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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화. 갑질 폭로 (4) (259/529)

 130화. 갑질 폭로 (4)

 재벌가의 갑질은 대한민국에서 흔한 일이다.

 다른 때였다면 설사 언론에 나왔더라도 ‘흔한 재벌 3세의 갑질 사건’ 정도로 끝났을 것이다.

 그런데 하필 합병을 앞둔 시점이다.

 뉴스트리거에서 먼저 기사를 내보내자 다른 언론사들도 어쩔 수 없이 따라서 썼고, 외신마저 이를 주요뉴스로 내보냈다.

 [(속보) 한정그룹 주현진 이사의 갑질!]

 [피해자 김모 씨, 1년 넘는 기간 동안 폭언과 폭행에 시달려······]

 [충격의 녹취 내용. 한정그룹 측의 해명은?]

 [끊이지 않는 재벌가의 갑질 사건. 한정그룹 총수일가 이대로 괜찮은가?]

 [이번 사건이 경영권 분쟁에 미칠 영향은?]

 각 언론사 홈페이지와 포털사이트에는 기사가 실시간으로 올라왔고, 인터넷은 순식간에 들끓었다.

 -와! ㅅㅂ! 패드립도 정도가 있지.

 -너 이 새끼 인성에 문제 있어?

 -인간이 어떻게 저런 말을 하지?

 -본업 키보드 워리어, 부업 방구석 여포인 나도 가족은 안 건드리는데ㅎㅎ

 -어쩜 가족이 저렇게 하나같을까?

 -피는 못 속인다~

 -진짜 온가족이 골고루 지랄이네^^

 -주현진 이사님께 욕 처먹을까봐 주총장에도 못 가겠네ㅜㅜ

 -주총에서 소액주주들 일렬로 엎드려뻗쳐 시키고 빠따 치지 않을까 무섭네요 ㄷㄷㄷ

 -녹음 들어보면 뭔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것 같은데.

 -저런 새끼한테 경영을 맡겨도 되는 거냐?

 -한정그룹 일가 완전 쓰레기네.

 주현진은 회사로 향하는 동안 올라오는 기사와 댓글들을 읽어보았다.

 기사와 함께 녹취가 인터넷에 공개됐다.

 말을 할 땐 몰랐지만 이렇게 녹음한 걸 들어보니 충격 그 자체였다. 저게 정말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말이란 말인가?

 자신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라는 게 믿기지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반성하는 마음보다는 이를 폭로한 운전기사에 대한 분노가 치솟았다.

 “이런 개자식이! 그동안 먹고살게 해줬는데 감히 내 뒤통수를 쳐?”

 끓어오르는 분노로 인해 손발이 덜덜 떨렸다. 만약 운전기사가 앞에 있었다면 뒷일 생각 안 하고 주먹부터 날렸을 것이다.

 ‘아예 이런 짓은 생각도 못 하도록 잘근잘근 밟아놨어야 했는데!’

 그 순간, 문자가 하나 왔다.

 보낸 사람은 다름 아닌 이번 일을 터트린 장본인이었다.

 문자의 내용은 딱 한 줄이었다.

 [주현진 이사님. 가족은 건드리는 거 아닙니다.]

 그것을 본 주현진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내질렀다.

 “으아악! 이 개새끼야!!!”

 * * *

 한남동 주민재 회장 본가.

 집에 도착한 주현진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에는 큰형이자 부회장인 주철진과 누나인 주혜진이 먼저 와서 앉아있었다.

 주현진은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형님.”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먹이 날아들었다.

 퍼억!

 “이 미친 새끼가! 주총 끝날 때까지만 참고 있으라니까 그걸 못 참고 사고를 쳐!”

 누나인 주혜진은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말리지 않았다.

 평소 흥분하면 눈 돌아가서 미친개처럼 날뛰는 주현진이지만 큰형인 주철진 앞에서는 순한 양이나 다름없었다.

 주철진이 주현진의 멱살을 잡고 일으켜 세우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만해라.”

 그 말에 주철진은 손을 멈췄다.

 주민재 회장은 막내아들을 보며 말했다.

 “아랫놈 하나 제대로 관리 못 해서 이런 상황을 만들어?”

 “죄, 죄송합니다.”

