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4화. 제3자 배정 유상증자 (3) (139/529)

 144화. 제3자 배정 유상증자 (3)

 허민웅은 실소를 흘렸다.

 “아, 뭐야? 그런 거였어?”

 허성훈 회장 역시 내 말뜻을 알아들었다.

 “유상증자를 막기 위해 화안그룹이 먼저 선수를 쳐달라는 거군.”

 “그렇습니다.”

 정말로 인수를 하는 것보다는 낫지만 이것만 해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한정그룹을 적으로 돌리는 거야 그렇다 쳐도 재계의 암묵적인 룰을 깨고, 정부와 정면으로 맞서야 하니.

 게다가 인수팀을 꾸리고 실사를 진행하려면 꽤 많은 돈이 들어간다. 제대로 하려면 적어도 10억은 깨진다.

 그러니까 인수하지도 않을 기업에 이만한 돈을 써달라고 요청한 셈이다.

 “아직 확실한 일도 아니지 않나?”

 “미리 준비해서 나쁠 건 없지 않겠습니까?”

 “부탁하는 이유는 충분히 알았네만······ 내가 그 부탁을 들어줘야 할 이유가 대체 뭔가? 알다시피 한정그룹과는 사돈지간이네.”

 “사돈이라고 해봐야 어차피 남 아닙니까?”

 언제부터 사돈 챙겼다고?

 사돈이니 친척이니 따지는 것도 평범한 집안에서나 하는 일이다. 재벌가에서는 부모자식, 부부, 형제끼리도 싸우는 판에 사돈이라고 대수겠는가?

 돈 앞에서는 사돈이고 뭐고 없는 법이지.

 “생각해보면 재벌그룹이라는 말이 좀 재밌지 않습니까?”

 “무슨 말인가?”

 “그룹이라고 해도 따지고 보면 개별 기업들의 느슨한 집합체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연결고리는 언제든 쉽게 끊어질 수 있죠.”

 사실 외국에도 이런 그룹 형태의 기업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거대 기업들은 수십에서 수백 개의 자회사를 두고 있기도 하니까.

 그렇다면 이들과 한국의 재벌그룹이 다른 게 뭘까?

 그건 바로 재벌그룹의 경우 업무영역이 전혀 상관없는 기업들이 모여 있다는 것이다.

 한국 재계 1위라는 유성그룹을 보면 그나마 유성전자, 유성전기, 유성SC 등은 IT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을 수 있지만, 유성중공업, 유성생명, 유성증권 등은 별 연관성이 없다.

 이렇게 문어발식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두 가지.

 바로 순환출자와 지주회사다.

 계열사들끼리 서로의 지분을 소유해 하나의 고리를 형성하고, 총수일가는 지주회사 하나를 장악함으로써 그룹 전체를 쥐락펴락한다.

 하지만 이는 역으로 말해 지주회사 하나만 뺏으면 그룹 전체를 먹을 수 있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KSGI가 경영권을 장악하면 그 이후에는 복잡하게 얽힌 지분 관계를 정리할 겁니다. 이는 사실상 그룹의 해체를 의미하죠. 이전까지는 한정물산을 중심으로 모여 있던 기업들이 각자 알아서 생존해야 할 겁니다.”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가?”

 “다른 그룹 입장에서는 필요한 기업을 인수합병할 수 있는 좋은 기회 아니겠습니까? 화안그룹은 차세대 동력으로 재생 에너지 사업을 밀고 있죠. 그리고 한정그룹 역시 재생 에너지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HJW가 있죠.”

 허성훈 회장은 고개를 저었다.

 “같은 재생 에너지라고 해도 한정그룹의 주력은 풍력이네. 풍력 발전을 하는 HJW에너지는 크게 매력이 없네만.”

 “만화책을 보다 알게 됐는데 이런 일본 속담이 있더군요. 독을 삼키려면 그릇까지.”

 허성훈 회장은 그 말뜻을 바로 알아들었다.

 “기왕 태양광에 발을 담갔으니 풍력까지 먹으라는 건가?”

 “예.”

 “수년 동안 적자에 허덕이던 태양광 사업은 이제 간신히 흑자를 내기 시작했지. 경제성이 크게 떨어지는 재생 에너지가 한국에서 어떻게 수익을 내고 있는지 알고 있나?”

 “한전과 탄소 크레딧 판매 덕분이죠.”

 대한민국 곳곳에는 수많은 발전소가 있다.

