 잊지 않고, 기회가 되면 반드시 복수한다.

 그게 가족이라 해도 말이지.

 난 마지막으로 그에게 말했다.

 “이번 기회에 형에게 한 방 먹이고 본인 몫을 챙기실래요? 아니면 앞으로 평생 형의 밑에서 구박받으며 사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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