 사실 주현진 입장에서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평소 자신과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던 인간이다. 그런 놈이 갑자기 언론에 폭로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운전기사한테 왜 그랬느냐?”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하나?

 사람이 사람에게 갑질을 하는 데는 딱히 이유가 없는 법이다.

 “그, 그냥 생긴 거나 하는 짓이 마음에 안 들어서요.”

 이걸 변명이랍시고 내보냈다가는 더 큰 역풍이 불 것이다.

 주민재 회장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쨌거나 일은 벌어졌으니 일단 수습부터 해야지.”

 한참 대책을 세우고 있는데 박명훈이 거실로 들어왔다.

 주철진은 바로 탁자 위에 있는 컵을 집어 던졌다. 박명훈은 날아오는 컵을 보면서도 피하지 않았고 이마에 정확하게 부딪혔다.

 “넌 뭐 하는 새끼야? 현진이 사고 치지 않도록 관리했어야 할 거 아니야?”

 박명훈은 흐르는 피를 닦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허리를 깊게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 불찰입니다.”

 주민재 회장이 물었다.

 “뉴스트리거라고 했나? 그쪽에서는 뭐라고 하나?”

 “별다른 얘기가 없습니다.”

 “기자는 누구야?”

 “민홍수라고 원래 중흥경제신문 쪽에 있던 기자인데, 한 달 전쯤 뉴스트리거로 옮겼습니다. 대표인 안현철과는 한국대 언론정보학과 선후배 사이입니다.”

 주민재 회장은 인상을 찌푸렸다.

 재벌을 저격하는 기사를 쓸 때는 그쪽 홍보팀에 먼저 얘기를 해주는 게 관행이다. 미리 기사에 대응할 만한 시간을 주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수위를 조절하기도 하고.

 만약 메이저 언론사였다면 그렇게 했을 테고, 그럼 기사가 못 나가게 막든지 다른 대응책을 준비했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터지는 바람에 손을 쓸 겨를도 없었다.

 “운전기사는 지금 어디 있나?”

 “아들과 함께 집을 비워둔 상태입니다. 연락도 안 되고 있습니다.”

 “KSGI와 엘리언트 놈들과 연관이 있을 가능성은?”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배후를 의심할 때는 이익을 얻는 놈을 의심해봐야 한다.

 이번 일은 한정그룹에게는 악재, 양자연합에게는 호재다. 아마 지금쯤이면 두 팔 들고 환호하고 있을 것이다.

 주철진은 지시를 내렸다.

 “일단 운전기사 신상부터 캐내. 생활환경, 학교, 가족, 친척, 친구, SNS에 올린 글들까지 전부. 그중에서 문제 될 만한 거 뽑아서 언론사에 보내.”

 박명훈은 바로 대답했다.

 “폭행과 음주운전 전과가 있는 걸 확인했고, 이 부분과 관련해 보도자료를 작성 중입니다.”

 주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음주와 폭행이라. 잘됐네. 평소에도 음주 상태로 난폭운전을 했다고 하면 되겠네. 생명의 위협을 느껴서 여러 차례 지적을 했고, 그 과정에서 욕설과 폭행이 있었던 거고. 그동안 낸 접촉사고와 과속, 신호위반, 주차위반 등도 첨부하고.”

 접촉사고가 난 건 주현진 때문이고 교통법규 위반 역시 전부 지시에 따른 거였다. 그러나 이제는 운전기사의 난폭운전을 입증하는 증거로 사용될 것이다.

 “아내가 집을 나간 건 술과 상습적인 폭행 때문이고 자녀에 대한 폭행도 의심된다는 식으로 기사 써달라고 요청하겠습니다.”

 “좋아.”

 지금 대중은 운전기사를 동정하고 주현진을 비난하는 중이다.

 하지만 운전기사를 매일 술에 취해 음주운전과 가정폭력을 일삼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면? 누가 그런 인간 편을 들어주겠는가?

 동정 여론은 순식간에 반전돼 대중은 운전기사를 욕할 것이다.

 주철진은 조소를 지었다.

 “주인을 문 개는 대가를 치러야지. 다시는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짓밟아 놔.”

 * * *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나오는 재벌가의 갑질 사건이지만, 합병을 앞둔 시점인 만큼 기사의 파장은 예상보다 컸다.

