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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화. 금감원 (2) (261/529)

 140화. 금감원 (2)

 프리머스 사태, 코발트 게이트 등 금융 사기 사건들이 연달아 터지며 금감원은 비난을 넘어 조롱거리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또 다른 큰 사건이 벌어지고 있으니 바로 한정그룹 경영권 분쟁이다.

 앞의 두 사건이라고 해봐야 여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한정그룹 경영권 분쟁에는 국내 사모펀드, 해외 사모펀드, 소액주주, 외국계 주주들은 물론 국민연금에 청와대까지 얽혀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장진행 금감원장은 청와대로부터 은근한 압박을 받았다.

 KSGI는 오랜 기간 한국에서 터를 잡고 활동한 토종 사모펀드다. 게다가 김성권 대표가 삼자연합을 주도하고 있는 만큼 직접 건드리기는 힘들었다.

 엘리언트 매니지먼트는 미국에서도 유명한 행동주의 헤지펀드. 역사와 전통은 물론, 미국계 자본의 여론을 주도하는 만큼 역시 쉽게 건드리기 힘들었다.

 결국 그나마 만만한 곳은 컨티뉴 캐피탈.

 알려진 정보도 가장 적고, 수상쩍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일단 경고 차원에서 자료 제출을 요구해봤는데, 이게 웬걸?

 한종원 과장에게 직접 보고를 받은 장진행 금감원장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뭐!? 월급 루팡? 금융사기나 똑바로 잡으라고? 어린놈의 자식이 금감원을 우습게 보는 것도 정도가 있지!”

 금감원은 모든 금융사들을 관리감독하는 기관이다. 아무리 잘나가는 기업이라도 감사기관을 상대로는 설설 기기 마련.

 세상에 금감원을 상대로 이딴 소리를 지껄이는 놈이 어디 있겠는가?

 순순히 모든 자료를 내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지만, 설마 이런 식으로 나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이런 모욕을 당하고 그냥 물러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장진행 금감원장은 화를 누른 채 곰곰이 생각했다.

 ‘자료 제출 요구를 전면으로 거부한 걸 보면 그만큼 켕기는 게 많다는 거 아니야?’

 조사하다 보면 분명 뭔가 나올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약간의 불법행위만 찾아내도 언론에 공표해 여론을 움직일 수 있다.

 ‘털면 뭐든 나오게 되어 있지.’

 뭐라도 나오면 검찰에 넘겨 기소를 시키면 된다. 설사 무죄가 나오더라도 어차피 판결이 나오는 건 주총이 끝난 뒤일 테니까.

 장진행 금감원장을 지시를 내렸다.

 “당장 압수수색 진행해.”

 * * *

 난 먼저 김성권 대표와 통화했다.

 내 얘기를 들은 그는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결국 금감원까지 나섰군요. 일전에 비슷한 이유로 엘리언트에 자료 제출을 요구한 적이 있습니다. 원하는 자료 전부 제출했는데도 불법행위로 몰아붙이더군요. 검찰이 현재 기소 준비 중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뭐, 합법이긴 해도 편법에 가까운 방법이니까요.”

 [컨티뉴 캐피탈 역시 비슷한 방법으로 들쑤실 텐데,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이로 인해 여론이 돌아서는 것을 우려하는 거겠지.

 난 걱정하는 그에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전에 말씀드린 대로 이런 문제는 저희 선에서 깔끔하게 해결하겠습니다. 엘리언트가 기소당하는 일도 없을 겁니다.”

 회사에 도착한 나는 모두 모인 자리에서 어제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김범석은 눈을 껌뻑이며 물었다.

 “금감원에서 찾아왔다구요?”

 “예.”

 표정을 보니 ‘첫 직장을 너무 위험한 곳으로 골랐나’라고 말하는 것 같다.

 동호 선배는 기가 차다는 표정이었다.

 “그럼 보통 큰일이 아니잖아. 너 금감원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몰라?”

 “알죠.”

 증권사에서 일해 본 사람이라면 금감원의 악명(?)에 대해서는 한 번쯤 들어봤다.

 동호 선배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말했다.

 “프리머스 사태 이후 걔들 조사한다고 찾아왔는데 무슨 점령군 쳐들어온 줄 알았어. 말단 직원이 큰소리치는데도 부장이 그 앞에서 꼼짝을 못하더라.”

 수사기관이라는 게 이렇게 무섭다.

 사라가 물었다.

 “금감원이 나선 근거는 뭔가요?”

 “일단은 TRS 때문이죠.”

 “의혹이 있다면 자료 제출 요구는 충분히 할 수 있지 않나요? 거기에 응하지 않은 이유가 있나요?”