 이 발전소를 전부 국가가 운영하는 건 아니고 여러 민간회사가 맡아서 운용한다. 하지만 전기를 생산하는 회사는 많아도 전기를 판매하는 회사는 딱 한 곳이다.

 바로 한국전력.

 한국전력은 자체 발전소를 운용함과 동시에 전국의 사설 발전소에서 전기를 사들여 공급한다.

 당연하지만 재생 에너지는 화력이나 원자력 발전에 비해 생산단가가 높다. 그런데 한전은 이걸 비싼 가격에 사들여서 싼 가격에 소비자에 판매한다.

 한마디로 생산단가를 일부 보조해주는 셈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재생 에너지 산업을 키우기 위함이다.

 또 하나 중요한 건 바로 탄소 크레딧.

 재생 에너지가 확대되고 있는 것은 그게 화력과 원자력에 비해 경제성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전 세계가 강력하게 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은 수익성을 쫓는 만큼 돈이 안 되는 일은 하지 않는다. 때문에 미국과 EU 등에서는 이를 아예 법으로 강제하고 있다.

 자동차의 경우 내연기관차를 10대 파는 동안 친환경차를 1대 팔라는 식이다. 만약 친환경차를 만들 기술력이 없어서 팔지 못한다면?

 그럼 친환경차를 파는 기업에게서 크레딧을 사와야 한다.

 반대로 전기차 회사 같은 경우는 판매한 차만큼의 크레딧을 다른 자동차 회사에 판매할 수 있다.

 여기서 티슬라의 수익구조가 나온다.

 현재 티슬라의 수익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자동차 판매가 아닌 바로 탄소 크레딧 판매다.

 에너지 역시 마찬가지로 재생 에너지를 생산하는 기업은 탄소 배출을 많이 하는 다른 기업에게 생산량만큼의 크레딧을 판매해 수익을 낼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이는 재생 에너지의 경제성이 그만큼 떨어진다는 얘기다.

 “그런데 풍력의 경우 태양광보다도 사업성이 더 떨어지네. HJW에너지의 경우 만년 적자 기업이고.”

 난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씀입니다. 사실 재생 에너지가 아무리 효율이 좋아진다고 해도 화력발전과 원자력발전을 완전히 대체하는 건 무리입니다. 간헐성은 극복할 수 없는 문제니까요.”

 태영광이나 풍력은 날씨, 낮밤, 계절에 따라 생산되는 전력이 천차만별이다. 그렇다면 남는 전기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서 지금은 ESS를 활용하는 중이지.”

 ESS(Energy Storage System)란 에너지 저장 시스템. 태양광, 풍력 등이 과잉 생산한 전기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다시 내보내는 장치다.

 “차세대 에너지 저장 시스템이라고 해봐야 결국 배터리를 잔뜩 쌓아놓은 것뿐이죠. 그건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입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나?”

 그 물음에 난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첫째로 저장량에 한계가 있습니다. 저장량을 두 배로 늘리려면 두 배 많은 배터리가, 세 배로 늘리려면 세 배 많은 배터리가 필요하죠. 배터리 가격이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닌데 무한정 늘릴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둘째로 발열과 쇼트도 문제입니다. 배터리는 노후화될수록 화재 위험이 올라가죠. 지금이야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여도 1, 2년만 지나면 여기저기서 화재가 발생할 겁니다. 셋째로 효율도 좋지 못합니다. 충전과 방전시 낭비되는 전력도 심하구요. 넷째로 온도에 따라 효율이 떨어집니다. 겨울에는 제 성능의 80퍼센트도 안 나올 겁니다. 다섯째로 배터리는 오래 사용하면 최대 충전량이 떨어지는 데다가 다 쓴 배터리를 폐기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환경파괴를 막자고 그린 에너지니 재생 에너지니 하는 건데, 환경을 해쳐서야 되겠습니까?”

 난 고개를 들며 물었다.

 “몇 개 더 얘기할까요?”

 허성훈 회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만하면 충분하군. 그래서 대안은?”

 “아시다시피 수소입니다. 태양광과 풍력으로 생성한 전기로 수소를 만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수소는 보관과 수송이 간편하고, 화재 걱정도 없고, 온도에 따라 효율이 떨어지지도 않으니까요.”

 “태양광만으로도 충분한데 풍력까지 해야 하는 이유는?”

 “화안그룹에는 화안중공업이 있고, 화안중공업은 해양플랜트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풍력과는 찰떡궁합이죠.”

 “그게 무슨 말인가?”

