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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화. 제3자 배정 유상증자 (5) (141/529)

 146화. 제3자 배정 유상증자 (5)

 난 김성권 대표의 연락을 받았다.

 [아무래도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한정물산 쪽에서 산은과 접촉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내 얘기를 전해 들은 뒤.

 그는 모든 인맥을 총동원해 산업은행과 대준건설의 움직임을 살폈다. 어디를 조사해야 하는지 알고 있으면 정보를 얻기는 쉽다.

 “결국 예상대로네요.”

 아마 지금쯤이면 유상증자 범위와 계약조건 등을 놓고 물밑에서 조율 중일 것이다. 그러고 나서 주총 직전에 발표하겠지.

 반대 여론을 무시하고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진행할 수 있도록.

 이를 막기 위해서는 이쪽에서 먼저 치고 들어가야 한다.

 난 계획을 말해주었다.

 “월스트리트타임즈에서 먼저 기사를 낼 겁니다. 그걸 뉴스트리거가 다시 받아서 내보낼 거구요.”

 [언론의 압박을 통해 산은이 입장을 밝히게 할 셈이군요.]

 “예. 대준건설 인수 문제가 공식화되면 그 시점에서 화안건설이 인수 후보로 나설 겁니다.”

 만약 또 다른 인수 후보가 나타났는데 그걸 무시하고 한정물산과 합병시킨다면? 이는 총수일가 경영권 보호를 위해 정부가 개입한다는 걸 인정하는 셈이다.

 이 경우 차명재단 뇌물수수 의혹이 다시 불거질 것이다.

 김성권 대표는 감탄하듯 말했다.

 [컨티뉴 캐피탈과 손을 잡아서 정말 다행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멍청히 있다가 당했을 테니까요.]

 “감사는 주총이 끝나고 나서 듣도록 하죠.”

 * * *

 [(WST 단독) 한국의 한정그룹 경영권 분쟁. 한국 정부의 개입 의혹 포착]

 (전략) 합병안 찬성을 대가로 대통령이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진 뒤 국민연금은 의결권 행사를 포기했다.

 그런데 이걸로 끝이 아니다.

 한국 정부는 현재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하는 방식으로 산업은행이 지분을 가진 대준건설과 합병을 검토 중이라는 내부자의 고발이 나왔다.

 합병을 이유로 한정물산이 유상증자를 하고, 그 유상증자한 주식을 산업은행이 사서 의결권을 행사하면 주총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이는 한국 법으로도 금지되어 있는 엄연한 불법행위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서는 이러한 일이 버젓이 벌어지려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엘리언트 매니지먼트는 ‘한국은 선진국이고, 매우 중요한 시장이다. 재벌과 정치권의 정경유착이 심하다는 우려가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재벌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그런 불법적이고 몰상식하고 비열한 방법을 정부가 사용할 리 없다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 만약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면 WTO에 즉각 제소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WST는 토머스 모터스 사태 보도와 롤프 부치의 사기 행각을 보도한 덕분에 엄청난 유명세를 얻었다.

 그런 언론사가 이번에 한국 재벌그룹의 경영권 분쟁에 대해 보도하자, 미국 언론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이 보도를 뉴스트리거가 바로 받아서 한국에 내보냈다.

 [(속보) 산업은행을 통한 정부의 경영권 분쟁 개입 의혹]

 [유상증자를 통한 산업은행의 지분 확보. 사실이라면 국제적 분쟁 사안]

 [국민연금에 이은 산업은행의 재벌 편들어주기]

 [사실이라면 한국의 금융 신뢰도 하락 우려]

 [외국계 투자사들, 산업은행의 입장표명 요구]

 기사가 나가고 나자 한정물산 주가는 10퍼센트 가까이 하락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종목 게시판은 난리가 났다.

 -ㅅㅂ 저게 말이 되냐?

 -유상증자는 불법인데 대체 뭔 소리야?

 -진짜 기레기들 헛소리 오지네.

 -처음 기사 나온 곳이 월스트리트타임즈라는데?

 -거기 뭐 하는 데야?

 -토머스 모터스 처음 폭로한 곳임. 이제까지 들어맞은 걸 보면 흘려들을 만한 얘기는 아님.

 -흘려들어도 됨. 아무리 정부가 재벌 편들어준다고 해도 유상증자가 말이 되냐?

 -그럼 대통령이 차명재단으로 뇌물 받은 건 말이 되고?

 -오영환 대통령님은 청렴한 분입니다. 절대 뇌물을 받았을 리 없습니다.

