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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화. 갑질 폭로 (4) (128/529)

 129화. 갑질 폭로 (4)

 뉴스트리거 사무실로 돌아온 민홍수는 바로 대표실로 쳐들어갔다.

 통화를 하던 안현철은 당황하며 말했다.

 “노크 좀 하지?”

 “선배!”

 “선배가 아니고 대표. 그런데 왜 그렇게 호들갑이야?”

 “일단 이거부터 들어보세요.”

 민홍수의 표정을 본 안현철은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는 바로 핸드폰을 내려놓고 녹취를 들었다.

 “이걸 기사로 내자고?”

 “예. 완전 특종 아닙니까?”

 안현철은 눈을 빛냈다.

 “특종이지.”

 녹취에는 운전기사 개인에 대한 욕뿐 아니라, 직원들을 머슴 취급하는 발언들과 소액주주들을 비꼬는 내용도 들어가 있었다.

 기사를 내면 충분히 이슈가 될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건 이게 아닙니다.”

 “응? 그럼 뭐가 중요해?”

 “진짜 특종은 따로 있습니다.”

 “왜 갑자기 목소리를 깔아? 뭔데?”

 민홍수는 더욱 낮은 목소리로 말했고, 안현철은 깜짝 놀랐다.

 “그게 정말이야?”

 “예.”

 “자, 잠깐. 그러니까 대통령이 차명 재단을 통해 뇌물을 받았다는 거지? 국민연금 찬성을 조건으로?”

 “그렇습니다.”

 “주현진 이사가 통화 중 말한 걸 그대로 믿어도 되나? 당사자가 직접 말한 것도 아니잖아.”

 “관련 서류 몇 장은 제가 직접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그 자료는 어디 있는데?”

 “그건 안 주던데요.”

 안현철은 당황했다.

 “응? 왜 안 줘?”

 “일단 갑질 사건을 기사로 내면 준다고 합니다.”

 “······뭐?”

 한마디로 ‘너 하는 거 봐서’라는 건가?

 민홍수는 설득하듯 말했다.

 “당장 갑질 기사부터 써야 합니다.”

 “그렇지. 써야지.”

 뉴스트리거는 창립 이후 아직 이렇다 할 만한 특종을 내지 못했다.

 ‘그래! 우리 언론사에서는 이런 기사가 필요했어!’

 다른 때라면 모를까 지금은 한정그룹 경영권 분쟁에 전 국민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는 상황. 정부와 재벌그룹이 나서도 적당히 덮고 넘어갈 수는 없을 것이다.

 ‘이번 기회에 뉴스트리거라는 이름을 국민들에게 확실하게 각인시킬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생각한 안현철은 민홍수를 끌어안았다.

 “이런 복덩이 같은 놈!”

 * * *

 주민재 회장은 자식들의 사생활에 대해 거의 터치하지 않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번 합병안은 언론은 물론 정재계의 주목을 받고 있고, 이런 상황에서는 작은 꼬투리 하나만 잡혀도 큰일로 번질 수 있다.

 때문에 합병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튀는 행동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주철진과 주혜진은 물론이고, 막내인 주현진 역시 아버지의 말을 충실하게 따랐다. 외부 만남은 최대한 자제하고 한동안 술도 집에서만 마셨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슬슬 좀이 쑤시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친구인 최정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오늘 상호랑 만나 한잔하려는데 올 수 있어?]

 “몇 시에?”

 [8시쯤 보기로 했어.]

 최정환과 김상호는 평소에도 자주 같이 노는 멤버들이다.

 안 그래도 몸이 근질거렸는데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이 정도면 참을 만큼 참은 셈이다.

 “알았어. 이따 거기서 보자.”

 출발하려는데 오전에 있던 김 기사가 보이지 않았다.

 “김 기사 어디 갔어?”

 대신 운전대를 잡은 비서가 말했다.

 “몸이 안 좋다고 병가를 썼습니다.”

 “그래?”

 아침에 봤을 땐 멀쩡해 보였는데.

 그는 비서가 모는 차를 타고 강남의 룸싸롱으로 향했다.

 주현진이 차에서 내리자 한 여성이 웃는 표정으로 그를 맞았다.

 “어서 오세요, 이사님. 오랜만에 오셨네요.”

 “잘 지냈어?”

 “그럼요.”

 그녀의 이름은 민가영.

 나이는 스물아홉이지만, 외모는 그보다 어린 20대 초반 정도로 보였다. 티 나지 않게 성형한 얼굴과 늘씬한 몸매는 그녀의 자랑이었다.

 그녀는 한때 주현진과 연인 관계였으나 지금은 친구처럼 지내고 있었다. 이 룸싸롱은 그가 이별 선물로 차려준 것이었다.

 “여전히 예쁘네.”

 민가영은 생긋 웃었다.

 “말이라도 고맙네요. 안에 젊고 예쁜 애들 많으니까 어서 들어가요.”