 “태양광이든 풍력이든 발전을 하는 이상 계통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수소 생산에만 초점을 맞추면 얘기가 다릅니다.”

 태양광이든 풍력이든 생산되는 전기를 전선을 통해 어딘가로 보내야 한다. 이를 계통이라고 한다.

 허민웅은 뭔가 눈치챘다는 듯 탄성을 내질렀다.

 “아!”

 난 고개를 끄덕였다.

 “계통을 하지 않으면 수소 생산은 어느 곳에나 가능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해상에 풍력 발전소를 만들어놓고 그곳에서 수소를 생산한 다음 파이프나 선박으로 옮기면 그만이니까요. 또한 시추선처럼 부유식 해상 풍력발전소를 만들어 계절과 풍향에 따라 위치를 이동하며 생산량을 극대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너무 과장해서 말하는 것 같지만, 재생 에너지 비중이 높은 유럽에서는 3년 안에 비슷한 사업을 진행한다.

 “그렇게 수소를 만들어봐야 수요가 없으면 무용지물 아니겠나?”

 “공급이 수요를 만들어낼 겁니다. 수소는 자동차 연료는 물론, 선박, 기계, 발전소 등의 연료로도 사용 가능하니까요.”

 사실 일반인들 입장에서는 왜 몇몇 자동차 회사들이 수소차에 사활을 걸고 있는지 잘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그 이유는 바로 수소가 차세대 에너지원이기 때문이다.

 수소차를 굴리기 위해 수소충전소를 만들고, 수소충전소에서 수소를 넣기 위해 수소를 생산하는 것은 지극히 비효율적인 일처럼 보인다.

 그런데 마치 석유를 땅에서 뽑아내듯 막대한 양의 수소를 생산할 수 있다면?

 그럼 이를 사용하기 위해서라도 수소차, 수소선박, 수소항공기, 수소발전소 등이 만들어져야 한다.

 “재생 에너지는 말 그대로 지구에서 무한하게 만들어지는 에너지입니다. 다만 이제까지는 그걸 저장할 방법이 없었을 뿐이죠. 그런데 이제 그걸 수소로 만들어서 저장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겁니다. 이 시장을 잡기 위해서는 그룹의 역량을 전부 수소에 집중해야 합니다. 아니, 아예 수소를 중심에 놓고 그룹을 재편해야 합니다.”

 10년 안에 수소가 석유와 천연가스를 완전히 대체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전체 에너지 시장의 일부만 장악해도 그 금액은 수조 달러다.

 현재도 세계 교역 부동의 1위가 에너지다.

 잠시 후, 허성훈 회장이 입을 열었다.

 “수소가 미래의 주요 에너지원이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네. 하지만 미래에 아무리 큰 시장이 열린다 한들 그때까지 무한정 돈을 쏟아부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수소경제의 시작은 자동차 연료입니다. 전체 에너지 시장에서 중 자동차 연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20퍼센트입니다. 이를 통해 당장 수익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겁니다.”

 “충전소를 만들어도 수소차가 없으면 무용지물일 텐데.”

 “대연차와 토요타에서 수소차를 생산 중이지 않습니까?”

 “그 정도로는 한참 부족하네. 대중화가 되지 않으면 큰 의미가 없지. 원래는 그 역할을 토머스 모터스가 해줄 거라고 기대했는데, 결과는 아는 그대로네.”

 사실 본격적으로 수소차 시대를 열 기업은 따로 있다.

 “그 부분은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진짜 기술력을 가진 회사가 있으니까요.”

 “어디를 말하는 건가?”

 난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미국에 있는 넥스트로젠이라는 회사입니다.”

 허민웅이 물었다.

 “수소차 플랫폼 만드는 스타트업 말하는 거야?”

 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연료전지스택과 고압수소탱크, 그리고 모터까지 연결된 차체 하부를 만드는 회사입니다. 표준화된 모듈형 플랫폼을 만들어 각 자동차 회사에 판매할 계획이죠. 아시다시피 차는 동력기관을 제외하고도 상당한 노하우가 필요합니다. 기존 자동차 회사들은 그런 노하우를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수소차나 전기차를 만들 기술력이 없을 뿐이죠. 하지만 넥스트로젠이 만든 플랫폼에 각종 부품과 차체를 올리면 차가 완성됩니다. 이렇게 하면 수소차에 대한 기술력이 없는 회사들도 얼마든지 수소차를 만들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존 자동차 회사들과 생산을 협업하는 것인 만큼 빠르게 시장에 차를 내놓을 수 있습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