 -늬예늬예~

 -아무튼 이건 진짜 너무 갔다.

 -루머 퍼트려서 싼값에 주식 사려는 개수작이네.

 -어이가 엄따~

 -설마 이런 거 믿고 주식 파는 흑우들 없재?

 대체로 여론은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이었고, 친정부 성향의 언론들 역시 반박하는 기사를 썼다.

 [산업은행 개입은 근거 없는 날조 행위]

 [누가 무슨 목적으로 루머를 퍼트렸나?]

 [일부 주주들, 주가조작 혐의로 김성권 대표 고발]

 김성권 대표는 나서서 산업은행의 입장 발표를 촉구했다.

 “산업은행이 한정그룹 경영권 분쟁에 개입할 거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산업은행과 한정물산이 직접 입장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이미 온갖 소문이 나돌고 주가까지 출렁거리는 상황에서 계속 침묵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결국 박원상 산업은행장이 입장을 밝혔다.

 “산업은행은 오래전부터 대준건설 지분 매각을 추진 중이었고, 한정물산이 유력한 후보인 건 사실입니다.”

 기자가 물었다.

 “그럼 처음 언론에 나온 대로 유상증자 방식으로 진행하는 겁니까?”

 “인수 방식에 대해서는 아직 논의 중입니다.”

 “경영권 분쟁 도중 제3자 배정 유상증자는 불법이라는 판례가 있지 않습니까?”

 “다시 말씀드리지만 아직 정해진 바가 없습니다.”

 “재벌그룹 특혜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더 이상 질문은 받지 않겠습니다.”

 인수가 공식화되자 가짜뉴스라고 삼자연합을 비난하던 친정부 성향 언론들은 재빨리 태도를 바꾸었다.

 [한정물산, 대준건설 품에 안나?]

 [산업은행, 법적 문제 없이 매각 추진]

 [국내 초대형 건설사 탄생하나?]

 [산업은행, 한정물산 3대 주주로 올라서나?]

 산은이 가진 대준건설의 지분 가치는 약 2조 원.

 이를 20퍼센트 깎아서 매각한다고 해도 약 1조 5천억 원이 필요하다. 이만한 자금을 마련할 방법은 현실적으로 유상증자밖에 없다.

 김성권 대표는 강하게 항의했다.

 “경영권 분쟁 도중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불가피하게 유상증자를 한다면 일반 유상증자로 해서 다른 곳들도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이번 주총에서만큼은 산은이 의결권 행사를 보류해야 합니다. KSGI는 즉시 법원에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겠습니다.”

 그러나 산업은행은 문제가 없다며 강행 방침을 밝혔다.

 유상증자로 인한 주식 가치 하락과, 부실기업과의 합병, 그리고 경영권 분쟁 이슈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며 한정물산 주가는 바로 하한가로 떨어졌다.

 종목 게시판은 분노로 달아올랐다.

 -이러면 어떻게 되는 거야?

 -정부가 돈 먹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

 -경영권 분쟁 도중 제3자 배정 유상증자는 금지된 거 아니었어?

 -ㅋㅋㅋ 정부가 나서서 위법 행위 저지르네.

 -이게 말이 되냐? 이건 그냥 재벌 편들기잖아.

 -그런데 산은 입장도 이해는 되지. 언제까지 부실기업을 떠안은 채 세금 쏟아부어 가며 연명시킬 수는 없는 노릇 아니야?

 -그럼 돈 받고 매각을 해야지, 왜 유상증자로 한정물산 지분을 받는 건데? 그걸로 주총에서 의결권 행사할 거잖아.

 -키야! 지렸다. 주총에서 표 대결하는 대신 유상증자를 해버리다니!

 -ㄷㄷㄷ 경영권 우주방어 쌉가능.

 -ㅎㅎ 삼자연합 완전히 망했네~

 -주가도 망함ㅜㅜ 지금 폭락 중 ㅜㅜ

 -그런데 진짜 이래도 되는 거야? 지금 외신에서도 난리인데.

 -주식에는 당연히 의결권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런 식으로 주주들의 의결권을 무시할 수 있다는 게 알려지면 누가 한국 시장에 투자하겠습니까?

 -외국인들 엑소더스 할 듯.

 -경영권이야 방어한다 쳐도 문제는 그 뒤 아님? 대준건설 부채가 장난 아닌데. 자산으로 잡혀있는 것도 지방에 미분양된 아파트들이고.

 -저거 떠안았다가는 한정물산도 휘청거리지 않을까?

 -실제로 호은그룹이 인수했다가 그룹 전체가 공중분해 되고 다시 뱉어냈음.