 “친구들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어요.”

 둘은 얘기를 나누며 안으로 들어갔다.

 널찍한 룸 안에는 이미 두 명의 남자가 앉아있었다. 그들은 주현진을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서 와.”

 “요즘 얼굴 보기 힘들어.”

 셋은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주현진은 민가영에게 물었다.

 “세아 출근했어?”

 “그럼요. 회장님 오신다는 말에 바로 달려왔는걸요.”

 “어서 들어오라고 해.”

 친구들이 여자를 초이스하는 사이 벨벳 원피스를 입은 20대 초반의 여성이 안으로 들어왔다.

 170센티 초반의 큰 키에 늘씬하게 뻗은 다리. 작은 얼굴과 뚜렷한 이목구비. 대한민국의 미녀란 미녀는 다 모아놓은 이곳에서도 그녀의 외모는 독보적이었다.

 주현진은 그녀를 향해 반갑게 손짓했다.

 “세아, 얼른 이리와.”

 그녀는 주현진의 옆에 앉았다.

 “그동안 잘 지냈어?”

 “오빤 그동안 오지도 않고.”

 “알잖아. 좀 바빴어.”

 “칫! 그럼 연락이라도 해줬어야지.”

 여성은 눈썹을 찡그리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고, 그 표정을 본 주현진은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 세아가 오빠 많이 보고 싶었구나. 선물 사줄 테니까 화 풀어. 뭐 갖고 싶은 거 없어?”

 “선물 같은 건 됐으니까 나 외롭게만 하지 마.”

 “차 한 대 뽑아줄까?”

 “됐다니까. 나도 차 있거든.”

 남자의 마음을 잘 아는 여자다. 안 받는다고 하니 왠지 더 주고 싶어졌다.

 ‘비싼 선물 사준다고 좋다고 넙죽 받는 여자는 매력 없지.’

 주현진은 친구들과 술잔을 부딪쳤다.

 그동안 집 안에 갇혀 있다시피 하다가 나오니까 살 것 같았다. 역시 술은 집에서가 아니라 이런 자리에서 마셔야 제맛이다.

 놀러온 자리인 만큼 친구들도 합병 같은 골치 아픈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그 새끼는 언제 끝장낼 거야?”

 “설마 그대로 놔둘 건 아니지?”

 최정환과 김상호 모두 그날 라운지바에 함께 있었다.

 당시 한미루가 주현진을 상대로 보인 말과 행동은 그들에게 있어서 신선한 충격이었다.

 “니 앞에서 그렇게 건방 떨고도 제 발로 기어나간 건 그놈이 유일하지 않나?”

 “맞아. 난 그 자리에서 살려달라고 빌게 만들 줄 알았는데.”

 “대체 뭘 믿고 그렇게 나대는 거지?”

 “진짜 양자은 상무님과 관련이 있는 거야?”

 평소 성질 같았으면 그 자리에서 다시는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짓밟아줬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한 건 성윤아나 DA금융그룹 측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

 그런데 알고 보니 다 허세였다.

 세상에는 재벌과 약간의 친분만 있어도 지가 뭐라도 된 줄 착각하는 놈들이 많다. 이제까지 그런 놈들을 많이 만나봤다.

 ‘그놈도 결국 그런 부류 중 하나일 뿐이지.’

 주현진은 술잔을 꽉 움켜쥐며 말했다.

 “일단 주총이 끝나야 뭘 하든지 말든지 하지. 주총만 끝나면 그때 아주 제대로 손봐줄 생각이야. 다시는 나랑 눈도 못 마주치도록 잘근잘근 밟아줘야지.”

 아무리 자존심 내세워봐야 결국 돈과 폭력 앞에서는 무릎을 꿇게 되어있다.

 “하하! 그때 우리도 꼭 불러야 해.”

 오랜만에 술 마시며 웃고 떠드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그것을 본 세아가 물었다.

 “누구야, 오빠?”

 주현진은 화면에 뜬 이름을 보며 귀찮다는 듯 말했다.

 “우리 박 과장. 지 아버지 닮아서 어찌나 잔소리가 많은지.”

 “안 받아도 돼?”

 “그럼.”

 핸드폰이 계속해서 울리자 아예 꺼버렸다. 그렇게 계속 술을 마시는데, 민가영이 룸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송구스럽다는 듯 말했다.

 “죄송해요, 이사님. 여기 있는 거 알고 있으니까 바로 전화 바꿔달라고 하시네요. 매우 급한 일이라고.”

 “뭐?”

 주현진이 고개를 들어 친구들을 보자, 두 사람 모두 모르는 일이라는 듯 일제히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아무래도 사람을 붙여서 동선파악을 하고 있던 모양이다. 아니면 갈 만한 곳에 다 연락을 해봤거나.

 “에이씨. 술맛 떨어지게.”