 여론이 들끓자 다른 언론사들 역시 따라서 기사를 올렸고, 9시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뉴스트리거는 바로 추가 기사를 업로드했다.

 [(단독) 주현진 이사, 소액주주를 ‘개미새끼들’. ‘개미 떼’, ‘벌레’ 등으로 칭하며 모멸감 드러내]

 기사의 댓글창과 주식 관련 게시판에는 주현진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ㅅㅂ 주주 우습게 아는 것도 정도가 있지.

 -개미 새끼들이 모여 봐야 개미 떼라고?

 -벌레? 개미가 벌레인 건 맞지만, 개미를 벌레라고 부르는 것만큼은 참을 수 없어!

 -어디 벌레한테 한번 당해봐라!

 -여러분 개미군단의 힘을 보여줍시다!

 -ㅋㅋㅋ 이런 새끼 보고 계속 경영하라고 위임장 써준 내가 병신새끼지.

 -합병 반대는 물론이고 이번 기회에 경영진 싹 갈아치워야 함.

 -이런데도 정치권은 돈 먹고 국민연금이 찍어주겠지?

 -이거 국정감사 해야 합니다. 지난번 프리머스 사태처럼 대통령이나 측근들이 돈 받아 처먹지는 않았는지 철저하게 조사해봐야 합니다.

 -당장 위임 철회하고 합병에 반대합시다!

 -옳소! 우리 소액주주들의 힘을 보여줍시다!

 단지 말뿐만이 아니었다.

 실제로 소액주주들의 이탈이 시작됐다. 위임장의 숫자는 급감했고, 심지어는 이미 위임장을 쓴 주주들도 이를 철회하겠다고 나섰다.

 사라는 올라오는 기사와 댓글을 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설마 이렇게 될 줄 알고 운전기사를 만난 거예요?”

 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럴 리가요. 평소 하는 짓을 보면 운전기사를 어떻게 대할지 뻔하잖아요. 혹시나 해서 한번 만나봤는데, 저도 이렇게 일이 잘 풀릴지는 몰랐어요.”

 운전기사 개인에 대한 폭언과 폭행도 문제지만, 녹취에는 소액주주들을 비하하는 내용까지 담겨 있었다.

 이젠 메이저 언론들도 무조건 한정그룹 측에 유리한 기사를 쓰기 힘들어졌고, 한정그룹 측에서도 위임장을 요구하기 힘들어졌다.

 소액주주들의 표심을 돌리는데 어느 정도 성공한 것이다.

 동호 선배가 말했다.

 “한정그룹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사과하는 척하며 언론플레이를 준비 중일 거야.”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죠. 한정그룹이 이런 일 한두 번 겪어 본 것도 아니니.”

 이후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나만큼 잘 아는 사람도 없다.

 운전기사는 현재 아들과 함께 다른 저택에 머물고 있다. 그가 지낼 장소를 마련하고 변호사를 선임하는 등의 일은 사라가 맡아서 해주었다.

 난 김승도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이대로 괜찮겠습니까?]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아마 자신이 폭로한 일의 파장을 보고 스스로 놀라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일전에도 말씀드렸지만, 한정그룹 측에서는 김승도 씨의 폭행전과와 음주운전 전력 등을 문제 삼으며 여론을 뒤집으려 할 겁니다.”

 이미 그에 대한 뒷조사를 시작했을 것이다.

 그의 개인적인 치부를 전부 까발리며 ‘고발자도 나쁜 놈이다’라는 프레임을 짤 테고, 심지어는 아들에 대한 모욕을 참지 못해 폭로한 그를 자녀학대범으로 몰아갈 것이다.

 [어,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전 국민이 자신을 손가락질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웬만한 사람이라면 제정신으로 버티기 힘들다.

 대한민국에서 재벌과 적대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

 그래서 그는 결국 한정그룹 측이 내민 합의서에 도장을 찍고, 이후로는 이 일에 대해 영원히 입을 다물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그가 비난을 피해갈 수 있을까?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아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제가 그런 일이 안 생기도록 할 테니까요.”

 [어떻게 말입니까?]

 난 그를 안심시켜주었다.

 “총성이 아무리 커도 폭발음에 묻히기 마련이죠.”

 다음 기사가 터지면 지금 기사에는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주현진만 쓰레기로 남은 채 모두의 관심사는 다시 합병안으로 옮겨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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