 -건설사라면 환장하는 대기업들이 괜히 거들떠도 안 본 게 아님.

 -합병하면 주가 개폭락 확정.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부실기업을 떠안는다는 게 말이 되냐? 미친놈들 아니야?

 -소액주주들만 바보 됐네 ㅜㅜ

 -ㅅㅂ 한국 주식에 투자한 내가 ㅂㅅ이지.

 * * *

 빼앗는 쪽과 빼앗기는 쪽은 싸움에 임하는 각오가 다르다.

 빼앗는 쪽은 실패해도 크게 손해 볼 게 없다. 원래 자신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빼앗기는 쪽은 다르다.

 100만 원을 얻을 때의 기쁨보다는 100만 원을 잃었을 때의 슬픔과 분노가 더욱 큰 법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진 것을 빼앗기는 것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한다.

 재벌들은 남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이대로 주총까지 가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 그래서 주민재 회장은 100퍼센트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게 바로 대준건설 인수였다.

 유상증자를 통해 산업은행을 끌어들여 우군으로 삼는 것이다.

 오영환 대통령은 얘기를 전해 듣고 바로 승낙했다.

 어차피 그동안 받은 게 있으니 뭐라도 해줘야 할 판이다. 그런데 세금만 들어가는 골칫덩어리를 이번 기회에 떠넘길 수 있다면 괜찮은 거래였다.

 문제는 대준건설이 덩치만 큰 부실기업이라는 것.

 산업은행이 대준건설에 빌려준 돈만 해도 1조 2천억 원. 대준건설을 인수하면 인수금 외에도 이 돈을 한정물산이 갚아줘야 한다.

 기업에 해가 되는 합병인 만큼 대부분의 주주들은 반대 의사를 밝혔다. 일부에서는 경영권 방어를 위해 독약을 삼켰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 문제지.’

 회사가 얼마의 손실을 보든 중요한 건 경영권을 지키는 거다.

 주주의 이익을 위해 봉사해야 할 경영자가 오히려 주주들의 이익을 해치는 셈이지만 상관없었다.

 ‘내 회사를 도적 떼에게 빼앗길 수는 없잖아.’

 실적과는 상관없이 이슈로 인해 오른 주가는 이슈가 소멸하는 즉시 떨어지게 되어 있다. 주총까지 갈 필요도 없이 승리가 확실한 만큼 주가는 폭락할 가능성이 높았다.

 주철진은 한미루를 떠올리며 웃음을 지었다.

 ‘지금쯤이면 폭락하는 주가를 보며 울상을 짓고 있겠지?’

 * * *

 역시나 대준건설 인수가 공식화되자 한정물산 주가는 바로 폭락했다.

 20만 원을 돌파할 기세였던 주가는 이틀 연속 하한가를 맞으며 9만 원까지 떨어졌다.

 다들 팔지 못해 안달인 가운데 KSGI와 엘리언트는 오히려 추가매수에 나섰다. 마음 같아서는 컨티뉴 캐피탈도 더 사고 싶지만 돈이 없다.

 난 동호 선배와 김범석에게도 말했다.

 “돈 있으면 지금 더 사세요. 걸리지 않게 차명계좌로.”

 “알겠습니다.”

 사모펀드에서 일하는 장점이 이런 거지.

 김성권 대표와 허민웅과 연락해 앞으로의 일을 논의하는데, 유재호 회장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먼저 연락하려고 했는데 마침 잘됐다.

 [결국 산업은행까지 나섰네요. 대응 방법은 있습니까?]

 “예.”

 [별로 놀라지 않은 걸 보니, 역시 예상하고 있었던 모양이군요.]

 유재호 회장은 그 방법이 뭔지 굳이 묻지 않았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일이다.

 난 슬쩍 얘기를 꺼냈다.

 “그보다 부탁드릴 게 좀 있습니다.”

 [어떤 부탁인가요?]

 “별건 아닌데······ 혹시 투자에 관심 있는 지인이 있다면 한정물산 주식을 사라고 권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지금 들어가면 못해도 50퍼센트는 먹을 수 있을 텐데.”

 다시 말해 비자금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매수하라는 뜻이다. 어차피 노는 돈, 이번 기회에 불리면 좋겠지?

 [어렵지 않은 일이네요. 설마 이게 부탁이라는 건가요?]

 당연히 진짜 부탁은 따로 있다.

 “기왕이면 취득한 주식의 의결권은 KSGI에 위임해달라고도 전해주세요. 주주명부 폐쇄 전까지만 보유해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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