 그래도 이렇게까지 하는 걸 보니 급하긴 급한 모양이다. 아마 이번에도 안 받으면 직접 찾아올 것이다.

 주현진은 어쩔 수 없이 핸드폰을 받아들었다.

 “무슨 일이야?”

 그의 물음에 박명훈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보내준 기사 봤어?]

 “기사?”

 순간, 머릿속에 몇 가지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은정이 낙태시킨 게 새나갔나? 아니면, 지난번 음주사고 내고 바꿔치기한 거? 설마 회삿돈으로 따로 투자한 게 걸린 건 아니겠지?’

 찔리는 게 한두 개가 아니다.

 주현진은 일부러 귀찮다는 듯 말했다.

 “그냥 니가 알아서 처리하고 나중에 보고해. 이만 끊을게.”

 [방금 뉴스트리거라는 인터넷 언론사에서 한정그룹 총수일가 막내아들 폭언폭행 사건을 고발하는 기사를 올렸어.]

 그 말에 전화를 끊으려던 주현진은 멈칫했다.

 “뭐? 지금 뭐라고 했어?”

 박명훈은 다시 말했다.

 [녹음 파일까지 편집해서 올라왔어. 상황이 많이 안 좋아.]

 “어떤 새끼가 찔렀는데?”

 [김승도 운전기사.]

 “뭐!?”

 [오래전부터 차 안에서 몰래 녹음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야.]

 그 말을 듣는 순간 취기가 싹 사라지는 듯했다.

 “자, 잠깐만.”

 주현진은 핸드폰으로 기사를 열어 보았다.

 [(단독) 한정그룹 주민재 회장 막내아들 주현진, 운전기사에게 폭언과 폭행!]

 (전략) 주민재 한정그룹 회장 막내아들 주현진 HJ푸드 이사가 운전기사에게 폭언과 폭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본지는 해당 운전기사에게서 녹취록을 입수해 이를 분석해보았고, 주현진 이사가 맞다는 것을 확인했다.

 주민재 회장이 회삿돈 1200억을 빼돌린 혐의로 집행유예 중이고, 주철진 부회장이 페이퍼컴퍼니를 통한 조세포탈과 배임 혐의로 재판 중이고, 주혜진 전무 역시 직원들에게 폭행과 폭언을 한 의혹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한정그룹 오너 일가의 갑질 사건이 또다시 터진 것이다.

 주 이사의 폭행과 폭언은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이뤄졌다. 운전을 하는 내내 뒷자리에서 발길질을 하거나 수시로 욕설을 퍼부었다.

 운전기사는 한정그룹 측의 보복을 두려워하면서도 폭로하게 된 이유에 대해 ‘다른 건 다 참을 수 있어도 장애가 있는 아들을 욕하는 것만큼은 참을 수 없었습니다’라고 심정을 밝혔다.

 실제로 녹취에 따르면 주 이사는 ‘애비가 머리가 나쁘니 아들도 지능이 딸린다’, ‘애새끼랑 같이 길바닥에서 구걸하게 만들어주겠다’ 등 차마 입에 담기조차 힘든 욕설을······.

 “시발! 이런 개새끼가!”

 기사를 읽던 주현진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김 기사 이 새끼, 지금 어디 있어?”

 [연락이 안 돼. 핸드폰을 꺼놓고 있어.]

 “그럼 집에라도 찾아가야 할 거 아니야?”

 [집도 비워놨어.]

 “저 기사 막을 수 없어? 당장 기사 내리라고 해. 안 그러면 광고 다 뺀다고.”

 [허접한 인터넷 언론사라 손을 쓰기가 힘들어. 거기서 기사 내린다고 해도 이미 인터넷은 물론 다른 언론들과 외신까지 퍼진 상태야. 현재 홍보팀에서 언론사들 상대로 기사 보류해달라고 요청 중인데 막긴 힘들 거야.]

 “뭐? 그럼 이대로 가만히 있을 거야?”

 [일단 회장님 댁으로 와. 회장님과 부회장님께서도 지금 들어오고 계시니까.]

 “아, 알았어. 바로 갈게.”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세아가 그의 팔을 붙잡으며 애교를 부리듯 말했다.

 “벌써 가려고, 오빠? 조금만 더 놀다가.”

 주현진은 그녀를 보며 말했다.

 “씨발, 너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이 손 안 놔?”

 그녀는 깜짝 놀라 물었다.

 “왜, 왜 그래 오빠? 장난이지?”

 “장난? 내가 술집년이랑 장난할 레벨로 보여?”

 “······.”

 주현진은 마치 벌레를 보는 것 같은 혐오감 어린 눈빛을 하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자신과 다정하게 대화하던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갑자기 변한 그의 태도에 그녀는 몸을 덜덜 떨며 손을 놓았다.

 주현진은 그런 그녀를 본체만체하며 룸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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