 “어차피 소용없었을 테니까요.”

 TRS는 합법과 불법의 경계가 모호하다. 다시 말해 코에 골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다.

 난 1회차 때를 떠올렸다.

 원래대로라면 이 시점에서 한정그룹 측과 양자연합은 합병안의 찬반을 두고 싸웠다. 국민연금은 한정그룹 편을 들었고, 정부는 금감원과 검찰을 동원해 양자연합을 압박했다.

 그때는 타깃이 엘리언트 매니지먼트였다.

 금감원은 TRS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했고 엘리언트는 여기에 응했다. 자료를 받은 검찰은 불법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하고 바로 기소했다.

 그러자 언론은 이를 대대적으로 알리며 ‘해외 투기자본의 불법적이고 악의적이고 부당한 행위’로 몰아갔다.

 결론은 어떻게 됐을까?

 5년을 넘게 끈 재판 끝에 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나왔다. TRS 과정에 불법은 없었고, 엘리언트 매니지먼트는 정당한 방식으로 투자했음이 밝혀졌다.

 이에 대해 엘리언트 매니지먼트는 크게 반발했지만, 이미 합병은 이뤄진 뒤였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다.

 “불법적 요소가 있었든 없었든 금감원 수사 결과를 바탕으로 검찰은 기소할 가능성이 높아요. 언론은 이를 해외 투기자본의 불법행위라고 보도할 거고, 판결이 나올 즈음에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겠죠.”

 동호 선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렇겠네. 대통령이 뇌물을 받아먹었으면 뭐라도 하려고 할 테니. 그럼 해결 방법은 뭐야?”

 “주식을 매수해 넘겨준 곳이 트집을 잡을 만큼 만만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면 되겠죠.”

 난 그렇게 말하며 사라를 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이해했어요.”

 그녀는 사우디의 왕족이고, 그녀의 뒤에는 라시드 왕자가 있다.

 사우디 왕실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트집잡기식 기소는 포기할 것이다.

 “그럼 미리 알려줘도 되지 않았나요? 굳이 압수수색을 유도할 필요가 있어요?”

 난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하면 컨티뉴 캐피탈 대신 엘리언트를 타깃으로 잡을 거예요. 어쨌든 간에 여론을 돌리는 게 목적이니까요.

 사라는 감탄했다.

 “아하! 한번 망신을 당해봐야 다시는 비슷한 수작 부릴 생각을 못 한다는 거군요.”

 “맞습니다. 필요한 자료 좀 부탁드릴게요. 저희 쪽에서 보내는 것보다 그쪽에서 보내는 게 확실할 테니까요.”

 “알았어요.”

 우리는 미리 압수수색이 벌어질 것을 대비했다.

 회사에는 업무용 컴퓨터 외에 개인용 컴퓨터도 따로 있다. 그걸로 할 일이 없을 때는 각자 게임을 하거나 강의를 듣거나, 음악 작업을 했다.

 난 동호 선배를 보며 말했다.

 “자료는 잘 정리해두세요. 혹시 야동 같은 거 깔아놓은 거 있으면 미리 지우구요.”

 동호 선배는 당황했다.

 “야야! 너 지금 사람을 뭘로 보고?”

 말은 그렇게 해도 재빨리 자리에 앉아 열심히 뭔가를 했다.

 직박구리 폴더 삭제 중인가?

 점심시간이 지날 무렵.

 양복을 입은 한 무리의 남자들이 사무실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맨 앞에는 어제 봤던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명찰을 내보이며 말했다.

 “금감원 특사경 한종원 과장입니다. 아무것도 만지지 말고 뒤로 물러나세요.”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구나.

 원래 금감원은 조사만 담당하고 수사는 경찰이나 검찰이 맡았다.

 하지만 금융범죄의 특성상 신속하게 수사가 생명인 만큼 현재는 법이 개정돼 금감원이 자체적으로 수사를 담당할 수 있게 됐다.

 일명 특별사법경찰관 제도다.

 동호 선배는 구시렁거리듯 말했다.

 “아니, 고작 몇 명밖에 안 되는 사무실까지 쳐들어와서 조사할 게 있나?”

 그러자 옆에 있던 김범석은 마치 들으라는 듯 말했다.

 “불법행위가 있어서 조사하는 게 아니라, 조사해서 불법행위 찾아내려는 것 같은데.”

 “누가 보면 대통령이 정말 뇌물이라도 받은 줄 알겠는데.”

 한종원 과장은 그 말을 들은 체 만체하며 우리에게 말했다.

 “신분증 보여주세요.”

 난 그에게 신분증을 내밀며 말했다.

 “직원 몇 명짜리 회사를 쑤시고 들어올 정도로 금감원이 이렇게 한가한 조직이었나요? 이러는 순간에도 금융사기범들이 활개를 치고 다닐 텐데.”

 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정당한 조사이니 협조해주시기 바랍니다.”

 사라 역시 자신의 명함을 조사관에게 건네주었다. 그것을 본 조사관은 크게 당황하며 한종원 과장에게 말했고, 그는 사라에게 영어로 물었다.

 “에이오일 재무이사? 직장이 에이오일입니까?”

 “예.”

 “그럼 이곳에는 어쩐 일입니까?”

 “외부감사 역할을 맡고 있어서요.”

 “이번 투자와 관련이 있다는 거군요. 그럼 조사에 협조해주시기 바랍니다.”

 “저 지금 회사로 돌아가 봐야 하는데.”

 “안 됩니다.”

 그러자 사라는 보란 듯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뭐 하시는 겁니까?”

 한종원 과장의 물음에 그녀는 태연하게 말했다.

 “잠깐 전화 좀 할게요.”

 수사관들은 열심히 사무실을 뒤지고 컴퓨터를 만졌다.

 난 한종원 과장에게 물었다.

 “꼭 이렇게까지 하셔야겠습니까?”

 그는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제가 후회할 거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자료 제출 요구에 순순히 응했다면 이런 일 없었을 겁니다. 그러게 제 말 듣지 그랬어요?”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어제 일을 마음에 쌓아두고 있었던 모양이다.

 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과연 그랬을까요? 그건 그거대로 트집 잡았을 것 같은데.”

 그가 뭐라고 말하려는데 안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난 한종원 과장에게 말했다.

 “뭐 하세요? 어서 전화 받으세요.”

 “일하는 중에는 받지 않습니다.”

 “혹시 모르잖아요. 위에서 걸려온 급한 전화일지도. 누가 걸었는지 이름이라도 한번 확인해보세요.”

 그는 잠시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대체 무슨 수작이냐고 묻는 것 같다.

 그거야 직접 확인해보면 되지 않을까?

 결국 호기심을 이길 수는 없었는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슬쩍 꺼냈다. 발신자 이름을 확인한 그는 눈이 휘둥그레져 전화를 받았다.

 “한종원 과장입니다. 예? 그, 그게 정말입니까? 그럼 압수수색은······ 예! 알겠습니다. 예,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통화를 끝낸 그는 잠시 나를 노려보았다.

 난 피하지 않고 그 시선을 마주했다.

 “무슨 수작을 부린 겁니까?”

 “그건 돌아가서 물어보세요.”

 “······.”

 “그나저나 계속하실 건가요?”

 그는 힘없는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다.

 “철수해.”

 그러자 사무실을 뒤지고 있던 조사관들은 당황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러자 한종원 과장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장 철수하라고!”

 난 화를 내는 그에게 말했다.

 “제가 분명히 말했잖아요. 전 후회 같은 거 안 한다고. 그러게 제 말 듣지 그랬어요?”

 * * *

 오영환 대통령은 장진행 금감원장의 보고를 받았다.

 “지금 뭐라고 했나?”

 [TRS 관련 자료는 전부 제출받았습니다. 그런데 아흐드 사우디 대사가 무슨 일로 조사를 하는 거냐며 연락을 해왔습니다.]

 순간, 잘못 들었나 했다.

 그만큼 뜬금없는 얘기였기 때문이다.

 “사우디 대사가 대체 왜?”

 [현재 투자에 대한 감사를 맡고 있는 사라 에이버리라는 여성의 아버지가 사우디 왕실 출신의 교수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왕족이라고?”

 [예. 지금은 미국으로 귀화했고 그녀 역시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인이지만 사우디 왕실 측과 관련을 맺고 있는 모양입니다.]

 사실 왕족이라고 해도 특별할 건 없다.

 사우디에는 발에 차일 정도로 많은 게 왕족이니까. 하지만 대사관이 나서서 그녀의 신변을 보호할 정도면 권력과 직접적으로 끈이 닿아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순간, 뭔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럼 컨티뉴 캐피탈이 사우디 왕가와 관련이 있는 건가?”

 [예. 자료에 따르면 TRS로 주식을 넘겨준 회사가 사우디 왕실 쪽의 사모펀드입니다.]

 그 말에 오영환 대통령은 깜짝 놀랐다.

 “뭐? 그 얘기를 왜 지금 하나?”

 장진행 금감원장도 당황하며 말했다.

 [압수수색 도중에 자료를 전달받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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